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오세곤(극단 노을 예술감독)
글을 시작하기 전 먼저 헌법을 살펴보기로 하자.
헌법 제9조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
헌법 제22조 ①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②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 |
문화는 국가의 기본이고, 예술은 그 문화를 이끄는 핵심이자 동력이자 지향점이며, 그런 예술을 직업으로 하는 것이 예술인이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예술의 자유가 있고, 법률로 예술인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렇다. 예술인복지법의 근거는 헌법이다. 예술인복지법은 예술인의 복지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술인에게 복지(福祉:행복한 삶)란 무엇일까? 아마도 대부분의 예술인들은 “예술인으로 사는 것”이라 답할 것이다. “예술인으로 산다는 것”이, “예술을 열심히 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삶이 가능한 상태”를 뜻함은 물론이다.
‘공연예술 전문인력 표준인건비 산출연구-연극분야 종사자를 중심으로-’(책임연구원: 오세곤, 공동연구원: 이동준, 이신영, 서나영, 임영준)는 바로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2014년 발주하여 2015년 1월 최종보고서를 제출받은 연구 용역이었다.
표준이란 “사물의 정도나 성격 따위를 알기 위한 근거나 기준”을 뜻하는데, “일반적인 것 또는 평균적인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본 연구에서는 앞의 뜻을 우선으로 취하여 “근거나 기준”의 확립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에 있어 너무 복잡해서 표준화된 기준을 만들기 어렵다든가, 설령 만들더라도 현장 사정이 너무 열악하여 무의미하다든가, 오히려 현장 상황을 더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든가 하는 이유로 개발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으나, 그렇게 시작조차 못 한다면 언제까지나 개선은 없을 것이므로, 이후 계속 수정 보완한다는 전제로 최초의 실행안을 만들어 제시한 것이다.
그러니까 국가 사회적으로 예술과 예술인의 가치 인정에 대한 선언의 의미로 해석되어야 하며 실질적으로 예술 지원 정책 기조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즉 모든 지원금 산정에도 이러한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아울러 이것은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안전장치일 뿐이므로 이미 산업화된 분야에서는 현재보다 하향 조정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며, 또한 하한 기준이므로 예술적 가치 등을 고려하여 더 높게 책정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여야 할 것이다.
동시에 현장의 제작 상황 위축 등 충격 최소화를 위해 특히 영세한 현장에 대하여서는 유연한 적용이 가능한 원칙을 세우며 전체적으로 충분한 권장기간을 두고 그 이후에도 장기간에 걸쳐 완성해 나가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참고로 이 연구에 포함된 기본 원칙은 다음과 같다.
- -원칙적으로 직종에 따른 차이는 없어야 하며, 따라서 경력의 연한도 같고 투여되는 시간과 노력의 양도 같다면 보상 또한 동일해야 함
- -인건비 책정은 경력, 투여율, 규모 가중치 등을 적용함
- -표준인건비 산출을 위한 근거는 일반 공연은 최저임금으로, 비영리공연은 최저생계비로 하되 점차 둘 사이 격차를 줄이면서 궁극적으로 모두 대졸 평균 초임을 지향하도록 함
- -비영리공연의 경우 지급형계약과 출자형계약(지분계약)으로 이원화된 적용 방식을 제시함
당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년 동안 시험적으로 권장 실시한 후 법제화하는 것을 문화부에 제안하였으나 고민만 하다 끝내 수용하지 않음으로써 법적 강제력을 갖지 못하고 단순한 참고 자료 정도로 남고 말았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홈페이지 http://www.kawf.kr/ 자료실 54번 2015년 5월 19일자 참고)
아울러 2019년까지 5년 동안은 권장 표준인건비를, 2020년부터는 의무 표준인건비를 산정해 발표할 것도 제안하였으나 그것도 실현되지 않은 채 그만 세월을 흘려보내고 말았다. 그러나 그 사이 예술인복지법이 개정되면서 계약 의무화도 되고 표준계약서 개발도 아직 미흡한 점이 많지만 이루어졌다. 그러나 정작 계약 금액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만 명시되었을 뿐 그 액수를 정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인건비 기준은 아직도 법적 강제력이 없는 상황이다.
물론 법 중에서 가장 높은 법은 상식이다. 즉 계약 금액이 상식에 어긋나면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계약을 하고 지탄을 받으나 계약을 안 해서 문제가 되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서인지, 또는 계약을 안 해도 어차피 철저히 약자인 예술인들이 법적으로 문제 삼을 용기나 열정은 없으리라는 확신 때문인지 법적으로 의무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술 현장에서는 계약서 작성의 의무를 지키지 않는 경우가 남아 있는 듯하다. 더욱이 영세하기 짝이 없는 연극계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심히 거북한 일인 경우도 많다. 아마도 그냥 동인으로서 각자의 재능을 추렴하여 작품을 만든다는 의식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위의 원칙에서 보듯 공연을 일반 공연과 비영리공연으로 나누고 비영리공연에 대해서는 지분제 계약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즉 실제 인건비를 지급하지 않더라도 일단 계산하여 전체 대비 어느 정도의 비율로 기여했는지를 밝혀 놓자는 취지이다. 만약에라도 작품이 수익을 내게 되면 그 비율에 따라 분배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현실적으로 실감이 나지는 않지만 연극의 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면 꼭 불가능한 상황만은 아닐 것이다.
여기서 비영리공연이란 “주로 동인제 극단이 제작하는 작품으로 예산 규모가 작고 마케팅(인쇄, 홍보비) 예산 비중이 높지 않은 경우”로 그 인정 기준은 대단히 엄격할 필요가 있어서 특히 다음의 경우는 비영리공연으로 간주하지 않도록 하였다.
-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 등 유명 제작사의 뮤지컬 작품. 대형, 롱런, 스타마케팅, 전용극장, 투자펀딩 등의 특징을 갖는 상업 뮤지컬
- -로맨틱 코미디로 대표되는 롱런 상업연극
- -국공립 극단 또는 시설, 국공립 규모 민간 시설(엘지, 두산 등), 기획사(이 경우 극단 등록 여부 무관) 등에서 제작하는 작품
- -인쇄 홍보비를 전체 예산의 10% 이상 사용하는 작품
이런 구분을 전제로 일반 공연에는 최저임금을, 비영리공연에는 최저생계비를 적용하여 각각 표준인건비를 산출하였다. (물론 비교 대상으로 대졸 초임을 제시하고 장기적으로 조금씩 기준을 올려 언젠가 경력 0년의 연극인이 1년 동안 받는 인건비의 총액이 대졸 초임과 같아지도록 하라고 권고했지만 현재로서는 요원한 일이다.) 어쨌든 최저임금에 의한 1년 급여와 최저생계비 1년 치를 기준으로 전업기준 편수로 나누어 1편당 인건비를 계산해 내는 방식인데, 전업기준이란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연극만 할 경우 1년에 몇 편이 적당한지를 조사하여 정해 놓은 것으로, 배우, 조연출, 무대감독, 번역은 4편, 연출과 극작은 3편, 디자이너, 기획, 드라마투르그는 6작품이었다.
물론 실제 액수는 위의 기준에 경력과 투여율, 공연규모가중치 등을 적용하여 최종 산정된다. 투여율은 무엇보다 작업량을 기준으로 하는데 연출, 극작, 번역, 조연출, 무대감독의 경우 거의 예외 없이 100%이겠지만 다른 직종의 경우 작품마다 다를 수 있다. 물론 극작의 경우 윤색, 개작 등 부분적인 참여로 간주될 경우도 있을 것이다. 또 공연규모가중치는 공연시간과 출연진 규모 등을 기준으로 하는데 무조건이 아니라 공연 규모에 따라 작업의 강도와 양 등이 증가할 것이 분명한 경우에만 선별 적용한다.
아시다시피 2025년 최저임금 시급은 10030원이다. 월 평균은 209만 6270원원이고, 12개월로 하면 2515만 5240원이 된다. 또 1인 가족 월 최저생계비는 143만 5208원이고 12개월로 곱하면 1722만 2496원이 된다. (참고: 대졸 초임 평균 연봉 3610만원)
202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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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 |
월급 |
연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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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
10030원 |
209만 6270원 |
2515만 5240원 |
최저생계비 |
143만 5208원 |
1722만 2496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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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졸 초임 평균 연봉(2024) |
3610만원 |
따라서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일반 공연의 경우 배우, 조연출, 무대감독, 번역은 1편당 628만 8810원이고, 연출, 극작은 838만 5080원, 디자이너, 기획, 드라마투르그는 419만 2540원입니다. 또 최저생계비를 적용하는 비영리공연의 경우 배우, 조연출, 무대감독, 번역은 1편당 430만 5624원이고, 연출, 극작은 574만 832원, 디자이너, 기획, 드라마투르그는 287만 416원이다.
2025년 편당 단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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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공연 |
비영리공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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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조연출, 무대감독, 번역 |
628만 8810원 |
430만 5624원 |
연출, 극작 |
838만 5080원 |
574만 832원 |
디자이너, 기획, 드라마투르그 |
419만 2540원 |
287만 416원 |
물론 이것은 투여율을 100%로 본 것이고 규모가중치는 적용하지 않은 결과이다. 또 경력은 처음 출발한 경우인데, 본 연구에서는 1년 경력에 5% 가산을 기준으로 제시하였지만 이에 대해서는 좀 더 세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오퍼나 크루, 기획 보조 등의 일을 하는 경우를 생각하여 공연 회당 단가와 작업 시간당 단가도 산정해 보았는데, 역시 경력 0년 기준으로 일반 공연의 경우 회당 단가는 8만 7345원이고, 시간당 단가는 2만 1836원이 된다. 그리고 비영리공연의 경우 회당 단가는 5만 9800원이고 시간당 단가는 1만 4950원이 된다.
2025년 공연 회당, 시간당 단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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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공연 |
비영리공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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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당 단가 |
8만 7345원 |
5만 9800원 |
시간 당 단가 |
2만 1836원 |
1만 4950원 |
이러한 산출의 기준은 주 6일 하루 4시간씩 8주 연습에 4주 24회 공연을 표준으로 보고 배우들의 편당 단가의 72분의 1을 회당 단가로 288분의 1을 시간당 단가로 계산한 결과이다. 이러한 기준은 크루나 오퍼뿐 아니라 만약 배우들에게 추가 특별 공연 등에 대해 인건비를 계산해야 할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기준은 여러모로 취약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일단 발표된 기준을 놓고 무엇이 얼마나 틀렸는지를 따지다 보면 바람직한 표준에 근접하게 되리라는 희망을 갖고 과감하게 발표를 시도한 것이다. 부디 많은 연극인들이 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의견 개진을 해 주기를 기대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