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강릉문화재단 <로스팅 드림즈>

글_이은경(연극평론가)

 

강릉 대표 브랜드공연 <로스팅 드림즈>가 재공연(2025.09.12.~13., 강릉아트센터 사임당홀)되었다. 작년 초연 당시 관객의 적극적인 호응을 얻으며 레퍼토리 발전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 이 작품은 커피도시로 강릉의 문화이미지를 강화하려는 지역 콘텐츠 공연이다. 넌버벌 퍼포먼스에 미디어아트가 결합한 융복합 공연인데, 특히 XR·디지털 트윈·이머시브 프로젝션 매핑·홀로그램 등 최첨단 영상기술을 활용한 시각적 이미지, 무용·서커스·마임·버티컬 퍼포먼스 등 다양한 신체움직임, 심장을 두드리는 노래·음향이 어우러진 압도적 스펙터클이 70분 동안 관객에게 강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개인적으로 자연친화적 식물 조성물로 생명력을 감각케 하는 강릉아트센터의 디자인 콘셉트가 인상적이었는데, 공연 당일(09.13.) 모처럼의 단비 속 이곳에서 꿈과 희망을 제시하는 <로스팅 드림즈>가 공연된 것이 운명처럼 느껴졌다.

 

사진 제공: 강릉문화재단

 

환상의 모험을 통해 바리스타의 꿈을 찾아가는 성장드라마

 

이 작품은 올해 본격적 도약을 선언하며 대규모로 준비 중이던 강릉국제공연예술페스티벌의 메인 프로그램으로 공연될 예정이었지만 극심한 가뭄에 페스티벌이 전면 취소되면서 3편의 브랜드공연만 진행되었다. 페스티벌을 기대하던 지역관객의 아쉬움이 더해져 이 공연에 대한 기대감은 더 커졌을 것이다. 고대의 제천의식에서 기원한 예술은 공동체의식 강화와 고단한 현실에서의 해방이라는 목적을 지향한다. 대극장을 가득 채운 강릉 관객은 잠시나마 현란한 스펙터클에 열광하며 가뭄의 현실에서 해방되는 순간을 경험했을 것이다. 페스티벌을 취소하는 대신 오히려 가뭄에 지친 강릉 시민을 위무하고, 역경 극복을 위한 공동체의 연대를 강화하는 계기로 적극 활용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컸다.

내용은 단순하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꿈이 바리스타였음을 깨달아가는 주인공 해솔의 성장드라마이다. 주인공 해솔은 강릉 해변에서 할아버지와 커피로 교감하며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성장해 도시로 나갔지만 반복적이고 규격화된 생활에 지쳐가던 그는 강릉으로 돌아온다. 강릉 해변에는 할아버지와의 추억 속 커피자판기가 여전히 놓여있다. 해솔은 갑자기 등장한 바리스타 일행과 함께 자판기 속으로 끌려들어가 환상의 모험을 하게 된다. 먼저 커피콩 부족을 만나 귀한 원두를 얻어서 할아버지의 커피공장을 찾아간다, 폐허처럼 버려진 그곳을 되돌리기 위해 기계를 작동시키는 순간 로스팅의 불길에 휩쓸려 화마의 고통을 겪는다. 간신히 불길에서 빠져나온 그는 커피의 여신을 만나 함께 춤을 추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던 꿈이 바리스타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드디어 할아버지의 커피공장에 불을 밝힌 해솔은 자신이 직접 로스팅한 커피를 맛보며 진정한 바리스타로 거듭난다.

주인공의 모험을 통한 성장담이 전개되지만 이야기는 익숙하다. 루이스 캐롤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연상시키는 구성에 고양이, 바리스타, 광대들의 동행자가 있다는 설정도 유사하다. 환상 속 모험담은 오래된 클리셰지만 남녀노소 누구에게도 소구력 있는 설정임에는 분명하다. 대사가 없는 넌버벌 공연이기에 분명한 의미전달을 위해 의도적으로 단순하며, 익숙한 이야기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장면연출도 기시감이 있었다. 커피콩 부족장면은 조르주 멜리에스 영화 <달세계여행>, 로스팅 불세계 장면 역시 기존 크리처 장르물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퍼포먼서의 신체 움직임 역량이 우수해서 보는 즐거움이 컸다. 특히 군무에서 보여지는 역동적 에너지는 관객의 정서를 쥐락펴락할 만큼 몰입감이 있었다.

 

사진 제공: 강릉문화재단

 

무대 중심에 붉은색 커피자판기와 벤치가 놓여있는 강릉 밤바다에 할아버지와 어린 해솔이 등장하며 공연은 시작된다. 파도소리가 은은하게 들리는 월출 풍경을 배경으로 조손(祖孫)의 친밀한 관계가 유쾌하게 표현된다. 가족해체가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에서는 비현실적일 만큼 낭만적이지만 이 추억이 주인공의 삶을 다잡는 핵심 장면이기에 이 작품에서 2번 반복된다. 특히 해솔의 모험에 동행하는 고양이는 첫 장면에서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등장하며 과거와 현재, 현실과 환상을 매개하는 존재이다. 낯설지만 익숙해 보이는 의문의 바리스타가 2명의 광대와 함께 등장하여 해솔을 모험의 세계로 이끄는데, 그가 작고한 할아버지와 동일한 존재라는 사실이 바로 커피공장에 걸린 사진을 통해 밝혀진다. 결국 해솔의 고민과 갈등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이면에는 할아버지와의 관계가 중요하게 작동한다. 그렇기에 이 작품의 핵심은 주인공의 성장담이지만 가족의 의미를 강조하는 서브텍스트가 내포되어 있다.

이 공연은 무용에 기반하고 있지만 마임, 서커스, 버티칼 퍼포먼스 등 다양한 신체움직임을 융합하여 표현의 다양성을 확보한다. 현실의 해솔이 보여주는 경직되고, 정형화된 움직임과 모험의 과정에서 보여주는 유연하면서도 격렬한 움직임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입체적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표정연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는 주인공뿐만 아니라 등장인물 모두에게 적용되는데, 신체표현에 더해 표정연기가 세심하게 전달되었다면 인물의 성격이 훨씬 심화되었을 것이다. 현재로는 개성이 거세된 전형적인 인물로 보인다.

커피콩 부족과의 에피소드에서 처음의 위협적인 움직임은 점차 소통하며 호의적인 관계가 형성되면서 유연해지는 움직임으로 변화한다. 대사가 없어도 움직임의 변화를 통해 극적 상황이 잘 설명된다. 로스팅 화염 속의 고통을 그리는 장면은 주인공의 내면갈등을 가장 격렬하게 보여주는 에피소드인데, 대형 휠 퍼포먼스로 시작된다. 회전의 관성과 중력에 의해 소극적으로 움직이던 휠이 퍼포먼서의 에너지가 더해지면서 격렬하고,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변화한다. 그 순간순간에 반응하며 객석의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이어서 붉은 조명 속에 위협적이며, 과감하고, 일사분란한 군무가 펼쳐지자 관객은 감탄사를 추임새처럼 발화하며 공연과 하나가 된다. 뿐만 아니라 환상의 시공간을 넘나들 때 영상이미지와 융합하는 주인공의 버티칼 퍼포먼스는 무대 공간을 확장시켜 시각적 스펙터클을 강화하는데 효과적이었다. 다만 공중에서의 움직임을 정치하게 하려면 전문 훈련이 필요하고, 엄청난 에너지와 근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잘 알지만 해솔의 움직임이 더 입체적이고, 정치했더라면 하면 아쉬움은 남는다.

 

사진 제공: 강릉문화재단

 

최첨단 영상기술을 활용한 시각적 이미지가 강한 몰입감 선사

 

이 공연의 핵심은 무엇보다 영상이었다. 공연장 곳곳에 배치된 리플렛에는 이 작품을 ‘XR 판타지 퍼포먼스’로 소개하고 있는데, 입체적 영상이미지에 심장을 울리는 음악, 다양한 퍼포먼스가 어우러져 마치 IMAX 영화를 보는 듯한 생생한 느낌이 들었다. 심혈을 기울인 영상 기술로 근래에 본 국내외 공연 중 영상을 가장 적극적, 효과적으로 연출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영상 외에 “판타지, 퍼포먼스”까지도 잘 살아났는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

현란한 영상이미지에 압도되어 개인적으로 어지럼증이 느껴질 정도로 시청각적 스펙터클은 우수했지만 공연장을 나서는 순간 정서적 여운은 휘발되는 느낌이었다. 작품의 의미가 잘 살아나 관객이 계속 되새김하게 하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겠다. 예를 들어 해솔이 자신을 성찰하게 되는 핵심 장면이 커피 여신과의 만남이다. 대형 커피잔 속에서 등장한 여신은 따뜻한 색깔이 혼합된, 몸에 붙는 타이즈를 입고, ‘태양의 서커스’ 작품에서 익숙하게 보았던 유연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참여예술가 중에 ‘태양의 서커스’ 아티스트 출신이 있다는 홍보문구가 떠오르는 장면이다. 하지만 웃는 표정으로 일관하는 여신과 표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해솔 간의 내면 교감이 손잡고 춤추는 것만으로 잘 전달되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장면의 의미가 잘 살아나지 않으니 오히려 전체 맥락에서 뜬금없는 장면처럼 보였다. 갈등하고 소극적이던 해솔이 주체적 선택을 하는 장면으로 연출되어야 다음 장면의 의미가 더 잘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시청각적 스펙터클이나 기술적 우수함을 강조하기 이전에 이 장면이 왜 이 작품에서 존재해야 하는지, 어떠한 장면연출을 통해 관객에게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 작품은 기술적 완성도는 매우 우수하지만 등장인물의 성격구축이나 인물의 내면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아직 고민이 필요하다.

 

사진 제공: 강릉문화재단

 

요즈음 유행처럼 각 지자체에서 거액의 공공자금을 들여 지역 브랜드공연을 제작하고 있다. 지역 브랜드공연은 각 지역의 고유한 전통, 문화, 역사적 자원 등을 기반으로 제작된 공연콘텐츠인데, 지역 정체성·예술성·대중성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보여주는 경우가 아직은 많지 않다. 지역성에 천착하다 예술성을 간과하거나, 예술성을 앞세우다 관객 소통성을 약화시키거나, 스펙터클만을 강조하여 작품의 의미를 축소시키는 등 이유는 다양하지만 관객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는 작품들을 지역에서 많이 만났다. 이는 창작진과 지자체 모두의 문제에서 비롯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일회성 이벤트처럼 소비되는 브랜드공연을 보면 공공세금이 무용하게 소비되는 것에 분노하게 된다.

하지만 성공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선군의 음악극 <아리아라리>, 진주시의 야외퍼포먼스 <의기 논개>, 경주시의 <플라잉> 등이 성공사례로 평가되는데, 강릉시의 <로스팅 드림즈>도 분명 성공사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대형 공연장을 메운 관객의 열화와 같은 호응을 보면 이 작품에 거는 지역민의 기대를 확인할 수 있다. 현재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단점은 보완하고, 장점은 강화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더해진다면 이 작품은 강릉 브랜드가 아니라 대한민국 브랜드로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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