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성북동비둘기 <걸리버스 2>

글_황승경(연극평론가)

 

포스트드라마 연극을 이끄는 성북동비둘기의 신작이 공연되어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해체되고 재구축된 ‘탈’드라마적 성북동비둘기의 서사는 문학적 텍스트의 극적 필연성에서 탈피한 시청각적 공감각에 기반해 탈위계적, 탈중심적으로 각색되었다. 참신함과 난해함 사이를 오고가던 성북동 비둘기는 2022년 초연한 <걸리버스>에 이은 <걸리버스 2(창안·연출 김현탁>를 2025년 3월 14~23일 동안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 올렸다.

<걸리버스> 시리즈의 원작은 1726년에 런던에서 출간된 아일랜드 출신의 정치가이자 성직자인 조나단 스위프트(1667-1745)의 ‘걸리버 여행기’이다. 외과 의사이자 선장인 주인공 르뮤엘 걸리버(Lemuel Gulliver)가 네 차례에 걸쳐 경험한 상상 속 미지의 나라(소인국, 거인국, 학자들의 나라, 말(馬)의 나라)로의 여정을 1~4부로 담고 있다.

 

사진 제공: 성북동비둘기

 

걸리버 여행기는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세계명작동화책이 아니다. 단순하고 간결한 문체로 인해 오해하기 쉽지만 매끈하고 평이한 의미 이면의 작가 스위프트의 가열찬 아이러니와 역설을 포착해 내야한다. 1908년 11월 최남선이 전체 4부 중 2부에 해당하는 ‘거인국이야기’ 부분을 잡지 ‘소년’에 한글(조선어)로 처음 번역한 이래 일제 강점기엔 고장환, 이은상, 박유옥, 장승두 등의 문인들이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1부와 2부를 중심으로 번역해 출판했다. 해방 후 몇몇 영문학자들에 의해 1~4부까지 번역이 되었지만 이후 1992년에 이르러서야 신현철이 무삭제 완연한 완연본을 완성했다. 혹자는 3~4부를 정치적 검열 때문에 출판을 못했다고 단언하지만 해방이후 20세기에 출판된 <걸리버 여행기> 번역본은 이미 소인국과 거인국이라는 흥미로운 1~2부 스토리에 고착된 독자들을 이끌어 내기에는 원작의 맥락과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고 어색한 번역과 오역이 다분했기 때문이라 사료된다. 작가는 인간의 비극적인 불완전성으로 인한 개인적, 사회적 사악함과 부조리의 총화에 대한 심한 분개심을 강하게 표출하지만 희극적인 걸출한 공상소설의 등장인물들 속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숨기고 있다.

 

사진 제공: 성북동비둘기

 

<걸리버스 2>는 <걸리버 여행기>의 2부에 해당하는 거인국이야기를 첨단화 사회에 반추해 현상 이면의 진상을 조망한다. 연출 김현탁은 서사의 평면구조에서 탈피해 모순과 아이러니를 표출하고, 연극적 디테일을 보다 치밀하게 전개해 포스트드라마를 기교적인 산물에 그치지 않도록 구현한다. 무대 위 독특한 기호 속 물상은 저마다 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만화 <개구쟁이 스머프>, 오페라 <파우스트>,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 <베르사이유의 장미>,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의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소품이 되어 연극적 풍자 원형으로 완결된 하나의 그림이 완성된다. 그리는 과정에서 극은 인간의 이중성과 양면성을 철학적 대명제로 두고 철저하게 근원을 파헤친다. <걸리버스 2>는 지극히 실증적 방법으로  원작가가 의도한 ‘낯선 방식’을 흐트리지 않으려는 문학논법을 무대화 시킨다. 이는 혁명적 연극보다는 정서 환기로서의 연극 방법이고, 비루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관객에게 용기와 자각적 통찰을 선사한다.

 

사진 제공: 성북동비둘기

 

김현탁의 풍자 속에서 함축된 세상의 불충분함은 형이상학적으로 대립하고 문제의식을 논구해 보편적 사숙으로 자리매김한다. 강대국에 억압받는 식민지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작가는 영국이라는 한나라를 초월한 전체 인간 본성에 대한 신랄한 비판 속에서 작품의 전체적인 흐름을 점검한다. 연극도 공식적 질서와 비공식적 질서 사이의 간극을 허물고 만화적, 우화적 또는 정치적으로 스위프트의 제국주의적 자아가 타자로서의 원주민을 바라보게 만든다. 다만 이민족들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배우고 인격적으로 성장하는 원작의 걸리버를 찾을 수 없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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