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Story Lab 쓰리랑카타이거 <어금니>

글_조훈성 (연극평론가)

 

노동절, Story Lab 쓰리랑카타이거1)의 <어금니>가 대전 ‘드림아트홀’에서 공연되었다. 오래간만에 르포 형식의 노동극 작품이 무대화되었다. 이 작품은 2021년 대전문화재단 차세대아티스트 지원사업 일환으로 제28회 전태일문학상 소설부문 수상작인 「어금니」를 극화해 ‘아신극장2관’에서 낭독극 형식으로 선보였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 올려지는 <어금니>는 본격적으로 무대화 작업을 통해 올려지는 초연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포스터에 “저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물입니다. 저는 도구며 기계입니다.”라는 세로줄 문구를 삽입되어 있었는데, 원작 소설이 비닐공장 생산직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산업재해를 전면에 다룬 작품으로서 그 소재성을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있어서 주목되었던 작품이었다. 이번 작품의 원작자이자 연출자인 이정수 작가는 ‘노동’을 주제로 한 것뿐만 아니라 배태된 사회적 약자를 소재로 해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작품화하고 있으며 은폐된 세계 이면의 실상을 고발하고 인간성의 부조리를 담아내는 특징이 있다. 지역 신진 작‧연출자로서 보기 드물게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한 예리한 포착과 인식으로 작품에 동시대적 화자의 발견을 꾸준히 지속해오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작품에 대해 자못 기대한 바가 없지 않았다.

 

사진 제공: Story Lab 쓰리랑카타이거

 

연극 <어금니>는 원작소설 「어금니」의 전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차이를 둔 게 있다면, 극 초입부터 산재사고 관련 뉴스가 이어지고, 이름 없는 등장인물 A, B, C 가 등장해 산재사고 사례와 산재 사망‧부상자 통계를 발화하는 것으로 프롤로그 장면을 넣는데 이러한 르포 형식을 통해 이어질 극적상황의 진실성을 획득하고, 산업재해에 대한 문제의식을 부각시키는 효과를 얻고자 한다. 그리고 표면적 산업재해 피해자 리서치 통계 보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비닐공장의 생산직 노동자의 재해 사례를 소재화하면서 다큐멘터리 연극이 갖는 현장성을 관객에게 생생하게 전달해낸다. 연극은 열악한 산업 환경과 사고 은폐, 또 생산조직의 위계화에 따른 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작품에서 참신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점은 기존 노동극이 산업재해 피해자, 즉 당사자적 목소리 들려주기에 집중되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이러한 피해자에 비껴서 그 현장의 주변인의 시선을 통해, 재해현장을 가까이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이다. 비극적 산업재해 현장보다 더 비극적 장면은 바로 재해 직후의 현장을 보여주면서 피해 노동자의 빈자리를 대체 노동자가 현장에 바로 다시 투입되는 장면이다. 이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저항의식의 발현이 아닌 당연하지 않은 것을 묵인하고 기계적 시스템에 순응해가는 인간성 상실을 날카롭게 형상화내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사진 제공: Story Lab 쓰리랑카타이거

 

작품 제목이기도 한 ‘어금니’의 상징성이 꽤 크다. 극중 화자인 ‘나’는 반복된 공장일로 팔이 아프지만 쉬거나 치료할 틈이 없어, 고통을 참기 위해 ‘어금니’를 꽉 물어야 하고, 존재를 위해서 ‘어금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는 ‘어금니’의 의미를 선명하게 한다. 그것은 바로 신자유주의의 완전 시장화 속에서 ‘사물화’된 인간의 위기를 환기하면서, “쉬면 버려지고, 버려지면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다.”라고 말한 것처럼 갈수록 첨예화되고 있는 사회양극화 문제까지 확장해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극중 사라진 동료들의 빈자리에 대한 희미한 존재 인식에 대해서도 작품은 냉정한 시선에서 이를 사실적으로 무겁게 그려내고 있다. 연극은 특히 열악한 대체 가능한 노동 현장의 무기력하고 회의적인 정서를 생생하게 감각적으로 연출해내고 있다. 이는 무명의 A, B, C 인물이 무대에서 규격화된 사각의 틀 안에서 반복적 행위와 거듭된 위치 변환, 교체라는 연출적 장치에서도 확인된다. 극중 ‘작업반장’의 지시로 옆 공장으로 옮겨가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는 장면은 파견근로와 같은 노동유연화의 부정적 단면을 간명하게 보여준다. 또한 ‘프레스기’ 작업에 서툰 ‘나’는 동료 ‘한씨 아저씨’의 배려로 새 업무 작업에 익숙해지나 결국 어느 날, 느린 작업 속도 탓에 자동화된 프레스기를 수동을 바꿔 작동시키다 사고가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옆에서 일하던 동료가 이 사고로 인해 순식간에 사라지고 바로 그 자리에 새로운 작업자가 배치되는 것에 극중 화자는 죄책감을 갖지만 주인공은 어금니를 물고 다시 생산라인 앞에 선다는 게 극의 전반적 줄거리다. 그렇다면 바로 이 ‘어금니’의 상징은 ‘억누른 고통’이자 ‘억누른 분노’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진 제공: Story Lab 쓰리랑카타이거

 

르포연극(Reportage Theater)으로서 <어금니>는 단순히 산재 사실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비닐공장’노동자라는 극적인 구성을 더해 관객에게 현 노동현장의 산업재해 문제를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한다. 자동화된 생산라인과 유연화된 노동현실에서의 주인공의 새 공장 라인으로 배치되는 장면이나, 작품 후반부 사고 후 빈자리가 대체되는 과정 등을 더 쌓아서 점차 소외, 사물화되고 ‘노동자’의 이야기를 보다 깊이 있게 채우면 좋을 것 같다. 등장인물 세 배우의 호흡이 좋아, 다소 무거울 수밖에 없는 극의 분위기를 쳐지지 않게 긴장감을 잘 유지해가고, 각 캐릭터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해낸다. ‘산재’와 같은 불편하고 민감한 사회문제를 다룬 ‘노동극’ 제작은 특히 지역소극장의 흥행을 기대하기 어렵다. 일반 연극의 재미 요소나 극적 완성도에서 다소 미흡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제작 지원, 재원 마련이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무대화를 통한 원작 소설의 재구성, 각색의 과정을 거쳐 초연한 이번 <어금니>는 그간 잘 다루어지지 않은 산재에 대한 소재를 작품화하면서 모처럼 작가의 오늘의 ‘문제의식’이 강하게 반영돼 있고, 기존 노동극의 접근과 다른 새로운 시선을 볼 수 있어 충분히 의미를 둘만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연극의 목소리가 그만큼 진정성 있게 와 닿았다는 것은 노동현장에 대한 리서치, 취재를 통한 현장성 체득의 성과를 말해준다. 이에 한발 더 작품 메시지의 공감과 차별 노동자에 대한 연대 가능케 하는 건 작가의 실제 경험을 작품에 잘 담아냈다는 데 있을 것이다.

 

“(발을 구르며) 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사물입니다. 나는 도구이며 기계입니다.”

프레스소리처럼 작업노동자의 발 구름 소리가 무대 바닥을 쿵쿵쿵 찧을 때마다 심장 박동도 세어진다. 극 후반부 ‘A’의 대사를 덧붙인다. 어금니를 세게 물면서.

 

A

반장님은 새로 배치된 사람에게 작업하는 모습을 몇 번 보여주더니 자리를 벗어났습니다. 새로 온 사람은 어정쩡하게 서서 프레스 일을 시작했습니다. 프레스 뚜껑이 닫히고 비닐이 레일을 타고 제 앞에 섰습니다. (사이) 비닐의 가장자리에 희미하게 빨간 것이 보였습니다. 그 비닐을 걷어내 버렸습니다. (사이) 다음 비닐의 가장자리에도 빨간 것이 보였습니다. 다음 비닐도, 그 다음 비닐도. 빨간 것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비닐을 걷어냈습니다. (사이) 다섯 장쯤 버렸을까. 더는 빨간 것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정상적으로 그것들을 반듯하게 쌓기 시작했습니다. (울먹이며 어금니를 세게 물고는) 기계처럼.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사이) 팔이 아팠습니다. 아니. (울음을 참으며) 팔이 아프지 않습니다.

 


1) 극단 ‘Story Lab 쓰리랑카타이거’는 대전문화재단의 청년예술인 지원사업인 ‘차세대artiStar’로 선정된 이정수(2021년 극작 선정), 최한솔(2023년, 연출 선정)이 결성한 극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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