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연극집단 반 <미궁의 설계자>

글_우수진(연극평론가)

 

창작자들 간에도 좋은 궁합이 있다면 김민정 작가와 안경모 연출가가 그러한 경우일 것이다. 2007년 초연된 <해무> 이후 2009년 <길삼봉뎐>, 2018년 <바람이 불어 별이 흔들릴 때>에 이어 <미궁의 설계자>에 이르기까지 네 번째 협업을 이어오면서 우리 연극계에 의미 있는 작품들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성공적인 협업이 단순히 기질의 상합에 의한 우연의 결과는 아니다. 그보다는 특히 이번의 <미궁의 설계자>에서 볼 수 있듯이 그동안 각자의 영역에서 한껏 원숙해진 이들이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가운데 서로가 서로에게 정성을 다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좋은 배우들까지 결합하여 관객은 잘 만들어진 공연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사진 제공 서울연극협회 (촬영. FOTOBEE)

 

교차하는 서사, 입체화된 구조

작품은 유신정권의 ‘고문밀실’로 불리는 남영동 대공분실(對共分室)을 매개로 하여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발생하는 세 이야기들이 서로 교차되면서 전개되었다. 그 중 하나는 과거 그 건물의 설계와 건축에 관여했던 양신호라는 인물(이종무 분)을 중심으로 하였으며, 다른 하나는 이후 그 안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대학생 송경수(김시유 분)를 중심으로 하였고, 마지막 하나는 현재 그 건물에 대한 다큐를 준비하는 감독 권나은(이가을 분)과 대공분실의 해설사 윤미숙(전국향 분)을 중심으로 하였다. 그리고 여기에 어린 김수근으로 암시되는 어린아이(전민재 분)의 이야기가, 세 개의 이야기들과 직접적으로 교차되진 않지만, 중간중간 관통하듯이 삽입되었다.

김민정 작가의 노련함이 돋보이는 극작은 안경모의 섬세하면서도 탐구적인 연출을 통해 그 연극성이 더욱 강화되었다. 극 중 무대 위에서 가장 중심에 놓인 것은 대학생 송경수의 이야기였다. 백주대로에서 여친을 기다리던 그는 잠복하던 경찰에게 끌려가 고문당하고 끝내 죽음에 이르는데, 그 과정이 시종일관 무대 정중앙에서 수행됨으로써 점점 파괴되는 김시유 배우의 신체를 통해 야만스런 국가폭력의 잔혹한 실상을 관객이 정면에서 감각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건축가 양신호의 이야기를 통해 엄혹했던 유신정권의 요구에 부응했던 지식인의 고뇌와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었던 욕망을 내밀하게 그려내는 한편, 권나은과 윤미숙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대공분실을 주조하고 작동시키는 데 협력했던 당시 한국 최고의 건축가에 대한 불편한 질문들을 관객에게 끊임없이 던졌다.

 

사진 제공 서울연극협회 (촬영. FOTOBEE)

 

미궁의 진짜 설계자

작품의 제목과 극 중 건축가 양신호의 이야기는 그가 왜 미궁의 설계를 (해야) 했는가 하는 질문을 따라가면서 암묵적이면서도 명백하게 김수근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김수근의 그림자 인물인 양신호의 내적 갈등이 옳고 그름의 문제에서 개인적인 욕망의 문제로 그 중심이 전환되고 이종무 배우의 열연을 통해 그 욕망이 강화되면서 양신호/김수근은 미궁의 설계자로 전경화된다. 하지만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무수한 송경수‘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던 미궁의 진짜 설계자 미노스는 다이달로스에 불과했던 양신호나 그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겁박했던 허일규가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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