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人)이 연주하는 파우스트 (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Faust)’

– 임야비(tristan-1@daum.net)

자유기고가, 서울 신포니에타 기획 및 연출

 극단 듀공아 / 극단 동맹 연출부 드라마트루그

<슈베르트와 괴테의 초상화>

앞선 연재였던 ‘물레 앞의 그레트헨(Gretchen am Spinnrade D. 118)’에 이어 슈베르트가 괴테의 파우스트에 음악을 부친 두 곡의 가곡을 덧붙인다. 1816년에 작곡한 툴레의 왕(Der König in Thule; D.367)과 이듬해 작곡한 성벽 안의 그레트헨 (Gretchen im Zwinger; D.564)이다.

<툴레의 왕 Der König in Thule>

‘툴레의 왕’은 파우스트 1부 8장에서 그레트헨(마르가레테)가 부르는 노래다. 길거리에서 접근한 귀공자 파우스트가 추파를 던지며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하지만 그녀는 당차게 거절한다. 집에 돌아온 그녀는 낯선 파우스트가 궁금하다. 사랑에 눈을 뜬 것이다. 한편 파우스트는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메피스토펠레스와 작당해 그녀의 방으로 몰래 들어가 보석 상자를 두고 나온다. 그레트헨은 덥지도 않은 날씨에 혼자 더위를 느낀다. 사랑에 달아오른 것이지만, 그녀는 자신의 몸이 왜 이런지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옷을 벗으며 노래를 한다. 연출가 괴테는 그레트헨을 맡은 여배우에게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연기를 주문했을 것이다.

텍스트를 살펴보자.

텍스트의 붉은색 글씨를 주목해보자. 가난한 시골 처녀 그레트헨(마르가레테)에게 젊은 파우스트는 임금님이나 다름없다. 그레트헨은 처음 본 사이인 그와 백년해로를 염원하고 있다. 그것도 임금님과 왕비로서 말이다. 지고지순한 사랑의 매개체는 황금 술잔이다. 하지만 노래는 노래일 뿐이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파우스트가 그녀와 연인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그녀는 왕비도 아닐뿐더러, 금붙이 따위는 있을 수가 없는 가난한 여염집 처녀다.

이 장면에서 그레트헨이 부르는 ‘툴레의 왕’의 층위는 들뜬 상상과 저류하는 무의식의 경계 선상에 있다. 들뜬 상상은 과거의 전설이고 높디높은 임금님과 왕비의 완결된 미담이며, 저류하는 무의식은 현재의 보잘것없는 현실이고 신분이 낮은 자신과 귀공자 파우스트의 기대해서는 안 될 진행형 갈등이다.

슈베르트는 괴테가 벌려 놓은 이 경계를 파고든다.

<툴레의 왕(Der König in Thule; D.367) 슈베르트 자필 악보>

뛰어난 음악 감독 슈베르트는 작곡에 두 가지 포인트를 둔다.

첫 번째는 연출 의도는 이 곡의 조성이다. 애잔한 인상을 주는 라단조(d minor)는 툴레 임금님의 애처로운 이야기와 그레트헨의 자조를 절묘하게 버무린다. 2, 4, 6연의 1, 2행 부분에서 전조가 되면서 살짝 고양되는 부분(위 텍스트의 밑줄 부분)이 있는데, 슈베르트는 이 나지막한 상승으로 툴레 임금님의 비애와 그레트헨의 동경을 동시에 강조는 효과를 낸다.

두 번째는 슈베르트가 굉장히 소박한 민요조 멜로디를 곡의 주제로 삼았다는 점이다. 가난한 백성이 무의식적으로 흥얼거리는 노래가 복잡하거나 기교적일 수는 없다. 피아노도 악보가 허전할 정도로, 내내 사분음표의 반복뿐이다. 그래서 기사의 옹위를 받고 황금 잔으로 술을 마시는 한 나라의 왕의 이야기는 매우 가난하게 표현된다. 이런 식으로 슈베르트는 멜로디와 가사 사이의 벌어짐을 이용해 괴테가 의도한 틈을 메꾼다.

이 노래를 부르고 난 후 그레트헨은 장롱을 정리하다가 파우스트가 두고 간 보석함을 발견한다. 그녀는 평생 가져본 적 없는 금목걸이를 차고 거울을 본다. 분명 그녀는 거울 속에서 왕비를 보았을 것이다. 이제 임금님만 있으면 그녀가 상상하던 사랑이 완성된다. 하지만 이것은 메피스토펠레스가 파 놓은 교묘한 함정이었고, 파우스트와의 사랑은 거대한 파멸의 씨앗이 된다.

연출가 괴테는 툴레의 왕이라는 노래와 보석함이라는 소품을 이용해 기가 막힌 장면을 만들었고, 슈베르트는 연출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집어내어 더 기가 막힌 음악을 만들어냈다.

<츠빙거에 있는 고난의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는 그레트헨>

두 번째 곡을 소개하기에 앞서 곡명인 ‘Gretchen im Zwinger’을 짚고 넘어가자.

슈베르트는 이 곡을 총 8연 중 5연까지만 작곡하고 미완성인 채로 내버려 두었다. 원작자가 명시한 제목이 없기 때문에 통상 Gretchen im Zwinger가 정식 제목이고 간혹 Gretchens bitte로 불린다. 우선 Grechens bitte는 ‘그레트헨의 간청’이란 뜻으로 음악의 내용상 매우 적절한 제목이다. 문제는 정식 제목인 ‘Gretchen im Zwinger’인데, ‘Zwinger’라는 우리에게 생소한 단어 때문에 한글 제목에 혼선이 많다.

독일어 ‘츠빙거; Zwinger’는 서양 성벽의 구조물이다. 중세 서양의 성벽을 보면 이중으로 되어 있는 것이 많은데, 외벽의 안쪽이자 내벽의 바깥쪽 공간이 바로 ‘츠빙거’다. 전쟁 때는 중요한 방어 시설이지만, 평상시에는 성안의 백성들이 오가는 좁고 후미진 길이다. 우리나라 성에는 없는 공간이기에 단어 선택이 용이하지 않다. 그래서 괴테의 텍스트에도, 슈베르트의 곡명에도 다양한 번역이 존재한다. ‘성 안쪽 길’, ‘성벽 앞’, ‘성벽 안쪽 골목’, ‘성벽 안쪽 벽호 사이 좁은 길’ 등 번역가의 고뇌가 느껴지는 다양한 시도가 있는데, 편의상 간결하면서도 가장 의미가 잘 전달되는 ‘성벽 안’으로 곡명을 통일하겠다.  

<츠빙거의 그레트헨>

츠빙거에 대해 이렇게 길게 언급하는 이유는 괴테의 천재적인 무대 연출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왜 하필 무대 배경을 좁고 후미진 츠빙거로 설정했을까? 우선 텍스트를 살펴보자.

그레트헨은 결국 파우스트의 아기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주변의 시선이 두려워 임신 사실을 모두에게 숨기고 조마조마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물가에서 친구 리스헨으로부터 평상시 행실이 좋지 못했던 베르벨헨이 혼전 임신을 한 사실을 듣게 된다. 리스헨은 비난과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된 베르벨헨을 고소하게 욕하면서 퇴장한다. 하지만 그레트헨에겐 남의 일이 아니다. 그녀는 우물가에서 돌아오는 길에 꽃을 꺾어 츠빙거에 있는 고난의 성모(Mater Dolorosa) 앞 화병에 꽂고 위의 절절한 기도를 올린다.

 이 기도 장면 후, 그레트헨은 곧 고난의 성모와 같은 운명의 길을 걷게 된다. 그레트헨은 자신의 아이를 살해하는 중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갇힌다. 자식을 먼저 보낸 어미는 그 고통으로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을 겪지만 결국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품으로 승천(昇天)한다.

괴테는 좁고 후미진 츠빙거를 무대 배경으로 설정해 뒤에 있을 그레트헨의 투옥을 암시하고, 츠빙거에 설치된 성모상을 통해 그레트헨의 구원을 암시한 것이다. 노련한 연출가 괴테의 무대 연출이 빛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파우스트 1부가 출간되고 9년이 지난 1817년, 천재 음악감독 슈베르트는 연출가의 의중을 단번에 꿰뚫는 곡을 쓴다.

<성벽 안의 그레트헨 (Gretchen im Zwinger; D.564) 악보>

한마디로 이 곡은 ‘호소’다.

시작부터 피아노가 서양 음악에서 거의 쓰지 않는 내림 나단조(Bb minor)를 자재로 사용해 어두침침하고 답답한 무대를 뚝딱 만들어낸다. 여기에 비통한 감정을 짜내는 듯한 소프라노의 호소가 시작된다.

위 텍스트에 노란색 하이라이트로 표시한 것처럼 괴테가 쓴 운문은 유난히 감탄 부호와 반복이 많다. 슈베르트는 내용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제 5 연의 반복되는 단어에 – 2행의 ‘아프고, 아프고, 또 아프답니다! (Wie weh, wie weh, wie wehe)’와 5행의 ‘울고, 울고, 또 울어서 (Ich wein’, ich wein’, ich weine) – crescendo (크레센도; 점점 세게), sfz (스포르찬도; 갑자기 세게), ff(포르티시모; 매우 세게)를 넣어 그레트헨의 비극을 강렬하게 강조한다.

여기에 ‘칼(Schwert)’이나 ‘고통(Schmerzen)’같이 살을 에는 단어에서 피아노는 staccato(스타카토; 끊어서 연주) 주법으로 연주하여 청자의 가슴을 더욱 예리하게 후벼 판다.

가곡을 넘어, 한편의 오페라 아리아를 듣는 듯한 대곡이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슈베르트는 이 곡을 미완성으로 남겨 놓은 채 세상을 떠났다. 다행인 건 능력 있는 후배 작곡가들이 선배에 대한 존경을 담아 뒷부분(6연~8연)을 세심하게 보필했다는 점이다. 보통 우리가 온전히 끝까지 들을 수 있는 슈베르트의 ‘성벽 안의 그레트헨 (D.564)’은 영국의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B. Britten)이 1943년에 보필한 판본임을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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