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제연극연구소 H.U.E.

글_김충일(연극평론가)

 

이미 우리는 가족 공동체의 붕괴 현상을 갖가지 예술 매체를 통해 경험하고 있다. 공연예술도 그중 하나다. 연극 속의 화두로 빈번하게 등장하는 가족은 그냥 생명(사회적 혈연)의 베이스이다. 태어나서 이 베이스캠프를 배경 삼아 자기의 길을 가면서 그렇게 누구든 새로운 생명과 사회적 관계의 네트워크를 형성해 간다. 그러나 우리가 얽혀 짜낸 그 네트워크는 여러 갈래의 층위를 갖고 사회 병리적 질병으로 다가 온다. 그 중 우리가 안고 있는 가장 아픈 상처는 가정이 출구가 봉쇄된 채 정서적 집착과 경제적 이익을 기준으로 관계의 순리를 파괴하는 ‘소외의 터’가 되어버렸다는 현실이다. 하여 그 밑바닥을 어슬렁거리면서 변화하는 삶의 무늬 중의 하나인 ‘투명인간’이란 실험적 서사재료를 무대에 올리는 일은 소중한 작업이다.

작가 김지수가 극본을 쓰고 홍주영이 연출한 초연작 『the Invisible Man <투명인간(원제: 밑)>. 이 작품은 “도덕 교과서가 알려주는 가족의 의미 대신 실제로 경험하고 느끼는 가족의 실체를 인정하고 그로 인한 관계의 삶을 재조명하며, 기존과는 다른 방향에서 가족의 의미를 탐색”한다. 지난 해 대전연극협회가 실험적으로 추진한 ‘극단적 프로젝트’ 낭독 합평회에서 관객들의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 <투명인간>은 국제연극연구소 H.U.E(대표: 박경순)의 18번째 정기공연작으로 11월 17일부터 26일까지 시내 대흥동 소극장 고도에서 공연되었다.

“가난과 고독한 환경이 만나 그야말로 가족이 지옥”이 되는 현실 속에서, 가족의 고요를 깨뜨리는 불편한 아버지(한동수: 문성필 역)가 이십오 년 만에 귀환한다. 어색한 침묵 속, 딸( 한유정: 이진아 역)은 아버지를 남들처럼 챙겨 주고 싶지만 어머니(이모옥: 강미영 역)와 아들(한병우: 임황건 역)의 머뭇거림으로 촛불도 켜지 못한다. 아버지는 ‘혼자 남은 생일 케이크’가 된다. 젊은 여자(아들의 애인)와 아들의 공모로 벌어진, ‘썩은 냄새’, ‘금고 속 돈뭉치’, ‘옷 따라 벗기’로 은유되는 ‘투명인간 놀이’는 한 바탕 어머니와의 몸싸움으로 끝을 맺는다. 아버지에 대한 가족들의 ‘일상 속에서 벌어진 역겨운 기억과 회상’에 대한 대화는 점점 아버지가 스스로 입을 닫게 만들면서, ‘마음속의 투명인간’은 ‘현실 속의 투명인간’으로 변모해 간다.

급기야 가족들은 아버지가 ‘옆에 듣고 있건 말건 신경 쓰지 않는다,’ 쓰러진 아버지를 곁에 두고 ‘똥냄새에서 돈 냄새’로 치환된 가족 간의 ‘무표정과 침묵’은 ‘밑 빠진 집’ 속으로 빠져 들어가 어머니가 쓰러지게 되고, 급기야 아버지는 119를 찾는 와중에 만삭의 여자(조경미: 문혜인 역)가 등장해 금고 속 돈을 챙긴다. 아버지는 ‘투명인간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얻지만, 그런 자유를 마음대로 누릴 수도 없어요. 왜냐하면, 투명인간이 되는 순간 누구와도 관계를 제대로 맺을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투명인간을 도와줄 누군가가 필요해요. 그래야 투명인간도 제대로 살아갈 수 있어요’라는 독백과 함께 극은 암전된다.

 

사진 제공: 국제연극연구소 H.U.E 문익상

 

<the Invisible Man> 속에서 아버지는 가족 구성원들의 특이한 시각을 통해 존재의 영역과 의미가 축소 아니 소멸되는 ‘보이지 않는 존재’로 처리된다. 하지만 그 개념이 모호하고 추상적이기에, 논리나 언어로 무대화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홍연출은 ‘투명인간: 아버지라는 존재’의 ‘있음’, ‘없음’, ‘있으면서 없음’ 그리고 ‘알 수 없음’이란 서사적 주제를 다면체적인 사유로 접근해 감으로써 ‘사유’도 그 자체로 하나의 무대화의 도구임을 보여 주면서 ‘존재, 스스로가 본인이 원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 낙인 된 인간’임을 밝혀 주고 있다. 그러면서 투명인간으로 변해버린 ‘아버지’란 존재는 사실은 우리의 모습(서로서로에게 타인)은 아닌지, 혹은 그 모습은 우리가 만든 것은 아닌지(나란 존재가치는 타인과의 연대가치)라는 질문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위한 무대에서의 가구 배치와 ‘투명인간 놀이’는 결국 놀이를 넘어 현실의 비극을 폭로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한 극적 작업 장치이다. 극의 프롤로그에서 놓여 진 가족 간의 정서적 거리나 상태를 드러내는 작은 아파트 거실의 가구 배치에서부터 의미심장하다. 어머니 이모옥이 누워있던 2인용 소파가 가운데에 있고, 양쪽에 1인용 소파가 하나씩 놓여있는데 모두 무대 뒤쪽을 향해 있다가 아버지 한동수가 들어오면 소파가 모두 객석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이와 같은 행위는 “25년 만에 돌아온 아버지가 전부터 꿈꾸던 가족의 모습을 만들고자 하는 욕망의 방향을 바꾸고 싶다”는 부재하는 존재의 몸부림이다. 또한 극 중 가족이 앉아있는 상태에서 의자를 돌리거나, 앉아있던 가족이 아버지를 무시하고 일어선 다음 빈 의자를 다시 돌리는 행동이나,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발소리만 들리게 한 연출 작업은 아버지의 관점에서 “투명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을 표현하면서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한 방책이다.

더 나아가서 홍연출은 이 작품이 갖는 ‘삶과 그 삶 속의 존재자’들의 ‘리얼리티’가 어디에 존재하는 가에 질문의 청진지를 들이댄다. 즉 가족이 사는 모습에서 진정한 또는 진실에 가까운 리얼리티가 존재하는 곳은 보여 지는 삶에서 인지 아니면 가족 개개인의 주관적 의식 또는 무의식 속인지 관객에게 물음을 던진다. 그래서 마지막 여자가 등장한 장면에서 프롤로그의 의자 장면과 동일한 조명과 음악을 사용해서 이것이 실재인지 환상인지 아니면 일상 장면이 실재인지 의자 장면이 실재인지 관객이 스스로 판단하기를 요구한다.

 

사진 제공: 국제연극연구소 H.U.E 문익상

 

더해서 배우들이 무대로 입·출입할 때 마다 반복되는 아파트의 도어 락 소리 “삐비빅 띠리리”하는 효과음은 관객의 귀를 자극한다. 이는 얼굴을 마주하며 식구들의 안녕과 평화를 확인했던 환송과 귀환의 인사가 버튼 하나로 은밀히 혹은 관계의 동의 없이 집을 나서고, 누군가의 불확실한 귀가에 대한 일방적 통보를 의미한다. 가족 간의 주고받은 언어를 차가운 금속음이 집어 삼켰고, 가족 간의 비밀번호의 공유여부는 결과적으로 ‘존재의 소멸과 소외’로 이어져, 가족에서 타인으로의 폐쇄적 벽을 쌓아감(반복적 울림)을 상징하는 무대언어로 탈바꿈한다.

특히 무대 연기의 가치 및 효용은 낯익은(일상적) 것을 낯설게 하고, 그 ‘낯설게 하기’의 한 가지 장치로 복잡한 것의 ‘단순화’로 나타낼 수 있는데, 극이 시작되는 초반부터 배우들은 지나치게 단정하고 단순한 액팅(acting)을 구사한다. 화려하지 않은 느릿한 동작, 다소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얕은 포오즈,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 모순이 될 듯싶을 정도로 높낮이를 구사하는 억양, 이 모든 ‘어색함’은 작품이 기존의 연극 문법을 깨뜨리는 실험극에 가깝다는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일반적으로 상식 혹은 논리 안에서 설명되기 어려운 모습들을 담아야 하기에, 배우들이 한 공간 안에서 대화를 나누지만 그것은 대화라기보다 각자의 ‘의심의 흐름’을 그렇게 표출시킬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관계가 망가지고 있는 ‘존재와 부재(관계)’의 경계가 모호한 현대사회를 아이러니하게 풍자하는 극 전개로 체현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실험적 무대라는 말이다.

투명 인간이 인간인가? 투명 인간은 타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어느 날 투명 인간이 되어버린 아버지와 함께 투명 인간이 되어버린 가족들을 과연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동시대적 문제일 수밖에 없는 “떨어져 나감과 외로움, 그리고 관계의 문제를 현미경으로 확대 하듯 증폭시켜 보여준 <the Invisible Man>. 관계의 부재를 이야기하는 이 시대, 서로를 바라보면서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는 한없이 투명한 우리 자신을 마주할 수 있다. 어쩌면 어머니와 아들·딸들이 무의식적으로 아버지를 밀어내는 것은 아닐까. ‘있음과 없음의 경계의 선’이 뒤 엉키고 일상의 결과 동선들이 방향을 잃은 헤매는 모습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파동 같은 ‘사유의 질문’으로 풀어낸 것은 아닐까. 주제가 무겁고 깊은 연극은 무대형식이 달라지고 의미는 수많은 경우의 수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가. “당신들은 제대로 살고 있나요?”라고 묻는 <투명인간> 덕분에 점점 더 길어지는 밤에 얕은 선잠을 떨쳐 낼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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