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단 손수 <불의 고리>

글_김충일(연극 평론가)

 

인간은 자연이 부여한 생명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며, 존재에 대한 질문이나 삶의 방식에 대한 끝임 없는 의문을 던진다는 함의(含意)적 유기체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극적 공연 활동을 통해 생의 정답을 모두 찾을 수는 없겠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에 대한 의미, 인간과 자연, 삼라만상과의 관계, 또 일상의 구체적인 삶을 구성하는 요건들에 어떻게 진정성을 부여할 것인가를 문제 삼는 의심 심장한 활동은 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연극은 우리가 깊은 사색을 할 수 있는 추동(推動)적 공간인 무대에 자리 잡도록 이끄는 삶의 안테나 같은 구실을 한다.

꽃향기가 유난스럽게 잦은 비·바람에 시새움 받으며 아직 다 오지 않은 여름을 기다리던 날 밤(5월 23일). 지역예술단체들의 참여 기회를 넓히고, 장르의 다양화를 통해 대전 시민들에게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하고자 하는 취지를 담아 예당이 기획한 ‘2025 시그니처 대전’ 두 번째 시리즈. 2022년 제14회 대전창작희곡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작으로, 작년(2024.12.19.~12.22, 별별마당 우금치 관용극장) 초연을 펼쳤던 연극 <불의 고리(Ring of Fire) 이성호 작, 윤민훈 연출>를 앙상블 홀에서 만났다.

 

사진 제공: 극단 손수

 

관극의 첫 시선이 ‘불의 고리’에서 멈춘다. 연극의 제목은 작품의 정보를 전달하고 관객의 흥미를 유발시키는 장치이지만, 때로는 일차적인 정보를 넘어 작품의 심층적인 의미와 주제를 암시하는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게다가 관객에게 은유적 사유의 단초를 제공하면서 총체적 작품이해의 디딤돌로 작용하기도 한다. 특히 이 작품의 제목은 ‘환태평양 조산대’라는 지질학적 특징의 은유적 의미작업을 통해 스토리텔링을 이끌고 가는 힘과 변화에 대한 사회적 현상을 탐구하는 내러티브의 배경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환태평양 불의 고리(화산대)는 태평양 분지를 돌며 지각판의 움직임이 지반의 균열을 낳고 화산 활동과 지진(흔들림)을 통한 파괴와 재생의 순환을 반영한다. 이에 부응하여 작가와 연출가는 사회현상에 존재하는 ‘사회적 역학관계가 빚어내는 심리적 균열’의 현장에 유비적 성찰의 촉수를 들이댄다. 하여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문제로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크고 작은 사고들과 징조’를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지대인 불의 고리’에 빗대어, 연극 <불의 고리>를 관극한 관객들에게 경각심과 더불어 무관심한 사회구성원은 아니었는지 물음을 던진다.

이 작품은 지각판(地殼版)의 흔들림의 양태와 형상이 다른 것처럼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균열(흔들림)의 현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주목하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지금, 작지만 치명적인 흔들림 위에 살고 있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작고도 치명적인 사고들은 일어난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감춰진 사회 구조의 민낯과 인간의 본질을 다룬 4개의 에피소드는 이렇게 전개 된다.

 

사진 제공: 극단 손수

 

제 1장(거믄 노다지)은 카지노에 모여든 인간군(人間群) 속에 자신의 딸이 위독하며 교통비를 빌리려 하는 老신사의 이야기가, 제 2장(침입자)에는 마침내 온갖 수모와 무시를 당하며 모은 돈으로 마지막 대출금을 갚고 내 집 마련의 꿈이 이루어지는 날, 이른 아침에 들이닥친 부동산 중개인과 부부(연상녀와 연하남)과의 옥신각신하는 이야기가, 제 3장(여인의 초상)에서는 결혼식을 하루 앞둔 女검시관과 어쭙잖은 추리와 감정이입에 익숙한 男검시관 사이의 대화 속에서 부검하는 시신이 옛 연인의 어머니임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가, 제 4장(노리터) 속에는 길고양이들이 먹어야 할 공동사료가 없어지자 서로를 의심하고 최근에 나타난 미혼猫를 주목하게 되고 미혼묘가 자신의 품에 꼭 숨기고 다녔던 것의 정체를 밝히는 이야기가 들어있다.

‘불의 고리(Ring of Fire)’ 각 장의 에피소드는 현재 자신이 직접 피부로 느끼지 못 했지만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도박, 내 집 마련, 데이트폭력, 미혼모)이다. 이런 사건들은 우리 삶 속에서 수많은 징조와 작은 사고들이 존재했었고 이는 마치 하인리히의 법칙(한 번의 큰 사고가 일어나기 이전에 수십 번의 경미한 사고와 수백 번의 징후가 반드시 나타남)을 떠오르게 한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인물들의 부조리한 대화, 부자연스러운 말과 행동 패턴, 어처구니없는 상황으로 구성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관극을 마치고 극장을 나오면서 4개의 에피소드 속의 이야기와 그것을 지켜내고 있는 중심은 각기 다르지만, 이 극은 진실이 “무엇(What)”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이라는 것이 “어떻게(How)”이야기되는가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하여 이 작품은 4개의 에피소드가 발하고자 하는 사회·심리적 발언을 던진 후 일상의 희·비극적 디테일한 사건들을 ‘웃음·울음’으로 마무리 지은 창발적 연출법, 즉 각 에피소드를 무겁게 보이면서도 가볍지 않게, 누군가의 경험, 누군가의 삶, 누군가의 실제 이야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섬세하면서도 절도 있게 배치하여 이어지듯 이어지지 않듯 흘러가는 극적흐름으로 90분을 잊게 해주었다. 게다가 각 장의 무대 연출은 모든 에피소드를 아우를 수 있는 ‘불명확함의 명확’한 분위기를 풍기는 무대나 배우들의 신분을 확연히 드러내는 의상과 특이한 소품 등은 볼거리를 충분히 제공했고 극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사진 제공: 극단 손수

 

하지만 4개의 에피소드에 겹치는 연기(1인 다역)를 아끼지 않은 배우(백비송, 김용우, 장지영, 강지구, 이성희, 김도윤, 이상혁, 지민기, 문혜인, 김태현, 송혜지)들에게 ‘무대 언어’에 대한 보탬의 물음을 묻고 싶다. 각 에피소드 속 특정한 정황과 맥락, 몸의 체취가 묻어나는 각 배우들의 처지와 개성을 중시하지만, 그 만큼 개인주의적인 함정에 빠지기도 쉽다는 물음이다. 더군다나, 소극장이 아닌 중극장에서의 연기는 고단한 훈련(연습) 속에서 구해진 ‘나름의 연극 문법’은 숨어들면서 실천적이고 간절한 연대감 속에서 솟아나는 ‘상생의 연극문법’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충실한 응답이 되어야 비로소 ‘개인주의적인 연극 문법’을 훌쩍 뛰어 넘어 ‘앙상블의 연극 문법’으로 자리매김 할 것이다.

다만 이 <불의 고리>가 사회적 균열의 구체적 현장을 보여주는데 충실하다가 ‘촘촘하고 열린 성찰의 공간’으로 나아가는 지점을 놓치지 않았는지, 에피소드를 전개하기 위한 입구는 바른 위치에 있었으나 출구에서는 의문의 어리둥절함으로 흘러가지는 않았는지, 때론 재미있고 의미심장한 캐릭터가 ‘과녁을 잃어버린 화살’이 되어버리지는 않았는지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즉 인물들 사이의 사건과 갈등 그리고 그 결말로 이어지는 일련의 ‘극적 운동의 총체성’이 너무 쉽게 드러남으로써 관객에게 ‘사유의 여유’를 빼앗기지는 않았는지 윤민훈 연출에게 묻고 싶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이성호(1975~2024) 작가의 “눈에 보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 맺음으로 이어져 있는 오늘, 나의 삶이 조금이라도 변하길 바라며,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잠드는 것처럼,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이 특별한 순간이 되는, 그리하여 인식의 변화, 혹은 전환점이 되는 지점을 담담하게 그려보려 한다. 열심히 돌고 있는 지구 위에서 삶의 흔들림에 불안해하는 모든 이들에게 바친다.”는 작가의 말이 새삼스럽고 새롭게 살아난다.

한 편의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선 ‘무언가 말할 게 필요하다. 테크닉이 필요하다. 그리고 열정이 필요하다’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에 애쓴 출연진과 제작진, 예당의 문화관계자 마지막으로 중 극장 앙상블 홀에 함께한 관람객들과 “예술은 마지막 숨을 다 쓰고 난 뒤에 오는 산소”란 말을 되새김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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