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8회 늘푸른연극제 <누구세요?>

글_양세라

 

얼마전 연극 <누구세요?>(박승원 연출, 20214.1.24~28)는 ‘늘푸른연극제’에서 공연되었다. 8회째 진행된 ‘늘푸른연극제’는 원로연극인 가운데 한국 연극사에 기여도가 높은 극작가, 연출가와 배우 외 연극인들을 선정, 그들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연극제다. 이번 연극제에 선정된 극작가인 이현화의 여러 작품 가운데 <누구세요?>가 서강대학교 메리홀 소극장에서 상연되었다. 그간 이현화 작가의 다수 작품 가운데 <누구세요?> 공연을 보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극장을 방문하기 전 ‘늘푸른연극제’에서 이현화의 초기 작품을 공연하며, ‘현재 시점에서 재해석한 작품 세계’를 보여줄 예정이라는 홍보를 접하며 기대감이 생겼다. 그러나 필자는 재해석보다는 ‘늘푸른 연극제’의 취지에 비춰볼 때, 원로 극작가인 이현화의 희곡에 경의(敬意)를 표할 수 있는 무대화와 연출에 초점을 맞춘 듯한 인상을 받았다. <누구세요?> 공연을 안내하는 팸플릿과 다수의 텍스트에서 1970년대 한국사회를 살고 있는 개인의 의식/무의식적 본성의 세계를 보여주는 극으로 소개하는 것은 그런 분위기를 반증한다. 그런 점에서 연극제에서 공식적으로 이 작품은 극 중 두 쌍의 남녀는 1970년대를 대표하는 개인으로, 이들의 극적 행동이 ‘현실에서 겪은 부조리와 폭력, 억압이 이들을 어떻게 변모시키는지 보여주는’ 극으로 표현된 박제된 시대상을 본 듯했다. 필자는 작가 이현화에 의해 은유적으로 주어진 극적 상황에서 과거와 현재의 착종상태가 발견되는 지점을 근거로 해석적 개입과 무한히 변주되는 해석의 연쇄로 무대화의 가능성을 기대하면서 공연에 대한 인상을 기술해 본다.

 

사진 제공: (사)한국연극협회

 

해프닝을 가장한 역할 놀이극

공연은 암전된 무대에서 울리는 전화벨소리로 시작되었다. 이 소리는 빈 공간의 쓸쓸함과 소통부재를 알리는 듯했고, 급기야 이 사물에게서 신경질적인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받을 때까지 울리고 말겠다는 듯 극장을 가득 채우며 공연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누구세요?> 공연은 등장인물 없이 빈 공간을 가득 메우던 신경질적인 전화벨 소리로 서막(序幕)을 열었다.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을 것 같았던 빈 아파트에 집주인인 듯 여자와 남자가 시간차를 두고 들어오는 1경에서 관객은 각자 이들이 만나는 상대가 있고 그들과 통화를 나누다 마주치는 상황을 예상하게 된다. 특히 여자가 남자의 등장에 놀라 베란다 커튼 뒤로 숨어 남자를 훔쳐보는 여자의 행동은 마치, 남편의 외도와 거짓을 확인하고 그 뒤에 일어날 파국을 예상할 수 있을 듯했다. 여기까지 오면, 마치 이 극적 상황은 TV드라마의 희극적 단막극 장면처럼 대중적인 서사를 예상하게 된다. 그러나 아파트에 함께 거주하는 부부처럼 보이던 이 둘이 서로에게 누구냐고 되묻는 순간 예상 밖의 상황이 연출된다.

전화벨 소리가 사라진 무대에는 계획보다 미리 집으로 돌아온 여자와 남자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각자 배우자의 부재 안에서 자유롭고 편안한 듯 행동했다. 이들은 전화기로만 자신을 드러낸다. 통화 중 자신들의 이중생활을 떠들어 대며 관객에게 몇 가지 정보를 제공한다. 각자 남편과 아내가 아닌 다른 정부(情夫/婦)와 여행을 다녀왔고, 이 두 사람은 남녀만 다를 뿐 각자 배우자와 관계를 권태로워하며, 의무적인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을. 이들의 대화를 통해 남자와 여자는 배우자를 속이고 아파트 밖에서 자유롭고 욕망에 충실하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었다. 이처럼 이들이 전화기 너머 남자와 여자에게 각각 자신의 속내와 욕망을 드러내며 통화하는 장면은 여자와 남자 순서만 다를 뿐, 동일하게 반복된다.

아파트의 주인이라 주장하는 <누구세요?>의 여자와 남자의 반복적인 대화 속에는 지금 우리의 현실도 중첩된다. 관객의 눈에는 남편과 아내인 것이 분명해 보이는 여자와 남자 두 사람은 관객의 습관적 이해를 비웃듯이 서로에게 “누구세요?”라고 질문하며 연극의 갈등과 사건이 예상 밖으로 전개된다. 이들은 서로 자기 집이라며 집주인을 주장하며 같은 공간에서 논쟁을 벌이다 성적 가학과 피학의 관계에 이르고, 아무 일 없듯이 부부행세를 하다가 다시 다른 사람과 부부놀이를 하는데, 이들의 관계는 비현실적이며 때로는 누군가의 망상 같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자기가 주인임을 주장하는 방식은 경찰, 합법을 내세우며, 그리고 알 수 없는 각자의 배우자의 존재이다. 그러나 여자와 남자 각자 전화로 확인한 배우자의 일정은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이를 통해 두 사람의 부부 관계가 위선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처럼 자신을 해명하고 사실을 확인할수록, 자신들의 위태로운 일상이 밝혀진다.

‘누구세요’를 반복하는 여자 남자 두 등장인물의 대화가 거듭될수록 상황은 요원(遙遠)하다. 이를 표현하는 등장인물들의 발화가 반복과 대구를 이루는 방식과 구조적으로 갇힌 듯한 인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반복 구조 속에서 부조리극의 대표적인 작품인 <누구세요?>는 한국 현대사 안에서 현대인을 희화하는 듯도 하다. 여자와 남자가 서로 아파트의 주거인이자 소유주임을 주장하며 나누는 대화는 일방적 통보, 협박, 위협을 말하며, 이들이 사용하는 대화에는 경찰서, 자수, 주거침입, 형법, 정신병원 등의 언어를 사용하는 각자 자신의 주장만 하는 일방적 소통이었다. 그래서 여자와 남자가 아파트 주거인이자 소유주를 주장하며 시비를 가리는 장면은 서막의 전화벨 소리가 신경질을 부리는 것처럼 왕왕거리는 무의미한 기계소음 같은 인상을 던진다.

이 연극은 분명히 부부인 듯 보이는 남녀가 부부가 아니며, 부부의 공간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대화와 갈등의 난장(亂場)이 급기야 폭력과 가학으로 뒤엉킨 부부의 욕망을 재현했다. 이 재현은 현실에서 부부로 가장하는 역할극의 외피, 액자를 갖는다. 집주인임을 주장하는 남자와 여자의 갈등에 개입하던 705호 이웃의 부부 또한 위태로운 부부관계가 드러나고, 705호의 아내가 출장에서 돌아온 남자의 아내로 등장하며 이 연극은 부부의 허상과 욕망을 재현한 부부역할극 놀이처럼 장난스러운 부조리극이다. 이 마지막 장면을 통해 결국 쳇바퀴 돌 듯 멈추지 않는 역할극, 이 가장과 위선의 순환이 계속될 것이라는 예언, 저주처럼 연극은 끝났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젊은 세대들이 더 결혼하지 않을 이유가 늘었구나.

 

사진 제공: (사)한국연극협회

 

탐욕과 욕망의 공간, 아파트

서강대 메리홀 극장의 소극장에 재현된 <누구세요?> 극 공간은 관객석에서 볼 때 사실적으로 아파트의 내부를 재현하는데 충실한 인상을 받았다. 불안과 욕망이 극대화되는 부조리극의 정서를 기대하며, 극장에서 마주한 무대공간은 원작 희곡을 충실하게 그대로 재현한 듯하여, 부부의 전형적 갈등이 재현되는 단순한 극처럼 보였다. 그래서인지 이 공연에서 상징적인 오브제들의 미학적 기능이 약해지는 느낌도 있었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아파트를 재현한 것처럼 회색벽면을 강조한 내부공간에 소파와 식탁, 냉장고 욕실, 출입구, 거실 베란다 창과 커튼 공간이 있고, 극공간인 아파트의 여주인이자 소유주인 여자를 연결하는 오브제인 빨간 플라스틱 장바구니와 여자와 남자가 부부관계임을 연결하는 오브제 꽃병이 그러했다. 남자가 집어든 작은 칼과 705호 남자A의 권총의 미학적 기능은 희미해졌지만, 어수선한 희극적 감각으로 남성의 불안과 폭력이 표현되는 장면은 미세하게 즐거웠다. 그러나 먼저 아파트에 들어온 여자가 벗어놓은 옷과 가죽벨트, 이 벨트로 남자의 가학성을 자극하며, 여성을 폭력적으로 짓누르는 욕망의 망상이 본 공연이 줄곧 놀이처럼 표현되는 미학적 방식의 진로를 벗어난 듯 느껴졌다.

아파트는 줄곧 비와 천둥소리에 둘러싸여, 1경부터 5경의 태풍을 지나면, 6경은 폭풍우가 그친 맑은 날처럼 재현된다. 6경이 시작되면 여자가 그동안 멎어 있었던 벽시계에 밥을 주고 시간을 맞추고 있고 남자와 여자는 원래 계획대로 출장과 외출에서 돌아온 다음 주 월요일의 평이한 일상을 재현한다. 앞 장면까지 몰아쳤던 비바람이 멈추고 날이 갠 것처럼, 여자와 남자는 5경에서의 끔찍한 일을 전혀 겪지 않은 사람처럼 행동한다. 다시 관객들은 6경에서 이 둘의 관계와 앞서 재현된 과정과 장면에 대하여 의심 혹은 상상하게 된다. 뒤이어 남자가 등장하면서 이들이 부부의 역할극을 하는 놀이를 하는 듯 바라보게 된다. 5경까지만 해도 서로 모르는 사이였고, 남자는 여자를 폭력적으로 대했는데, 6경에서는 부부가 되어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가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자는 모르는 남자가 집에 와서 자기 집이라고 우겼다는 이야기를 한다. 여자는 장을 보러 나가고, 여자가 나가자마자 남자는 705호에 전화를 건다. 하지만 전화를 받지 않고 이후 남자가 목욕을 하러 들어간다. 그 사이 누군가 층계를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발소리는 문 앞에서 멎고, 열쇠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는데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장바구니를 든 여자A다. 이전까지 있던 여자가 들고나간 그 장바구니를 들고 705호 이웃여자가 들어온 것이다. 이 여자는 욕실 앞에서 남편을 부르는 아내처럼 원래 안주인 듯이 남자를 부르고 곧 남자가 나온다. 마지막 장면에서 처음에는 모르는 사이였던 남자와 여자A가 서로 ‘여보’라고 부르며 부부 관계임을 보여주며 암전된다.

생각해보면, 애초 첫 장면에서 남자와 여자가 아파트에서 전화통화로 재현한 상황을 지켜본 관객들은 다시 이들이 남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부부라고 판단하게 된다. 따라서 이들이 모르는 남처럼 여자와 남자가 집의 소유자인지를 주장하던 상황은 이혼을 다투는 부부들의 역할극을 하는 것 같았다. 이 부부의 위선과 일상의 위태로움은 여자와 남자의 대화 보다 무대 위 행동에서 강렬하게 드러난다. 여자가 여행에서 돌아와 벗어던진 옷들은 그녀의 위선이며, 남자가 떠들어댄 악어백과 샤넬처럼 그녀의 실체를 가렸던 것이다. 또 남편은 아내를 혐오하는 잠재의식을 타인이라고 여긴 여자에게 지껄이다 억눌렀던 욕망을 가학적으로 드러내며 성적 폭력을 암시하는 행동을 한다. 그래서 마지막 6경은 이 연극에서 섬광처럼 짧지만, 이 부부의 현실, 실제상황인 듯이 보인다. 이미 5개의 장면에서 관객이 마주한 이 두 사람의 논쟁과 욕망을 본 뒤라, 집안을 청소하는 평범한 주부의 복장으로 벽시계 태엽을 감는 아내와 출장의 피로를 드러내며 무겁게 늘어진 가방을 들고 퇴근한 남편의 모습에서 평범한 개인의 일상의 위선을 목도하게 된다. 그리고 생각해 본다. 일상의 위선과 억압된 욕망의 기제는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이 이중의 삶을 사는 것인지. 공연에서 이렇게 자기 소유를 주장하고 욕망을 분출하는 이 공간은 비바람과 태풍을 막아주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탐욕의 대상으로 강화될 수 있다.

아파트 안에 사는 타인들은 매우 유사한 형식의 공간에서 산다. 마치 복제된 존재들처럼 복제된 공산품 같은 공간에 사는 현대인들이다. 실제로 유사한 출입 현관과 문 때문에 타인의 집 앞에서 당황한 경험이나, 타인이 현관출입문을 열고 들어오려 시도하는 공포스러운 방문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 공연에서도 705호 남자가 보인 행동이기도 하다.

<누구세요?>에서 1970년대 아파트와 지금 관객에게 익숙한 아파트는 욕망의 기호로서 그 두께가 매우 다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관객이 경험하고 이해하는 아파트 공간이 이 공연에서 욕망의 기호로서 적극적으로 표현되지 않고 희곡에 기대어 욕망의 장소로서만 충실하게 재현된 점은 아쉽다. 여자가 커튼 뒤로 숨어 남자를 훔쳐보며 상황을 살피는 장면은 관음증적인 시선으로 상황과 사태를 지켜보는 태도가 반영되어있다. 마치 남자의 아내처럼 보여서 그 행동의 이유를 알듯했지만, 이처럼 아파트를 구조적으로 잘 표현한 장면이어서 같은 내부에서 방관하듯 훔쳐보고, 주시하고 감시하는 태도가 가능한 공간이라는 것이 인상적으로 연기되었다.

 

사진 제공: (사)한국연극협회

 

시간을 붙잡으며 질문하기, 누구세요?

이제 극장을 나서며, 떠오르는 질문과 의문들을 기술해보겠다. 부부의 역할극 놀이, 이 놀이는 진지한 순간을 주었는가? 좁은 무대에서 이 놀이는 관객의 여론과 교감하여 나름의 변증법적 순간이 있었는가. 관객의 적막. 이 공연에서 폭발한 욕망은 과연 우리시대 사회적 동의를 자극하여 여자와 남자, 아파트, 결혼에 숨은 탐욕과 욕망을 반영했는가. 그래서 관객집단을 꿈이나, 두려움, 불안, 욕망의 다른 일상의 모습과 대입할 수 있었는지. 즉, 일상에서 억압된 욕구를 연극의 역할극 놀이 상황 속에서 완화 혹은 쾌감이나 불쾌감을 거침없이 외부로 표출해 볼 수 있었는지, 이런 물음표가 자꾸만 떠오르는 공연이었다. 여자를 연기했던 김도연 배우가 남자의 평범한 아내의 모습으로 벽시계 태엽을 감는 장면은 마치 요즘 유행하는 타임워프 장면처럼 보였다. 앞서 장면들로 돌아가고자 혹은 그 반대의 의도로 태엽을 감고 증발하는 여자, 그 자리를 메우듯이 나타나는 705호 여자A. 그래서 이 마지막 장면이 오히려 이 연극이 시작되는 진짜 서막처럼 무대화되었다면 하고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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