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단 앙상블 공연 시리즈 ‘하나의 소리, 여러 개의 이야기’

글_김충일

 

지금 이 시대를 지배하며 유령처럼 퍼져있는 심리적 중압감 중의 하나가 불안(不安)’이 아닐까? 다중 위기(팬데믹, 전쟁, 기후 재앙, 계엄·탄핵 정국, 서민 물가 불안, 과민성 신경장애, 관계의 실종 등)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늘 불안에 찬 시선으로 다가올 삭막한 앞날에 눈길을 준다. 우린 일상의 삶 속에서 하나의 문제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다음 사건으로 줄타기를 하며 살아간다. 그 속에서의 문제해결과 위기관리법을 찾아내려는 삶은 고작 ‘살아남음의 삶’으로 왜곡 축소된다. 하여 어떻게든 살아보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애써보지만 ‘살아있음’을 되찾게 해주면서 삶에 다시 생명을 불어 넣어줄 <의미의 지평 (Horizon of Significance)>은 쉽사리 열리지 않는다.

급기야 ‘심리적 흔들림(불안장애)’으로 인해 시대의 우울은 널리 확산되어 버렸고 막연한 분노는 혐오를 선동하면서 연대와 공감은 찾기가 쉽지 않다.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내주지 않는 ‘우리’에 갇힌 시민들은 증가하고 커지는 분노로 폭력사회 속에 갇히게 된다. 이런 억압적인 사회 속에 이른바 인터넷 상에서 막말과 비난이 짧고 강렬하게 쏟아지는 현상과 가짜뉴스가 범람하면서 이런 결과로 건강하고 자유로운 의견 표출은 ‘또 다른 우리’ 속으로 숨어버린다. 심지어 우리는 사유에 대한 불안마저 갖게 되어, 사유할 용기마저 사라지는 듯싶다. 이런 불안의 분위기 속에서는 같은 것끼리만 순환하면서 ‘다른 것’으로의 접근이 차단되다 보니 의미의 지평은 더욱 더 어두위지고 막혀버린다.

지금 우리는 전망을 가로막는 불안장애를 겪고 있다. 불안성 신경증이란 궁지에 빠지게 되면 확장 가능한 모든 사유의 폭과 관점은 질식되며, 시야는 좁아지고 차단된다. 이 증세에 빠진 사람의 눈에 비친 세상은 감옥처럼 보일 뿐이다. 그에게 열린 공간으로 인도하는 문은 전부 닫혀있다. 그럴수록 가능한 것과 새로운 것으로 향하는 통로를 개척하는 역설적 행위가 필요하다. 이런 행위가 구체화된 모습으로 실천 될 때 의미의 지평이 열리고 확장된다. 이를 분명히 실행할 수 있는 소중하고 실천 가능한 영역은 예술적 활동인 연극이다. 무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극적행위는 많은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그 ‘이야기’들은 많은 사회현상의 속내를 포함하고 있기에 의미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백신으로 작용한다. 하여 연극인은 또 다시 서사의 무대에 오르고 관객은 극장 문을 두드리게 된다.

 

<하나가 말했다> 사진 제공: 대전연극협회

 

대전 연극 마당을 되돌아보고 한 해를 마무리 짓는 이 때, 이 불안한 시대의 갇힌 이야기를 무대 위에 풀어 놓고 의미의 지평을 확장시킨 작업은 대전 연극인들과 시민들이 함께 이루어냈다. 코로나 팬더믹 이후, 연극계의 공연환경은 더욱 열악해지거나 침체의 늪을 빠져 나오려 발버둥 치지만 현상유지하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이러한 정황 속에서 대중성을 확보한 인지도 높은 중앙 극작가의 작품을 빌려와 그들의 공연문화를 그대로 답습하거나 살짝 비틀어 관객의 입맛에 맞은 상업적 작품만을 보여주는 것으로 자리를 지키는 연극인들도 보인다. 그들만을 탓 할 수는 없다. 불안하고 흔들릴 때 익숙한 선택을 하고, 상황이 나아진 뒤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이러 한 때에 2024 지역대표예술단체 지원 사업(제작·주최·주관: 극단 앙상블, 협력:대전연극협회)의 일환으로 창작극이 무대 위에 초연되었다. ‘하나의 소리, 여러 개의 이야기’라는 공연 시리즈는 다가오는 을사년의 대전 연극계 활성화를 위한 불쏘시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특히 <공연 시리즈>에 등장한 세 작품은 ‘창작 초연작’이다. 이번에 공연된 작품들은 지역의 레파토리 형성을 위한 희곡작품을 발굴하고, 다양한 창작극의 활성화로 지역 극단의 극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공모전에서 수상한 ‘대전창작희곡공모작품’ <하나가 말했다:2023년, 최우수작)>, <하마:2021년, 금상>, <불의 고리:2022년, 최우수작>이다. 창작초연작에 대한 시도는 새로운 작품이어서 신선하다는 빛과 검증되지 않아 불안하다는 그림자가 늘 함께 공존한다. 그렇지만 이번 협회의 기획의도는 현상 유지에 급급한 대전 연극계에 새로운 힘으로 작용했다. 창작자들에게는 연극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실력향상의 기회로, 관객들의 관심과 격려를 끌어낼 수 있는 마중물로, 연극인들에게는 비록 부족하더라도 수정하고 보완해서 좋은 작품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의 소중함을 깨우쳐 준 디딤돌이 되었다.

연극예술은 우리의 삶에 깊이 스며들어 다양한 목소리가 모여 하나의 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소리는 여러 개의 이야기로 분절된 형태로 무대 위에 극적 공간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 때 무대란 시공간은 끊임없이 역할 상호교환의 현장 넘나들기를 수행한다. 이번 공연 시리즈는 『하나가 말했다』 『하마』 『불의 고리』라는 세 가지 특별한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 공연은 서로 침범하면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연극은 이해 가능한 서사 단위를, 포착 가능한 의미 단위를 자꾸 가로지르고 때론 차단하기도 한다. 이동하면서 정주해 있는, 혹은 정주하면서 이동하는 ‘유령(ghost)’처럼. 하여 다른 것과 구분되지만 또한 관절로써 연결되어 있는 ‘절합(articulate)’적 맥락 속에서 서로 겹치며 구분된다. 또한 서로가 서로를 부른다. 서로의 공간과 시간의 경계의 골을 넘고 계단의 벽을 넘나든다. 필자가 접한 시리즈 작품은 언제나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낯설게 하기’가 일어난다. 그것은 우리가 숨 쉴 때 어디에나 있으면서 동시에 어디에도 없는 듯 느끼지 못하는 공기처럼…

 

<하나가 말했다> 사진 제공: 대전연극협회

 

공연 시리즈의 첫 번째 창작초연작은 『하나가 말했다』(이소은 작, 유치벽 연출, 10.25~10.30,드림아트홀). 이 작품은 귀가 어두운 권경심과 암으로 목소리를 잃은 남편 김응호가 60년간 함께 살아온 낡은 집에 스케치북을 통해 일본어와 한국어로 소통하는 어린 소녀 ‘하나’가 찾아오는 것으로 극은 시작된다. 권경심은 하나를 자기의 실종 된 딸 ‘은주’의 자식이라 확신한다. 뉴스에서는 은주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지만 은주가 남긴 읽을 수 없는 편지에 의지하며 모든 것을 부정한다. 그러던 중 VR(Virtual Reality)에 나타난 은주의 영상에 몰두하고 김응호와 하나는 ‘말’없이 소통하고, 혼자 남는 것이 두려운 권경심은 자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꿈에서 은주를 만난 하나는 권경심에게 ‘듣는 법’을 가르쳐주며 죽음에서 끌어올린다. 들리지 않던 것을 들을 수 있게 된 권경심은 죽은 김응호를 보내고, 모든 것들과 대화를 시작하는 것으로 극은 마무리 된다.

관계의 윤활유 역할을 담당하는 일상의 매체는 소통이다. 소통의 내용은 확정되어 있으나 전달도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원초적 관계의 핵심은 흔들린다. 살아 있다고 확신하는 딸(은주)에 대한 경심의 흔들리는 마음은 자신들의 말하기만을 고집하는 거친 돌멩이 깔린 길을 올라온 방문객(우편배달부, VR 기계를 든 국토부 대학생 서포터즈)들에 의해 ‘말의 결핍’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일본어와 한국어, 글씨와 멜로디로 소통하는 하나, 어두운 귀로 한국어를 외치는 경심,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응호의 좀처럼 이어질 수 없을 것 같은 오묘한 소통은 이어진다. 그 속에선 ‘사랑하는 딸 은주 찾기’가 ‘희망의 결핍’으로 보인다. 하지만 희망은 ‘사람이 죽으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목소리로 태어난다’는 하나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속에서, ‘죽은 미모사 꽃을 동백나무 뒤, 구덩이에 밀어 넣는 ’자유의 결핍‘에 대한 상징적 행위로 작용하면서, ’처음부터 이별‘이었다는 희미한 노랫말 속에서 되살아나게 된다. 경심의 희망(소통의 완성)은 즉각적으로 경험되는 세계를 넘어, 먼 곳의 어딘가에 정박되어 있는 인간의 본질적인 ’정신의 방향이자 마음의 흔들림‘임을 지켜주는 ’말의 부활‘로 살아난다. 결국 하나는 “사랑과 사랑하는 이와의 소통의 부재는 그 자리를 대신하는 끔찍한 渴望”이라고 말했다.

 

<하마> 사진 제공: 대전연극협회

 

공연 시리즈의 두 번째 창작초연작은 『하마(河魔』(이정수 작, 이소을 연출, 12.12~12.17, 한남대학교 서의필 홀). 이 작품은 대한민국 현대사 중 대국민 사기극이라 평가받는 1986년, ‘평화의 댐 건설 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다. 정부는 금강산댐에 대응하기 위해 평화의 댐 건설을 추진하고 전국적으로 모금활동을 전개한다. 세원 중학교도 이에 따라 교장의 지시로 머뭇거리며 성금을 걷지만, 교무부장은 비정상적으로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교사들에게 협박과 압박을 가한다. 박단일 교사는 이러한 부조리를 인식하고 강압적인 방식으로 모금을 하지 않게 되자, 교무부장의 눈에 띄어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성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자 교무부장은 박단일을 빨갱이로 몰아붙이며 압박을 가하고, 결국 박단일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검은 매로 교무부장의 머리를 가격한다. 이 사건은 학교 내에서 큰 충격을 주며, 박단일은 부조리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박단일과 교무부장은 안기부 취조실로 옮겨지고, 그날 이후 박단일은 보이지 않는다. 몇 년 후 교사가 된 제자 상욱의 ‘박단일 찾기’는 여전히 미궁 속에 숨어있다. 박단일의 폭력적인 사건 후에 일어난 긴 침묵 속 사라짐은 뭘까?

“교무부장의 강압적 집행과 신뢰 붕괴는 과거뿐 아니라 현재에도 유효한 문제”임을 제시하고 “박단일이라는 인물을 통해 부조리에 맞서는 용기와 선택의 중요성을 성찰하게”하려는 연출의 의도는 분명하게 다가왔다. 이는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탄력 넘치는 배우들의 역동적인 연기력과 이를 받쳐주는 ‘검은 매’의 강압적이며 섬세한 상징, 강력한 노래와 음향 그리고 다이나믹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영상편집은 극의 완성도를 높혀 주었다. 특히 광주사태를 겪어 낸 박단일 선생의 트라우마 속에 투영된 관객의 개인사적인 트라우마의 되새김, 평화의 댐을 모금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가짜 뉴스를 목도하면서 깨닫게 되는 현 ‘정치현실’에 대한 되물음과 진실여부의 헷갈림 등으로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세태를 사유할 수 있는 동기부여의 시간이었다. 다시 말하면 동시대성에 대한 투철한 작가의 문제의식과 이를 적확한 연극적 문법으로 담아내려는 연출의 애씀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하지만 경직된 정치 체제에 대한 앤티로서의 극적표현에 힘이 쏠리다 보니 자칫 이데올로기에 오염되어 예술 미학적 상상력이 묻혀버리는 역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는지 이소을 연출에게 묻고 싶은 작품으로 다가왔다.

 

<불의 고리> 사진 제공: 대전연극협회

 

연극 시리즈 ‘하나의 소리, 여러 개의 이야기’의 세 번째 작품인 『불의 고리(Ring of Fire)』(故 이성호 작, 윤민훈 연출, 2024.12.19.~12.22, 별별마당 우금치 관용극장). 이 작품은 현재 주위에서 늘 일어나는 사회 문제에 대한 접근을 중심으로 하는 4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제 1장은 카지노에 모여든 인간군(人間群)속에 자신의 딸이 위독하다며 교통비를 빌리려 하는 老신사의 이야기가, 제 2장에는 마침내 온갖 수모와 무시를 당하며 모은 돈으로 마지막 대출금을 갚고 내 집 마련의 꿈이 이루어지는 날, 이른 아침에 들이닥친 부동산 중개인과 부부(연상녀와 연하남)와의 옥신각신하는 이야기가, 제 3장에서는 결혼식을 하루 앞둔 女검시관과 어쭙잖은 추리와 감정이입에 익숙한 男검시관 사이의 대화 속에서 부검하는 시신이 옛 연인의 어머니임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가, 제 4장 속에는 길고양이들이 먹어야 할 공동사료가 없어지자 서로를 의심하고 최근에 나타난 미혼猫를 주목하게 되고 미혼묘가 자신의 품에 꼭 숨기고 다녔던 대상(사건)의 정체를 밝히는 이야기가 들어있다.

각 장의 에피소드는 현재 자신이 직접 피부로 느끼지 못 했지만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문제들)이다. 우리 삶 속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문제를 가진 징조와 작은 사고들은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불의 고리‘로 존재해왔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인물들의 부조리한 대화, 부자연스러운 말과 행동 패턴, 어처구니없는 상황으로 구성해 관객들의 웃음과 울음을 끌어낸다. 관극을 마치고 극장을 나오면서 4개의 에피소드 속의 이야기와 그것을 지켜내고 있는 중심은 각기 다르지만, 이 극은 진실이 “무엇(What)”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이라는 것이 “어떻게(How)”이야기되는가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왜 그랬을까? 본래 5개의 에피소드 중 1개를 제외한 나머지 4개의 장을 연출의 숨겨진 의도에 따라 해체한 후, 각 에피소드가 발하고자 하는 사회적 발언을 쏟아낸다. 그 후 일상(극 속)의 희·비극(사건들)은 ‘웃음·울음’으로 마무리 된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창발적인 연출법으로 잘 익혀낸 연출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극의 흐름을 잡아 줄 수 있는 탄탄한 연기력을 지닌 배우, 극적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는 음향과 조명, 현장감을 살리는 분장과 소품의 배열은 재공연의 욕심을 불러 왔다. 특히 이 작품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 내에서 공연이 이루어지는 만큼 절도 있게 객체(대상)를 다양한 방식의 행위나 대사를 통해 극화한 섬세하면서도 절제된 연출력은 잊혀 지지 않는다. 하지만 인물들 사이의 사건과 갈등 그리고 그 결말로 이어지는 일련의 ‘운동의 총체성’이 너무 쉽게 드러남으로써 관객에게 ‘사유의 여유’를 빼앗지는 않았는지 윤민훈 연출에게 묻고 싶다.

 

<불의 고리> 사진 제공: 대전연극협회

 

끝으로 아쉬움은 남는다. 세 작품을 관극하면서 공통적으로 떠오른 생각은 ‘대사가 귀로는 들리는데, 몸으로는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관객들은 “사전 배경 지식 없이”연극을 구경하러 온다. 특히 창작초연 작품일 경우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러하기에 관객과의 소통은 항상 극 작업을 할 때 고려해야할 필수 조건이다. 하여 1회성으로 종결되는 무대에 서는 배우의 화술은 절대적 역량이다. 그를 통해 관객과의 ‘소통’을 위한 ‘소리의 전달’과 ‘내용의 전달’을 도모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여 각기 다른 작품의 사건의 내용에 따른 배우의 역할의 적정여부는 ‘목’이 아니라 ‘몸’에서 우러나는 ‘소리의 전달’에 좌우된다. 지금까지 인색한 평가를 받은 이 영역이 자구적 노력과 병행하여 구조적 시스템(체계적 훈련)으로 확대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이다.

또 하나의 아쉬움도 있다. 이번 사업 속의 작품은 분명 신·구(중·청년)의 조화가 적절하게 이루어지고,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음에도 관객과의 만남의 빈한함에 있다. 우선 눈에 뛰는 것은 ‘그들만의 리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구나라는 또 한 번의 아픈 깨달음이다. 협회의 파격적인 가격인하와 전 작품 관람 티켓의 활용 등 세심한 홍보가 있었음에도 이번에도 티켓 판매는 여전히 배우들과 일부 관계자들의 주요한 몫이며, 아름아름 서로서로 작품 봐주기, 인터넷 예매를 통한 얇은 수준의 순수 관객 동원이 전부였다면 필자의 잘못된 판단일까,

지금까지 우리는 2024 지역대표예술단체 지원 사업(제작·주최·주관: 극단 앙상블, 협력:대전연극협회)의 일환으로 무대 위에 올려진 3편의 창작초연작을 살펴보았다, 이 번 관극을 통해 필자는 안타깝고 속상한 점도 지적할 수 있었지만, 대전 연극마당에 ‘좋은 작품’으로 선보이려는 연극적 실험정신과 자기 갱신의 분투를 읽어낼 수 있었다. 대전 연극인 여러분! “그냥 합니다. 그냥 하는 겁니다. 그게 희망입니다. 그저 하는 겁니다. 그런 우리를 보고 다들 미쳤다고 할 겁니다. 하지만 이게 맞는 겁니다. 해보는 거예요. 희망은 용기를 전제합니다. 믿음을 전제합니다.”(한병철, 『생각의 음조』, 2024, P143). 을사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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