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와 치유를 위한 가족서사

(사)극단현장 <반추>(차근호 작/고능석 연출) &
극단 은행나무 <우리 멧돼지가 나오는 집으로 갈까요?>(윤미현 작/연출)

글_조훈성 (연극평론가)

1. 화해와 치유를 위한 가족서사

가족이야기를 다룬 연극 작품은 우리 가까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가족’의 무대 구성은 분명 개개의 다른 이야기 과정을 가지고 있으나 결국, ‘가족’의 상처 치유, 공동체 회복이라는 메시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우리 사회가 다문화 시대에 가족해체의 문제에 직면했기 때문에 이러한 작품들 역시 전통적인 혈연 중심의 가족 관계의 해체에서 출발하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또 이를 출발점으로 가족의 변화된 의미와 역할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해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견고한 성채와도 같은 가족의 의미나 가치가 쉽사리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 4월7일, 진주연극페스티벌 개막작으로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된 <반추>(차근호 작/고능석 연출)나 4월8일, 삼일로창고극장에서 만난 <우리 멧돼지가 나오는 집으로 갈까요?>(윤미현 작/연출)는 바로 이러한 가족의 의미와 가치를 되돌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반추> 사진 제공: (사)극단현장

먼저 <반추>는 약관의 나이에 소설 ‘반추’를 발표한 이래 문단을 대표하는 소설가인 ‘오문길’과 그의 가족이야기다. 그는 40년간 순수문학 소설가의 위명으로 독자들에게 찬사와 존경을 받는 존재지만, 가족들은 그의 권위적이고 독단적인 성격 때문에 많은 상처를 받았다. 그러한 문길이 치매에 걸렸다는 소식과 함께 그의 대표소설 ‘반추’를 다시 쓰는 것을 돕는 게 병세를 조금이나마 완화시킨다고 하여 가족들은 갈등의 골을 뒤로하고 한자리에 모이게 되고 가족들은 ‘반추’라는 제목처럼, 지나온 삶에 대해 다시 되돌아보게 되고 각자의 삶을 이해하면서 상처를 치유하고자 한다는 내용이다. 대극장의 넓은 무대를 횡적으로 서재, 거실, 마당으로 분할하여 각 공간은 오문길의 세계, 가족 공유지로 나누어 연출한다. 이러한 평면적 장소성은 가족이란 이름 뒤의 이면과 인물 내면의 감정, 정서를 들여다볼 수 있는 의도적 배치이기도 하다.

<우리 멧돼지가 나오는 집으로 갈까요?> 사진 제공: 극단 은행나무

<우리 멧돼지가 나오는 집으로 갈까요?>(*이하 ‘<우.멧.나>’)는 <반추>와는 다른 극적 분위기를 갖는다. 죽음만이 희망인 사람들의 이야기, ‘간병 살인’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가족사를 다룬 이 작품은 환자 가족의 ‘돌봄노동’을 매우 리얼하게 다루고 있다. 극중 현준의 아빠는 20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중증치매를 앓고 있는데, 그는 집에 멧돼지, 노루궁뎅이가 나타나는 환청에 시달리고, 현준 엄마에 이어 현준도 삶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간병에 지쳐가고 결국은 간병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다. 작품 속, ‘멧돼지’와 ‘노루’가 가지는 내재적 의미야말로 이 연극의 특별한 작가의식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현준 씨네’라는 한 발짝 떨어진 시각에서 타자화된 그 고통의 무대화는 인물이 갖는 슬픔, 분노, 절망 등에 대한 정서를 보다 더 섬뜩하게 관찰하게 한다. 삼일로 창고극장의 작은 공간에서 출입구 좌우에 객석을 배치하고 현준의 집안을 중심으로 옛집, 거리, 병원, 경양식당, 지하철역 등의 장면배경은 영상을 활용하여 무대 공간을 확장시킨다.

2. 가족의 역할 가면: 용서와 구원의 정서

극단 현장의 <반추>나 극단 은행나무의 <우.멧.나> 모두 가족관계에 대한 물음에서 ‘가족’의 의미와 그 속에서 억압당해온 구성원의 내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 시선을 갖는다. 가족의 이야기는 일상적 가족의 삶에 균열과 틈새가 발견되거나, 고통의 한계치에 봉착했을 때, 또는 가족을 구성하거나 재편해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행위에서 연극적으로 구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곧 가족이야기를 구성하는 무대는 당연히 수행되는 일련의 의식적 행위의 유비적 관계에서 가족정체성의 변화와 그 정서를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극중에서 ‘오문길’의 가족이나 ‘현중’의 가족은 ‘아버지’의 이상행동에서 자식으로서, 또 배우자로서, 시작된 ‘돌봄 노동’이라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또 그 돌봄은 자의적 선택이 아닌 전통적인 가족관계에서의 종속적인 의무감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아버지’, 즉 환자의 죽음으로서 비로소 용서와 구원이라는 나의 해방이 완성된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는 각 작품이 전혀 다른 가족사 국면이지만 ‘가족의 죽음’이 유일한 희망이자, 탈출구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바라봐진다. 이는 각 작품이 갖는 주제 의도와는 별개로 우리 가족의 자화상, 본면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면서, 동시대적 가족의 사회문제를 각 작품이 갖는 특유의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내거나, 비극적 정황을 우회하지 않고 밀도감 있게 풀어내면서 아버지라는 ‘괴물’에 대한 인식을 서로 다른 시선에서 풀어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작품들을 통해 전통적 가족의 해체와 새로운 가족정체성의 변화를 확인하고 그 가족관계의 균열 국면에서 가족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엿볼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반추> 사진 제공: (사)극단현장

<우.멧.나>나 <반추>에서 돌봄으로 인한 고통의 무대화는 사뭇 다르게 형상화되지만 고통의 순간을 무대로 소환하여 억압당한 자아의 분노, 절망을 드러내는 각 인물의 감정의 전달은 결국 무대를 경험한 관객들의 정서적 태도에 따라 소통의 공감대는 달라진다. 각 작품은 억압당해왔던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거나 그 변모된 모습은 전혀 상반되게 그려진다. 그러나 그 어떤 작품도 가족이라는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인식 하에서 ‘가족중심주의’라는 이 폭력적인 가족이데올로기가 해체될 수 있는 방법을 제대로 전달해내지는 못하고 있다. 가족이야기를 드라마 형식에 의지할 경우, 가족구성원 간이든 또는 가족구성원과 현실사회의 제도든 경직된 이분법적 도식에 갇힐 수밖에 없다. 극중 인물의 갈등을 만들어내기 위해 보호와 희생의 대상으로서 대립항이 만들어지고, 비일상적 사건의 재현을 통해 극적으로 화해하고 가족관계를 긍정하는 결말을 갖거나(*<반추>) 간병 살인과 같은 파국을 통해 가족의 해체를 선언해(*<우.멧.나>)버리는 등의 작품 구성은 기존의 가족관계를 제대로 극복해내지 못한다는 점은 구태하게 보인다.

3. 가족의 회복 또는 해체

<우리 멧돼지가 나오는 집으로 갈까요?> 사진 제공: 극단 은행나무

가족 연극에서는 유난히 ‘장례식’을 치르는 장면을 많이 만난다. 그러한 애도의 장에서 함께 모인 가족들은 여전히 ‘가족애’에 대한 집착과 그 회복에 벗어나지 못한다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하게 바라볼 점은 공통의 ‘대립항’이 사라지고 난 후의 ‘가족’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오늘날의 우리 ‘가족’이 갖는 가족관계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우.멧.나>의 비극처럼 무대 위 리얼리티가 불편할수록 관객은 기존 가족관계에 내재한 위선적이고 허위적인 가족의 역할과 그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내 앞의 가족이야기에 대한 공감은 전통적인 규범으로 규정된 가족관계를 다시금 새겨볼 수 있게 한다. 가족의 회복이든 해체든, 가족에 대한 과거 기억, 회상을 통해 현재로 소환된 과거는 결국 나란히 병존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화해 없는 가족이야기는 없다’는 말처럼, 끊임없는 이 작은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노력, 그 헌신과 희생 속에서의 갈등과 번민을 정서화 하려는 노력은 끊임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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