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단 돋을양지 <그래도 가족>

글_김건표(연극평론가)

 

‘그래도’의 접속부사처럼 <그래도 가족>(극단 돋을양지, 작 서린 연출 김성진 씨어터 쿰)은 한 가족의 상처로 분열된 가정사를 무대에 올려놓고 가족의 통증과 아픔을 TV 드라마 보다 한 발짝 더 들어가 하이퍼 리얼리티로 구현하고 있는 연극이다. 무대는 딸자식 집에 한 가족의 생활을 섬세한 방송 세트처럼 구현된 것을 보면 연극을 총괄 제작한 극단 돋을양지 대표 탤런트 이기영 씨의 의도가 가족의 아픔과 생활을 리얼리티로 그대로 구현해 보자는 것을 눈치채게 된다. 극단은 동시대 살아가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 국민이 예술 공연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화예술운동 중심이 되고자 하는 노력처럼 <그래도 가족>은 무대장치와 소품 몇 개로 사실적 재현을 시도하는 작품들보다 무대세트가 드러내는 사실적 질감과 소품들이 시각적으로 감각되어 있다.

 

 

접속부사의 아픔과 통증 ‘그래도…가족’

 

희곡은 가족드라마처럼 극 중 인물들의 삶들로부터 감정을 동화 시키기 위한 설정들을 구성한다. 극중인물들이 사실적 전경 속에서 살아가는 인생과 삶은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근대적 남성적 표상이 부재해 있다. 가족으로 완전하지 않은 채 극 중 인물들의 내면에는 속내를 들킬 수 없는 인생의 사연들이 고여있다. 이쯤 되면, 스토리와 결말과 예측할 수 있다. 그렇다고 타자의 삶들이 만신의 감각으로 꿰뚫어 보인다고 해서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감정을 당겨 연민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방아쇠는 삶과 극중인물 내면의 전경에 내재하고 있기에 아프고, 우리와 닮을수록 좋다. 그렇기에 사실적 드라마로 가족 이야기를 구성하는 작가의 방정식은 극 중 인물들 내면의 피부에 붙어 살아가는 종양(腫瘍)들을 들추어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극 중 인물들이 삶으로부터 아프고, 쓰라리고, 통증이 커질수록 감정이입은 상승하고, 발현되는 가족사에 갈등과 사건들이 요란할수록 만족 온도가 올라가는 것이 드라마의 기본 구성 법칙이다.

 

연극 <그래도 가족>은 접속부사가 연결하는 명사화된 가족까지 삶으로부터 표류하며 건져 올리는 쓴맛의 감정 더미를 쌓아 올린다. 드라마 기본에 충실하다. 대체로 이러한 부류의 드라마 결승점은 불행한 인생을 증폭할 수 있는 작가적 레시피가 중요한 법이다. 대체로 화해와 용소가 전제된다. 반전은 예측할 수 있도록 크지 않다. 생활전경안에서 해소된다. 사건을 증폭시키고 극 중 인물들의 갈등과 대립 구조에서 반환점을 돌며 사실적 허구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시청자나 관객이 좋아할 만한 극적인 반찬들로 밑반찬을 깔아놓는 드라마식탁을 구성하고 연결하면 된다. 작가의 노련한테크닉은 이점에서부터 갈린다. 가족드라마의 대표적인 작가는 일일드라마의 대명사 김수현 선생이다. <사랑이 뭐길래>, <배반의 장미>, <목욕탕 집 남자들> <청춘의 덫>은 평균 시청율 40%를 넘겼다. 서린 작가의 <그래도 가족>은 인생의 내공을 담아내는 부피가 작아도 자기 고백적 서사로 느껴질 만큼 솔직하고 때로는 남성이 부재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밝히는 작가의 소리는 현실과 작가적 상상으로 가족을 이룬 <그래도 가족>이 접속부사 통증의 분열들을 밀쳐내며 마지막 가족사를 치유해 내는 용기도 보이기도 하고, 애잔한 잔상이 느껴지기도 한다.

 

 

무대의 감각, 사실적인 전경화

 

작품의 특징은 무대를 시각적으로 감각화 시키는 사실적 무대장치에 가족들의 온기가 살아난다. 주택형 연립 같은 구조에 부엌이며, 화장실, 거실과 방 세 칸짜리 집에서 뒤엉켜 살아가는 이들은 낯설지 않은 풍경이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다. 책장 위에 올려놓은 과일상자와 냉장고에 빼곡하게 붙어있는 동네 가게 전단들은 소품의 디테일을 살리고 있다. 관객들 시선은 마치 스튜디오 1.2.3 카메라처럼 앵글화되어 공간의 장면들을 분활하며 가족의 이야기를 쫓아가는 재미도 쏠쏠한 만큼 무대며, 연기는 일상생활과 환경에 근접할 수 있도록 사실적 무대다. 그만큼 드라마 녹화장의 스튜디오다. 자식이 이혼하고 죽은 뒤 삼 남매를 길러내고 있는 70대 금영(김곽경희 분), 혼자 사는 딸은 교통사고로 어린 아들이 죽은 뒤 그 환영에 시달릴 정도로 약을 달고 사는 딸(김은현 분), 자폐증세에도 기타에 집착을 보이는 막내 은수, 이란성 쌍둥이 30대 첫째는 백수 생활을 하는 시인이고 둘째 수민은 공장기숙사 생활을 하며 가족을 부양하며 생계를 책임진다.

 

’그래도 가족’인 이들이 뒤엉켜 있는 것은 서로를 마주할 수 없는 통증으로 고여진 아픔들이다. 그래도 가족이 될 수 있는 것은 각자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용기와 화해일까. 연극 <그래도 가족 >은 드라마에 단골 소재로 등장할 법한 가족사를 밀어 넣는다. 이혼한 엄마의 배다른 동생이 등장해 말기 암으로 죽어가면서도 두 딸을 위해 남겨둔 보험금을 밀어 넣고 어려서부터 엄마의 존재를 부정하며 살았던 이들에게 찾아온 동생은 “ 당신들만 힘들게 산 거 아니에요!“ 이 한마디 대사로 ‘그래도 가족’이 될 수 있는 것은 ‘서로의 아픔을 바라보는 것’임을 확인하게 된다. 마지막 장면은 환영으로 등장하는 어린 아들을 씻김처럼 떠나보내고 살면서 언니라는 말을 꺼내 본 적 없이 묵묵하게 가족을 위해 희생해 온 둘째한테 미안함의 고백이 이어지고 아파도, 싫어도, 통증으로 고여도 뭉치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그래도 가족이기 때문이다.

 

 

무대가 익숙한 삶의 풍경이고 작가적 설정이 눈치챌만한 스토리임에도 <그래도 가족>을 끝까지 볼 수 있었던 것은 아침드라마 같은 사실적인 전경화도 그렇지만 배우들의 생활 연기의 섬세함이 ‘그래도 가족’을 연결하고 있는 지점이다. 노모로 분한 김곽경희는 척척 감기는 경상도 사투리에 구부정한 체형으로 말투, 호흡, 제스츄어나 동작과 표정까지 영락없는 경상도 할매이다. 3장에서 며느리 죽음을 듣고 “내 죄다 내가 다 내 탓이다. 불쌍한 내 새끼들 우야노 불쌍해서 우야노….”이 한마디 대사에 할매가 살아온 세월의 내면을 응집하며 감정을 쓸어담아낸다. 좋은 배우이다. 이기영씨 가족이 실제 이 작품에서 고모와 오빠딸가족(희수, 수민)으로 분한 김은현, 이지윤, 이지원은 연기자 가족답고, 아역 유은수도, 자폐를 앓고 있는 셋째 황대준, 이복동생 박솔지의 역할도 있어 ‘그래도 가족’이다.

 

아쉬운 것은 이 작품을 연극적으로 해석하지 않더라도 어린 아들의 환영이다. 죽은 어린 아들의 존재를 극대화하면 하이퍼 리얼리티의 구도가 깨져 연극적으로 되고 절제하면 드라마로 유지가 되는데, 이 경계에서 연출이 고민한 흔적이 느껴진다. 그 중간 지점을 연출적으로 설정한 것이 의도로 보이지만 아이의 존재를 연극적으로 확장했다면 어땠을까. 두 번째는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생활의 묘사가 길어지면 작품은 건조해진다. CCTV를 오래 본다고 모든 장면을 기억할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뒷부분은 단축해도 될듯하다. ‘그래도 가족’은 그럼에도 사실적 전경화를 정성스럽게 만든 연극이고 김곽경희와 김은현 배우가 있어 <그래도 가족>이 살아가는 집이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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