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성폭력, 그 야만의 시대

극단 적 <4분 12초>

우수진(연극평론가)

극단 적의 연출인 이곤과 번역/드라마터그인 마정화, 그리고 K아트 플래닛의 권연순 PD는 <단편소설집>(2016), <네더>(2017), <말피>(2018) 등과 같이 흥미로운 번역극을 소개해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오래간만에 영국의 재능있는 젊은 극작가인 제임스 프리츠의 문제 작인 <4분 12초>를 소극장 공유에서 공연했다. 2014년 초연되어 평단의 주목을 받았던 이 작품은 영리하면서도 감각적으로 짜인 드라마 구조와 동시대적인 문제의식으로 우리 관객의 눈길을 충분히 사로잡았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잭은 부유하지 않은 동네에서 부모의 지원을 받으며 사립학교를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 모범생이다. 잭은 자신의 집에서 여자친구인 카라와 섹스를 하며 동영상을 찍었는데, 어느날 그것이 뜻하지 않게 온라인에 유포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잭은 분노한 카라의 오빠에게 폭행을 당하는 등 심각한 곤경에 처한다.

드라마는 신선하면서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일단 주인 공인 잭이 정작 무대 위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잭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등장인물들의 듀올로그(duologue), 즉 잭의 부모인 다이와 데이빗의 대화를 중심으로 하여 중간중간 삽입되는 잭의 여자친구인 카라와 다이의 대화, 그리고 잭의 친구이자 카라를 짝사랑했던 닉과 다이의 대화를 통해 전해진다. 따라서 무대 위에는 시종일관 두 명의 등장인물만 존재하게 되는데, 이런 방식의 장면 구성은 관극의 몰입도를 극대화하는 데 기여했다.

첫 장면은 데이빗과 다이가 잭의 피묻은 셔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잭이 처한 상황에 대해 전혀 모르는 다이와 모든걸 다 알고 있는 데이빗의 대화를 통해 드라마는 앞으로 전진해 나가면서 동시에 마치 <오이디푸스왕>처럼 감추어졌던 과거의 사실 들을 흥미진진하면서도 긴장감 있게 하나씩 하나씩 드러낸다. 잭과 카라의 섹스는 합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강간에 가까운 것이었으며, 동영상을 맨처음 업로드했던 사람은 잭의 예상과 달리 친구 닉이 아니라 아버지 데이빗이었다.

이 모든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잭의 명문대 입학 사실을 전하면서 끝나는 연극은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아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하지만 결말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아주 뻔하지만은 않은 윤리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초반에 다이는 엄마로서 어쩌면 당연하게도 아들에 대해 거의 맹목에 가까운 믿음을 보이지만, 거의 모든 사실을 파악한 후에는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데이빗이 잭의 장래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며 그녀의 제안에 반대하자, 대신에 그녀는 카라에게 그녀의 오빠와 아버지가 허용가능한 범위 안에서 잭을 사적으로 처벌해줄 것을 제안한다. 물론 카라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고전과 현대를 넘나들며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는 이곤 연출은 지난 8월에 공연했던 <햄릿의 비극>에 이어 이번 <4분 12초>를 통해 자신의 색깔을 점점 확실하게 만들어 나가고 있다. 그동안의 작업들은 상대적으로 희곡 밀착적인 연출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등장인물 들의 내면 내지는 의식의 흐름에 따라 재구성되었던 <햄릿의 비극>에서는 배우들의 신체나 오브제 등을 상징적인 방식으로 활용하면서 무대 위에서 시적으로 형상화했다. 그리고 이번 공연에서는 작은 무대를 효율적이면서도 밀도있게 그리고 다각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드라마성이 강한 작품에 연극성을 더했다.

여기에 정영의 무대와 성미림의 조명이 잘 어우러지면서 시너지 효과를 냈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함께 작업을 계속해 왔다. 그리고 최근에는 <마른대지>나 <깐느로 가는 길>, <어린잎은 나란히> 등을 통해 그간에 축적해온 파트너십의 성과를 좀 더 성공적이면서도 분명하게 가시화시키고 있다.

소극장 공유는 별도의 장치를 하거나 소품을 놓기에 그 무대가 좁으며, 그리하여 기본적으로 빈공간으로 사용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대신에 무대 뒤편과 양 옆에 두 줄씩 천장과 바닥을 세로로 잇는 24개의 LED 바(bar)를 설치하여 시공간의 변화를 주었다. 이들 LED 바는 장면에 따라 다양한 조합으로 꺼졌다 켜지면서 잭네 집, 거리, 닉이 일하는 바 등등 다양한 공간들을 만들어냈으며 물리적으로 작은 무대공간을 감각적으로 확장시켰다. 동시에 LED 바는 특유의 차가운 조명으로 공간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최근에 본 작품들 중에서 가장 심플하면서도 가장 역동적이었던 무대였다.

듀올로그 중심으로 전개되는 드라마는 관객들로 하여금 확실히 등장인물들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배우들의 연기는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큰 비중을 차지하며 결과적으로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우선 민정희 배우는 전반적으로 차분한 연기로, 아들로 인해 자칫 감정적으로 과잉될 수 있었던 엄마 다이 역할을 이성적으로 견인하면서 동시에 윤리성의 끈을 아주 놓치지 않은 인물로 연기했다. 그리고 낮으면서도 빠른 템포로 주고받는 대사로 대화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장면들에 리듬감을 더했다.

남수현 배우는 극단 놀땅의 작품들에서와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표면상 이 작품은 잭의 잘못과 그로 인해 발생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하지만, 그 심급에는 근본적으로 데이빗의 잘못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평소 첼시라는 남성 중심의 축구동호회 인터넷 사이트에 드나들며 회원들이 게시하는 부적절한 내용의 이미지와 동영상을 은밀하게 즐겨왔다. 그러한 인터넷 사이트는 타자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나 인권 같은 개념이 아예 부재하는 폭력적인 범죄의 공간으로, 데이빗은 이곳에 아들의 섹스 동영상을 말 그대로 자랑삼아 업로드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어떤 결과를 야기할지도 예측하지 못했다. 사후에도 그는 자신과 아이를 위해 잘못을 감추기에 급급했다는 점에서 파렴치하고 윤리적으로 무감각한 인물이었는 데, 남수현 배우는 그러한 데이빗을 한 아이의 아버지이기 이전에 도처에 만연해있는 사이버 범죄에 한순간에 빠지기 쉬운 성인 남성의 일반으로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다만 조심스러운 점은 카라가 잭의 잘못을 공적으로 묻지 않고 잭은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는 과정이다. 이 작품은 남성을 가해자로 하고 여성을 피해자로 하는 성폭력 범죄의 일반적인 구도를 토대로 하는데, 그렇기에 이 같은 결말은 다이와 데이빗의 가족 이기주의와 결합되어 남성 가해자가 자칫 사회적인 상수로 보이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잭이 공적 처벌을 면하게 된 데에는 성적 차이보다 계층적 차이의 문제가 더 크게 작용했다. 카라의 아버지와 오빠는 술집에서 죽치고 있는 알코올중독의 깡패 같은 인물로 극중에서 폄하적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이러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카라는 자신이 경찰에 신고한다고 해도 사회적으로 충분히 보호받지 못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다이를 압도하듯 당당한 카라의 모습은 그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이었지만 그녀를 비롯하여 사회적 사각지대에 놓인 성폭력 피해 여성들의 계층 문제를 극중에서 상대적으로 약화시켰다.

* 본 내용은 <한국연극> 2022년 1월호 기사를 재수록한 글입니다.

* 사진: 극단 적 ⓒ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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