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단 커브볼 <밈>

글_오판진(연극평론가)

 

극단 ‘커브볼’이 제작한 공연 <밈>이 2024년 7월 17일부터 7월 21일까지 대학로 소극장 혜화당에서 막을 올렸다. 조은주와 황수아 작가가 쓴 희곡을 바탕으로 손현규가 연출하였고, 출연한 배우는 유재연, 조윤정, 황성연 이렇게 세 명이었다.

 

미스터리 스릴러전의 첫 번째 작품 : <>

연극 <밈>은 2024년 제8회를 맞는 미스터리 스릴러전에 참여하여 첫 번째로 공연하는 작품이었다. 미스터리 스릴러전은 서울특별시 ‘2024 서울형 창작극장’으로 선정․ 지원받는 소극장에서 진행되는 공연이다. <밈> 공연은 4가지 에피소드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하여 2024년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의 미스터리한 삶을 보여주었다. 먼저, ‘밈’이란 용어의 뜻을 위키백과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밈(meme)이란 한 사람이나 집단에서 다른 지성으로 생각 혹은 믿음이 전달될 때 전달되는 모방 가능한 사회적 단위를 총칭한다. 그리고 밈은 인터넷상에서 유행하는 ‘문화 요소’이자 대중문화의 일부라고 설명한다. SNS를 매개로 하여 여러 지식과 정보가 만들어지고 소통될 때 발생하는 모방 행동에 천착하여 희곡을 구상한 것으로 보인다. 공연에서는 명품 가방, 좋은 집, 여행 등 멋진 사진을 보고 따라 하는 모방 행동에서부터 이로 인한 범죄 행동까지 다루었다. 이 공연에서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주요 메시지는 SNS상으로 보이는 삶과 실제의 삶이 다른 자아정체성을 상실한 현대인의 모습이다. 최근 스마트폰의 발달과 물질 만능주의로 인해 인간의 내면이 크게 위축되고,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모습에 경도되는 풍조가 만연한 데 이를 감각적인 무대 언어로 연출하여 보여주었다. 생활 속에서 무심코 하는 사람들의 행동이 어떻게 새로운 종류의 모방 행동이나 심각한 범죄로 이어지는지를 유쾌하면서도 가볍지만은 않게 다루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 창의적인 아티스트들

첫 번째 에피소드는 ‘명품 되팔이’를 소재로 하였다. 백화점에서 명품을 판매한다고 할 때 전날이나 새벽부터 백화점 앞에 줄을 서는 사람들이 있어 TV에서 본 일이 있다. 이렇게 하면 쉽게 구할 수 없는 명품을 살 수 있는데, 공연에는 이렇게 구입한 물건의 가격에 웃돈을 더해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젊은 여성이 등장한다. 이 인물의 이름은 민아. 민아가 자신의 SNS에 올린 사진을 보면, 고가의 옷과 가방, 생활용품이 있어서 부유하게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그것은 민아의 실제 모습이 아니다. 명품 가방을 판매하기 위해 사기(예술적인 기술을 사용한 것)를 치고 있다.

어느 날 명품을 고가에 구매하는 민아의 고객 가운데 한 명인 벨라가 민아의 집에 무작정 찾아온다. 벨라는 자기에게 팔지 않은 명품을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그런 벨라는 다이아몬드가 18개나 박힌 반클리프 아펠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다. 이 목걸이가 탐이 난 민아는 벨라에게 역제안을 내놓는다. 목걸이를 하루만 빌려주면 원하는 명품을 판매하겠다고. 이런 제안과 거절, 설득과 설득 실패가 이어지다가 급기야 민아는 벨라를 가택침입으로 경찰서에 신고한다. 그렇게 극은 끝나는 것 같았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벨라가 민아의 방에서 민아의 모습으로 목걸이와 가방을 들고 사진을 찍는 장면을 짧게 보여주면서 암전이 된다. 아마도 창작진은 미스터리한 장면을 보여주어서 관객에게 생각할 여지를 남긴 것 같다. 무슨 일이 있었을지 관객 스스로 궁금해지도록 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재미를 주었다.

이 에피소드의 대사와 연기를 살펴보면, SNS 사진을 통해 소통되는 것들이 어떤 한계가 있는지, 그래서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경각심을 갖게 된다. 물론 이를 이미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헛웃음이 나오는 일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상당수의 관객은 자신과 달라도 너무 다른 인물들의 허위적인 모습을 보면서 이질감을 느끼거나, 등장인물들이 자기의 사기 행각을 창의적인 예술로 비유하는 장면에서는 황당함까지 느끼게 된다. 이 공연은 이렇게 감각적으로 사회적인 ‘밈’ 현상을 성찰하게 하였다.

 

사진 제공: 손현규

 

덫을 놓고, 덫에 빠져주는 관계 : 괜찮아

두 번째 에피소드는 ‘야릇한 만남’을 소재로 하였다. 서현은 쌍둥이 언니인 서희와 같은 집에서 살고 있다. 서희는 최근까지 회사에 다녔지만, 얼마 전 퇴사하고 매일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다. 즉, 이불에서 나오지 않고,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게 일과였다. 다른 직장을 찾아보지도 않고, 외출하여 산책이나 취미생활을 하지도 않으며, 지인들을 만나지도 않았다. 동생 서현은 언니에게 좋은 말로 여러 번 얘기했지만, 언니 서희는 동생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서현은 언니의 SNS 계정에 우연히 들어가게 되었는데, 놀라운 것을 목격하여 큰 충격에 빠진다. 서희가 올린 사진과 상대방과 나눈 대화는 상상할 수 있는 선을 넘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요가하는 모습으로 보이지만, 얼굴은 나오지 않고 가슴골이 보일 듯 말 듯한 야릇한 사진.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과 주고받은 ‘감질나네, 아래는, 만날래’와 말이 그것이다. 화가 난 서현은 언니와 문자를 주고받은 남자를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나서 대차게 싸운다. 가정이 있는 유부남이 우리 언니에게 이런 문자를 보내고 만나자고 할 수 있느냐고. 그러자 그 남자는 오히려 서현을 꾸짖는다. 남자들은 원래 예쁜 여자에게 다 그런다고, 그리고 당신 언니가 먼저 남자들을 꼬셨다고 주장한다. 이 말을 듣고 서현은 언니를 걱정하여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고민에 빠진다. ‘언니는 도대체 누구인가? 나는 언니를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서 서현과 서희의 역할이 바뀌면서 반전을 보여준다. 이제 동생 서현이 남자를 유혹하는 일탈행동을 시작하면서 극을 마무리한다. “오늘 같은 날엔 예가체프죠. 특유의 꽃향기와 크리미한 맛 때문에 저의 최애 원두랍니다.” 등골이 오싹한 느낌이 들었고, 이런 장면을 보면서 이 연극의 장르가 스릴러라는 것을 생생하게 감각하였다.

 

사진 제공: 손현규

 

치매와 기억에 관한 방정식 : 저녁 식사

세 번째 에피소드는 ‘중년 치매’를 소재로 삼았다. 대기업을 다니다 퇴직한 남자 영태는 아내인 정란과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 부인은 남편이 좋아하는 차돌 된장찌개를 맛있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란이 만든 국은 영태의 입에 맞지 않고 매우 짰으며, 영태가 좋아하는 건 바지락 된장찌개였다. 영태가 반찬 투정을 하자 정란은 기분이 나빴지만, 감정을 꾹 참고 부엌으로 가서 국을 새로 끓여 오겠다고 말했다. 영태는 부인의 행동이 수상하여 김 박사에게 전화하여 잠시 치매 관련 상담을 한다. 그렇지만, 확언할 수 없는 상황임을 알고 전화를 끊는다. 이렇듯 남편과 부인이 음식과 관련된 과거의 추억이나 좋아하는 음식에 관해 서로 다른 얘기를 나누는 장면에선 누가 문제인지 알기 어렵다. 그들은 서로 치매가 아닌지 의심하면서 병원에 가보라는 얘기하는데, 거기에서 싸늘한 공기가 느껴진다. 이 부부처럼 결혼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나도 가끔 기억을 왜곡하거나 착각하는 일이 있었기에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처럼 가깝게 다가오는 화소였다.

그런데 아내가 부엌으로 가자마자 현관의 벨이 울리면서 낯선 손님이 등장한다. 그 손님은 젊은 여성인데, 자연스럽게 식탁에 앉더니 스스로 영태의 아내라고 말한다. 영태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란다. 그렇지만, 그는 이 여성을 어디선가 본 것 같기는 했다. 영태는 여성을 기억하지 못하고, 여성은 기억을 환기하듯 계속 힌트를 준다. 결국 영태는 상대방이 대학교 미팅 때 만났던 미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는 미영에게 자신은 오정란이란 여자와 결혼해서 아들 둘을 낳아 잘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미영은 영태가 잘못 생각한 거라고 말하며, 이제 좁아터진 낡은 아파트가 아닌 한강이 보이고 야경이 멋진 우리 집으로 가자고 한다. 영태는 미영을 따라가지 않고 현관에서 오작동으로 깜빡이는 센서등을 바라보고 있다. 다시 끓인 찌개를 식탁 위에 놓는 정란은 남편이 멍하니 현관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 새로운 느낌이 든다. 치매? 남편이 퇴직하고 집에서 쉬려고만 하고, 음식 투정이나 하고 있으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란이 김 박사에게 전화하여 남편의 치매 관련 상담을 한다. 역시나 전화번호를 까먹거나 길을 잃어버린 적은 없기에 치매를 확언할 수 없음을 알고 전화를 끊으면서 이 에피소드가 끝난다. 이 이야기 또한 반복되면서 반전이 있는 구성이어서 재미가 있었고, 다루는 소재와 대사가 현실적이어서 남 일인 것처럼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사진 제공: 손현규

 

방아쇠가 된 무심코 올린 SNS 사진 : 탑승권(boarding pass)

네 번째 에피소드는 ‘SNS 개인정보’를 다루었다. 일본 후쿠오카로 여행을 가게 된 여자는 마음이 설렌다. 비행기 탑승권을 받자, 기쁜 나머지 늘 하던 대로 사진으로 찍어서 SNS에 올렸다. 주인공은 평소에 자기 집에서 찍은 사진이나 누구에게 받은 선물 등 일상의 모든 것을 SNS에서 공유하였기에 별다른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SNS에서 소통하는 많은 지인도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무심코 올린 이런 사진들이 새로운 유형의 범죄를 계획하는 이들에게 이용당할 수 있다. 가령,‘엄지척’ 사진에서 지문을 따낼 수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여성은 창문의 밀폐 상태나 가스 밸브를 점검하고 집안을 꼼꼼히 살펴본 뒤 캐리어를 끌고 현관으로 나간다. 잠시 후 여성의 집에 남성이 들어와 마치 자기 집인 것처럼 행동한다. 에르메스 커피잔을 들고 창밖 경치를 감상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역시 커피는 예가체프지. 특유의 꽃향기와 크리미한 맛. 너무 좋아.” 바로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서현과 서희가 했던 대사이다. 에피소드들 사이의 관계성을 보여주면서 상호텍스트적인 측면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화소이지만, 관계성을 고리로 새로운 서사를 창조할 수 있게 실마리를 남긴 것이다.

남성은 다른 사람들이 올린 SNS의 여행 관련 사진과 글을 읽으면서 열패감을 느낀다. 경쟁적인 자랑질에 질투심을 느낀 것이 범죄의 방아쇠가 되었다. 그 남성은 신종 범죄에 관해 수사관에게 설명한다. 누군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비행기티켓을 골라서 그것을 바코드 판독 프로그램에다가 넣고, 티켓 바코드를 스캔하면 그 티켓의 주인이 누구인지, 언제 어디로 가는지, 개인정보와 동행한 승객, 여정 등을 알 수 있어요. 탑승권 사진을 올린 사람이 잘못이지, 남들 따라 하는 거 좋아하는 게 문제이지, 자기가 한 게 무슨 잘못이냐고 말한다. 남성의 이런 적반하장식 어이없는 설명과 동시에 해외여행 중 환승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던 여성은 자신의 티켓이 취소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거기다 남아있던 마일리지까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기 휴대전화에서 신용카드 결제 정보가 문자 메시지로 계속 이어진다. 여성은 놀라서 카드 회사에 전화를 하지만, 차분하고 친절한 고객 응대 목소리가 들려오고, 급박한 여성의 처지와 대조되어 답답한 마음을 극대화한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남성이 여성의 카드 번호를 어떻게 알아내어 유용했는지를 설명하려고 하면서 대단원의 막이 내려간다. 참으로 끔찍하고 소름 돋는 결말이다. 내가 저런 일을 당하면 기절할 것만 같다.

일상의 평화와 행복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연극 속에서만 미스터리와 스릴러를 경험했으면 좋겠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문제 상황이나 사건, 인물을 거울처럼 보여주어 성찰하고 대비하게 하는 이 작품이 더욱 가치 있게 여겨진다. 이를 위해 연극을 만드는 창작진과 이 축제의 조직위원회가 멈추지 않고 나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다음 공연을 기대하는 마음을 담아 큰 박수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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