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단 앙상블 <씨레네>

글_김충일(연극평론가)

 

연극은 형이상학적이고 존재의 원천을 발견하는 거울과도 같다. 자기 자신을 만나려면 ‘거울 속의 거울’인 무대를 들여다보아야 하는데, 그곳은 베일에 싸인 ‘언어사회적 미적존재’들이 뒤 엉켜 싸우는 ‘말잔치’의 마당이다. 혹 시가 진실을 찾아가는 미적 언어이고, 소설이 잡다한 일상의 삶을 정제시켜 보여주는 미적 이야기라면, 불협화음으로 가득 찬 세계에서 말 건네기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존재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고, 서로의 존재를 찾아가는 미적 언어의 앙상블이 춤추는 곳은 연극 무대이다. 그곳에선 결핍된 생의 시간을 견뎌내며 온몸으로 삶을 밀고 가려 애쓴 어떤 시인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다가 우리의 또 다른 생을 살고 있는 베일에 가려진 낯선 우리 자신을 찾아다니는 소설가로 이어진다. 급기야 무대 위에는 ‘우리 자신은 해석되지 않은 하나의 표지’를 찾으려는 베일에 가려진 언어무희(言語舞姬)들이 모여든다. 하여 우리 자신은 ‘거친 광야 끝을 넘어 위대한 새벽빛’을 찾아가는 공동체의 한 사람이 되어 연극 <씨레네>의 무대 속에 빠져들게 된다.

우선 이청준 원작 소설 <예언자>가 품고 있는 이야기를 송전 각색·연출의 무대예술로 풀어낸 연극, <씨레네>(12.07~09:한남대 서의필 홀)의 줄거리를 읽어보자. 1970년대 말 또는 현재의 서울 중산층 주거지역의 어느 평범한 지하 카페. 이 카페는 단골로 드나드는 동네 중년 남성들이 가끔씩 만나 세상일을 담소하며 술잔을 나누는 곳이다. 그 인사들 중 수석 수집이 취미인 시인 나우현은 종종 재미삼아 앞일을 예언하곤 하는데 그 확률은 거의 100%이다. 어느 날, 새 주인이 된 홍 마담은 카페이름을 <씨레네>로 바꾸고, 새로운 방식으로 경영하기 시작한다. 일정한 시간이 되면 카페 고객들에게 가면을 쓰게 하는 것이다. 처음에 어색해 하거나 거부하던 단골들은 새로운 풍습에 익숙해진다. 그 분위기에 편승하여 흥겨운 술자리를 만들어 간다. 어느 날부터 시인 나우현은 카페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 예언한다. 그러자 홍 마담과 나우현 사이에 불안감과 긴장이 생겨나 결국 살인사건은 일어나게 된다.

이청준이 소설 <예언자>를 썼던 배경은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며 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고 수많은 인사들을 투옥·상해·고문하며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유린하던 유신체제 시기였다. 작가에게 자유로운 비판의 목소리를 허용하지 않던 그 때, 작가는 이 상황에서 진행되는 권력과 피지배, 여론 조작과 우중화 정책, 새디즘과 매조키즘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려 한 듯하다. 그러나 송전 연출은 원작 소설 <예언자>를 희곡 <씨레네>로 각색하면서 2023년이란 ‘지금’을 곱씹어 분석하고, 비극적인 현실을 성찰함으로써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연극적 서사 전략을 구사한다. 이를 위해 작품 속에는 ‘시대를 초월한 상수(常數)인 지배-피지배의 인간관계’란 주제 언어를 배우들의 시대 풍자 대사를 통해 작품 전반에 배치시키고, 가면을 쓴 인간들이 던지는 사유의 비판적 질문을 이끌어낸다. 한편 연극을 보는 재미와 긴장감 속에 감동을 끌어내기 위해 유연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선율(線律)을 지닌 춤과 음악을 작품의 배면에 숨겨 두고 있다.

 

사진 제공: 극단 앙상블

 

이 작품은 일상에 숨어있는 폭력과 권력에 의한 인간의 억압에 대한 세밀한 디테일과 윤리적 실천의 구체적 스텝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무대 언어가 어떻게 길이 되고 지도가 되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특히 언어가 가장 비루해지고, 언어가 인간과 세상을 연결하기는커녕 불통(不通)과 분리를 조장하며, 울림과 떨림은 고사하고참을 수 없는 가벼움과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이때. <씨레네>속에서는 무엇보다 언어의 무한한 잠재력을 발굴해 내고 있다. 폭력과 억압의 관계로부터 벗어남이란 비젼을 구현하려는 사유하는 언어와 일상의 현상언어(카페 속의 대화)가 맛깔나게 어우러지는 언어의 대향연! 그 속에서 구사된 비유법과 반전의 유머는 무대를 빛내는 작은 보석이다.

소설 <예언자>의 각색자이기도 한 송전 연출은 괴이한 가면 공동체(카페: 씨레네)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통해 현대사회의 정신적 지배관계를 무대언어로 재탄생시키며 예술적 확장을 시도한다. 이를 위해 연출은 ‘살아있는 예술’임을 밝히는 가장 중요한 표시인 배우의 대사에 주목한다. 연극 속 배우들의 대사는 ‘말의 잔치’의 불꽃으로 점화되고 전소된다. 대사로 입혀지는 배우의 몸과 감정은 탈일상성, 탈재현의 형태로 변환 된다. 그 과정에서 무대에 전달되는 배우의 소리는 단순한 감정을 현혹하는 소리의 멜로디가 아닌, 진실을 깨트리고 분열되면서 실천적 행동을 추동하는 의미언어로 재생산된다. 이 때 배우의 몸속에 체현된 대사는 반복적인 말하기(조심해! 조심!), 대사의 운율과 리듬이 파괴된 소리치기(홍마담의 우덕주에 대한 채찍소리), 말의 혼선과 불통(예?, 판콘(파-놉-티-콘)이요? 팝콘이 왜요? 안주 부족하세요), 감정 교감의 일탈(마담이 여왕이 되도 좋아요. 마담은 우리를 편하게 해주니까), 일상대화의 행동의 불신(씨레네의 참혹과 유혹과 파멸을 위하여! 브라보!) 등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은 연출 작업은 <씨레네>의 실체를 담아내는 재현적 허구성으로 치장되어 삶과 인생을 이해시키는 ‘설득의 연극’으로 자리 잡으면서, ‘관객의 언어’로 탄생한다.

작품 속 ‘카페: 씨레네’에서는 ‘홍마담’이 정한 규칙과 지시에 따라, 손님과 주인, 여급 등 누구나 미리 정해진 ‘가면(假面)’에 익숙해지고, 그녀가 휘두르는 회초리에 복종하게 된다. 표정을 숨긴 가면은 익명성과 공격성을 부추기는 도구가 된다. 살인사건을 예고했던, 원래의 예언자 ‘나우현’은 ‘홍마담’ 앞에서 점차 힘을 잃다가 그 마지막에 드디어 혼자 가면을 벗은 얼굴로 나타난다. 홍마담의 심복이던 우덕주가 곰의 가면을 쓰고 위태롭게 그에게 다가간다. 그는 쾌락과 파멸의 시간 속에 숨겨진 ‘소외와 배제’의 가면놀이와 채찍 장난 속에서 ‘잃어버린 근본’을 되찾고자 노력한다. ‘수단껏 승리를 쟁취한 노예’ 쪽보다 웃으면서 패배한 자유인’ 쪽을 갈망한다. 나우현의 지울 수 없는 흔적인 자발적 죽음은, 우리가 인생에서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가를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인간 중심의 질서 확립을 위한 여백과 공백을 화두로 삼는 내적 여행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진정한 삶에 이를 수 있다. 그의 죽음은 “밝게 빛나는 어둠”, 촛불이란 역설의 무대언어로 압축된 ‘성찰의 연극’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다. 성찰은 삶의 피할 수 없는 어둠을 무의미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지 않고 진실의 빛으로 변화시킨다.

 

사진 제공: 극단 앙상블

 

특히 이 작품의 말 맛(nuance)을 역동적으로 연기해낸 홍마담의 ‘조심해, 조심 하라구, 난, 난 살인 안 해!’라는 채찍을 동반한 협박은 <씨레네>의 공동체에 “너 죽고 싶니!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죽여 버릴 거야!”에 다름 아니다. 이를 실현키 위한 상징적 행위는 홍마담의 쾌락과 성의 노예가 되어 버린 인간 가축 ‘우덕주’가 나우현에게 저지르는 살인으로 귀결된다. 이 행위는 ‘자유에 대한 근본적인 박탈과 폭력, 혹은 포획된 상태에 저항’하는 나우현에게 가해지는 최후의 벌(죽음)이다. 바로 여기서 인간 가축화에 맞선 나우현의 죽음은 “그래, 차라리 죽여라! 나는 자유로 살았고 자유로 죽을 테니”라는 함묵의 언어로 잦아들고 자신의 삶을 향유하고 사랑하는 것 옆에 있으려면 우리는 자유로워야 한다는 울림의 함성으로 솟구치고 있다. 마지막 무대는 나우현의 주검 옆에 흰회색의 빛나는 십자가가 짙은 조명으로 그려지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노란색 촛불을 든 씨레네 공동체 구성원들은 모두 마주 손잡고 함께를 상징하는 원형의 춤으로 마무리 된다.

작품 <씨레네>는 이청준의 <예언자>에 대한 무대화된 미적 유희이며, 무대 위에 뿌려진 또 하나의 언어이다. 인간의 의식 속엔 ‘자유의 꿈’을 담고 있는 우물이 있고, 아직 길어 올리지 못한 신비한 언어의 샘물이 있다. 내 안에 잠복 하고 있는 ‘자유의 샘’을 찾아서 우물의 봉인을 풀고 물을 길어 마시듯 작품을 만들어낸 송전 연출. 사실 이 작품이 울퉁불퉁하게 태어난 보잘 것 없는 길가 돌멩이일지도 혹은 고통을 이겨낸 쾌(快)의 잘 익은 빨간 사과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씨레네>는 보이지 않는 폭력의 세계를 되비추는 거울이며 상처받고 억압된 세계에서 이루지 못한 ‘지배 질서의 해체’를 희원하는 사람들의 잠자리를 포근하게 덮어주는 꿈 이불로 자리매김 한다.

1977년 작가 이청준에 의해 소설 <예언자>가 태어났고, 지금은 고인이 된 김용관 연출가에 의해 1999년 극단 금강에서 연극 <예언자>로 초연되었다. 그 후 24년이 지난 2023년 원로예술인공연지원사업 선정 작품 <씨레네>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이에 앞서 11월 10일 장흥 군민회관에서는 사단법인 이청준 기념 사업회(이사장: 정과리)가 주최하고 장흥군과 장흥문화원이 후원한 ‘이청준 문학제’에서의 극단 앙상블의 <낭독극: 씨레네> 공연으로 이어진다, 대본을 먼저 읽고 따뜻한 배려와 통찰력 있는 포스터의 표지화를 그린 김선두 화백, 현대 예술의 미니멀리즘을 구현한 단순하면서도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복층 무대디자인을 맡아 준 김억중 건축가. 불편한 시대정신을 품어 안은 의미심장한 선율을 뽑아낸 정상홍, 이홍래 교수. 이와 같은 문화예술인들의 도움은 우의적 풍자극 <씨레네>로 새롭게 태어나는 밑거름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작품의 완성을 위한 79일의 먼 여행길을 마친 대전 예술인과 극단 앙상블 단원들에게 관극의 동반자가 될 수 있었음에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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