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단 완자무늬 <의자는 잘못이 없다>

글_오판진(연극평론가)

 

“한 남자가 한 의자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공연장에 들어서면 무대 한가운데 나무로 만든 비범한 의자가 하나 놓여있다. 이 소품은 사람이나 생물, 물체 등 세상의 존재 자체를 대표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매력적인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2024년 10월 1일부터 10월 6일까지 스카이 씨어터에서 공연한 <의자는 잘못 없다>에서는 어린 예술가가 만든 의자 하나를 두고, 서로 다른 네 사람의 욕망과 그들 사이의 갈등이 흥미롭게 표현되었다.

극단 완자무늬는 창단 4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 공연으로 선욱현 작, 김태수 연출, <의자는 잘못 없다>를 무대에 올렸다. 2002년 희곡 <의자는 잘못 없다>를 쓴 극작가 선욱현은 지금까지 <중독자들>, <절대사절>, <황야의 물고기>,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 <돌아온다>, <의자는 잘못 없다> 등 많은 작품을 썼다. 그리고 연출을 맡은 김태수는 1983년 극단 완자무늬를 창단한 후 <병자삼인>, <지대방>, <천안함 랩소디>, <세 자매>, <의자는 잘못 없다> 등을 무대 위에 올렸다.

 

사진 제공: 극단 완자무늬

 

무엇이든 으로 평가하는 세상에 대한 통찰

 

30대 초반인 남자 강명규는 길을 걷다가 우연히 가구점에 전시된 의자 가운데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한다. 가구점 주인 문덕수에게 얼마를 주면, 저 의자를 살 수 있느냐고 묻는다. 가구점 주인은 그 의자는 가격을 매길 수 없어 판매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강명규는 가구점 주인에게 의자 대금으로 30만 원을 주겠다고 말한 후, 계약금 3만 원을 주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강명규와 문덕수 두 사람에게 모두 문제가 생긴다. 강명규는 집안의 경제를 맡고 있는 아내 송지애의 반대에 직면했고, 문덕수 또한 그 의자를 만든 딸 문선미와 극렬하게 싸웠기 때문이다. 강명규는 얼마 전 명예퇴직을 당한 후 다시 취직 준비를 하고 있어서 벌이가 없다. 그렇지만, 그는 평소에 큰돈을 쓴 적이 없기에 조금 비싸 보이지만, 30만 원을 주고라도 마음에 드는 그 의자를 사려고 한다. 그러나 가정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아내는 그 의자를 사는 데 30만 원을 쓰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반대로, 아내는 그 의자를 사려면 자신과 이혼한 후에 구입하라고 말한다. 한편, 가구점 딸은 강명규가 의자를 좋아한다니 의자를 버리지 않고 사랑해 준다면, 그 마음만 받고 공짜로 의자를 가져가라고 한다.

물론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돈이면 못 하는 게 없다는 말이 있을 만큼 돈의 위력은 늘 대단했다. 그런데 이 작품이 만들어진 20여 년 전부터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전 세계에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강조하지만, 사회보장이나 복지 등 국가의 역할이 축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특히 우리나라에서 양극화는 심화하였고, 돈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세상은 더욱 강고해졌다. 이런 시대에 공연이나 예술 분야에서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을 다루기보다 자본가는 마침내 선망의 대상으로 물러나고, 노동자와 노동자 사이의 처절한 갈등이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다.

1970년대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라는 책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이 소유인지, 존재 그 자체인지 질문하였다. 소비가 미덕인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어서, 사고 싶은 물건을 마음껏 사서 쓰면서 살고 싶어 한다. 존재보다 소유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지자 프롬은 이를 간파하였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욕망을 모두 충족하며 살 수는 없기에 불안이나 고립감을 느끼며 고통스럽게 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 연극에서는 의자를 주요 소재로 삼아 소유를 둘러싼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비록 돈이 중요한 세상이긴 하지만,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도 없고, 평가할 수는 더더욱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그래서 작가는 존재보다 소유를 지향하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예술가를 등장시킨 것 같다. 즉, 가구점 주인의 딸 문선미는 자신이 만든, 예술품으로 볼 수 있는 의자를 강명규에게 무료로 주겠다고 하여 파란을 일으킨다. 문선미의 전사를 살펴보면, 문선미는 어렸을 때 가정폭력으로 어머니를 잃고,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과도 이별하여 상처가 많지만, 돈보다는 사랑이 중요하다고 믿는 인물이다. 그녀의 순수한 신념은 신자유주의나 자본주의적 사고방식과 거리가 멀어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작가는 문선미의 사고방식이 우리가 사는 사회의 대안이 될 수는 없다고 보는 것 같다. 왜냐하면 이 극의 주인공은 강명규이며, 그가 한 마지막 말과 행동을 보면, 문선미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강명규는 돈을 주지 않고 문선미의 의자를 소유하는 것은 의자를 빼앗는 것과 같아서 그럴 수는 없다고 말한다. 강명규가 자신의 관점에서 이런저런 가능성을 상상하는 내용이 무대 위에서 펼쳐지지만, 결국에는 의자를 구입하려는 마음을 접으면서 공연은 막을 내린다.

 

사진 제공: 극단 완자무늬

 

무협으로 표현된 존재를 지향하는 작가의 마음

 

강명규가 떠올린 상상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바로 홍콩의 무협영화를 연상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의자를 차지하기 위해 강호의 고수들이 모여 싸우지만, 결국에는 무공이 제일 뛰어난 강명규가 의자를 갖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강호의 고수로 가구점 주인 문덕수나 아내 송미옥, 가구점 딸 문선미가 등장하지만, 모두 강명규의 칼에 쓰러진다. 비록 지금은 낭만과 인간미가 넘치는 홍콩 영화가 과거의 유물이 되었지만, 아직 많은 사람의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가령, 극단 명작옥수수밭에서 제작한 <굿모닝 홍콩> 또한 이런 정서를 바탕으로 만든 연극 작품이다.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까지 장국영, 주윤발, 왕조현 등을 사랑하며, 의리와 우정, 사랑을 얘기했던 시대는 이 공연에서 매우 주요한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현실에서 국가 간의 갈등인 전쟁에서도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19세기 전쟁 영화를 보면, 군인들이 바위나 나무 뒤에 숨어서 총을 쏘는 것이 아니라, 군복 입은 자신의 몸을 적에게 노출하며 당당하게 마주서서 총을 쏘거나 총에 맞는 장면이 나온다. 그 시대에는 전쟁할 때 군인의 명예나 최소한의 규칙이 있었다. 지금처럼 어린이가 공부하는 학교나 아픈 사람이 치료받는 병원까지 무자비하게 폭격하는 세상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밤중에 민간인이 살고 있는 주택가에 미사일을 쏜 후 군인들이 거기에 숨어있어서 그랬다는 변명을 한다든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서 휴전협정을 맺지 않고 계속 전쟁을 이어가면서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것을 2024년을 사는 우리들은 목격하고 있다. 전쟁을 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소유하기 위해 인간 존재를 보지 않는 것일까?

연극 <의자는 잘못 없다>에서 보여준 무협 세계를 패러디한 장면은 이처럼 관객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상당하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존재 그 자체보다 소유를 추구하며, 상대방이 무엇을 소유했는지를 바탕으로 평가하거나 평가받는 곳이라는 것을 은유하고 있다. 그래서 관객에게 어떤 삶이 아름다운지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눈을 가려 좌우를 돌아다보지 않고, 오로지 앞만 보고 무섭게 달리는 경주마들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대신 한가하게 산책하다 잠깐 멈춰서 발아래 풀꽃을 들여다보는 삶이 필요하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사진 제공: 극단 완자무늬

 

의자 디자인에 담긴 함의

 

이 공연의 의자 디자인은 매우 독특했다. 의자를 곰곰이 살펴보면, 좋은 목재를 잘 다듬어서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의자가 아니다. 그 의자는 현실 속에 존재하는 자유롭게 자란 나무를 그 모습 그대로 자르고 다듬어서 만들었다. 30만 원, 3만 원, 10만 원과 같은 돈이나 소유물로 세상이나 사람을 보기보다는 존재 그 자체로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자는 메시지를 ‘의자’ 디자인을 통해도 드러낸 것이다. 결국, 대사와 배우의 표정이나 움직임, 소품, 음악, 조명 등을 통해 표현한 이 공연의 무대언어에는 ‘소유와 존재’라는 범주에서 따뜻한 감동과 차가운 화두가 동시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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