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광주에 있었습니다

_오판진

사진 제공: 푸른연극마을

극단 푸른연극마을의 <고백>은 류강이 쓰고, 이당금이 연출한 작품으로 5.18기념재단이 후원하여 대학로 스타시티 7층 후암씨어터에서 공연되었다. 관람하러 가던 날 공연장 입구에는 5.18 관련 사진과 시, 당시 시민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인형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인형들은 시위에 참여한 광주시민들이 호소하는 장면이나 주먹밥을 나눠주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여기에 더하여 극단에서는 5.18 당시 시민들이 만들어 먹었던 그 주먹밥을 실제로 만들어서 관람을 위해 입장하는 관객들에게 나눠주었다. 공연을 위해 세심하게 준비를 많이 한 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사진제공: 푸른연극마을

이 공연에는 아버지(이정하)와 딸(이영은)이 등장하는데, 처음 대목에서 아버지는 중소기업 사장으로 전우회 동지의 책 출간 소식을 듣고 불편한 기색을 보인다. 딸은 연극배우인데, 공연 제작을 위해 광주로 현장답사를 떠난다. 딸 영은이 광주 만호반점을 찾아갔는데, 그곳 사장 강만호 씨는 연극배우 영은을 딸로 착각한다. 강만호의 회상 장면이 이어지고, 42년 전 5월, 소박한 꿈을 꾸며 살던 사람들이 지산유원지로 소풍을 계획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소풍을 나온 만호반점 식구들(만호와 그의 딸 혜숙, 그리고 구두닦이 영수, 버스 안내양 민정, 중국집 배달부 봉식)은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을 만나게 되고, 겨우 목숨을 구해 식당으로 도망쳐 온다. 여기서 다시 현재로 돌아오면서 영은은 자신이 조사한 광주의 정서와 감정을 연극으로 표현하는 데 그녀의 아버지 이정하는 그것을 보고 마음이 크게 흔들리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시 과거 만호반점 장면으로 돌아가는데, 그곳 식구들은 광주에 투입된 군인들이 시민들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희생시키는 것을 보고 큰 혼란에 빠진다. 다시 현재에서 영은은 아버지가 방위 출신이 아니며, 광주와 관련된 군인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다시 광주 만호반점을 찾아간다. 거기서 만호 아저씨를 만나 그를 이해하게 되며, 현재와 과거를 잇는 실마리를 얻게 된다. 1980년 금남로에서 만호의 딸 혜숙은 군인들에게 무참히 짓밟히다 사라지고, 민정과 봉식도 사라진다. 혼자 남은 만호는 사라진 딸과 젊은이들을 찾아 미친 사람처럼 돌아다닌다. 영은은 아버지 이정하가 진정으로 참회하는 연극을 만들기로 작정하고, 이정하는 딸이 만든 연극을 보면서 1980년 광주에서 저지른 과오를 생각하며 고통을 느낀다. 마지막 장면의 장소는 망월 묘역인데, 만호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꾸었던 꿈을 기억하고, 계엄군이었던 이정하는 42년 만에 망월동 무명 열사 묘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한다.

사진제공: 푸른연극마을

공연의 배경을 살펴보면, 시간적 배경은 2022년 현재와 1980년 과거가 번갈아 교차하고, 공간적 배경은 2022년 광주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와 1980년 광주가 반복된다. 시간과 공간을 통해 현재 광주가 아닌 곳과 42년 전 광주를 연결함으로써 5.18을 바라보는 현재 우리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즉, 5.18은 역사 속에 박제화된 과거가 아니라 현재 우리가 풀어야 할 중대한 숙제이며, 대충 덮고 잊으면 되는 일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1980년 당시 계엄군과 그들에게 희생당한 광주시민은 물론 그들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현재의 우리 모두, 5.18 진실규명에 함께해야 한다는 사실을 무대 위에 형상화된 인물들을 통해 감동적으로 보여주었다.

사진제공: 푸른연극마을

2022년 올해는 5.18 민주화운동 42주기가 되는 해이다. 시간도 많이 흘렀고, 게다가 작년에 전두환과 노태우가 고백이나 사과 없이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5.18에 관한 기억은 더욱 퇴색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연된 연극 <고백>이 갖는 의미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우선은 자신이 광주에서 계엄군 신분으로 명령을 받아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희생시켰다는 고백을 연극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물론 이런 내용은 현실 속에서 한두 명의 계엄군이 양심고백을 하는 사실을 바탕으로 하였다. 비록 높은 지위의 군인이 고백하고 사과한 것은 아니지만, 용서를 논하고 미래를 열어갈 실마리가 될 수 있어 의미가 있다. 둘째로 2022년의 젊은 청춘들이 1980년의 젊은 청춘들을 잊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실제로 이 공연을 본 20대의 관객들이 공연의 내용에 공감하여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 사회 교과서에 5.18 관련 내용이 들어있어서 우리나라 모든 학생이 공부하고 있다. 물론 성인 관객들은 이 공연의 취지에 매우 동의하고 엄청난 성원을 보내는 모습을 공연장에서 보여주었다. 마치 유명한 뮤지컬 배우가 출연하는 공연의 커튼콜 때처럼 공연이 끝난 후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와 함께 환호가 끝없이 이어졌다. 근래 보지 못한 관객들의 폭발적인 호응이었고, 이런 반응과 소통을 통해 <고백> 공연이 성공적으로 완성되었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이 공연이 오래 이어져서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동시에 민주시민의 의식 형성에도 기여하길 기대한다.

이 공연은 아름다운 꽃들이 아름답게 피는 5월에 꽃놀이만 하러 갈 것이 아니라 현재와 같은 자유와 풍요의 바탕이 된 5.18을 기억하고, 당시에 꽃피우지 못한 민주주의를 지금 이곳에서 이루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성찰하게 한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라는 말이 팸플릿 뒷장에 적혀있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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