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오세곤(극단 노을 예술감독)
예술 지원에 대해 흔히 두 가지 방향으로 구분하여 말한다. 선택과 집중이냐 아니면 보편지원이냐가 그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 둘은 상반되는 것일까? 즉 병립 불가능해서 반드시 둘 중 하나의 길만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우리 예술 지원 정책은 보편지원보다는 선택과 집중으로 기우는 것 같다. 보편지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빈민 구제 성격 정도로 구색만 맞추는 듯싶다. 이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예산의 문제이다. 한정된 예산을 가지고 달라는 대로 모두 지원해 줄 수 없으니 나름의 기준으로 선택해서 거기에 집중한다는 것은 얼핏 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부동산에나 써먹을 법한 똘똘한 한 채의 논리가 예술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사실 선택에 들이대는 기준을 보면 대개는 경제적 가치 환산을 염두에 두고 있다. 심지어 예술적 가치를 내세울 때조차 실은 상업적인 계산이 깔려있기 마련이다. 국민의 혈세를 쓰는 일이므로 투자 대비 확실한 가치 획득이 가능해야 한다는, 그러니까 “최소한의 비용과 노력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얻는다”는 소위 경제 원칙이 작동하는 것이다.
여기서 가치에 대한 인식을 논하자면 너무 장황해질 것이다. 다만 예술의 가치는 그보다는 훨씬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헌법에서조차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만 지적하기로 한다. 어쨌든 설령 현재의 경박한 가치 인식을 따른다 해도 보편지원을 후순위로 두는 정책 방향은 옳지 않다. 단언컨대 예산이 부족하면 오히려 보편지원을 우선해야 한다.
더욱이 사실 보편지원은 선택과 집중을 못 하도록 막는 방해물이 아니다. 경제 원칙을 적용하는 선택과 집중은 엄밀히 말하자면 지원보다는 투자의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상업적 가치가 확실해 보이면 투자자를 모을 방법을 마련해 주고, 높은 예술적 성취가 예상되면 이미지 홍보를 꾀하는 기업들의 후원을 유도할 수도 있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선택과 집중은 많은 폐해를 낳는다. 가장 심각하기로는 선택되는 소수가 되기 위하여 일종의 트렌드를 의식하며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예술은 모든 방향으로 열려 있어야 하고 별의별 형태의 도전과 실패, 재도전이 끊임없이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 오로지 선택을 목표로 선택 자체에 성패를 거는 전혀 예술적이지 못한 상황이 만연하고 있다. 이렇듯 실패할 자유가 없는 환경에서 예술은 결코 꽃필 수 없다. 지원이 예술을 망치고 있다는 한탄은 바로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보편지원에 신경을 써야 한다. 보편지원의 대상은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 돼야 할 것이다. 연극이라면 배우와 관객, 그리고 그 두 존재가 만나는 장소, 즉 무대 내지는 극장이라는 요소에 우선 초점을 맞춰야 한다.
배우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예술활동의 기회 제공이다. 알음알음으로 만날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이를 위해 다양한 네트워킹이 가능한 플랫폼이 있어야 한다. 또 최소한의 경제적 삶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복지 정책도 있어야 하고, 예술적 기량의 유지, 발전을 위한 교육도 수시로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관객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홍보, 마케팅 지원이 필요하다. 물론 현행 문화바우처나 과거 사랑티켓 등과 같은 관람료 지원도 유효하겠지만, 더욱 바람직하기는 자진해서 공연장을 찾는 문화의 정착 및 확산이다. 또 극장과 관련해서는 우선 대관료 지원이 가장 절실하다. 아울러 관람 환경 개선도 필수적이다. 음습한 지하 소극장은 하루빨리 지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객석 의자와 화장실도 최소한 영화관 수준으로 개선해야 하고 로비 공간도 꼭 있어야 한다.
이에 더해 의상, 소·대도구, 무대장치 등 공연 소요 물품, 조명과 음향 등 필수 장비, 운송 수단 등을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제도와 기술 스태프 등 인력의 지원도 필요하고, 저작권 업무 및 비용, 영상 촬영 등 기록, 평론가 파견, 지방 순회, 해외 진출 등을 위한 전반적인 컨설팅 및 정보 제공 지원까지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어떻게 모든 것을 다 지원해 달라느냐고 비난할 수도 있다. 그 막대한 예산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이것은 예술 지원의 기본 철학이자 계속 추구해야 할 지향점이다. 과연 예산만 많다고 이런 상태를 이룰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러니까 이것은 예산 확충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되 실제 확보된 예산의 범위 내에서 기존에 있는 제도와 요소들까지 적절히 활용하면서 최선의 상태를 위해 노력하자는 제안인 셈이다. 그래서 지금보다는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실패를 과도하게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예술적 도전을 계속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