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단 신세계 <부동산 오브 슈퍼맨 2024>

글_윤서현(연극평론가)

 

은퇴 이후 평범한 시민의 삶을 꿈꾸는 슈퍼맨의 수난을 그린 <부동산 오브 슈퍼맨 2024>는 현재 확산 중인 전세 사기 피해를 소재로 하여 부동산 왕국 대한민국의 민낯을 드러낸, 시의성 강한 작품이다. 무대에 설치된 세 개의 거대한 스크린은 다양한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데, 배리어프리를 위한 상세 자막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영화적 스케일을 패러디하는 희극적 장면들을 제공하거나 일반인 다큐 프로그램의 형식으로 슈퍼맨의 일상을 담아내기도 하며 ‘강남불패’의 역사나 부동산 계약 관련 정보 또는 전세 사기 피해와 관련한 실제 뉴스 클립을 보여주기도 한다. 초연에 비해 슈퍼맨의 전사와 감정선이 보강되었으며 다소 과하다고 생각되었던 강연식 정보 또한 간명하게 정리되어 완성도를 높였다. 부동산 강사 캣우먼이나 금수저 배트맨 등 초능력 영웅들의 캐릭터에 현대적 반전을 가미함으로써 발생된 적재적소의 유머가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사진 제공: 서울연극협회 (촬영. FOTOBEE)

 

주인공은 ‘슈퍼맨’이라기보다는 ‘사회 초년생’의 모습에 더 가깝다. 평범한 삶을 꿈꾸던 성실한 청년이 자기 기준의 건전한 상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사회적 모순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갭투자’라 불리지만 ‘투기’로 흘러가기 일쑤이며, ‘레버리지’라는 멋진 비유로 가려졌지만 사실상 ‘돌려막기 빚잔치’에 불과한 자본주의식 말장난. 여기에 익숙하지 않은 슈퍼맨은 그동안 잊고 지냈던 ‘정의’를 다시 거론하게 된다. 무대와 관객석을 연결해 연출된 피해자들의 공청회는 문제의 해결을 폭탄 미루듯 미뤄온 역대 정부들이 사실상 사기꾼과 빚쟁이들을 양산하는 결과를 낳은 원인임을 고발하는 광장이다.

 

사진 제공: 서울연극협회 (촬영. FOTOBEE)

 

이번 재공연에서 보강된 부분 중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지점은, 누군가가 삶 속에서 현재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비극을 관찰과 모방의 대상으로 선택했을 때 뒤따를 수밖에 없는 창작 윤리에 대한 고민이 작품 속에 녹아들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관찰 대상인 슈퍼맨과 관찰자인 다큐멘터리 감독의 관계는, 피해자들의 상황을 그들 자신의 잘못이나 불운한 운명의 탓으로 돌리며 안전한 거리에서 비극을 감상하는 시민-관객의 윤리까지도 끄집어낸다. “재밌죠?”라는 슈퍼맨의 울분에 찬 질문은 작품 속 캐릭터인 다큐멘터리 감독뿐만이 아니라 그 뒤에 앉아있는 관객들, 뉴스 타이틀 한 줄로 전해지는 희생자들의 비극적 소식에도 무감해진 극장 밖 우리 모두를 향해있다. ‘재미있되 재미있으면 안 되는’ 장면들이 관객의 각성을 유도한다.

 

사진 제공: 서울연극협회 (촬영. FOTOBEE)

 

아이러니이지만, 엄밀한 측면에서 이 공연의 시의성은 계속된 정부의 무대책으로 완성되었다. 창작진들은 8번째 희생자의 비보와 대통령의 전세사기특별법 거부권 행사 소식을 연습 과정 중 연달아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일주일 전, 신촌 대학가 일대에서 또 다른 대규모 전세 사기 사건이 터졌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들이다. 사태의 확산 속에서 <부동산 오브 슈퍼맨>은 계속 업그레이드 되고 재공연 될 것이다. 초연에서 공연의 도입부와 피날레에 쓰였던 동요 ‘하늘나라 동화’가 대통령실 설 연휴 홍보 영상의 배경으로 쓰였던 변진섭의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로 대체되었다.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정부 인사들과 서럽게 울고 있는 피해자들이 손을 마주 잡고 부르는 이 기괴한 합창은 우습지만 우습지 않은 장면으로 뇌리에 박힌다. <부동산 오브 슈퍼맨 2024>가 시의성을 잃게 되는 날이 오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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