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황승경(연극평론가)
거울 앞에 선 무대와 관객
연극 <미러>는 제목 그대로 현실을 비추는 거울을 자처한다. 그러나 이 거울은 언제나 투명하고 평평한 표면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금이 가기도 하고, 빛에 일그러지기도 한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흐려져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것을 감추기도 한다. 김태형 연출은 영국 웨스트엔드 초연작의 구조와 대사를 충실히 따르면서도 한국 사회의 분위기와 정서를 섬세하게 덧입혔다. 그 결과, 작품은 원작의 보편적 문제의식과 더불어 오늘의 한국 사회에 닿는 현실성을 획득한다.
작품의 주제는 ‘검열’이다. 그러나 김태형은 이를 교조적이거나 무겁게 설파하기보다, 유머와 아이러니, 의례적 장치라는 세 가지 열쇠로 풀어낸다. 전면에는 하얀 천과 꽃 장식이 놓인다. 배우들은 사회자, 신랑, 신부, 축사자 등 결혼식의 전형적 역할로 등장한다. 사실 이 결혼식은 네 명의 인물이 은밀히 공모한 가짜 의례다. 그들은 결혼 행사라는 외피 아래 공연을 숨겨 검열의 눈을 피한다. 숨겨진 의도가 드러나는 순간, 관객은 단순한 하객이 아니라 ‘금지된 예술의 공범자’가 된다. 그렇게 발을 들이자 공연은 단순한 극적 상황을 넘어 하나의 사건으로 변모한다. 객석은 하객석처럼 꾸며져, 관람자는 공연을 ‘보는’ 이가 아니라 결혼식에 직접 ‘참석한’ 사람처럼 느끼게 된다.
이 결혼식의 이면에는 네 인물이 얽혀 있다. 아덤은 침묵과 발언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작가다. 메이는 그런 아덤을 지탱하며, 자유의 언어를 갈망하는 연인이다. 백스는 처음에는 감시자의 얼굴로 등장하지만, 깊은 사유 끝에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결국 아덤의 곁에 선다. 따라서 그의 변화는 누군가의 설득이 아니라, 자기 성찰의 무게에서 비롯된 전환이다. 반면 첼릭은 끝까지 권력을 대리해 검열을 집행한다. 이 네 인물의 관계는 단순한 의례를 넘어, 검열의 긴장과 그 균열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무대가 진행되면서 관객 역시 결혼식의 일부가 된다. 이때 경계는 흐려지고 위치는 근본적으로 뒤바뀐다. 사람들은 사회자의 멘트에 웃고, 때로는 축가를 함께 부르거나 박수를 치며 타이밍에 맞춰 호응한다. 그 순간 관객은 무대가 풍자하는 억압 장치의 씁쓸한 공모자가 된다. 관객은 더 이상 수동적 감상자가 아니다. 그는 연행의 일부로 편입되며, 무대와 객석의 경계 자체가 해체된다. 이러한 즉흥적 참여는 권력과 검열의 구조를 실감나게 드러낼 뿐 아니라, 관객에게 ‘비판하는 자’와 ‘순응하는 자’라는 모순된 얼굴을 동시에 경험하게 한다. 이 경험은 단순한 관람을 넘어선 체험의 장을 형성하며, 거울 속의 우리를 더욱 정밀하게 비춘다.
웃음과 침묵이 교차하는 검열의 메커니즘
검열이라는 주제는 자칫 무대를 지나치게 무겁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김태형은 공연의 정서적 리듬을 치밀하게 조율한다. 축사 장면이나 사회자의 농담은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곧 이어지는 대사와 상황은 그 웃음을 불편한 감각으로 바꿔놓는다. 잠시 해방처럼 터져 나온 웃음은 이내 검열의 장치에 삼켜지고, 우리는 불편한 공모자가 된다. 허용된 발언의 경계를 깨닫는 순간, 관객은 침묵하고, 바로 그 침묵 속에서 메시지는 더욱 깊이 스며든다.
작품 속 검열은 단순한 삭제가 아니다. 위험한 발언은 농담의 장막으로 가려지고, 날카로운 질문은 장면 전환에 묻힌다. 권력이 직접 억압하는 것이 아니다. 예술가와 시민이 스스로 발언의 경계를 긋게 만드는, 자율 검열의 과정이다. 검열은 외부의 강제가 아니라 우리 안에 내면화된 습관으로 작동한다.
이 지점에서 ‘미러’라는 제목은 한층 깊어진다. 무대 위의 거울은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을 비추면서 동시에 객석의 우리를 반사한다. 공연이 이어지는 동안 관객은 두 얼굴을 마주한다. 하나는 ‘이건 연극이야’라며 거리를 두는 비평가의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결혼식 의례를 무심히 따라가는 시민의 얼굴이다. 결국 이 작품은 우리가 선택적으로 보고 듣는 습관이 어떻게 현실을 왜곡하는지를 은근하고도 집요하게 보여준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는 조명과 동선으로도 무너진다. 결혼식 장면의 조명은 따뜻하고 화사하게 빛나다가, 검열이 작동하는 순간 낮아진 색온도와 깊은 그림자에 잠긴다. 배우들이 객석 사이를 오가며 말을 건네는 찰나, 하객은 더 이상 ‘하객’이 아니라 공연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이러한 참여 장치가 모든 이에게 동일한 몰입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적극적으로 호응하지만, 또 다른 이는 아예 거리를 유지한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려는 시도의 힘은 균일하게 작동하지 않으며, 동시에 그 한계 또한 드러난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남는 질문
<미러>는 공연이 끝난 뒤에도 긴 그림자처럼 남아, 우리가 함께 지나온 ‘의례’와 ‘침묵’을 되새기게 한다. 그러면서 우리의 선택과 침묵이 자아와 공동체를 어떻게 형성해왔는가를 끝내 성찰하게 만든다. 직접적인 국가 검열은 줄었을지라도, 사회적 분위기와 집단 압박, 조직의 위계는 여전히 발언을 억누르고 있다.
결혼식의 밝고 경쾌한 음악은 검열 장면 직전 갑자기 끊기거나 일그러지며 관객의 감각을 흔든다. 배우들의 시선은 때로 객석의 한 사람을 정조준하며, 관객은 ‘지켜보는 자’에서 ‘지켜지는 자’로 순식간에 바뀐다. <미러>가 남겨둔 거울은 더 이상 공연장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 놓여 있다. 출근길 회의실의 침묵, 온라인 댓글창의 경계 짓기, 가족 모임 식탁 위의 무심한 말투 속에서 우리는 다시 그 얼굴을 마주한다.
매끄럽지 않고 불편한 이 거울 속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선택한 침묵과 순응, 내면화된 검열의 실체를 선명히 본다. 오늘도 이 연극은 우리 안에 숨겨진 말과 침묵을 끝없이 반사한다. 결국 <미러>가 비추는 얼굴은 무대를 넘어 오늘의 한국 예술 현실과 맞닿는다. 자유를 얻은 듯 보이는 지금의 예술도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 무대는 다양한 억압의 장치를 끊임없이 환기한다. 그 거울은 무대 위에서만 존재하지 않았다. 공연장을 빠져나가며 마주친 관객 개개인의 얼굴 위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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