독일 극작가 탐방

글_이재진

 

클라이스트(Heinrich von Kleist. 1777-1811)

<깨어진 항아리> – <암피트뤼온> – <펜테질레아>

 

독일 드라마에는 희극(喜劇)이 비교적 적다고들 한다. 나는 그 말에 쉽게 동의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치면 클라이스트의 희극작품은 더욱 값지고 귀하게 된다. 하지만 클라이스트는 누구보다도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클라이스트는 괴테나 실러가 주도하던 바이마르 고전주의에 끼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 당시 주류이던 낭만주의에 편승하지도 않았다.

괴테는 <깨어진 항아리>는 근본이 없는 극이라 비판했다. 희극은 현실을 반영 (mimesis)하며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야 되지만, 클라이스트의 드라마는 뿌리가 없다는 것이다. <펜테질레아>도 지나친 전령보고, “성벽너머보기”(teichoscopy)등으로 무대에 오르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괴테는 혹평을 했다.

독일에서 가장 위대한 극작가란 이름을 남길 수도 있었던 클라이스트는 아쉽게 33세란 젊은 나이에 무대를 떠나고 말았다. “무릎을 꿇고, 온 정성을 담아” 작품을 보냈지만 괴테는 이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시인은 너무나 죽고 싶었을 것이다. 클라이스트의 죽음에는 괴테에게서 받았던 이런 실망과 좌절감이 전혀 관계없지 않았을지 모른다. 거목 하나가 운 나쁘게 자기 앞에 뻗어 서 있기에 자신은 햇빛을 받을 수 없어 자랄 수 없음을 클라이스트는 늘 자신의 비극적 운명으로 한탄했으니까. 클라이스트는 마지막 길을 외롭게 혼자 갈 수는 없었다. 암에 걸린 여인이 마지막 길을 동행해 주었다. 우리에게 남겨준 작품이 괴테나 실러만큼 양적으로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극작가로서의 최고의 명성을 얻을 만큼 훌륭한 희곡작품은 적게나마 우리에게 남겨 주었다. 내가 1974년 베를린의 반제 호수(Wannsee)를 찾아갔을 때, 클라이스트의 죽음을 내려다보던 그 때 그 나무는 그 자리에 말없이 그대로 서 있었다. 나는 1966년 원어극 <로물루스 대제>를 마치고, 또 다른 작품을 찾고 있었다. 그때 클라이스트 <깨어진 항아리>를 만났다. 1967년 독문과 도서관이었다.

 

1) <깨어진 항아리>(Der zerbrochne Krug. 1806)

괴테는 1808년 봐이마르에서 <깨어진 항아리>를 직접 연출한다. 하지만 이 공연은 처참할 정도로 실패한다. 이 작품은 하루 사이에 일어나는 재판형식의 극이다. 시골마을 재판관(Adam)이 동네 처녀(Eva)가 탐이 나서 몰래 처녀 방에 들어갔다가 혼이 나 도망치다 그 집 도자기를 깨고 크게 다친다. 범인을 잡는 이 송사를 이 재판관 자신이 맡아 벌어지는 촌극이다. 이 작품은 그리스 비극처럼 사건은 이미 일어난 상태에서 하나씩 천천히 풀리는 ‘분석 드라마’이기에 단막극 형식으로 막의 차단이 없어야 극적 흥미가 이어진다. 하지만 괴테가 작품을 3막으로 나누었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괴테는 나름대로 실패에 대한 책임을 작가에게 돌리고, 클라이스트는 물론 괴테에 대한 원망과 분함이 극에 다다랐다. 그 후 이 작품만큼 관객을 휘어잡는 희극은 독일 희곡에 없을 것이다. 주인공 시골판사 아담은 가장 욕심을 불러내는 사랑받는 주인공 역할이라 할 수 있다.

 

(깨어진 항아리. 1937년 Emil Jannings가 주연한 영화)

 

5각운(Blankverse)으로 쓰여진 <깨어진 항아리>는 독일희극의 최고봉에 자리한다. 교과서에 실리고 오페라로는 물론 여러 번 영화로도 찍었다. Jannings가 주연한 1937년 영화는 히틀러도 보고 극찬했다. 영화사는 나치의 명령에 따라(!) 어려운 재정 상태임에도 필요할 때를 위해 35편의 여유분을 복사해 놓을 수 밖에 없었다. 2차대전 후 연합군은 이 영화의 상연을 금지했다.

 

2) <암피트뤼온>(Amphitryon. 1807)

브레히트, 베데킨트, 뒤렌마트 등의 드라마를 나는 꽤 많이 번역해서 출간도 하고, 무대에 올리는 데 나름대로 일조를 했다. 1970년 이진순 선생님의 부탁으로 뒤렌마트의 <천사 바빌론에 오다>를 번역했다. 극단 ‘광장’은 명동 국립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공연 후 선생님은 내게 또 다른 독일 작품을 주문했고 나는 클라이스트의 <암피트리온>을 선택했다. 번역 하는데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다. 첫 장면에 소시아스와 메르쿠어가 싸운다. 독일 희곡 중 가장 재미있는 장면을 나보고 꼽아보라하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이 장면을 떠올린다.

테에베의 맹주 암피트뤼온은 아테네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알크메네(Alkmene)는 남편의 무사한 귀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바람둥이 쥬피터(제우스)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메르쿠어(헤르메스)를 데리고 테에베에 나타난다. 물론 암피트뤼온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제우스가 침실에서 방해받지 않고, 만리장성을 쌓으라고 메르쿠어는 성문을 굳게 지킨다. 주인님이 재미를 보는 동안 그 누구도 성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아니나 다를까 암피트뤼온의 시종 소시아스가 주인의 이른 귀가를 알리기 위해 새벽같이 성에 도착한다. 신분을 놓고 시비가 붙는다.

 

메르쿠어: 내가 소시아스다.

소시아스: 소시아스라고? 자네가?

메르쿠어: 그래 내가 소시아스다. 딴소릴 하려거든 이 몽둥이를 조심해야

할거다.

소시아스: 그럼 말하겠는데 어쩌다가 그런 끔찍한 생각을 하게 됐나? 아무 죄 없는 내 이름을 도둑질해 가려느냔 말이야? 이 멋진 망토나 저녁밥이 아니라 하필 이름을! 이름같은 것으로 옷을 해 입을 수가 있단 말이야? 그런 것으로 먹을수가 있나 입을수가 있나? 저당 잡힐수도 없다구. 이런 도둑질이 무슨 필요가 있겠나?

소시아스: (혼자소리로) 할 수 없구나. 이 땅덩이가 나 소시아스를 삼켜 버린 것 같구나. 쌍둥이라해도 이처럼 속속들이 알아맞출 수는 없는 것이니까. (큰소리로) 이보게, 자넨 이 세상에서 더 할 나위 없는 소시아스 인 것을 알았네. 난 미칠것만 같구만. 이제 중뿔난 짓일랑 그만두세. 기꺼이 자네 말을 따를테니. 그러나 꽤 흥미스런 질문이지만 내가 소시아스가 아니면 난 도대체 누군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여기 이렇게 있으니 내가 무엇인가는 되어야 하지 않겠나?

 

일자무식 소시아스는 철학자가 된다. 이 끔찍한 사실을 주인에게 알리기 위해 전쟁터로 다시 달려간다. 제우스는 할 일을 끝내고 물러선다. 다음날 아침 암피트뤼온이 서둘러 성으로 돌아오자 알크메네는 전날밤의 달콤했던 로맨스를 상기시킨다. 암피트뤼온은 환장한다. 부인이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한다. 쥬피터는 남편의 형상을 하고 또다시 나타난다. 무대 위에 암피트뤼온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 된다. 참모나 장군들은 알크메네에게 진짜 쥬피터를 골라내도록 강요한다. 자신의 부인이 쥬피터를 남편으로 선택하자 암피트뤼온은 딜레마에 빠진다. 자신이 자신임을 밝히면 밝힐수록 알크메네는 더욱 부정한 여인이 되고 만다. 이 순간 천둥, 번개가 치고, 무대는 구름으로 가득 찬다. 구름으로부터 뇌신을 입에 문 독수리가 떠돈다. 쥬피터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이로서 모든 혼란은 해결된다. “너에게 아들이 하나 태어날 것이니 그 이름을 헤라클레스라고 하여라. 어떤 영웅도 이보다 더 큰 영광을 얻지 못할 것이다.” 난처하고 어려운 문제를 신이 나타나면 간단히 해결되는 기법을 “신의출현”(deus ex machina)이라고 한다. 현대극에서도 이 기법이 자주 등장한다. 마지막에 알크메네는 할 말을 잃고 아-!(ach!)를 내뱉는다. 세 번 내뱉는 이 감탄사는 독일희곡문학에 깊은 인상을 박아놓았다.

 

 

(암피트뤼온. 2018년 Münster Theater)

 

그리스어 ”암피“(amphi)의 어원을 따져보면 이중, 양면을 의미한다. 알크메네를 둘러싼 쥬피터와 암피트뤼온, 성문을 지키는 메르쿠어와 소시아스. 쌍둥이 헤라클레스와 이피클레스의 탄생, 작품속에 깔려 있는 희극성과 비극성, 개인과 집단 … 소시아스의 처 카리스와 메르쿠어와의 관계도 주인들과 병행해서 벌어진다. 카리스는 메르쿠어를 남편으로 알고 추근대지만 쥬피터와는 달리 전령의 신은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3)<펜테질레아>(Penthesilea. 1808)

트로이전쟁은 전설인가 역사적 사건인가? 독일의 고고학자 슐리만(Heinrich Schliemann. 1822-1890)은 어려서부터, 트로야(지금의 터키 지역)의 전쟁을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실로 믿었고 언젠가는 실체를 밝히겠다고 꿈꿔왔다. 1873년 호머의 [일리아드]를 추적해 유물을 발굴하는데 성공한다. 이로서 트로이 전쟁이 역사적 사건임이 증명되었다.

펜테질레아는 아마존 부족의 여왕이다. 부족은 전통적으로 남자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전쟁의 신 마-스(Mars/Ares)가 부족을 하나 정해주면 그 부족과 싸워 아이를 생산할 사내를 구하게 된다. 아이를 얻고 나면 사내들은 돌려보낸다. 태어난 아이들 중 사내아이들은 죽이고 계집아이들만 여전사로 키운다. 전투할 때 걸리적거린다며 한쪽 가슴은 잘라낸다. 사내를 고를 때 사심이 들어가면(사랑하면) 안 된다.

 

(펜테질레아. 2014 Darmstadt Theater)

 

트로야 전쟁이 소강상태에 빠졌을 때 아마존 부족은 여왕 펜테질레아의 지휘아래 전쟁터 한 가운데로 진입한다. 트로야 진영을 돕기 위해 출정한 것으로 추측을 했으나 사실은 종족번식을 위해 젊고 싱싱한 남성을 얻기 위해서 이들은 전쟁터를 찾은 것이다. 펜테질레아가 그리스 연합군의 영웅 아킬레스를 보고는 뜨거운 연정을 느낀다. 아킬레스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꿈에 부푼다. 이는 부족의 율법에 어긋난다. 여전사들은 이제 귀향을 준비하는데 여왕은 싸움터를 떠나지 않는다. 아킬레스와의 전투에서 여왕은 화살을 맞고 말에서 떨어져 기절한다. 여왕의 친구이며 부족장인 프로토에는 펜테질레아가 사실을 알면 견디지 못할테니 아킬레스에게 패자인 척 해달라고 부탁한다. 펜테질레아의 미모에 빠진 아킬레스는 이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끝내 아킬레스가 승자임이 밝혀진다. 아킬레스는 무장도 하지 않은 채 새로이 싸움을 걸어온다. 아킬레스의 속뜻을 모른 채 펜테질레아는 증오와 사랑 속에 뒤섞여 화살로 쏘아 맞추고 쓰러진 아킬레스의 가슴을 사냥개 보다 더욱 사납게 물어뜯으며 정신없이 아킬레스 가슴의 피를 빨아 마신다. 꿈을 꾼 듯 다시 일어난 여왕은 이 끔찍한 광경 앞에서 자신의 광기를 믿지 못한다. 제 정신을 차린 펜테질레아는 아킬레스의 시신을 제사장 앞에 옮기고 자신도 연인의 뒤를 따른다. 제사장은 여왕의 죽음을 인간의 무력함으로 돌리지만, 부족장 프로토에는 ”펜테질레아가 여인으로서 너무 생기 넘치고 너무나 자신만만하였기”에 쓰려졌다며 안타까워한다. 여인으로서의 허약함을 펜테질레아는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제사장은 “인간은 얼마나 허약한 존재인가, 오 신들이시여!” 한탄한다. 펜테질레아는 부족의 관습이 아니라 사랑이란 자연의 법칙을 따랐다. 아마존 부족의 율법으로는 여인으로서의 솟구치는 감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펜테질레아는 “매력을 풍기지 못하는 계집이라면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랑을 갈망하는 여성인 것이다.

 

프로토에

이분은 너무 당당하고 생기 넘치게 피어났기에 쓰러지신 거예요

썩어빠진 참나무는 폭풍에도 견뎌내지만,

건강한 나무는 폭풍이 내리쳐 쓰러트리지요

그 나무의 귀한 가지를 움켜잡을 수 있으니까요. (24장)

 

5각운으로 쓰인 이 작품은 아리스토텔레스기 요구하듯 하루동안에 벌어지지만, 호머의 [일리아드]와 같이 24장으로 구성되어있어 드라마로는 적합하지 않다. 아킬레스의 몸을 잔인하게 개들이 물어뜯는 장면도 그 당시 관객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3막으로 재구성되어, 작가가 죽은 후 65년이 지나서야 초연이 이루어졌다. 클라이스트 사후 200주년을 기념하며 나는 <펜테질레아 2011>이란 드라마를 썼다. 고백하지만, 이 기회에 나는 셰익스피어, 클라이스트에 도전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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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thought on “독일 극작가 탐방

  1. 교수님,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본격 겨울 추위가 시작되었습니다.
    항시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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