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즉각반응 <새들의 무덤>

글_조훈성 (연극평론가)

 

이전 관극했던 <육쌍둥이>의 인상이 강렬했던지라, 올해 서울연극제 공심참가작인 극단 즉각반응의 <새들의 무덤>에 대한 기대가 컸다. 작품 소개에는 ‘현대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라고 하는데, 오늘의 작품 또한 그 ‘현재 우리의 삶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기 위한 과거 소환’을 한다. 첫 번째 작품이었던 <육쌍둥이>가 2014년 용산 망루 철거 사건을 모티프로 한 작품이었다면, 2020년 초연에 이어 다시 오늘의 무대에 올려진 <새들의 무덤>은 어떤 과거 소환을 통해 현재를 비추고자 했는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전 작품(*<육쌍둥이>)에서의 그 ‘재현’의 방식은 무척 독특하고 기묘했으며, 어수선하면서도 낯설었다. 그럼에도 그 연극의 발화, ‘타오르는 불’과 ‘향내’ 진동하는 극장에 대한 나의 그 세계 감각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남아있다.

 

<새들의 무덤>은 <육쌍둥이>와는 다른 과거에 대한 기억의 소환을 보여준다. 연극은 특정한 과거의 기억 지점을 시간적으로 배치하는데, 2막으로 구성된 <새들의 무덤>은 진도의 새섬 새낙마을 공간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1968년, 1986년, 1980년이라는 시간 설정을 두고 어린 ‘오루’의 기억을 중심으로 1막을 구성한다. 2막은 성년이 된 ‘오루’의 가족사를 창신동과 안산을 배경으로 펼쳐가게 된다. 연극은 ‘오루’ 곁의 새를 따라 과거로부터 지금까지의 개인의 기억과 이에 맞닿아 있는 근현대 역사를 역순행적으로 짚어간다. 한 섬 시골 마을, 부모의 장례식을 치르던 어린아이 ‘오루’가 청년 시절을 지나 아이를 낳고 선박 용접 일을 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연대기적으로 구성하면서 그 고단한 삶 속에 해방 이후부터 군사독재, 고도화 경제성장기, 5.18 광주항쟁, IMF, 세월호 참사까지 일련의 사건들이 녹아져 있다. 우리는 그 삶의 추적을 통해 그의 기억이야말로 그것이 다름 아닌 함께 살아온 우리 역사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사진 제공 서울연극협회 (촬영. FOTOBEE)

 

앞서 <육쌍둥이가> 용산참사가 모티브 역할을 했다면, <새들의 무덤>은 세월호 참사가 이 작품의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특히 작품에서의 가족에 대한 서사는 특별하게 와닿는다. 현대사를 관통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과거’ 기억의 접근에서 그 재현의 맥락에 보다 최대한 밀접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작품에서 ‘기억’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이지만 곧 이 기억은 집단화되고 객관화된다. 연극에서의 한 개인의 ‘기억’, 그 서사는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다. 작·연출의 의도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현대사회에 대한 시선은 극중 만날 수 없이 떠돌고 있는 가족의 상징을 통해 그 부정인식이 강하게 드러난다. 이는 전통의 가족에 대한 회귀본능의 발현이든, 또 그 붕괴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즉각적으로 무대형상화하든 작품 전반의 극적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큰 영향이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빈 무대’, <새들의 무덤>은 그 무대를 연출하는 방식의 차별성이 두드러진다. 무형에서 발견되는 열린 가능성을 발견하는 재미가 크고 신선하게 다가온다. 특히 비어있는 무대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당연하게도 무대 위에 돌출되어 있는 그들 덕분이다. 심지어 턴테이블을 활용한 그들의 신체적 움직임, 또 전경화 되는 군무 등은 이 연극을 끌어가는 또 다른 힘이다. 이들이 조력하여 구성한 그 ‘기억’의 시간과 공간은 우리가 함께 살아온 삶의 기억과 함께 ‘울림’을 만들고, 그 ‘역사’를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 연극의 시작이 아르코대극장의 빈 무대, 활짝 개방된 무대 뒤편이었고, 연극의 끝 역시 빈 무대, 극장의 후면 야외의 소음까지 다 받아들이면서 현재의 세계로 돌아오는데, 이러한 연출 기법은 장식적이지 않고 오히려 참신하고 설득력이 있었다. 작품에서의 ‘새’의 상징은 이 작품에서 무척 중요하게 여겨진다. 새의 손짓, 발짓 하나하나까지 신경 쓴 부분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극중 그 ‘새’가 날아오르지 못하고, ‘오루’ 곁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결국 ‘날 수 없는 이유’가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오루’와 함께하는 기억의 여정이야말로, 해원의 ‘날개짓’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제공 서울연극협회 (촬영. FOTOBEE)

 

<새들의 무덤> 1막에서의 ‘세낙마을’의 공간 설정은 의도적으로 보인다 1960-70년대 진도 어촌마을의 역사를 통해 드러내고 싶은 것은 그 지역적 특성으로 인한 ‘제례적 요소’의 차용이 필요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수많은 전쟁의 풍상을 겪은 지역이기 때문에 그 ‘한’의 정서가 ‘씻김굿’이라는 주술적 제의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연극은 억울한 넋을 달래고자 ‘씻김굿’을 재현한다. 바다에 빠져 목숨을 잃은 마을주민과 극중 ‘오루’ 부모의 혼을 달래는 ‘넋건지기’나 1980년대 외삼촌 ‘수필’이 관광지 개발을 통해 마을 번창을 기원하는 ‘제석굿’은 ‘오루’가 감당키 어려운 다시 반복되는 비극의 복선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작품에서는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그 인물들은 각각의 서사를 통해 극의 몰입을 분산시키지 않고, 온갖 사회적 배척과 차별, 모순과 부실의 우리 역사적 시련을 오롯이 다 받아내는 한 인물 ‘오루’에 집중할 수 있도록 보조한다. 그래서 ‘오루’가 건너가는 세월의 걸음마다 그 밀도감 있는 연극적 공간이 완성되고 수많은 역사의 서사가 응집되어 객석은 온전하게 무대에 몰입하고 감응할 수 있게 된다.

 

인터미션을 합치면 150분이라는 긴 호흡의 작품이면서 전사에 해당하는 1막은 다소 지루한 부분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 역시 극적인 고조를 위한 서사적 맥락을 강화하고 극적 분위기를 쌓아올리기 위한 일환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서 배우 간 역할의 균형과 그 호흡은 작품 전개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연극은 비록 허구의 이야기지만, 그 허구가 세계의 진실성을 획득하는 것은 바로 이들의 무대, ‘살아 움직이는 무대’를 만드는 그들만의 고유한 방식에 있다. 객석에서 나는 무대 위의 그들의 기억을 통해 ‘오늘’과 ‘여기’가 따로 나뉘어져 있지 않고 일체화되고 있음을 경험한다. ‘무덤’은 과거의 폐허 인식이다. 그 ‘폐허’를 제대로 직시했을 때 비로소 그 ‘기억’은 ‘희망’을 말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사진 제공 서울연극협회 (촬영. FOTOBEE)

 

극단 즉각반응의 <새들의 무덤>은 역사에 대한 ‘기억’을 재구성하고 있는 작품이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오루’라는 한 개인을 통해 고스란히 우리가 살아온 역사의 상흔을 체득한다. 이 연극이 벌써 십 년이 지난 그 비극적 사고를 저 바다 깊숙한 곳에서 다시 길어 올리고 있는 이유를 되새김하지 않을 수 없다. 딸을 잃은 ‘오루’가 고향의 바닷가 ‘새섬’을 다시 찾는다는 것은, 점점 희미해지는 잊어가는 기억을 다시 기억하기 위한 방편이다. 그곳에서 만나게 된 ‘어린 새’의 의미는 소실된 기억의 선명화를 위해 기능하면서 이전 공동체를 묶어냈던 그 씻김의 정신의 ‘회복’에 있다고 할 것이다.

 

“무덤 속에 살고 있는 아빠를 본 거야?”라는 오루의 대사가 또 다른 “내 마음 속의 불”로 각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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