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단 몽중자각 <엄브렐러, 그 후>

글_오판진(연극평론가)

 

극단 ‘몽중자각’이 제작한 공연 <엄브렐러, 그 후>가 2025년 4월 1일부터 4월 6일까지 동숭무대 소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선욱현 작가가 쓴 희곡을 바탕으로 김성진이 연출하였고, 오문강 유명진 이나경 조승민 정미리 이성민 윤경화 김서준 배우가 출연하였다.

 

사진제공: 오판진

 

우산을 기다린 걸까? 인연을 기다린 걸까?

공연장 입구에서 객석으로 가는데, 무대 바닥에 물방울과 물기가 보였다. 연극 무대에 물이나 물기가 있으면 배우들이 연기하다가 미끄러지거나 다칠 수 있어서 바닥을 잘 닦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공연장 바닥의 예외적인 모습을 보면서 순간적으로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을 했다. 자유 좌석이라 빈자리를 찾아서 적당한 의자에 앉은 후 무대를 다시 천천히 살펴보았다. 소극장 무대에는 학교 건물 현관 앞으로 보이는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현관 처마의 바닥에 물기가 있어서, 공연의 배경이 ‘비가 내리는 날, 학교’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자 객석 조명은 어두워졌고, 잠시 빗소리가 들리더니 아이 1(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이 등장한다. 희곡을 보면, 이 장면의 시대적 배경은 1978년이다. 참고로 필자는 그해 초등학교 4학년이었고, 과거로 시간 여행을 가는 것 같았다. 아이 2(같은 반 여학생)이 한 명 더 등장하고, 두 어린이는 우산이 없어서 서로 난감해한다. 그들은 답답한 상황이었지만, 쏟아지는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면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말놀이를 한다. 두 어린이는 비는 내리는 것인지, 아니면 오는 것인지, 떨어지는 것인지를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근거를 찾아 서로 주장한다. 이런 소소한 놀이의 갈등이 점차 고조될 때, 아이 3(같은 반 남학생)이 등장하여 비를 보면서 “비를 뿌리네.”라고 말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어린 시절 심심할 때 친구들과 했던 다양한 말놀이들이 떠올랐다. 비슷한 말 찾기, 끝말잇기, 연상게임 등. ‘맞아, 이렇게 놀았었지.’ 1막은 이렇게 놀이이면서 동화 같은 화소들이 이어져서 따뜻한 아동극 같았다.

1막의 주요 사건은 5학년 학생들이 하교할 때 비가 내리면서 시작되었다. 2학년 은자가 우산을 두 개 손에 들고, 학교 현관으로 친오빠인 5학년 금동을 찾아간다. 어린 은자가 현관으로 나오는 금동 오빠를 기다리는 사이, 처음 보는 잘생긴 6학년 오빠가 어린 은자에게 다가와 우산을 빌려 달라고 한다. 그는 교문 앞 문방구 뒷집에 산다며, 금방 우산을 돌려주겠다고 한다. 은자는 그 말을 듣고 잠시 갈등한다. 우산을 빌려줄 것인지 말 것인지를 생각하다가 결국 은자는 우산을 그 오빠에게 내민다. 그 오빠가 우산을 들고 사라진 후 은자 앞에 금동 오빠가 나타난다. 사정 얘기를 들은 금동이는 모르는 사람에게 우산을 빌려주었다며 타박하지만, 은자랑 함께 6학년 남학생을 기다린다. 그렇지만, 6학년 남학생은 계속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금동은 우산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자며 동생에게 이제 집으로 가자고 말한다. 하지만, 은자는 그 오빠를 믿고 계속 기다리겠다고 한다. 금동에게는 짧은 경험이 있었지만, 낭만이 없었고, 은자는 뭘 모르는 것 같았지만, 믿는 촉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빌려준 우산을 혼자서 기다리는 동안 5학년 여학생 두 명이 나타나고, 은자는 그들과 함께 신나게 고무줄놀이를 한다. 옛날에는 이렇게 서로 어울려서 잘 놀았다. 그러나 요즘 어린이들은 고무줄놀이를 거의 하지 않는다. 세 어린이는 골목에서 어린이들이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놀았던 그 놀이를 마치 서커스처럼 보여준다. 이제 두 어린이가 떠나고 혼자 남은 은자를 수위아저씨가 발견하는데, 은자에게 어서 집으로 가라고 말씀하신다. 이 장면과 함께 강아지도 등장해서 웃음을 유발하는 예쁜 장면을 보여주지만, 은자는 강아지를 무서워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 금동이가 은자를 위해 우산을 들고 다시 나타나고, 마침내 은자는 친오빠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그날 쓴 은자의 일기에 의하면, 은자는 빌려준 우산을 결국 돌려받지 못했다. 그런데 1막 마지막 장면을 보면, 수위아저씨가 현관 처마 근처에 놓여 있는 우산을 발견한 후 그것을 들고 퇴장한다. 이 장면을 통해 상상해 보자면, 6학년 그 오빠는 은자가 집으로 돌아간 후 빌려 간 우산을 돌려주려고 그 현관으로 왔다가 거기에 그것을 놓고 간 것이었다. 금동의 경험이 아니라, 은자의 촉이 맞은 것이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반전, 그리고 낭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상은 희곡 <엄브렐러>의 주요 내용이다.

 

사진제공: 극단 몽중자각

 

동화와 현실 사이에서 길찾기

이 공연 2막의 희곡은 <엄브렐러, 그 후>이다. 같은 장소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면서도, 시간적 배경은 1막으로부터 20년이 지난 후, 1998년, 초등학교 총동창회 하루 전이다. 5학년이 12살이었던 어린이들은 32살이 되었고, 은자는 29세였다. 서른두 살인 은자 오빠, 금동은 아직 미혼으로 환경운동을 하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은자는 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는 아이가 있는 학부모였으며, 우체국 9급 공무원이었다. 아이 1의 이름은 박영서였는데, 미혼 여성이었고, 서울에서 7급 공무원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아이 2 오미영은 박영서와 절친이었는데, 이십 대에 서울에 갔지만, 이혼 후 고향으로 돌아와 노래방을 하고 있었다. 아이 3의 이름은 최상렬이었고, 그의 아버지가 땅 투기에 성공하여 그 후광으로 초등학교 총동창회장을 하는 등 돈과 권력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상렬이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결혼하였고, 지금은 초등학교 5학년과 3학년 두 자녀가 있다. 그리고 1막에서 강아지 역할을 했던 인물은 2막에서 문쫑으로 등장하는데, 아버지를 이어 문방구 가게를 운영하며, 본명은 문종훈이다. 은자의 남편 신 서방은 33살이며, 은자에게 우산을 빌렸던 바로 그 오빠였다. 수위아저씨는 65살인데, 이 학교에서만 40년을 근무하셔서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많은 일을 기억하고 있는 산증인이었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저마다 서사가 있었고, 관객에 따라 마음이 가는 인물이 서로 다를 수 있겠다 싶었다.

2막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두 인물은 금동이와 상렬이었다. 금동은 초등학교가 폐교되는 것을 막고, 봉골늪을 생태공원으로 만들어 보존하자는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이나 마을 사람들 서명을 받아서 개발 중지 소송을 하려고 했다. 반면 상렬은 아버지와 함께 폐교 부지 등을 인수하여 개발 이익을 얻으려고 했다. 그래서 상렬이는 동창들 앞에서 ‘암 덩어리’라는 혐오 발언을 하면서 개발을 반대하는 금동을 공격한다. 개발과 보존이라는 오래된 가치 갈등 상황을 전제로 다투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대립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참고로 ‘최상렬’ 인물 작명에서 1998년과 약 30년 후인 2025년 현재가 연결되는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최상목+윤석열’ 이런 중심 갈등을 둘러싸고 아기자기한 서사들이 함께 전개되어 관람하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가령, 은자는 1막에서 처음 마주쳤던 잘생긴 6학년 그 오빠와 결혼하였는데, 우산이 맺어준 인연 덕분이었다. 그 오빠는 지금 백수이지만, 당구를 잘 쳤다. 그래서 당구 게임으로 용돈을 벌고 있어 한심해 보였지만, 마음이 착해서 은자와 사이는 좋았다. 공연 중에 은자가 그 오빠와 결혼하기 위해서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부터 그 오빠를 따라다닌 사연이 밝혀지는데,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아이 1 박영서와 아이 2 오미영은 서로 남편들까지 얽힌 불륜 사건이 일어나서 이혼하였다는데, 두 사람의 주장이 달라 누구 말이 맞는지 알 수 없었다. 이렇듯 아름다운 결혼 생활을 하는 부부도 등장하고, 막장 불륜으로 이혼한 친구도 나오기에 우리가 사는 모습 가운데 연애사를 핍진하게 보여주는 것 같았다.

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문방구 가게를 운영하는 문쫑의 모습이었는데, 매우 낭만적으로 그려졌다. 상렬이가 말하길, 만약 초등학교가 문을 닫고, 이 지역이 개발된다면, 문방구 가게도 거기에 포함되기에, 문종훈 집은 대박이 난다고 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문쫑은 보상금을 많이 받게 되어 경제적으로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는 금동이가 내민 개발 반대 서명지에 사인을 하겠다고 한다. 내 이익이 아니라 내 친구가 하는 일이기에 그렇게 한다고 했다. 현실 속에서 문쫑처럼 행동하는 게 쉽지 않기에 개연성이 높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를 보면서 동화에서 느끼는 환상성과 함께 묘한 아름다움, 숭고미 같은 게 느껴졌다. 현실 속에서도 돈보다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든 것 같다. 최근 윤성렬 탄핵 선고를 한 헌재 문형배 재판관과 함께 크게 회자하는 인물로 ‘김장하’ 선생이 있는데, 돈보다 사람을 중시한 분이다. 문쫑에게서 그와 비슷한 미감을 감각할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이 공연의 1막에서는 초등학생들의 귀엽고 순수한 모습이 중심이었고, 2막에서는 20년 후 달라진 모습에 초점들 두었다. 작가는 이렇듯 초등학생 시절 어린이들이 겪은 일과 그들이 어른이 되어 갈등하는 일을 대조함으로써 같으면서도 다른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어 관객의 마음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다. 필자는 은자 부부와 문쫑을 보면서, 인생에서 소중한 것은 아름다운 인연이며, 이를 발견하고, 잘 가꾸는 게 무엇보다 가치 있는 일이라는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과 치열한 현실의 차이를 감각하면서도 여전히 순수함을 간직한 사람들을 통해 봄날 아지랑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비 오는 날이나 우산을 보면 <엄브렐러, 그 후>, 바로 이 작품이 생각날 것 같다.

 

사진제공: 극단 몽중자각

 

선욱현 작가의 등단 30주년

이 공연은 선욱현 작가가 등단한 30주년을 축하하는 파티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작품의 희곡을 쓴 선욱현에 관해 알아보고자 한다. 그는 극작가이며 배우이고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다. 1995년 문화일보 하계문예 단막희곡 <중독자들>이 당선되며 등단했고, 창작마을 희곡문학상, 한국희곡 신인문학상, 대산창작기금 등을 받았으며, 2018년에는 <대한민국 극작가상>을 수상했다. 사단법인 한국극작가협회 이사장, 재단법인 강원도립극단 초대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춘천인형극제 예술감독으로 재직했다.

1998년에는 선욱현 작가가 창작한 단막 <절대사절>이 도서출판 창작마을에서 펴낸 희곡뱅크 창간호에 수록되었다. 그 후 2000년에 <양파>가 도서출판 창작마을에 수록되었고, 한국극작워크샵 8기 희곡집에 <악몽>이 실렸다. 그리고 한국연극협회가 펴낸 집문당 출판사의 <2001 한국대표희곡선>에 <고추말리기>가 수록되었다. 그가 발표한 주요 작품으로는 연극 <돌아온다>, <의자는 잘못 없다>, <절대사절>, <황야의 물고기>가 있다. 인형극/오브제/야외극 작품으로는 <물싸움 _ 너무 오래된 전쟁>, <오리대왕>, <파롱이>가 있다.

선욱현의 희곡이 실린 주요 도서를 연도별로 살펴보면, 2003년 선욱현 희곡집 1 <피카소 돈년 두보>이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을 통해 선보였고, 2005년 <문학시간에 희곡 읽기1>가 도서출판 나라말에서 출간되었으며, 여기에 <의자는 잘못 없다>가 수록되었다. 2008년 선욱현 희곡집 2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 2011년 선욱현 희곡집 3 <해를 쏜 소년>, 2015년 선욱현 희곡집 4 <돌아온다>, 2023년엔 선욱현 희곡집 5 <아버지 이가 하얗다>를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에서 출간하였다. 이 책에 이번 공연의 1막 희곡 <엄브렐러>와 2막 희곡 <엄브렐러, 그 후>가 실려 있다. 2019년엔 희곡 <허난설헌>은 한국극작가협회에서 펴내는 명작희곡선 시리즈로서 도서출판 평민사에서 단행본으로 나왔다. 2020년 <카모마일과 비빔면>이 창작 2인극 선집 2에 실렸는데, 월드2인극페스티벌 20주년 기념집이었으며, 지만지 출판사에서 출간하였다. 2023년에는 평민사에서 <한국단막극 1>을 펴냈는데, 거기에 우산(엄브렐러)이 수록되었고, 이 책은 한국과 러시아어판 합본이다. 선욱현 작가는 이제 작가 인생 30년이 되어, 1막을 끝낸 것 같았는데, 작가 인생에서 2막, 3막 등에서는 어떤 작품을 보여줄지 기대하며, 응원하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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