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오세곤(극단 노을 예술감독)
- 공공 극장의 정상화
극장의 중심은 예술가들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공공 극장(문예회관, 예술의 전당 등)에는 예술가가 없다. 극히 일부 극장에 전속 단체가 있지만 예술가들은 거의 임시직이나 비정규직으로 불안한 상태로 존재감이 미미하다. 전국에 250여 개나 되는 문예회관에서 1년에 약 7천 5백억 원 정도의 예산을 쓰고 있지만 그 중 예술 창작 내지 예술가들을 위해 쓰이는 예산은 극히 일부분이다. 참고로 독일의 예를 들자면 예술직과 기술직, 행정직의 비율이 42:42:16이며 예산은 4조 5천억 원에 이른다.
전국에 공공 극장이 건립된 것은 그만큼 수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수요는 극장 건물이 아닌 그것을 채우는 작품으로 충족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공공 극장들의 작품 수급 현황을 보면 양적으로 턱없이 부족한 것은 물론, 방식에 있어서도 제작비에 훨씬 못 미치는 저가 구입, 하청, 재하청, 제작비 일부에 대한 보조금 지원 등 공연예술계를 왜곡하는 방식으로 일관하고 있다.
심지어 정부 예산으로 진행되는 방방곡곡 사업마저도 최종 선택권을 문예회관 기획자에게 부여함으로써 스타 출연 등으로 이미 지명도를 확보한 작품에만 쏠리는 이른바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서울 예술의 전당처럼 상업적 성공을 겨냥한 기획으로 소위 재정자립도를 높이는 데에만 진력하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공공 극장에 대한 전면적인 쇄신이 필요하다. 그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작품 수급 방법이며, 또 하나는 업무 구성일 텐데, 수급방법은 전속단체를 두는 것부터 상주단체, 대관, 초청 등이 있을 것이고, 주된 업무는 공연 단체와 작품에 대한 기술지원과 기획지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공공 극장에는 우선 전속단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민간단체를 상주단체로 두는 것도 필요하다. 현재 시행되는 상주단체 제도는 대폭 손질이 필요하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극장은 상주단체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로 거리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 외 일반 민간단체 대관도 아직은 소극적인데 역시 개선이 필요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공공 극장은 전속단체는 물론 상주단체나 대관단체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지원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지원은 당연하고 기획, 홍보, 마케팅 등 민간단체들이 취약한 부분을 적극 지원하여 공연이 성공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공공 극장 소속 인력의 주된 업무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내용의 쇄신안을 마련하는 데 있어 각별히 유의할 점이 있다. 바로 각 지역의 상황을 면밀히 살피지 않고 천편일률적인 방향 설정으로 오히려 민간 공연계를 위축시킬 위험을 피해야 한다. 예를 들어 무리한 전속단체 설립은 자칫 그 지역의 공연계를 공동화할 우려가 있으므로 만약 우수한 민간단체가 있다면 그 단체를 전속단체로 지정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에 있어 과거 국립극단 출범 당시 극단 신협을 국립극단 전속극단으로 지정하여 운영했던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어쨌든 각 지역의 사정에 맞는 방향으로 공공 극장을 쇄신하기 위한 세밀한 실행 계획이 수립되어야 할 텐데 아래는 그것을 위한 일종의 예시로서 이것들을 절중한 또 다른 방법도 가능한 것은 물론이다.
<공공 극장 작품 수급의 방식>
-전속단체, 상주단체, 대관, 초청 + 공연단체에 대한 기술지원, 기획지원
-상주단체, 대관, 초청 + 공연단체에 대한 기술지원, 기획지원
-대관, 초청 + 공연단체에 대한 기술지원, 기획지원
-기타(전속단체 전용, 상주단체 전용, 대관 전용, 초청 전용 등등)
*전속단체는 국·공립 공연단체를 설립하거나 또는 기존 민간단체(단수 또는 복수)를 지정할 수도 있어야 함
*상주단체와 대관단체는 민간단체
*초청 또는 공적 구매는 합리적 조달 가격에 의한 작품 구입을 전제로 하되 수입 배분을 기준으로 공동 기획도 가능
*공공 극장의 초청 또는 공적 구매는 단체와 작품에 상한제를 적용하여 편중 현상 방지
<국·공립 극단 설립 실행 계획(안)>
–중앙정부–
단기: 제2 국립극단 중기: 권역별 국립극단 장기: 모든 광역시도에 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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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시·도–
시·도립극단 없는 곳은 설립, 있는 곳 중 광역도는 추가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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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 지자체–
시·군·구립극단 없는 곳은 설립(단 지역 사정에 따라 민간 극단이 활발할 경우 시·군·구립 설립 않고 운영 지원할 수도) |
- 공연지원센터 설립
연극 분야에는 동인제 개념의 작고 영세한 극단들이 많다. 이러한 단체들은 가지고 있는 역량을 오로지 작품 만들기에 모두 투입할 뿐 그 이상의 여력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애써 작품을 만들어 놓고도 기획 역량이 딸려 홍보나 모객에 실패하는 경우도 많고 기술적으로 도움을 받지 못해 다양한 시도를 포기하고 거의 배우의 연기력만으로 작품을 끌어나가는 경우도 많다.
결국 대부분의 민간 극단에 특히 아쉬운 것은 기획 역량일 것이고, 다음은 기술 역량일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민간 극단들을 지원할 조직이나 기능은 꼭 필요하다. 아울러 지역 교류 활성화를 위하여 숙박이 가능한 레지던시 시설, 한 번 쓰고 바로 폐기할 수밖에 없는 무대 물품을 보관할 수 있는 시설, 나아가 정보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연극박물관 및 연극 도서관, 연극인 재교육을 위한 연수원, 일반인 연극 교육을 지원할 연극교육지원센터 등을 함께 결합하여 운영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공연지원센터 내용 및 기능 구성(안)>
-공연기획지원단
-무대기술지원단
-무대 물품 보관소(무대장치, 대도구, 소품, 의상 등의 보관 및 대여, 제작 장소 등 편의 제공)
-숙박 가능한 연극인회관
-연극인 재교육을 위한 연수원
-연극교육지원센터: 학교와 복지기관 등에서 일반인 대상 연극 교육을 펼치는 예술강사는 물론, 지역에서 주민 동아리 활동 등을 지원하는 연고 극단들이 활용할 수 있는 교재, 교보재, 교수·학습방법 등을 제공
-연극박물관, 연극 도서관: 가능하면 연극자료실 내지 연극기록관 및 연극 정보 은행 기능을 겸하도록 하는 것이 좋은데 정보 은행은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서 필요한 그런 정보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컨설팅까지 가능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함
*지자체 내 유휴 공간 활용 가능
*지역이 넓은 광역도의 경우 권역별로 설립 운영이 바람직, 가능하면 시군구 단위까지 고려
*지역 문화재단 안에 이러한 조직을 두는 것도 고려
*지역 내 국공립 극장의 역할을 확장하는 것도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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