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단 바바서커스 <아는 사람 되기>

글_조훈성 (연극평론가)

 

올해 서울연극제는 “연극, 다(多)름으로 공존(共ZONE)하다!”를 슬로건으로 하고 있다. 이를 풀면 ‘다양성과 함께’라고 다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에 가장 잘 부합하는 참가작 제목으로는 극단 바바서커스의 연극 <아는 사람 되기>(작/연출 이은진)일 것이다. 하지만 ‘아는 사람 되기’라는 그 바람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사회에서 우리는 ‘함께 잘 살기’라는 공존을 모색하지만 그 ‘다름’은 역설적으로 결코 ‘아는 사람’이 되지 못할 거라는 ‘불가능성’의 인식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연극은 아는 사람 ‘되기’의 지난한 실천을 포기하지 않고 우리 사회의 편견과 혐오를 들여다보는 3개의 에피소드를 구성하고 이러한 ‘불편’의 시선을 감수하면서 사회적 간극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지를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다.

연극은 옴니버스 구성으로 3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연극을 하면서 탈북민을 만난 20대 배우 ‘은영’의 이야기로 탈북민에 대해 편견 없다는 자신에게 본인 내면에 뿌리 깊은 ‘편견’을 발견한다. 다음은 전쟁을 겪은 할아버지와 이와 연루된 가족의 사연을 풀어가는 ‘재석’의 이야기를 통해 대물림된 분단의 상흔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은 30대 주부 ‘현주’가 지지하는 정당의 정치집회에 참여했다가 아이를 잃어버리면서 벌어진 소동을 보여주면서 우리 사회의 좌·우 갈등, 진보-보수 논쟁의 이분법적인 사고의 전말을 파헤친다. 이 각각의 이야기는 배우들이 실제 겪은 일을 모티브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각각의 칸에 연이어 올라탄 관객과 극중 일상적인 생활의 인물에 대한 간격이 멀지 않게 느껴지면서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차별, 혐오에 대한 감각적인 공감대를 효과적으로 전달해내고 있다.

 

사진 제공 서울연극협회 (촬영. FOTOBEE)

 

작품은 극과 극 사이에 다큐 형식으로 남북분단과 통일에 대한 개인의 생각을 인터뷰해 넣고 있다. 또, 무대 전면 바닥은 격자로 그려져 있으며, 조명은 그 격자의 선과 격자의 사각을 따라 비추면서 배우들은 이 사각의 공간을 따라 이동해 간다. 이 바닥의 사각 격자 공간은 이 작품에서 중요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수직과 수평의 직선화를 통해 격리, 분리된 각 공간은 결국 한 동아리를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빈 무대에 가구와 소품 등의 오브제가 채워지고 그 배치를 통해 무대를 전환되는 것 역시, 극적 이격을 충분히 조성하는 데 기여한다. 연극 초입의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을 배우들이 합창하는 장면은 작품의 출발점으로서 그 완성되어야 할 동경 세계에 대한 ‘구별짓기’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리서치 기반의 다큐멘터리적 요소가 연계된 작품는 우리가 이미 알든 그렇지 못했든, 사회적 이슈화된 사건이나 인물, 특정한 공간에 대한 소재를 무대로 불러온 이유를 선명하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관객이 이를 미처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을 경우 우리는 오늘의 연극이 갖는 기능적 효용에 대해 쉽게 동의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자면 극중 인물을 관객과 어떻게 동일화할 수 있는지에 대해 보다 치밀한 배치와 캐릭터의 설정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 인물을 통해 비로소 이전의 세계 인식에 대한 균열을 인식하고 그 문제를 환기시킬 수 있다. <아는 사람 되기>가 옴니버스 구성을 택한 것 역시 각각의 세계를 통해 제문제를 확인케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탈북민에서 시작되어 세대 단절을 잇는 분단인식이 이 작품의 전개 구성의 주축이 되지만, 결국 이는 사회구성원으로서의 ‘나누기’가 ‘함께’라는 가치가 누락되었을 때 ‘차별’과 ‘혐오’의 부정성을 갖게 되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사진 제공 서울연극협회 (촬영. FOTOBEE)

 

연극은 ‘객관화된 시선’을 통해 세계의 균열을 확인하고 이를 봉합해야 하는 주체가 바로 관객 자신이라는 것을 인식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즉, 이 사회구성원의 이분적 ‘가르기’를 재현하면서 그 벌어진 연극적 사건에 대한 인식의 주체를 관객에게 돌리고 있다고 할 것이다. 창작자의 문제의식에 대한 접근은 자칫 일방적일 수 있는데, 이는 리서치, 취재를 통해 창작자들은 앞서 그 문제에 대한 인식과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단인식, 차별, 혐오에 대한 다양한 현상의 지점을 발견하고 이에 대한 문제점을 피상적인 설명하기가 아닌 주체적 수용이 가능할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부분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아는 사람 되기>는 그 주제가 주는 무거움을 관객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에피소드를 통한 개개의 경험을 극적 형식으로 연결하면서 그 무게를 덜어내고 관객의 세계 재인식을 돕는다. 또한 <아는 사람 되기>에서 인상적인 것은 바로 그 주제의 무게에 갇혀있지 않고자 극적 분위기 전환을 빈번하게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각각의 스토리에 유형화된 인물을 배치하고 이들의 모꼬지나 술집 장면, 시위대의 무대 재현의 경우는 작품의 윤활제 역할을 한다.

 

사진 제공 서울연극협회 (촬영. FOTOBEE)

 

<아는 사람 되기>는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의 국가에서 겪는 세대 간의 단절을 조명하고 그 안에서 차별과 혐오를 이야기한다. 다가치적 사회에서 ‘아는 사람’이라는 최소한의 사회적 공존의 시도, 혐오와 차별, 편견을 없애고자 노력하는 과제를 이 작품이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 의미 있게 바라봐진다. 연극이 꼭 좌표가 될 필요는 없다는 진부한 말을 꺼내면서, <아는 사람 되기>에서 축과 축이 만나는 지점에 따라 그 조명색이 바뀌는 것처럼 어쩌면 ‘화해’의 실마리는 지금까지 자신을 지탱했던 격자 공간에서 벗어나야 보일 수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연출의 질문, ‘갈라진 마음의 발견’이 극장을 나서서 새롭게 들린다. 이 연극을 통해 동시대의 발화되는 이슈를 발견하고 이를 취재한 자료를 충실히 재현하는 무대화에 주목하게 되는 게 바로 그것이라 생각한다. 연극이 이러한 ‘공감대 형성’을 위한 ‘장(場)’을 섬세하게 만드는 게 정말이지 필요한 때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 어떠한 문제의 해결 없이 봉합 돼버린 오늘의 무대는 또 그 불편의 계속을 받아들여야 함을 말한다. 2024년의 <아는 사람 되기>는 앞으로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하나 되기’가 가능할 수 있을까.

 


  • 무료정기구독을 원하시는 분은 ohskon@naver.com으로 메일을 보내주세요.
  • 리뷰 투고를 원하시는 분은 ohskon@naver.com으로 원고를 보내주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