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오판진(공이모 회원)
‘극단 모시는사람들’이 제작한 연극 <춘섬이의 거짓말>이 2025년 7월 25일부터 8월 3일까지 성수아트홀에서 공연되었다. 허균이 쓴 <홍길동전>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서사를, 김정숙 대표가 희곡으로 쓰고, 연출하였으며, 김현 성장순 정래석 신문성 정연심 채연정 임정은 박옥출 고훈목 김명애 김의연 송성애 이희연 박두수 서도민 고예본 오명준 이다솜 홍정연 송혜지 배우가 출연하였다.

- 여성의 눈으로 기존 서사 재해석하기
이 공연은 기존의 작품인 허균의 <홍길동전> 이야기보다 앞선 시기의 이야기를 다루는 속편에 해당한다. 홍길동이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사람들과 길동의 어머니인 춘섬이의 관계를 바탕으로, 춘섬이가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지를 다루었다. 그래서 이 작품은 <홍길동전>의 프리퀄이라고 말할 수 있다. <홍길동전>은 주인공이 ‘홍길동’(남성)이며, 남성 중심의 눈으로 본 조선시대의 신분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고전소설이었다. 반면, <춘섬이의 거짓말>은 주인공이 홍길동의 어머니인 ‘춘섬이’(여성)이며, 여성의 눈으로 본 신분 차별의 문제와 자녀에 관한 사랑을 매우 흥미롭게 보여주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작품은 고전소설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한 공연이다. 기존의 고전 텍스트들이 대부분 남성의 시각에서 그려지고 있는데, 김정숙 작가는 이런 남성 중심의 서사를 전복하는 데 성공하였다. 서사의 주인공을 홍길동에서 홍길동의 어머니로 변경함으로써 가능했다. <춘섬이의 거짓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홍길동전>이란 기존 서사를 홍길동의 어머니인 ‘춘섬이’라는 여성의 눈으로 살펴본다는 점이다. 이 작품을 통해서 조선시대 신분제도의 불합리성에 관해 남성의 관점이 아니라 여성의 관점에서 비판하고 저항하는 서사를 창조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신분이나 성별, 피부색, 경제력 등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차별과 차이를 넘어서 평등과 연대를 지향하는 것은 인류가 지향해야 할 보편적인 책무이기 때문이다.
- 여성의 관점에서 인물 관계 재정립하기

가. ‘춘섬이 재판’에서 반대자와 조력자의 대립
홍 대감 댁 마님은 춘섬이가 임신한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밝히려고 여러 사람들을 불러서 질문한다. 만약 춘섬이와 개불이가 백중 달밤에 너럭바위에서 만나 정을 통했다면, 개불이가 아버지가 될 것이고, 그것이 아니라면 춘섬이를 범한 대감이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상황이었다. 먼저, 홍 대감 댁 하인 쉰돌이에게 잡혀 온 개불이는 춘섬이를 백중 달밤에 만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한다. 반면, 홍 대감 댁 기생첩인 초란이와 매파는 개불이와 춘섬이가 백중 달밤에 만났고, 그래서 춘섬이가 임신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춘섬이의 아이는 대감의 아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안방마님의 늙은 처녀종 쫑쫑이와 홍 대감 댁 찬모인 과부 딸끝네는 그날 너럭바위에서 춘섬이와 개불이를 본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여 춘섬이에게 힘을 실어준다. 이런 상황에서 춘섬이는 헛구역질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춘섬이 어머니는 춘섬이와 개불이의 관계를 부인했다. 결국 ‘춘섬이 재판’은 춘섬이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밝히지 못했고, 춘섬이의 뜻대로 전개되었다. 왜냐하면, 춘섬이의 아이가 대감의 아이로 태어나는 것이 춘섬이나 춘섬이의 아이에게 득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춘섬이 주변의 여러 여성도 거짓말을 하여 춘섬이를 도와주었다. 물론, 마님 앞에서 이루어진 여러 사람의 주장과 반박은 공식적인 재판이 아니라 비공식적이고 사적인 대화였다. 그러나 이런 사적이고 강압적인 대화를 하였지만, 춘섬이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고, 오히려 일부 여성들의 거짓말로 인해 진실은 땅 속에 묻혔다. 거짓말을 한 일부 여성들은 모두 천민으로 같은 처지에 있는 춘섬이와 춘섬이 아이의 미래를 위해 목숨을 걸고 거짓말을 하였다. 춘섬이가 나을 아이, 우리의 ‘홍길동’을 천민인 춘섬이와 양반인 홍 대감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하면, 비록 그 신분이 적자나 서자가 아닌 얼자라고 할지라도 천민인 개불이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천민으로 사는 것보다는 나은 삶이었기 때문이다.
김정숙 작가는 주인공 춘섬이를 중심으로 하여 그녀를 돕는 조력자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을 서로 팽팽하게 대립하게 함으로써 재판극을 보는 것과 같은 극적인 재미와 함께, 이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풍부하게 전달하였다.

나. 여성 연대와 남성 조력자 강화하기
사람은 혼자 힘으로는 살 수 없다. 신분과 지위가 낮고, 힘이 약하면 더욱 그러하다. 권력자들은 자기가 살기 편하고, 유리하게 하려고 권력이 없는 사람들이 뭉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약하고 살기 힘든 사람일수록 서로 돕고 뭉쳐서 살아야 한다. 조선시대는 물론이고, 지금도 그러하다. 우리나라와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여성은 남성과 견주어 동등한 대접을 받지 못한 일이 많았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여성이 희생하였고, 서로 단결하며 힘을 모았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남녀가 평등하고 동등하다는 것을 지지하는 남성 조력자들을 조직하는 것도 필요하다. 여성의 인권과 행복을 돌보지 않는 사람은 생물학적인 성별인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을 억압하고 힘들게 하는 모든 사람이기에, 여기에는 여성이나 남성이 모두 포함될 수 있다. 이 연극에서도 춘섬이를 돕는 조력자에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 가운데도 개불이나 춘섬이 아버지도 포함되며, 이들은 춘섬이의 결정을 지지하고 존중해 주었다.
- 보조 인물의 에피소드로 주제 강화하기

가. ‘순향 에피소드’를 통한 생명 존중, 모성의 힘
이 연극에는 춘섬이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 인물이지만, 선달과 함께 등장하는 관기 순향이라는 인물이 있다. 필자의 청력이 떨어져서 그랬는지, 주의력이 부족했는지, 공연장에서 인물의 이름을 순향이 아니라 춘향이라고 들어서 춘향전을 패러디한 대목인 것으로 한동안 오해하며 관람했다. 순향은 관기였기에 선달의 수청을 들었고, 그 결과 임신하여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달은 순향이 임신한 아이가 자기 아이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순향이 관기였기에 자기의 수청만 들었거나 자기와만 관계를 맺었다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순향은 임신한 아이가 선달의 아이가 틀림없다면서, 이 아이가 나리의 아이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해 달라고 요구한다. 만약 선달이 순향의 아이를 자기 아이라고 인정하게 되면, 순향의 신분은 천민이었지만, 순향의 아이 신분은 천민이 아닌 얼자가 된다. 얼자라는 신분은 천민보다 낫기에 순향이가 여기에 관심을 두었고, 선달에게 그렇게 해달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선달은 자기 현재 처지나 앞날을 위해서 순향과 순향의 아이를 돌보고 싶지 않았다. 그 대신, 선달은 가지고 있던 돈이며, 물건들을 모두 순향에게 준 후 빈털터리가 되어 순향과 이별한다.
순향은 선달이 떠나간 후 슬픔 마음으로 자기 배를 손으로 때린다. 그리고 순향은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바위 위에서 몸을 굴려 임신한 아이를 지우려고 노력한다. 춘섬이는 이런 순향을 숨어서 보고 있다가 나타나서 안쓰러운 마음으로 순향을 바라보며, 순향의 안타까운 행동을 제지하는 역할을 한다. 춘섬이도 순향처럼 임신했는데, 자기 아이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하는 게 필요할지 고민하는 점에서 서로 다르지 않았다. 이렇듯 순향이란 인물은 춘섬이의 복잡한 마음을 더 깊이 짐작할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한다. 반면, 춘섬이는 순향이의 태아를 살리는 역할을 하면서, 태아의 생명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춘섬이가 임신한 아이의 신분을 위해 특별한 선택을 하기에 모성의 힘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나. ‘인두질 사건’을 통한 반복되는 여성 피해의 역사 보여주기
춘섬이 어머니는 얼굴에 화상 자국이 있었다. 뜨거운 인두가 얼굴에 닿아서 생긴 것으로 보기 흉하다. 그런데 춘섬이 어머니는 춘섬이에게 그 상처와 관련하여 자세하게 얘기한 적이 없다. 그러나 춘섬이는 홍 대감과 관련되었다는 이 상처를 보면서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통찰해 낸다. 홍 대감이 계속해서 춘섬이 어머니를 찾게 되면, 마님으로부터 춘섬이 어머니가 무슨 고통을 받게 될지 알 수 없었기에 홍 대감이 자기를 찾아오지 않게 하는 방안으로 그렇게 한 것이었다. 자기 얼굴에 스스로 인두질을 하여 상처를 만들게 되면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짐작하였는데, 실제로 그런 효과가 있었다. 춘섬이도 홍 대감의 첩이 되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기에 화상으로 자해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화상을 입혀 훼손하는 신체 부위는 춘섬이의 얼굴이 아니라 허벅지로 달라졌을 뿐, 대를 이어 양반에게 수난을 당하고 자신을 보호하는 방안을 스스로 강구하는 사건은 동일하게 반복되었다.
이 연극은 춘섬이 어머니의 화상 에피소드를 통해 여성들이 자신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는지를 보여주었다. 자기 신체를 훼손하는 방법이 아니고서는 양반의 횡포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만큼 극단적이면서도 인권에 반하는 시대였다는 것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대목이라고 평가한다.
우리나라 현대사는 군사독재나 비민주적인 권력자의 전횡에 맞서서 싸운 민주시민의 힘으로 만들어졌다. 우리는 최근에도 애써서 차근차근 쌓아 올린 민주주의라고 할지라도 한순간에 허물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경험했다. 그래서 더욱 이 작품이 여성의 관점에서 본 고전 텍스트 재해석의 훌륭한 사례라고 평가하면서도, 앞으로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고 공정하게 경쟁하면서 우리 사회를 더 단단한 민주사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한 방법과 과정이 간단하지 않겠지만, 슬기롭게 그 방안을 찾아가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인데, <춘섬이의 거짓말>은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고전의 재해석이란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크다. 김정숙 작가와 극단 모시는사람들은 이미 <숙영낭자전을 읽다>, <심청전을 짓다>, <소녀>, <꽃가마> 라는 작품을 통해서 이와 같은 맥락의 전범을 충분히 보여주면서 희곡뿐만 아니라 미장센까지 뛰어난 예술적 창조력을 확연하게 증명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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