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극이 보여 주는 소설의 정서

<참좋다>

엄현희(연극평론가)

인형극은 어린이들이 주로 감상하는 것이란 선입견이 있지만, 그것은 인형극을 좁게 이해하는 것이다. 인형극은 일반 연극에서 할 수 없는 표현들을 보여주며 상상력과 판타지를 자극하는 독자적인 장르로 바라봐야 한다. 예를 들어 인형 사이즈에 따라 공간을 다양한 크기로 보여줄 수 있다든지 신체절단 등 살아있는 배우가 할 수 없는 연기들을 리얼하게 실연할 수 있는 특성이 있다. 또한 인형극은 인형과 인형조종자를 통해 주체와 객체, 그 사이의 관계나 혹은 관계역전 등의 흥미로운 시점을 선사한다. 어떻게 바라보냐에 따라 인형극은 무한한 상상력과 예술적 탐구의 장으로서의 특성을 갖고 있다.

사진제공: 춘천시립인형극단

하지만 실제 인형극 현장에서 인형의 다양한 쓰임새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2020년에 창단해 올해 두 번째 정기공연을 올린 춘천시립인형극단 활동은 눈여겨 볼만하다. 시립예술단체에서 인형극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드문 사례이기 때문이다. 춘천시립인형극단은 첫 번째 정기공연으로 <하얀산>(경민선 작/조현산 연출)을 공연했으며, 이번에 박완서 소설 『보시니 참 좋았다』를 원작으로 하는 <참좋다>(박완서 원작/신인선 작 연출)를 12월 10일, 11일 이틀간 공연했다. <하얀산>이 인형에 관한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면, 이번 <참좋다>는 더 전형적인 인형극에 가깝다. 소설을 각색하고 연출한 신인선 연출가는 인형극연구소 인스에서 인형극을 연출해 왔다.

<참좋다>는 ‘한국적 인형극’이란 표현이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마당 한가운데 평상이 놓여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는 시골 고향집이 절로 떠오른다. 물론 이것은 할아버지 할머니 인형을 비롯해 강아지, 닭, 새 인형들까지 공연 첫 장면에서 충분히 사실적으로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단지 단발적인 이미지에서 풍기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참좋다>는 여유롭고 한가로우며 소박한 정서를 세심하게 무대에 되살려 놓았다.


사진제공: 춘천시립인형극단

그것은 느릿느릿 움직이는 할아버지 인형 몸짓에서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소탈하게 웃는 할머니 인형 움직임에서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것이다. 첫 공연이어서 간혹 타이밍이 잘 안 맞는 지점들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참좋다>는 풍부한 정서를 만드는 인형극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가 친근하게 느끼는 무엇이다. 실제로 고향 시골집이 없더라도 익숙하게 알고 있으며 무의식중 그리워하는 무엇 말이다.

<참좋다> 인형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손녀 동물들까지 소박하며 특징을 살려낸 미술을 보여준다. 약간 거칠게 마감이 된 듯 하면서도 디테일 한 점들은 삭제하고 성격을 풍부하게 드러낸 모습들이다. 전반적으로 정감 있고 익살스러운 모습들이다.

연극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혼자 남겨진 할아버지를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본다. 할머니 죽음은 살아 있을 때와 죽음 이후를 겹쳐놓으며 다소 모호하게 처리한다. 인형극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의 압축적 상상력으로 다가왔다. 혼자 남은 할아버지는 어느 날 방송에 나온 교회 벽화를 보기 위해 처음으로 할머니와 살던 집을 떠나 어린 시절을 보낸 지역으로 여행을 떠난다. 할아버지의 특별한 여행을 작품은 애니메이션 영상으로 표현한다.

스케치로 윤곽을 거칠게 그려진 그림 영상은 만일 살아 있는 배우에서 영상 이미지로 넘어갔더라면 이질감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할아버지 인형에서 넘어 간 스케치 그림은 자연스럽게 이미지가 전환되며 애니메이션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무대에 인형이 존재하는 방식과 그것의 변화에 대한 질문이 생기는 지점이다. 애니메이션은 다양한 시공간을 표현하는 기능을 하며, 서사를 압축한다. 전통적인 인형극에서 나름대로 기술과의 결합을 꾀하고 있는 장면으로, 이러한 전환이 비교적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사진제공: 춘천시립인형극단

배우들은 인형조종자로서 때로는 인형이 돋보이도록 존재를 지우거나 혹은 배우로서 감정을 충분히 드러내며 인형과 동시에 존재하는 존재감을 표현하기도 한다. 연기 톤은 전반적으로 일관된 편이었지만, 때로 지나치게 개인이 드러나며 호흡과 리듬이 어긋나며 앙상블이 깨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공연 횟수가 늘어나며 관객과 만나는 경험이 더해진다면, 보완될 수 있는 지점이라 생각한다.

전반부 중반부에 비해 이야기 결말은 다소 약하게 다가온다. 교회 벽화가 할아버지가 어린 시절 그렸던 그림이란 사실이 밝혀지며, 할아버지 짧은 여행은 끝이 난다. <참좋다>는 박완서의 원작 소설을 인형극으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 인형극으로 만듦으로써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톺아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장면 구석구석 뜯어본다면 부족해 보이거나 기발함 혹은 반전의 색다른 상상력에 대해 아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을 놓치지 않아 반가운 인형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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