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맹> 리뷰
배선애(연극평론가)
다양한 연극을 계속 보다 보면 간혹 첫 장면만 보고도 전체를 알 수 있을 때가 있다. 더 나아가 잘 만든 작품인지 아닌지도 판단될 때가 있는데, 극단 코너스톤의 <맹>(오영진 원작, 이철희 각색․연출, 예술공간 혜화, 2022년 10월 20일~30일)이 그런 작품이었다.
공연이 시작될 때, 극장 로비에서부터 배우들이 입으로 다양한 악기 소리를 내며 등장하는 앞놀이는 흥겨운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기능에 충실했고, 전반적인 형식이 마당놀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장면이 마치 끝인 듯 배우들은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앉는 것을 보며 앞놀이에 모든 것을 불태울 일인가 싶어 웃음이 나왔다. 주목되었던 것은 한바탕 흥겨웠던 앞놀이 이후 이어진 장면이었다. 최선을 다했던 앞놀이 때문에 배우들의 가쁜 숨소리만 남아있는 무대 한가운데로 맹진사가 들어온다. 작품의 본격적인 첫 장면인 셈이다. 홀로 말 타는 동작을 하고 있던 맹진사가 갑자기 자신이 타고 있는 당나귀와 대화를 하면서 이름을 부른다. “조나단.” 그걸 듣고는 큰 웃음과 함께 나도 모르게, “와, 대박!”이 튀어나왔다. 각색의 방향과 목적, 형식 등을 모두 설명하는 대사였기 때문이다.
<맹>은 오영진의 <맹진사댁 경사>를 재창작한 작품이다. 우리나라 연극사의 대표 희극인 이 작품은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다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어리석음을 풍자하고 있다. 이 작품을 이철희 연출이 각색했다. 이철희 연출이 누구인가. 피터 셰퍼의 <에쿠우스>를 패러디한 <닭쿠우스>를 통해 말이 가진 신비로움을 닭의 친근함으로 바꾸어 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세종시 개발을 앞둔 조치원으로 옮겨와 한바탕 뜨거움을 던진 <조치원 해문이>로 상도 받았고, 올해는 이현화 작가의 <불가불가>를 2022년에 맞추어 다른 색깔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전이라고 이름 붙은 작품들을 자신만의 철학과 방법으로 비틀어내는 재주가 여간 아닌 연출이 이철희 연출이다.
패러디와 재창작의 지향 또한 분명한데, 소위 ‘B급’의 정서와 분위기가 바로 그것이다. 절대 고급지지 않기에 일상어가 가득하고, 우아하지 않기에 어떤 동작이든 마음껏 할 수 있으며, 세련됨을 벗어나기에 충청도 사투리를 질펀하게 구사할 수 있다. 거칠고 성글고 다듬어지지 않아서 어찌 보면 촌스럽고 저급해 보이는 B급을 지향하고 있기에 고전을 비튼 이철희 연출의 작품들은 쉬우면서도 웃기고, 가볍고, 우습고, 장난이 가득하다. 사느냐 죽느냐를 따지던 왕자 햄릿마저도 조치원에 사는 해문이가 되어 대간함을 토로하게 만든 이철희 연출이 이번에는 대놓고 희극인 <맹진사댁 경사>를 붙잡았다. 원래가 웃긴 작품을 어떻게 이철희식의 B급으로 만들어낼 것인가? 이 작품의 기대는 거기에 모아졌고, 이철희 연출은 그 기대를 아주 속 시원하게 충족시켰다.
“조나단”은 우선 원작의 배경이 된 시대와 언어에 집중하지 않겠다는, 그리고 충분히 현대적인 언어들을 구사하겠다는 방향성이 보이는 대사다. 그에 따라 인물들은 기본적으로는 충청도 사투리를 쓰고, 지금 우리 언어에서 흔히 사용하는 “브리핑”, “에어비앤비”, “KTX” 등 간간히 익숙한 영어도 사용한다. 언어를 조선 말기에서 현대로 가져오니 여러 가지가 편해졌다. 의상도 편해지고 분장도 편해졌으며, 관객과의 관계도 편해졌다. 노래장단에 얹혀 들리는 “곰발바닥, 개발바닥”, “삼성 비스포크, 엘지 디오스” 같은 대사는 그 뜬금없음에 실없는 웃음이 나오지만 그 덕분에 객석과 무대는 한결 친근해졌다. 언어로부터 시작된 이 친근함을 기반으로 마당놀이의 특징인 현대성이 알알이 들어와 박힌다. 미투와 블랙리스트 이후 달라진 연극 환경, 신분질서시대에는 가능했으나 현재는 위계에 의한 폭력이 된 여러 상황들, 하인의 신분임에도 ‘워라밸’을 추구하는 현상 등이 메타드라마의 형식으로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이것이 맥락상으로는 돌발이면서도 충분히 계산된 것이기에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집중하는 효과까지 낳았다.
전작들과 달리 이 작품은 마당놀이 형식을 취했다. 이철희 연출이 마당놀이를 운용하는 데에 힘을 얻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노래와 장단. 마당놀이는 기본적으로 텅 빈 마당에 우리 전통의 장단을 변주한 리듬이 중심이다. 배우들의 몸짓이 기본이고, 그들이 연주하고 노래하는 전통 장단을 통해 현실의 모순을 흥겹게 풀어내면서 그것을 관객들과 적극 공유하는 것이 마당놀이다. 따라서 음악적 부담이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는데, 판소리를 작창하는 능력을 갖춘 스태프들과의 협업이 성과를 이뤄냈다. 앞놀이에서 배우들이 신명나게 부르던 노래는 물론이고 갑분이와 입분이가 도라지를 캐면서 하는 노래도 전통 장단을 기반으로 새로 창작된 노래들이다. 그것을 훌륭하게 소화해낸 배우들의 역량도 돋보이지만, 이전에는 활용하지 않았던 장단과 가락, 리듬을 운용하게 된 이철희 연출의 역량이 한층 더 강화된 것을 증명하는 부분이었다.
이렇게 신나는 놀이판을 구상하다보면 어떻게 놀까 궁리하기에 바쁜데, <맹>에서의 이철희 연출은 놀이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놀이를 어느 지점에서 멈춰야 하는지도 함께 고민하고 있었다. 작품의 완급을 꽤나 노련하게 조절했다는 의미다. 전작에서는 쉽게 발견되지 않았던 ‘완급의 미학’이 이 작품에서 선명하게 인지되었던 것은 맹진사의 “5분” 때문이다. 미언의 발이 짝짝이(원작에서 미언에 대한 풍문은 다리를 저는 설정이지만 <맹>에서는 장애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반영해서 두 발 크기가 매우 다른 것으로 바꾸었다.)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맹진사는 모든 것을 잃은 듯 좌절하고 슬퍼한다. 원작에서는 그렇게 애통해하는 것이 장면으로 흘러가는데, <맹>에서의 맹진사는 이 사태를 수습하라는 식구들의 독촉에 “딱 5분만”을 요구하고 정말 그만큼이라고 느껴지는 시간 동안 무대 한가운데에 쪼그리고 앉아서 생각에 잠긴다. 모든 움직임이 멈춰진 5분인 것이다. 흥겹고 소란스러웠던 이전의 분위기, 맹진사가 자기 꾀에 넘어가서 망했다는 통쾌함이 느껴지는 절정의 순간에 맹진사에게만 집중하게 만든 멈춤. 향후 맹진사가 어떤 선택을 할지 관객의 집중을 최고조로 만든 장면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멈출 수 있지? 저절로 무릎을 쳤다. “와, 대박!” 맹진사의 5분은 이 작품의 백미였다.
이철희 연출이 한껏 놀 수 있었던 것은 배우들 덕분이다. 지적인 역할을 많이 연기하던 김은석 배우가 그렇게 가벼운 몸으로 불쌍하고 귀엽기까지 한 맹진사가 되었다는 신선한 재발견이 참 좋았고, 맹진사를 쥐락펴락하는 한씨 역의 곽성은 배우가 보여준 카리스마도 돋보였다. 털털하고 담백한 입분이를 보여준 최나라 배우도 인상적이었으며, 참봉을 연기한 정충구 배우의 한결 가벼워진 정서도 좋았고, 오우철 배우의 넉살맞은 연기도 좋았다. 소리와 노래를 옴팡지게 들려준 윤슬기 배우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무엇보다 재미있었던 것은 고병택 배우였다. 연출과 함께 배역에 대해 의논하면서 얼마나 재미있어 했을지 상상이 되는데, 다른 배우들은 대체로 한 역할을 연기했지만 고병택 배우는 맹진사의 숙부인 맹효원부터 사위가 될 김미언, 김미언에 대한 풍문을 퍼트린 김명정까지 여러 역할을 소화했다(외양간의 소도 되었다). 특히 김미언과 김명정이 같은 공간에 있는 장면에서는 흰색 머리카락 묶음을 손에 들고 그것을 머리에 대면 김미언, 떼면 김명정이 되는 놀라운 마술(?)을 보여주었다. 몇 가닥의 머리카락을 뗐다 붙였다하면서 순간순간 다른 인물로 전환될 수 있었던 것은 <맹>이 연극이기 때문이다. 연극의 즐거움을 실천한 고병택 배우의 연기였다.
자기 꾀에 넘어가 입분이를 결혼시킨 맹진사는 그대로 좌절하지 않는다. 조나단을 타고 다시 달려 나간다. 이러한 결말도 흥미롭다. 원작에서는 무남독녀 외동딸 갑분이의 결혼 실패로, 희극이라는 성격에 어울리지 않게, 인생을 다 잃은 것 같은 상실과 절망으로 끝나지만 <맹>에서의 맹진사는 절대 절망하지 않는다. 더 좋은 신분을 가질 수 있게, 더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 수 있게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실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결말은 지극히 현대적이다. 입분이의 결혼을 통해 맹진사 스스로 뭔가의 각성을 기대했던 원작은 과거의 감수성이다. 요즘은 악착같이, 있는 사람들이 더 악착같이 더 가지려 하고 유지하려고 한다. 인간의 욕심을 풍자한 원작의 의도를 더욱 더 강화한 결말이다. 공연 내내 유쾌하게 웃으면서도 마지막 장면의 맹진사와 조나단이 섬뜩했던 건 그 눈빛이 지독히 현실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연극은 놀이다. 참 간단하고 쉬운 것 같은데 실천하기는 정말 어려운 명제. 이철희 연출은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를 너무 잘 알고 있는 연출이다. 거기에 노래와 장단이 덧붙여졌고 완급을 조절할 줄 아는 감각도 강화되었다. 점점 더 연극으로 제대로 놀 줄 아는 연출이 되어 가고 있다. 또한 고전은 이렇게 비틀고 뒤집고 헤치고 새로 쓰면서 더 강한 생명을 얻는다. 고전의 존재의미와 가치를 연극적으로 보여주는 이철희 연출의 행보도 함께 주목되는 이유다.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유쾌하게 비틀어줄지, 그 비틀기를 통해 어떤 현실을 풍자할지 여러모로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무엇보다 <맹> 재공연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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