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정동극장·라이브러리컴퍼니 음악극 <섬:1933~2019>

글_ 주하영(공연 비평가)

 

영국의 17세기 형이상학파 시인 존 던(John Donne)은 “그 어떤 인간도 섬이 아니다”라고 말했다.1)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자 부분이기에 작은 덩어리의 상실조차 전체의 상실일 수 있음을 강조한 그의 시는 모든 인류의 상호 연결성과 서로가 서로를 돌봐야 할 필요성을 토로했다. 하지만 200년 뒤 19세기 영국의 시인 매슈 아널드(Matthew Arnold)는 인간을 ‘섬’에 비유했다. 그는 “망망대해에 점처럼 흩어져 있는” 섬들이 다른 섬에서 들려오는 나이팅게일의 노래를 인식하기는 하지만 결코 가까워질 수 없음을 강조하며, 주변에 흐르는 물로 분리된 섬들이 다시 하나가 될 수 없는 고독과 결핍을 피력했다.2)

 

고독하고 단절된 섬의 이미지, 서로의 손을 놓아버린 사람들, 외딴섬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대륙과 멀리 있다는 이유로 소외와 방치, 외면으로 일관해 온 시간들, 모두 함께 있는 듯 보이는 대륙 안에서조차 보이지 않는 섬에 스스로를 가두도록 만드는 무관심과 무배려의 상황들….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다시 가깝게 만들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

 

사진 제공: 국립정동극장

 

역사 속에서 기억되어야 할 목소리를 찾아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인물들의 삶을 공연으로 창작해 온 ‘목소리 프로젝트’의 두 번째 레퍼토리인 음악극 <섬:1933~2019>이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 듯하다. ‘목소리 프로젝트’는 2016년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박소영 연출가와 이선영 작곡가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강한 울림을 줄 수 있는 좋은 노래와 음악이 있는 공연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면서 출발했다. 두 사람의 취지에 동감한 장우성 작가가 합류하면서 비상업적 목적의 창작자 중심의 공연을 만들기 위한 그들만의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실제 역사에서 귀감이 되는 인물을 찾아 목소리가 기억되도록 삶을 무대에 형상화하는 ‘목소리 프로젝트’는 2017년 1탄인 <태일>을 시작으로, 2019년 2탄인 <섬:1933~2019>, 2023년 3탄인 <百人堂 태영>으로 이어졌다. 이선영 작곡가에 따르면, 목소리 프로젝트가 인물을 선택하는 기준은 “대단한 업적이 아닌, 좋은 삶을 살아낸 인물”들이며, 그들의 목소리를 담는 작업을 통해 현재의 우리가 선한 영향력을 느끼고 깨닫는 일을 목표로 한다.3)

 

‘소록도 천사’라고 불리며, 1966년부터 2005년까지 40여 년간 한센인들을 돌보면서 사랑과 헌신을 실천한 간호사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렛 피사렉’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는 음악극 <섬:1933~2019>은 초연 이후 5년 만에 재공연을 선보였다. “운명처럼 여러 사람에게 추천”을 받은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이야기는 넘버(노래)가 중심이 되는 뮤지컬보다 자유로운 형식을 적용할 수 있도록 ‘음악극’이라는 장르를 표방하는 ‘목소리 프로젝트’로 창작하기에 유독 어려움이 있는 작품이었다고 한다.4) 자신만의 목소리를 강력하게 피력하는 삶이라기보다 모든 것을 행동과 실천으로 보여주고, 인터뷰와 같은 언론의 관심을 가능한 피하고자 했던 두 간호사의 이야기를 가시화하는 일이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7년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가능성의 단초가 되었고, “차별과 편견”을 키워드로 두 간호사의 서사에 덧붙여 역동성을 부여할 수 있는 1930년대와 2010년대의 이야기가 “연결고리”로 더해지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갔다.5)

 

사진 제공: 국립정동극장

 

장우성 작가는, 조선총독부가 소록도에 자혜의원을 설립해 ‘문둥병’이라 낫잡아 지칭되던 나병 환자들을 강제로 격리하던 조치가 가장 정점에 이르렀던 1933년의 시기와, 지역 이기주의의 하나인 ‘님비 현상’ 논란을 낳으며 갈등이 발생했던 2017년의 발달장애 특수학교 설립 문제를 연결해, 소외와 편견, 박해, 차별의 공통 맥락을 찾아냈다. 스오 마사스에 원장의 부임으로 ‘갱생원’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10년 동안 한센인들을 가장 혹독하게 착취하고 인권 유린을 일삼았던 1933년의 시기는, ‘백수선’이라는 19세 한센병 환자가 소록도로 향하는 배에 올라타면서 겪어낸 삶과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펼쳐진다. 몽둥이에 맞아 죽을지 모르는 핍박을 받는 육지에서 탈출해 치료와 주거지를 제공하는 ‘지상낙원’인 줄 알고 도착한 섬은 온갖 노동력 착취와 생체실험, 사체 해부까지 자행되는 ‘지옥’과 같은 곳이었다. 세탁 노역을 하는 백수선은 남성 독신사의 환자들을 치료하는 일을 보조하는 청년 박해봉을 만나 정을 나누지만, 해봉은 점점 더 잔혹해지는 갱생원 생활을 견딜 수 없어한다. 해봉은 수선을 데리고 섬을 탈출하려고 하지만 실패에 이르고 만다.

탈출 과정에서 죽음에 이른 해봉과 수선 사이의 아들 ‘박선봉’과 수선이 재혼해서 낳은 딸 ‘고영자’로 이어지는 2세대의 시기는 한센병이 전염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간호사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소록도에 와 맨손으로 환자들을 치료하고, 정성과 사랑으로 환자들의 회복을 위해 희생과 노력을 다했던 시간들로 연결된다. 수선의 딸 영자는 마리안느와 마가렛과 함께 소록도 병원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하다 육지로 나가 결혼을 한다. 한편, 아들 선봉은 80세가 된 2019년까지도 소록도에서 구술사로 일하면서, 소록도 박물관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감금실과 검시실(해부실), 아픈 몸으로 채찍을 맞아가며 거대한 바위를 옮겨야만 했던 ‘죽어도 놓고 바위’, 탄식이 흐르는 장소인 ‘수탄장(愁嘆場)’을 안내한다.

 

수선의 딸 영자가 낳은 아이들 중 막내인 3세대 ‘고지선’은 발달장애 진단을 받은 ‘지원’을 키우면서 사회에 자리하고 있는 편견과 차별의 ‘섬’을 인식하게 된다. 전염성이 있는 바이러스 균도 아닌데 어디를 가나 불편하고 차가운 시선을 드리우는 사람들로부터 도망쳐 일반인(비장애인들)의 세상과 완전히 격리된 채로 고립된 삶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현실을 일컫는 ‘장애도’는 “지도상에 없는, 보이지 않는 섬”이라고 할 수 있다. 지선이 발달장애인 부모로서 아이가 일반인들과 섞여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10년의 고된 시간은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공개토론회가 개최되는 2019년으로 이어진다.

 

사진 제공: 국립정동극장

 

음악극 <섬:1933~2019>은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 류승연 작가의 책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과 천사와 같은 두 간호사에 관한 기록서인 『소록도의 마리안느와 마가렛』에서 발췌한 문장들과, 다큐멘터리 영화, 소록도 주민들의 인터뷰, 류승연 작가의 간담회 내용 등을 활용해 3대를 아우르는 시간 속에 소록도와 장애도를 연결한다. 그 중심에 놓여있는 것은 “불멸의 희망은 보여져야 하고, 느껴져야 하고, 실현 가능해야 한다”는 마리안느와 마가렛 두 간호사의 의지 가득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또, 희망은 잘 알지 못하는 상대에 대해 제대로 알고 이해하고 보듬으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데서 출발해 낯설고 두려운 것이 아닌 익숙하고 배려할 수 있는 것으로 모두의 인식을 전환하는 곳에서 피어나는 것임을 강조한다. 오스트리아 부인회로부터 기본 생활비만을 지원받는 자원봉사자로 남아가면서까지 소록도의 한센인들을 끝까지 치료하고 보듬으려 했던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선행과 긴 세월의 사랑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1933년과 2019년의 편견과 차별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었는가’에 대한 그림을 우리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2명의 배우들이 30여 명의 인물을 그려내며 1인 다역을 연기하고, ‘합창’으로 노래를 전달하는 무대는 모든 인물들을 하나로 연결하면서도 분리되는 특징을 발휘한다. 1933년과 1966년, 2019년의 시간대를 교차하며 오가는 무대는 바다에서 바라본 소록도를 연상토록 만드는 단출한 세트를 배경으로 빠르게 장면 전환을 이어 나간다. 인물에 대한 왜곡이 없도록 주변 사람들의 증언과 같은 내레이션 대사로 정보가 전달되고, 따뜻하고 정겨우면서도 웃음을 자아내는 에피소드들이 나열되는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삶’은 치열하고 고통스러운 ‘백수선과 고지원의 플롯’과 이어지면서,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위험에서 벗어나 관객들이 슬픔과 웃음, 고통과 위안 사이를 오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화음이 더해지면서 배우들의 목소리와 음악이 쌓이고, 바람처럼 혹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가는 합창은 고통과 슬픔이 휩쓸고 지나간 한센인들의 아픈 시간의 외침과 한(恨)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또,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한센인들의 마음에 남긴 성스러운 이미지와 깊은 애정, 위로와 안도를 느낄 수 있는 음악은 종교적이고 따뜻한 분위기를 고양시킨다. 30년대 소록도의 갱생원 이야기는 한이 서려있는 국악의 느낌을, 60년대 마리안느와 마가렛 간호사의 이야기에는 성가와 교회 종소리를, 2010년대 발달장애인 가족의 이야기는 게임에 등장하는 기계적 음향을 반영한 다채로움은 관객이 시간대의 전환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사진 제공: 국립정동극장

 

무엇보다 한센인과 발달장애인에 대한 시각적인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천’과 ‘모자’를 이용해 소품을 적용한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표현으로 인해 인지하지 못했던 차별이나 편견적 시선을 낳을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 거리를 확보하고, 관객이 스스로 상상력을 통해 서사를 완성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작품이 겨냥하고 있는 주제에 부합하는 결과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박소영 연출에 따르면, 소록도의 “마리안느와 마가렛에게서 뗄 수 없는 오브제”가 무엇인지 생각해 봤을 때 “환자들을 치료하며 사용했을 붕대”가 떠올랐고, “천의 이미지를 공연에 전체적으로 적용하고자 했다”고 한다.6) 잿빛의 천과 황토색 천, 천으로 만들어진 모자로 연결되며 한센인과 발달장애인을 표현하는 맥락은 바닷가의 바람에 자유롭게 휘날리는 ‘천’의 속성과 연계되어 자연스럽게 ‘편견과 차별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상징하게 된다.

 

음악극 <섬:1933~2019>은 우리의 역사 속에서 잊고 있었을지 모를 순간들과 그 순간들의 상처를 조건 없이 품에 안았던 사랑의 시간들,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우리가 간과하거나 외면했을지 모를 현재의 상황들을 관객이 스스로 마주하도록 만든다. 주어진 정보들을 통해 혹시 차별과 편견의 ‘가해자’가 된 적은 없는지 자신을 점검하고 판단해 변화된 태도와 마음가짐을 장착하도록 만드는 <섬:1933~2019>은 예술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목표에 가까이 다가간다. ‘자각은 조치의 기본’이라는 점에서 스스로를 점검하도록 만드는 공연은 사회의 변화를 빠르게 앞당길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좋은 공연’이라는 입소문이 또 다른 관객을 이끌며, 더 많은 공감을 더하고, 더 멀리 감동을 전파하는 일은 망망대해에 ‘점’처럼 흩어졌던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신중함과 배려, 이해와 인내,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길’로 나아가도록 만든다. 모든 인간이 ‘섬’이 아닌 대륙의 한 부분으로서 함께 할 수 있는 삶, 음악극 <섬:1933~2019>이 그 길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1) John Donne, “For whom the Bell Tolls”, Devotions upon Emergent Occasions, 1624. https://allpoetry.com/For-whom-the-Bell-Tolls

2) Matthew Arnold, “To Marguerite: Continued”, Empedocles on Etna, 1852. https://www.poetryfoundation.org/poems/43609/to-marguerite-continued

3) 2024 음악극 <섬:1933~2019> 프로그램 북.

4) Ibid.

5) Ibid.

6) 이솔희, 「[연출노트] <섬:1933~2019> 바람에 실려 온 사랑」, 『더뮤지컬』, 2024.06.26. W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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