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단 토끼가 사는 달 <속내>

글_김충일(연극 평론가)

 

시간 참 빠르다. 삿된 인간의 세계에서 시간은 언제나 정확하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흘러 묵묵히 반년을 지나 오늘까지 왔다. 시간은 순환버스와 같다고 할 수 있을게다. 내가 타고 내려도 버스는 누군가를 태우고, 누군가는 내리면서 다시 가던 길을 갈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07.10~14), “나와 시·공간의 운명이 엇갈리거나 포개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기 위해 614번 버스에 오른다.

버스를 움직이게 하는 상기(recollection)와 반복(repetion)의 시간은 삶의 안내자가 되어 ‘인간이 겪은 경험의 차이가 품고 있는 속내’를 물음으로 묻고 있다. 그렇게 시간은 가슴 속에서가 아니라 머릿속에서, 뜨겁게 타오르며 흘러갈 것이다. 그러다 내 마음 속에 권태의 싸늘함이 깃들면 나를 태운 버스는 그 불길을 다시 태우며 목적지(대흥동 극단 고도)를 향해 시간의 핸들을 돌리게 될 것이다.

‘젊은 예술가들의 열정과 의지’로 한 여름 밤의 무더위를 식히려는 듯 극단 <해를 품은 달> 속의 배우들은 ‘자기를 감추려는 사형수와 죄수를 자초한 두 인물’들의 ‘그 속내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품은 ‘생각-놀이’를 통해 무대를 시원하게 만들고 있다. 홀워디 홀(Howworthy Hall)의 <용감한 사형수>와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의 <내기>에서 추출한 두 가지 에피소드를 서로 엇섞어 한 작품으로 이루어 짜서 각색한 더블 플롯(double plot)을 원 스테이지(one-stage)에 올린 <속내>(각색·연출: 유나영).

 

사진 제공: 극단 토끼가 사는 달

 

오래간 만에 소극장에서 만난 색다른 시도는 관객이 사건의 흐름에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그 밖이나 위에서 ‘극을 사유하는 태도’를 갖도록 하는 복합적 관점(complex seeing)을 제공하고 있다. ‘인간의 본질 속에 들어있는 진실성’을 찾아가는 삶의 길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예외가 없다. 자신의 정체를 끝끝내 밝히지 않고, 살인에 대해 참회하지도 않으며, 자신 역시 살인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 말하며 형장으로 사라지는 연극 <용감한 사형수> 100회 공연을 마친 배우들은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 후 막 내린 세트를 정리하며 ‘쫑’파티는 급기야 <무등산 타잔, 박흥숙 >의 이야기로 비화되고, 배우들은 다시 꾸며지는 ‘극중극’ 무대 속으로 들어간다. 소극장 한 쪽에 독방이 만들어지고 <사형·종신형과 스스로 택한 감금·강제적인 감금>이란 ‘극적 내기(The Bet)로 무대는 다시 꾸려진다. 실생활(책, 술, 담배)에서 벌어질 수 있는 믿겨지지 않는 내기(15년에 20억)를 통해 인간 사회로부터의 분리가 ‘자신의 삶이 헛되이 공허하게 무너질 수 있음’을 열린 결말로 관객에게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한 사형수의 정체가 ‘진실인가, 허구인가’를 규명하거나, 15년 20억이란 ‘내기’가 ‘스스로 택한 감금과 강제적인 감금’ 속을 떠다닐 때, 그 행위의 주체가 만나는 세계(속내)는 삶 전체를 바라보며 세계를 해체하면서 그 이항대립의 경계를 넘어서야 함을 보여준다. 즉 마주 대함은 ‘의심을 갖고 다른 논리를 궁리’하거나, ‘상호 의존하며 승패가 유보된 상태를 그려’내거나, ‘결정 불가능성을 담당하는 제 3의 개념’을 만들어내어야 한다.

하여 이 작품 속 하나의 사건 속에 서로 다른 진실이 엇갈린다. 그렇게 ‘미분화된 개개인의 삶’들은 수많은 조각난 사유의 파편이 되어 ‘판단의 척도’를 관객에게 맡기며 부유(浮遊)한다.

 

사진 제공: 극단 토끼가 사는 달

 

“항구에 도착한 줄 알았더니, 어느새 바다 한가운데 다시 떠 있었네”라는 라이프니츠의 말을 되뇌이게 하는 이 작품은 주인공 ‘다이크’의 살인 이유는 끝내 드러나지 않고 극 속에서 다시 배우들은, ‘왜 용감한 사형수라는 거야?’라는 물음과 대답들의 복잡한 착종 속에서 또 다른 물음들과 대답들을 낳는다.

이어지는 ‘극중극’ 속에서 배우들은 ‘사형과 종신형이라는 제도의 문제로 내기’ 속에서 어떤 길로 가면 위험한 삶의 곡예를 피할 수 있는지, 이제 어떠한 방식으로 세계(속내)를 알아내기 위한 싸움을 걸고, 끝내야하는지 거듭 물음을 던지고 또 대답을 찾아야 할지 거듭 묻는다. 그러나 새로운 물음들은 누그러졌던 삶의 의지를 불태우며 다시 새로운 <속내>를 찾아 <생각-여행>을 떠난다.

게다가 ‘교도소와 소극장에 제작된 독방’으로 은유된 ‘갇힌 삶속의 닫힌 생각’ 속에 배달 된 ‘세상에서 온 편지뭉치와 ‘15년 20억 내기의 참회 편지’는 이렇게 연극 속 ‘의미의 메신저’로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미래를 향해 타오르던 희망이 엄습해 오는 회색의 무의미 속에서 스러져 갈 때, 우리의 꿈은 어디로 사라져가는 가는 것일까라는 새로운 질문으로 다가와 관객의 굳어져 흐려진 눈동자를 맑게 닦아준다.

 

사진 제공: 극단 토끼가 사는 달

 

이를 위해 유연출은 샤막(Shark-Tooth Cutain: 빔이나 영상을 쏘면 비치는 막)의 개폐를 통해 <우리의 의식 속에 숨어있는 인간 본연의 민낯과 속내>를 진솔하게 들여다보는 장치로서 극의 긴장감과 관객의 몰입감를 높여준다. 게다가 인물들의 행위에 투사되는 색온도(kelvin)와 무빙 조명의 사용은 무대를 풍부하게 감싸주며 관객의 흐름을 보다 예민하게 파악한 음악은 루즈함 대신에 치열함을 역동적으로 울렸다. ‘어항 속 물고기’는 인간의 내부의 연상 작용, 잠재의식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관객들의 사유의 촉수’를 건드리는 심리극으로 변모하는데 중심적인 오브제로 활용되었다.

특히 깊게 파인 불황의 대전 연극 마당에 난해한 두 거장의 원작을 희곡으로의 각색을 통해 ‘철학적 연극’으로 풀어낸 연출의 진지함. “극의 긴장과 이완을 끌어내면서 자기 빛깔이 돋보이는 캐릭터를 연기한 김용우 배우, 치켜 주고 받아주는 호흡과 동작이 물 흐르듯 표현된 엄성현 배우, 절제와 생동하는 연기 표출이 보는 재미를 더해 준 정석희 배우, 미묘한 심리상태를 툭툭 던지는 단정한 대사를 연기한 신인배우 김수빈. 이들과 함께 음악으로, 춤으로, 각종 디자인으로 무대를 살려준 스텝들에게, 관객들과 함께 ‘좋은 연극’을 선물해 주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 무료정기구독을 원하시는 분은 ohskon@naver.com으로 메일을 보내주세요.
  • 리뷰 투고를 원하시는 분은 ohskon@naver.com으로 원고를 보내주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