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수 <띨뿌리>

글_ 김건표(대경대 교수, 연극평론가)

 

‘띨뿌리’는 경기도 화성의 지명이다. 미군들의 포격 사격장(1953~‘2005)이었던 ‘매향리’의 도로명이다. 서해 바닷길을 잇는 구비 섬과 농도 섬은 한국전쟁부터 총탄과 폭격 훈련 표적이 되었다. 전쟁이 삼켜 버린 병사처럼 구비 섬은 형체가 사라졌고 농도 섬은 부상병처럼 뼈대만 남기고 살점은 민둥 섬이 되어 버렸다. 서해 밀물과 썰물로 떠밀려 온 탄환들은 바지락이 되었고 반세기 동안 폭격 소리에 시달리던 마을 주민들은 매향리 생태 평화마을이 들어서기 전까지 오폭 사고로 매향리는 반세기 동안 전쟁통이었다. 외상후스트레스나 불안장애로 인한 자살률도 늘었다. 연극 <띨뿌리> (김윤식 작, 구태환 연출)은 3남 1녀를 두고 이곳 매향리에서 살아가는 춘매 가족의 비극사(死)다. 서해와 섬으로 쏘아대는 총탄의 폭격 소리로 고장이 나버린 난청을 세우고 임신한 큰아들 정현(박완규 분)의 아내 미진(박초롱 분)을 향해 “포탄 소리 때문에 눈도 못 붙였갔구나. 잘 때는 귓바구에 솜뭉태기를 끼우구 자야 되노나 아이배면 더 기래야 된다고.” 이북 사투리를 쓰는 대사는 바지락을 캐며 살아가는 최북단 백령도 출신의 영락없는 할머니다.

 

사진 제공: 서울연극협회

 

국가폭력으로 사라져 간 매향리의 죽음과 삶의 향기

비극의 무대는 경기 화성군 매향(梅香)리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시간은 1988년 10월부터 2008년 10월까지이다. 장면은 바지락을 캐며 살아가는 춘매 가족의 삶과 미진과 선오의 죽음, 정오와 정현의 연좌제 사슬과 정보원 활동, 마을 청년들의 사격장 폐쇄 농성, 군인, 전경과의 대치, 정현의 죽음과 ‘생태평화마을’에서 살아가는 현재까지 그려내고 있다. 매향리에 생태공원은 반세기 동안 하늘을 날고 육지에서 쏘아대는 폭격의 굉음을 내던 미군의 ‘쿠니사격장’이 2005년(8월)에 폐쇄가 되면서 마을에는 매향이 퍼지기 시작했다. 작품 플롯을 견인하는 것은 월북한 외삼촌으로 인한 장남 정현의 연좌제의 사슬이다. 연좌제는 공식 기록으로는 1981년 3월25일에 폐지가 되었는데도 1988년도를 살아가는 정현은 그 역사의 쇠줄을 끊기 위해 국가권력의 정보원이 되었다. 매향리를 사람이 사는 마을로 되돌리기 위한 청년들의 사격장 폐쇄 농성에도 정현은 ‘쿠니사격장’을 아내 죽음의 대가로 받은 경비원으로서 지켜야 했고 미군의 눈치를 살피던 국가폭력의 피해자가 되었다. 두 번째 극 흐름의 설정은 춘매 가족의 연쇄적인 죽음이다. 정현의 아버지는 매향리 28명의 마을주민이 포탄의 연기로 사라진 것처럼 스스로 숨통을 끊었다. 임신한 정현의 아내는 비처럼 떨어지는 오폭과 불발탄으로 신발과 찢어진 옷가지만 남기고 인간의 형체(形體)는 폭탄으로 화장(火葬)되어 바다로 떠내려갔다. 막내 선오(박승희 분)도 정신병자가 되어 갓난아이가 사라져 버린 것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다.

 

작가는 매향리 죽음의 시간과 역사를 춘매 가족을 통해 투영하고 있는데도 작위적인 설정보다는 가족의 비극사는 연극적이면서도 다큐적인 현실감이 들었고 연좌제 빨갱이 프레임으로 국가와 정현을 묶는다. 사격장 폐쇄 농성, 포탄의 연기로 사라져가는 가족의 죽음, 반미투쟁과 친미주의 국가의 폭력성을 극으로 관통하며 극은 현실의 시간으로 되돌리며 몰입감을 높였다. 무대는 포탄 탄피와 바지락 망태를 실은 리어커를 녹슨 탄환을 싣고 들어서는 정현(박완규 분)의 장면으로 시작된다. 노모와 주고받는 대사는 매향리에서 장남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면서도 모성애 만큼은 뜨거운 영락없는 아들의 모습이고 운정(성노진 분)한테 ‘연좌제를 끊어 달라며 절규하는 장면’과 경비복을 입고 사격장으로 걸어 들어가 포탄의 연기로 사라져 버리는 죽음에서는 “역시 박완규” 할 정도로 배우가 극 중 인물로 현존(現存)할 수 있는 연기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경사진 무대의 배치는 때로는 구비 섬과 농도 섬으로, 바지락을 깨며 춘매 가족이 살아가는 삶의 땅으로, 국가폭력이 자행되던 남양동 대공분실의 타일의 벽과 쿠니사격장으로 전환되었고 무대에서 재현되는 인간이 사라져가는 매향리는 죽음의 바다다.

 

사진 제공: 서울연극협회

 

구태환의 미장센, 배우들의 연기

특히 이번 작품에서 연출의 감각적인 장면들이 보였는데, 구태환은 영상과 소리효과로 작품을 현실감 있게 표현했고 배우들은 매향리 주민들의 반세기 동안의 통증과 아픔을 삶의 내면으로 극 중 인물로 분했다. 특히 무대를 장악하는 전투기 소리와 폭격의 굉음은 마치 국가폭력이 인간을 향해 발포하는 것처럼 청각 효과를 극대화했다. 그 광란의 소리 틈으로 연기의 호흡을 올리고 내리며 춘매 가족들과 정현이 대화하는 장면은 배우의 존재가 무대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전달되고 표현되어야 하는지 연기적인 테크닉이 뛰어났다. 영상도 극의 오브제로 작동되었는데 연출은 영상연출의 질감을 국가의 폭력성으로 죽음을 삼키는 바다로, 때로는 바지락을 캐며 살아가는 잔잔한 물길의 갯벌로 영상을 그려냈다. 마치 영상은 때로는 잔인한 인간과 국가로, 평화로울 수 없는 매향리 마을로 상징시키며 내면에 다가서게 했다. 특히 연출의 미장센으로 승부를 건 장면은 정현의 죽음 장면이다. 무대 바닥은 사격장폐쇄 농성의 다큐멘터리적인 현장으로 치환되고 그 저항의 소리를 한 발짝씩 밟으며 포탄이 쏟아지는 농도 섬으로 걸어 들어가는 정현은 포탄의 굉음으로 솟아오르는 하얀 연기 사이로 사라져버린다. 죽음과 삶의 은유는 마치 반세기 동안 매향리의 향기가 포탄과 폭격의 폭력으로 사라져 버린 것처럼 이 장면에서 연출의 미장센은 연극연출가로서의 그동안 <나생문>, <심판>,<고곤의 선물>, <가족>,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 등 감각적인 연출을 보여온 승부사의 감각을 그대로 투영했다.

 

이번 작품은 매향리의 죽음과 통증의 아픈 역사를 그 마음으로 취재하고 희곡으로 옮겨 창작산실 대본공모(2021)에 선정된 <띨뿌리>의 사라져 가는 매향의 향기를 담담하게 그려내고 표현한 방식에 있고, 알려진 매향마을의 비극의 시간을 80년대 투박한 향도 연극으로 무대에서 박제되지 못하도록 살아있는 현재의 시간으로 되돌린 연출과 황세원, 박완규, 성노진 등과 배우들 역할이 컸다. 국가정보원 요원으로 추측되는 극 중 인물 운정이 더 사악한 인간이 될 수 없었던 것이 아쉬웠다. 일부 마을 청년과 가족들의 대화가 상, 하수 경사면 밖에서 이루어졌는데, 이 장면까지도 무대로 올렸으면 어땠을까. 마지막 장면에서는 죽은 자식들과 남편의 제사상을 차려놓고 평생 죽음을 마주하며 살아야 했던 노모 춘매의 기구한 매향리 운명이 투영하면서도 나무와 풀이 자라나지 않는 섬을 향해 “이제 저기에 떼가 나든?” 하는 노모의 희망 앞에 여전히 세계는 전쟁 중이고 죽음을 연기처럼 삼켜버리는 포탄의 굉음은 아직도 들리고 있다. 팸플릿 문장이 눈을 멈춰 세운다. “전쟁으로 인한 고통, 국가폭력은 어디까지 용인될 것인가. 국방이라는 성역 앞에서 국가폭력은 불가피한 것인가.” 100분 동안 연좌제 사슬에 묶여 국가폭력으로 자행된 매향리 한 가족의 비극에 전율이 흘렀고 매향리 주민들로 분한 배우들 연기에 눈은 뜨거워졌다. 70, 80세 극 중 인물 춘매로 분한 배우 황세원은 폭격 소리를 등지고 서해 갯벌을 파며 바지락으로 인생을 바친 노모의 연기는 부자연스러운 관절의 두 다리는 가윗자로 구부러지고 휘어져 있었다. 황세원의 연기가 정형화되어 있음에도 연극 <띨뿌리>에서는 한날 제사를 지내야 하는 춘매의 삶이자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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