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오판진(연극평론가)
<달나라의 장난> 공연의 개요
춘천시립인형극단이 제작한 공연 <달나라의 장난>이 2024년 11월 29일부터 11월 30일까지 축제극장 몸짓에서 막을 올렸다. 유성균 예술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출연한 배우는 이다정 황석용 강지성이었으며, 김도란 함성훈 김정연 배우가 보조 출연하였다.
달에서 절구질하는 토끼와 우주를 떠돌던 여우가 만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인형극의 공간적 배경은 달나라의 우주 정원이었고, 시간적 배경은 현재였다. 인형과 그림자, 여러 소품, UV 라이트 효과 등 다양한 오브제를 통해 신비롭고 환상적인 미장센을 보여주었다. 주인공은 토끼인데,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기도를 듣고 그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응원하기 위해 방아를 찧어 불을 밝힌다. 공연을 앞둔 어느 날 발달장애인들과 시민들을 만났는데, 그 때 달을 보고 기원하는 소원을 육성으로 직접 녹음하였고, 그 녹음 자료를 이번 공연에 활용하였다. 여기에 참여한 발달장애인들과 시민들의 생동감 넘치는 목소리가 있어서 관객들은 공연에 더욱 빠져들 수 있었다.
그런데 안타고니스트인 우주 여우는 토기의 절굿공이를 훔쳐 가고, 그 결과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희망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공연의 흐름을 볼 때 여우의 행동은 장난으로 보이지만, 또 다른 해석의 여지는 남아있다. 토끼는 절굿공이가 없어지자, 절구질을 할 수 없었고, 그가 밝히던 소망의 빛은 점점 사라지면서 지구인의 갈등은 점점 커지게 된다.
배우들은 인형을 조종하며 연기할 때 어떤 대목에서는 관객이 참여하도록 손을 잡아 이끌기도 하고, 어떤 공간에 함께 가서 소도구를 활용한 후 처음 관객의 자리로 돌아가게 하였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모든 관객과 배우가 일어나서 서로 손을 맞잡을 수 있도록 하여 공연장에서 강강술래를 하는 것과 같은 대형을 만들었다. 그런 대형을 유지하면서 관객들은 무대 위를 천천히 걸어 다녔는데, 처음 앉았던 객석에서는 볼 수 없었던 공연장의 모습과 여러 인형이나 소도구 등을 가까운 곳이나 다른 위치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배우들은 관객들이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이끈 뒤, 이번 인형극 공연을 잘 마무리하였다.
인형과 소품의 차이
이다정 배우가 조종하는 토끼 인형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 인형은 마치 실제로 무언가를 바라보고, 살아서 숨을 쉬는 생물 같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인형극 공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무대 위에서 배우가 조종하는 인형에서 생명력이 느껴지는지, 둘째, 인형의 언행에 공감이 가는지. 인형극 공연을 보다 보면, 간혹 인형을 소품처럼 사용하는 배우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서는 배우는 보이지 않고, 인형만 보이는 그런 경험을 하였고, 매우 큰 만족감을 느꼈다. 그리고 다양한 여우 형상이 공연장에 등장하여 깜짝 놀랐다. 토끼를 곤란하게 만드는 여우라는 인물은 하나일 텐데, 배우들은 수많은 여우 캐릭터를 만들어서 우주 여우를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달나라의 장난>에서는 많은 여우 캐릭터가 소품처럼 대상이 되지 않고, 숨을 쉬면서 살아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이번 공연에서 인형을 제작한 예술가는 핀란드 인형극인 예니 루타넨(Jenni Rutanen)이었다. 그는 이 공연에 힘을 보태기 위해 먼 길을 날아왔고, 주인공인 토끼 인형과 여우 인형을 직접 만들었다. 즉, 공연 연습 과정에서 배우들이 인형을 조종하는 것을 보면서 배우들과 소통하여 끊임없이 수정함으로써 인형의 완성도를 높였다. 특히 여우 캐릭터는 다양한 재료와 형태로 만들어서 큰 주목과 박수를 받았다. 단일한 토끼 인형과 견주어 볼 때 우주 여우라는 인물에서는 다음과 같은 의미도 추론할 수 있었다. 지구인을 돕는 토끼와 같은 선한 존재는 이 우주에 그 숫자가 많지 않지만, 지구인의 소원이 성취되는 것을 방해하는 우주 여우의 모습은 매우 다양하고, 우주 어디에나 숨어있다는 점이다. 즉, 광활한 우주 공간 속에서 인간의 희망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희망이 이루어졌을 때 겸손하고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인형의 숫자를 통해서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인형극의 본질을 찾아서
관객들은 공연장에 들어서면서 토끼와 여우, 다양한 오브제를 보면서 인형극이라는 마법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동안 춘천시립인형극단은 무엇보다도 인형의 개념, 인형극의 본질에 충실한 공연을 추구해 왔다. 2020년 창단 공연인 <하얀산>을 무대에 올린 이후로 <수상한 구둣방>, <변신>, <파롱이>, <미토의 고백> 등을 통해 인형극으로 보여줄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하면서 연구하였다. 인형극을 전문적으로 공연하는 다른 극단들도 인형극에 대한 연구와 탐색을 하고 있지만, 춘천시립인형극단에서는 특히 선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최신 작품인 <달나라의 장난>에서는 발달장애인들이 바라보는 인형극이란 무엇인지를 화두로 새로운 모색을 하고 있다. 같은 인형극일지라도 발달장애인들은 인형극을 어떻게 인식하고 감상하는지에 초점을 두고 살펴보고 있다.
인형극의 매력은 간접적이고, 느리며, 곡선과 같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람 배우가 등장하여 직접 빠르게 직선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닮은 인형(puppet)을 통해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걸어가는 것처럼 은근하게 표현하여 관객 스스로 느끼고 이해하게 하는 방식으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인형이라는 사물에 혼이 있어 마치 사람인 것처럼 느낄 때 관객의 감수성은 섬세해질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조심스러운 마음과 태도로 자기 자신과 타인을 대할 수 있는 안목을 갖게 한다. 이렇게 인형이라는 새로운 대상의 움직임과 대사를 통해 은유와 상징의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관객들 스스로 인형이나 인형극의 메시지를 상상하고 성찰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따라서 지나치게 명시적인 표현이나 메시지를 보여주는 것도 피해야 하고, 반대로 지나치게 암시적인 서사나 성격을 표현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명시성과 암시성 사이에서 관객들의 연령이나 관심사, 눈높이 등을 고려하여 가장 적절하고 아름다운 길을 선택해야 한다.
인형극 관객의 저변 확장을 위한 노력
공연계에서는 관객 확대를 위해 늘 고민해 왔고, 지금도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가령, 장애인의 공연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시도된 베리어스 프리 공연에서는 청각 장애인도 비장애인이 관람하는 공연을 볼 수 있도록 자막이나 수화 프로그램을 만들어 제공한다. 그리고 시각 장애인을 위해서는 공연 해설사가 시각 장애인 옆에서 작은 목소리로 공연의 시각적인 측면을 설명하여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는 시각이나 청각 장애인이 아니라 발달장애인에 초점을 두어 공연을 준비하였다. 그래서 공연을 기획하는 단계에서부터 함께할 수 있는 여지를 넓히기 위해 더욱 체계적으로 준비하였다. 즉,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이 공연을 함께 본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공연의 내용이나 형식, 관람 편의 시설 등 어떤 부분에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면밀히 검토하였다. 이를 위해 발달장애인들을 직접 만나서 워크숍을 진행하였고, 이 과정에서 소통한 결과를 바탕으로 공연을 조금씩 쌓아 올렸다. 발달장애인들과 함께하는 워크숍이나 시민 참여 토론 등을 통해 이 공연의 취지를 발달장애인들이나 비장애인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하는지 점검한 것은 매우 높게 평가할 대목이다.
<달나라의 장난>에서는 발달장애인의 감각적 특성을 고려하여 공연장에서 사용하는 시청각적 표현을 조절하였다. 가령, 어떤 조명이나 소리를 예민하게 받아들이는지를 점검하여, 발달장애인 관객의 수용 측면에 어울리게 연출이나 연기 등을 세밀하게 표현하였다. 발달장애인 개개인의 특성이 매우 다르지만, 극단에서는 이런 점검 과정을 통해 발달장애인들이 공연의 여러 측면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미리 확인하였기에 자신감을 얻었다. 그래서 암전하는 순간을 최대한 줄이고, 자극이 될 만한 큰 소리나 강한 조명 등도 축소함으로써 공연을 더 잘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었다.
공연 둘째 날에는 발달장애인들을 직접 초대하여 함께 만든 공연을 관람하도록 하였고, 관람한 소감도 경청하였다. 춘천시립인형극단에서는 이 공연에 관한 발달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의 반응이나 평가를 전문가들의 평가와 함께 수용하여 이어지는 공연에 반영할 예정이다. 이렇게 땀을 흘리면서 노력하고 있기에 인형극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의 저변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모두를 위한 대상 친화 공연’을 최종 목표로 설정하여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있는 장벽을 하나씩 허물면서 밀고 나가는 창작진의 모습이 매우 듬직해 보인다.
더욱 높은 완성도를 위한 힘든 여정의 시작
춘천시립인형극단은 이번 공연을 발판으로 발달장애인뿐만 아니라 다른 장애인들도 더 많이 인형극을 관람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공연 창작진들은 관객들에게 인형극을 선보일 때 어느 정도의 친절함으로 다가가는 것이 필요할지 끊임없이 궁리해 왔다. 앞으로도 지나치지 않고, 적절한 지점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고민하고 토론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20년 극단 창단 이후 계속 이어져 온 극단 배우들의 여러 훈련과 스터디, 워크숍, 공연 등이 인형극 배우들의 몸과 마음에 켜켜이 쌓이고 쌓여 예술가로서의 역량이 두툼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그래서 축제극장 몸짓을 찾은 관객들은 인형극 작가나 연출, 배우, 스태프가 함께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인형을 조종하는 배우가 아니라 배우가 표현한 인형과 미장센을 통해 감각할 수 있게 되었다.
내년 봄까지 차근차근 더 갈고 닦아서 2025년 5월 춘천에서 열리는 제24회 유니마 총회와 춘천세계인형극제에서 세계 인형극인들 앞에 더 나은 작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그리고 이때 만난 관객들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계속 다듬어서, 2025년 가을에는 수도권 관객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서울시 충정로에 있는 모두예술극장에서 인형극 <달나라의 장난>을 공연할 계획도 검토하고 있다. 춘천시립인형극단은 날마다 새로운 인형을 만들고, 더 나은 인형의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반복하여 훈련하고 있다. 올 겨울에도 관객들이 평생 간직할 아름다운 인형극을 만들기 위해 굵은 땀을 흘리고 있다. 다음 공연에서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큰 박수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