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단 이와삼 <여기가 집이다>

글_양세라

 

그 겨울 그 고시원

 

<여기가 집이다>는 2013년 초연되었고, 2015년에는 명동예술극장 ‘우수공연 초청 시리즈1‘에서 공연된 나름의 공연사를 가졌다. 특히 이번 공연은 극단 이와삼의 대표 레퍼토리로서 20주년을 기념하여 공연한 것으로 안다(연우소극장, 12.15~12.24). 극단의 공연사와 동일하게도 <여기가 집이다>는 20년 전통의 갑자고시원을 배경으로 한다. 필자가 이번 공연을 보러 극장에 찾아간 12월 23일은 한파주의보가 내려질 정도로 매서운 겨울 추위에 몸은 저절로 곱아질 정도였다. <여기가 집이다>의 극중 무대 시간도 ‘어느 해 겨울입구’이다. 겨울 추위는 사람을 쓸쓸하고 남루하게 만든다. 필자는 그런 추운 날 골목길을 지나 연우소극장으로 들어서, 얼기설기 약한 목재재질로 구획되어 방안의 풍경이 훤히 내다보이는 갑자고시원의 네 개의 방과 마루무대를 마주하였다. 공연이 시작되면, 관객이 들어오는 극장의 입구는 갑자고시원으로 향하는 골목길이었음을 알게 된다. 돌이켜보니, 극장으로 향하는 이날의 공기와 골목의 풍경은 극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혹은 극장 입구부터 <여기가 집이다>의 극적 상황과 갑자고시원으로 자연스럽게 이끈 듯했다. 좁고, 깊고, 낡고, 추운 그곳 고시원에 방들로 표현된 무대는 이 연극의 가장 인상적인 연출이었다.

극장에 들어서면, 무대 전면으로 갑자고시텔의 내부이자 고시원을 형상화한 네 개의 방을 마주하게 된다. 이 연극은 오로지 갑자고시원 네 개의 방과 이어진 마루에서만 재현된다. 모두 14개의 장면이 이 한 무대 위에서 암전의 반복을 통해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이 겪은 며칠간의 사건으로 진행된다. 실제 무대로 재현되지 않았지만, 연우소극장의 협소함은 갑자고시원을 재현하는 방식이 되어 극장의 비상구이자 배우들의 등퇴장 공간이 공용 화장실과 장씨의 사무실 공간으로 제시되었다. 그리고 확인해 보니, 희곡에서는 갑자고시원의 방을 한사람이 간신히 운신할 수 있는 크기의 방들이 나열된 구조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연우무대 소극장 구조가 미친 영향 때문일까 이 고시원은 ㄱ자로 연출되었다. 두 개의 방을 중심으로 나뉜 고시원 복도 중앙 천장 위로 “苦(고)”자로 쓰인 액자가 걸렸는데, 이 액자는 네 개의 방으로 된 갑자고시원 중앙에 위치하여 구조적으로 무대공간을 구획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이번 공연에서 고시원 방은 결혼하여 이름을 잃은 부부 두 쌍의 방이 나란히 있고, 미혼의 영민과 동교의 방이 나란히 있어 마치 이들이 삶을 대하는 방식 혹은 살아가는 방식이 다름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래서 액자와 액자 아래 고시원 사람들이 대비적으로 보인다. 액자의 “苦(고)” 글자는 암전이 되는 무대에서 가장 늦게까지 객석의 시선을 잡는다. 이 액자에 쓰인 글자를 동교에게 설명하려 했던 고시원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이 액자는 고시원 방과 건물을 지탱하는 기능을 하는 것처럼 이곳 사람들의 일상과 행동을 통제하는 시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진 제공: 극단 이와삼

 

희망을 빌리는 갑자고시원 사람들

 

갑자고시원, 여기에는 퇴임한 경찰, 알콜중독자, 취업준비생, 일용직 노동자들이 남루하고 불안한 일상을 살아간다. 연극에서 이들의 일상과 삶은 갑자고시원의 얼기설기 허름하게 지어진 건물의 남루한 방에 투사되어있다. 다양한 세입자들은 갑자고시원의 값싼 월세로 세를 얻어 살면서 값싼 희망 대비 나름의 질서를 공유하며 공존한다. 그 안에서 “엄연하게 세 받고 세 내주는. 여기는 거지들 도와주는 쉼터가 아니야.” 라며 이들은 자신들만의 가치를 공유하기도 한다. 결국, 갑자 고시원에서 싼 월세로 자립할 기회를 얻어 갑자고시원을 나가는 것이 고시원 사람들의 막연한 희망이다.

매일 술을 사마시며 술병과 나뒹구는 최씨, 하루하루 일자리를 전전하며 부부가 떨어져 살며 동거를 꿈꾸는 양씨, 영화 일을 꿈꾸지만 미래가 불안한 청년 영민의 일상은 그저그런 빈민의 전형처럼 보인다. 무엇인가 갑자고시원으로 내몰린 듯 보이는 이들의 삶은 돌이켜 보면, 모두 허름하고 남루한 고시원 방에서 사부작거리며 자기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모두 갑자 고시원에서 나름의 규율과 질서 속에서 안도감 혹은 안정감에 기대어 사는 듯 보인다. 그런데 연극은 장씨가 현실과 갑자고시원의 질서를 논리적으로 제시하여도 고시원 사람들의 마음에 이미 우화(寓話) 같은 환상을 심어준 동교에게 기울고 있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알콜중독자 최씨는 시를 쓰고, 기회주의자 같은 양씨부부와 최씨부인은 고시원 일을 도우며, 서로의 상처와 치부를 드러내고, 사랑을 속삭이며, 아름다운 인테리어로 치장한 집이 있는 일상을 꿈꾸게 된다.

공연에서 흥미로운 순간은 고시원 사람들이 동교의 등장으로 규율이 아닌 잠시의 여유를 맛보고 변화 혹은 너그러워지고 꿈꾸며,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서로를 돕고 부인들까지 함께 생활하며, 이들은 저마다 자신의 서사를 풀어내고 스스로 해소와 치유의 순간을 만나는 경계를 오가기 한다. 무대에서 이 장면은 마치 그들이 꾸었다던 꿈처럼 비현실적이지만 그들만의 서사가 그들 각자의 방에서 작은 몸짓으로 표현되어 관객은 숨죽여 들여다보게 된다. 비루하고 남루한 작은 공간에서 사랑과 인간애가 만들어지는 찰나의 순간들이 명멸하기 때문이다. 알콜중독자 최씨가 시를 짓고 그의 부인이 창밖을 보며 햇빛을 느끼는 순간이 있고, 양씨처가 ‘리라꽃 피던 그 밤에 그대와 속삭이던’ 이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그랬다. 이 장면들은 문득 이런 의문과 불안을 전한다. 우리는 작은 것에 따뜻해지고 온기에 익숙해지면 안 되는가. 동교의 말대로 우리는 불안한 채로 살아가면 안 되는가. 이 의문에 이어 필자는 연극에서 고시원사람들이 동교에게 희망을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 불안해졌다.

 

사진 제공: 극단 이와삼

 

동교, 가짜 희망

 

자본주의 대한민국에서 상속받은 고등학생 건물주의 등장은 낯설지 않다. 그런데 그 건물주가 세를 받지 않고 가족처럼 살자며, 갑자고시원을 집이라 부르며, 세입자들과 밥을 함께 먹고 관리비를 공유하자며 현금지폐를 즉흥적으로 내민다. 갑자고시원의 질서를 완고하게 고집하는 장씨와 다르게 다른 세입자들은 흥미 이상의 관심을 보인다. 동교는 고시원사람들에게 집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정당한 노동과 급여를 주겠노라 통장을 던지는 과감한 행동으로 이들을 설득한다. 동교의 즉흥적이고 계층이나 돈에 대한 경계 없는 태도 외에도 애초 고시원 사람들이 깊이 잠든 밤 동교가 나타난 과정을 보면서 필자는 이 극이 우리시대 우화극(寓話劇)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동교의 행위를 상징처럼 바라보았다. 교복을 입고 불콰한 듯 불그스레한 얼굴로 등장한 동교는 고등학생과 성인의 두 얼굴을 오가며 때때로 눈을 번득거리며 말하는 것에 주목했다. 그리고 가출한 약물중독 학생인 종택을 감싸고 고시원사람들과 존댓말로 대화하지만 담배를 피우며, 격의 없이 고시원 성인들과 함께 술을 마시거나 밥을 먹는 경계 없는 대화방식도 의식적으로 보였다.

이런 동교의 등장을 제일 먼저 발견하고, 동교의 등장을 문제시하고 해결하려던 인물은 장씨였다. 전직 경찰관인 장씨는 고시원의 선생님 혹은 기숙사 사감 같은 역할을 자처하며 고시원사람들이 자립에 필요한 태도를 일깨워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가치관을 갖고 갑자고시원의 세계를 만든 주인할아버지는 무대에서 부재(不在)하고 끝내는 그의 죽음만이 알려진다. 그가 구축한 고시원의 허항된 망상을 부여잡고 관념 속에서 자신을 다그치던 장씨의 경우 스스로는 아들과 불화하며, 그 역시 고시원이 집이다. 동교와 장씨 두 인물은 전화로만 가족의 존재를 알 수 있고, 실제 가족은 부재한 채, 갑자고시원이라는 집에서 존재한다. 동교 친구 종택이 갑자고시원의 평온한 일상을 들쑤시는 어느날 아침, 고시원 장씨가 종택에게 하는 말은 장씨와 동교에게 내재된 양가적인 정체성을 상징하는 듯 보였다.

 

장씨 잘 들어. 동교는 돈이 많다. 너는 없다. 동교는 이 건물의 소유주다.

너는 벌거숭이고. 고로 니가 동교 시키는 대로 하는 건 니가 똘마니라는 증거야. 알어?

 

사진 제공: 극단 이와삼

 

동교와 갑자고시원사람들을 불지르는 꿈을 꾸었던 장씨의 무력감은 스스로 종택에게 했던 말 속에서 폭발했던 것은 아닐까. 장씨가 황지우의 시 <눈보라>를 읊으며 고시원을 떠날 때도 마찬가지다. 장시 역시 동교이전에 가짜 희망에 사로잡혔던 것은 아닌가. 결국 고시원 앞산으로 향하는 겨울바람에 가장 많이 흔들린 사람은 장씨다. 장씨는 갑자고시원 그 누구보다 가장 비현실적인 환상과 희망에 기대어 산 것은 아닐까. 인내하며 규율에 맞게 살다 사회에 적응하며 사는 것이 옳다는. 그런 장씨는 동교가 고시원 사람들의 양가적인 정체성이 만든 헛된 망상이자 가짜 희망이라고 알아채고 고시원을 떠난다. 갑자고시원에 동교가 등장하여 희망에 들뜬 사람들은 연극 마지막 장면에서 장씨가 떠나고 남은 불안의 그 순간을 지난밤 꾼 꿈이라며 자신들의 열망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 순간 그들이 장씨의 죽음을 예상하지만, 말없이 달그락거리며 밥을 먹고,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동교의 번득이는 눈빛처럼 광기가 오버랩되는 듯했다. 이 우화극은 갑자고시원 사람들의 평범하고 전형적인 일상에 내재된 욕망의 폭발과 잔인함이 어떻게 자극받고 길러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이 슬프고 우울한 연극에서 관객의 무거운 기운을 환기하는 희극적으로 구제되는 순간이 있었다. 양씨의 리듬감 있는 언어표현도 좋았지만, 특히 알콜중독자 최씨가 <여기가 집이다> 라는 시를 짓고 낭독하는 장면에서 이 극의 메타포를 숨겨놓고 유머러스하게 전달한 장면이 좋았다. 전형적이고 일반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인물들을 담백하지만 그들의 세심한 서사를 작고 낮은 숨소리로 재현한 배우들이 전하는 파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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