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사물의 중력>
창작공간 자기만의 방; 손은지, 안창현 창작
윤서현(공연과이론을위한모임)
‘사물’은 단순히 물건이 아니라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존재’ 모두를 지칭하는 단어로 식물이나 인간까지도 전부 포함한다. 즉 서로 경계 지워져 있던 모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신촌문화발전소 창작과정지원의 일환으로 재공연된 <사물의 중력>은 사물들이 서로에게 가닿게 된 경험과 그 의미를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이다. 무대는 한 개인이 옛 기억을 떠올리는 가장 사적인 공간이 되기도 하고, 사물과 사물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접촉의 공간이 되기도 하며, 사연을 지닌 사물들이 유영하는 기억의 저장소이기도 하다.
무대 위에 등장하는 손은지, 안창현 창작자도 사물이다. 두 창작자는 어떤 두 인물의 만남과 헤어짐을 장면화하기도 하지만 저마다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특정한 사물에 깃든 자신만의 추억을 직접 설명하는 내레이터이기도 하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사물들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무척이나 애틋하고 조심스럽다. 이들이 형형색색의 양말이나 반려식물, 오래 전 구입한 바이올린, 투박한 나무의자, 지인들의 말투가 묻어나는 편지, 산티아고의 순례 길을 함께 한 주황색 배낭 등을 통해 오직 한번뿐이었던 매 순간의 소중함을 떠올리는 동안 관객들의 마음속에도 자신이 관계 맺은 사물과 그 사물에 얽힌 추억들이 스쳐지나 갔으리라.
사람이 어떤 대상에 끌리는 마음은 그 스스로의 말과 행동을 통해 쉽게 표현될 수 있다. 그러니 아무래도 이 작품의 관건은 사람이 아닌 사물이 다른 사물에게 끌리는 현상을 표현하는 데 있다고 해야 할 것인데, 이를 묘사하기 위한 창작진의 고심이 장면 곳곳에서 드러난다. 사람이 아닌 사물들의 갈망은 이 사물들 표면의 경계가 서로 닿을 수 있도록 조명과 사물, 사물과 무대 벽면 혹은 천장 사이의 거리를 조절한 그림자 장면으로 탄생한다. 특히 손은지 창작자가 바이올린으로 단순한 선율을 담담히 연주하는 동안 멀리 떨어져있던 반려식물의 그림자가 점점 커져 결국에는 마치 창작자의 그림자에게 그늘이라도 만들어 주는 양 거대한 나무만큼 커지는 장면이 뭉클한 감동을 남긴다. 반려식물 뾱뾱이가 자신에게 매일 물을 주는 사람과, 그 사람의 서툰 바이올린 연주에 응답하는 이 장면은 음악과 식물 발육의 관계를 수치화한 여느 과학 학술지의 논문 이상의 경이로움을 전한다. 무대 뒷벽을 거의 덮을 정도로 거대해진 스탠드 그림자와 나무 의자 그림자가 빛의 방향에 따라 자전하듯 회전하며 만나는 장면도 마찬가지이다. 에피소드 내 혹은 에피소드 간에 적절히 삽입된 음악들이 내러티브를 강화시키고 관객의 감정을 인도한다.
우주를 부유하는 사물들의 모습을 제한된 공간 위에 펼쳐내는 상상력 또한 이 작품을 감각적으로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우주는 작은 원형 LED 조명 안 깊은 어두움 속에서 천천히 자전하는 사물들을 통해서, 우주선 창문처럼 사용된 무대 벽 두 개의 동그라미 무늬 안에 투사된 우주 영상 속에서, 창작자들이 수동으로 동작시키는 1미터짜리 우주인 모형의 느린 움직임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시각화된다. 두 창작자의 숙련된 손놀림으로 우주인의 동작과 시선은 생명을 얻는다. 특히 이 우주인 모형은 1미터짜리 이외에도 그보다 훨씬 더 작은 손바닥만한 크기의 모형까지 두 가지 종류가 사용되는데(무대 벽에 투사되는 우주인 영상까지 생각하면 세 가지) 그 종류에 따라 대상에 대한 관객의 거리가 조정되어 장면 전환에 따라 상이한 시점을 제공하게 된다. 자기 몸보다 조금 작은 라디오 옆에 앉아 주파수를 돌려가며 고개를 까딱이거나 넓은 공간을 향해 솟아오르는 우주인의 모습 속에서 지난 기억을 탐색하는 개개인의 모습이 보인다. <사물의 중력>에는 나의 시선과 관심이 만들어낸 그 어떤 기억도, 우리가 서로에게 남긴 그 어떤 흔적도 소멸되지 않는다는 믿음이 스며있다.
피날레. 작은 수조 속 토양에 심어놓은 붉은 장미 한 송이가 녹색의 수소풍선 끝에 매달려 어두운 우주-무대 위를 부유한다. 그 유명한 장미가 자신에게 흔적을 남긴 왕자를 찾아 나선 것일까. 창작진의 고심에도 불구하고 이 장면이 더욱 유연하게 제시되지 못한 점은 아쉽다. 하지만 장미의 무게, 수소풍선의 크기, 대형 선풍기의 출력 모든 것이 합을 이루어야 하는 것은 물론, 바람에 따른 풍선의 이동 방향까지가 고려되어야 하는, 연출하기 쉽지 않은 장면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가끔씩이나마 이 모든 복잡한 조건들이 맞아떨어져 장미가 제법 높이까지 날아올라 떠다니는 짧은 순간들이 발생하기도 했는데 이내 다시 아래로 내려앉는 장미가 안타까웠던지 관객석 사이에서는 작은 탄식이 들려오기도 한다.
장미가 떠오르길 기다리는 꽤나 긴 시간. 모두가 장미를 응원하고 있었다. 거기에 어떤 의지가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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