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15)

글_임야비(tristan-1@daum.net)

소설가, 연출가(총체극단 ‘여집합’), 클래식 연주회 기획가

 

 

 한 명이 연주하는 파우스트부터 일이백 명이 연주하는 파우스트까지 연재하다 보니 중간에 누락된 작품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2022년 4월과 5월 그리고 2024년 1월부터 2025년 4월까지 부록이라는 형식으로 놓친 작품들을 정리했다. 

 마지막 등반일 일이백 명이 연주하는 파우스트’ 서너 편과 정상 정복인 천 명이 연주하는 파우스트까지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최후의 캠프를 정리하면서 놓친 것은 없는지, 두고 가는 것은 없는지 꼼꼼히 확인하면서 길고 길었던 부록’ 편을 2회에 걸쳐 마무리하려 한다. 

 

 

[1] 멘델스존 남매의 소곡들

 

파우스트와 관련해 남동생 펠릭스 멘델스존은 1825년에 현악 8중주(TTIS 2021.11월호)와 1832년에 칸타타 첫 번째 발푸르기스의 밤(TTIS 2023.2월호)을 작곡했고, 네 살 터울 누나 파니 멘델스존 헨젤은 1843년에 합창곡 천사들의 합창’(TTIS 2022.5월호)과 1846년에 아카펠라 아리엘’(TTIS 2022.5월호)을 작곡했다. 

 재밌는 지점이 있다. 남동생은 16살과 21살에 비극 1부의 하이라이트인 발푸르기스의 밤에 관한 두 곡을 작곡했고, 누나는 38살과 41살에 비극 2부 초반에 등장하는 요정 아리엘에 관한 두 곡을 작곡했다는 사실이다. 반면 안타까운 지점도 있다. 두 남매가 1847년 42살과 38살의 나이로 같은 해에 요절했다는 점이다. 먼저 떠난 누이를 위해 동생은 레퀴엠(op.71)을 작곡하지만, 실의가 너무 커서인지 6개월 뒤 누나를 따라 숨을 거둔다. 

 조숙한 천재 작곡가 남매는 위에 소개한 4곡 말고도 괴테의 텍스트에서 가사를 따온 소곡들을 작곡했다. 누이는 서동시집의 우리는 당신을 노래해(Wer will mir wehren zu singen)’ ‘중국과 독일의 계절과 일시의 mmrung senkte sich von oben(황혼이 내려왔다.)’를 노래로 만들었다. 파우스트와 관련 있는 곡은 동생의 작품 Gretchen (Meine Ruh ist hin)’이 작품 번호 MWV K 27로 남아 있는데, 악보도 구하기 힘들고 연주 자료도 없다하지만 이 곡들은 천재 남매가 짧은 평생 괴테와 파우스트에 얼마나 천착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2] 헤르만 로이터의 굵직한 두 오페라 

 

독일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헤르만 로이터(Hermann Reuter; 1900~1985)는 파우스트를 소재로 굵직한 오페라 두 개를 남겼다. 

 하나는 요하네스 파우스트 박사(Doktor Johannes Faust)’ op.47로, 규모가 큰 3막의 오페라다. TTIS 2025 3월호에서 체코 인형극의 아버지인 마테이 코페츠키의 인형극에 스메타나가 곡을 붙인 파우스트를 분석한 적 있는데, 로이터의 작품도 오래된 인형극 대본을 기초로 오페라 리브레토를 만들었다. 1936년 프랑크푸르트 오페라 극장에서 올린 초연은 발레 장면과 무곡이 많아서 꽤 성공을 거뒀다. 

 다른 하나는 돈 주앙과 파우스트’ op.75로 1950년에 완성했다. 7개 장면으로 이루어진 오페라로 색소폰이 추가된 목관 군에 각양각색의 타악기 그리고 피아노까지 포함된 오케스트라와 내레이터까지 필요한 대곡이다. 특이할 점은 두 이야기의 주연인 돈 주앙과 파우스트는 바리톤이 맡고, 조연인 레포렐로와 메피스토펠레스는 테너가 맡는 점이다. 아마도 두 주인공에게 무게를 두고 조연을 가볍게 연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서양 문학사와 연극사에서 가장 굵직한 남자 주인공인 돈 주앙과 파우스트를 한 무대 위에서 합친 시도가 무척 혁신적이다. (참고로 2020년, 나진환 연출이 정동환 배우의 일인극으로 올린 파우스트와 대심문관도 같은 취지였을 것이다.하지만 안타깝게도 다른 유명 작곡가들의 걸출한 파우스트에 밀려 로이터의 두 오페라는 거의 연주되지 않는다.

 

 

[3] 마이어 루츠의 두 작품 – 심각한 파우스트와 마르게리테 vs 가벼운 파우스트 최신판 

 

 독일 태생의 빌헬름 마이어 루츠는 19살에 런던으로 건너가 19세기 영국 전역의 극장을 휩쓴 작곡가 겸 지휘자다. 독일색이 짙은 빌헬름을 이름에서 빼고 마이어 루츠로 활동하며 오페라, 오페레타, 음악극, 벌레스크(Burlesque; 소극, 풍자극등 작품의 규모와 수준을 가리지 않고 작곡하고 또 지휘했다. 1850년에 서리(Surrey) 극장의 음악감독이 되었고, 5년 뒤 앙리 드레이튼(Henri Drayton)이 영어로 번역한 파우스트 대본에 음악을 얹어 매우 심각한 3막의 낭만 오페라 파우스트와 마르게리테(Faust and Marguerite)’를 완성한다영국에서는 어느 정도 인기를 끌어 이후 영화로도 만들어졌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 대본도, 음악도, 영화도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잊혔다. 

 이후 수십 년간 승승장구하던 루츠는 게이어티(Gaiety) 극장의 음악 감독을 맡고, 1888년 파우스트 최신판(Faust up to date)’라는 제목의 음악적 풍자극(Musical Burlesque)을 무대에 올린다. 대본 작가 심스(G.R. Sims)와 페티트(H. Pettitt)가 당시 유럽을 강타한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를 패러디해 영어로 대본을 썼다. 그런데 루츠는 33년 전 심각한 파우스트를 썼다가 재미를 보지 못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루츠는 가벼운 음악과 코믹한 연출을 대본 위에 얹고 소위 대박을 터뜨린다. 오랜 극장 생활 덕분에 오를 대로 오른 흥행 감각이 홈런을 친 순간이었다. 

 초연 직후비평가들은 루츠의 음악과 마르게리테 역을 맡은 소프라노 플로렌스 세인트 존(Florence St. John)의 열창을 극찬했고, 모닝 포스트는 대성공이라며 대서특필했다. 특히극장의 안무가인 존 도방(J. D’Auban)이 안무한 4인조 춤(Pas de quatre)과 루츠의 경쾌한 춤곡이 커다란 흥을 일으키면서 엄청난 앙코르를 끌어냈다. 

 당시에는 엄청난 인기몰이를 한 파우스트 최신판이지만, 가벼운 작품은 예술사의 거대한 물줄기에 쉽게 씻겨 내려가기 마련이다. 루츠의 명성도 마찬가지다. 100년이 지난 지금, 작곡가이자 흥행사였던 루츠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루츠가 심각하고 무거운 파우스트를 영국 전역에 퍼뜨린 공로는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q2k2E0MK7Bo

 

 파우스트 최신판은 통째로 사라졌지만, 지글거리는 음질로 녹음된 ‘4인조 춤(Pas de quatre)’이 남아있다. 음악을 듣다 보면 옛 무성 영화에서 얼핏 들어본 듯한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먼지 수북한 옛 축음기로 100년 전 영국인들의 흥과 멋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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