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수레무대 <곰 + 릴레이 곰>, <청혼 + 챌린지 청혼>

글_오판진(연극평론가)

 

극단 수레무대는 2024년 9월 23일과 24일 강화문예회관에서 안톤 체호프의 <곰>과 <청혼>을 각색하여 무대에 올렸다. 이 두 공연의 원작은 사실주의 형식의 소극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많은 연극인이 공연하는 희곡이다.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는 청소년을 주요 관객으로 설정하여 배우들의 움직임과 다중 배역을 통해 더 많은 볼거리를 선사하였다. 김태용 연출과 극단 수레무대 배우와 스태프가 선택한 이번 공연의 콘셉트가 아주 선명했고 진취적이어서 청소년 관객은 물론이고, 어른 관객들까지도 색다르고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었다. 사실주의 형식의 공연을 먼저 보여주고 나서 ‘릴레이’나 ‘챌린지’ 스타일로 변주한 공연을 보여주기 때문에, 앞 작품을 관람하면서 내용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졌고, 두 번째 변주된 공연을 볼 때는 새로운 형식의 공연을 더욱 즐기면서 관람할 수 있었다.

 

사진 제공: 극단 수레무대

 

릴레이하듯 같은 배역을 맡은 여러 배우가 이어서 또는 함께 연기하기

전체 공연은 <곰>과 <릴레이 곰>이 전반부와 후반부로 바로 이어지는 체계를 갖추었다. 전반부에서는 사실주의 형식의 소극 <곰>을 보여주었고, 후반부 <릴레이 곰>에서는 방금 앞에서 관람했던 <곰>의 배역을 여러 배우가 맡는 방식의 새로운 연출 스타일로 변주하였다. 즉, <릴레이 곰>은 안톤 체호프가 1888년에 쓴 사실주의 소극 <곰>을 극단 수레무대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각색한 작품이었다. 이어달리기 경주에서 선수들이 이어서 달리듯이 같은 배역을 맡은 여러 배우가 이어서 또는 함께 출연하여 연기하였기에 전에 경험하지 못한 독특한 느낌이 들었다. 결국 관객들은 같은 내용의 공연을 <곰>과 <릴레이 곰> 두 가지 스타일로 볼 수 있었는데, 두 공연이 서로 대조가 되어 더욱 몰입하여 흥미롭게 즐길 수 있었다. 같은 배역이지만 다른 배우가 그 역할을 연기할 때 매우 다른 분위기와 느낌이 전달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검은 드레스와 면사포를 쓴 전형적인 미망인 콘셉트로 등장한 배우가 있는가 하면, 다른 장면에서는 검은 가죽옷을 입은 도발적인 스타일의 배우가 등장하기도 한다. 세 명의 여자 배우는 서로 다른 장면에 등장하여 서로 다른 미망인 캐릭터로 분위기와 태도 측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미망인 배역을 하는 세 배우의 의상과 캐릭터가 서로 달라서 그것을 견주어 보는 재미도 컸다. 그리고 이들이 서로 다른 조합으로 둘씩 등장하여 같은 장면의 대사를 하거나, 세 사람이 한꺼번에 등장하여 함께 대사를 함으로써 미망인 캐릭터에 관한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이전까지 보지 못한 독창적인 연출 스타일이어서 매우 신선했고, 새로운 연기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남성 캐릭터인 젊은 지주 또한 세 명의 배우가 등장하여 서로 다른 스타일로 변주되었다. 같은 배역이지만, 다른 배우가 등장하여 서로 다른 분장과 의상으로 연기하기에 그 차이를 비교하는 게 매우 흥미로웠다. 마치 독창이었던 것이 중창, 삼중창으로 변주되는 것처럼 이전에 보지 못했던 연출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관객들은 기존 관습을 버리고 과감하게 새로움을 시도하는 것에서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또한 두 배우가 서로 다투는 것과 견주어서 여섯 명의 배우가 두 팀으로 나누어서 서로 싸우기에 더욱 강한 대립과 갈등의 정서를 체감할 수 있었다. 즉, 사랑을 시작하는 것과 깊어지는 갈등이 대립하는 상반된 감정이 이런 연출을 통해 더욱 증폭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분노와 애정이 동시에 작동하는 이 공연의 격정적인 정서는 극단 수레무대의 새로운 도전을 통해 무대 위에서 극대화되었고, 객석의 관객들은 엄청난 박수로 호응하였다.

안톤 체호프가 쓴 <곰>의 줄거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젊은 미망인 뽀뽀바(엘레나 이바노프나 뽀뽀바)는 7개월 전에 남편이 죽었다. 그런데 그녀는 남편을 잊지 못하고 외출도 하지 않은 채 죽은 것처럼 생활하고 있었다. 나이 든 경험 많은 하인 루까가 뽀뽀바에게 죽은 남편은 잊고 새출발하라고 조언해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육군 포병 퇴역 중위이자 젊은 지주인 스미르노프(그리고리 스쩨빠노바치 스미르노프)가 미망인을 찾아와 죽은 남편에게 받아야 할 돈 있었다면서 오늘 달라고 했다. 스미르노프는 뽀뽀바의 남편이 말에게 먹일 귀리를 사간 후 돈을 갚지 않았고, 오늘 당장 돈을 받아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뽀뽀바는 오늘은 결코 줄 수 없다고 말하면서 두 사람은 실랑이하게 된다. 그러다가 미망인은 젊은 지주에게 “당신은 포악한 곰이야”라고 모욕하는 말을 하게 된다. 두 사람의 말싸움은 파국에 이르게 되고, 마침내 권총 결투를 하기로 한다. 그러나 젊은 지주는 미망인과 싸우는 사이에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고 고백까지 하게 된다. 뽀뽀바는 젊은 지주의 마음을 받아주면서 키스하고, 막이 내려갔다.

극단 수레무대에선 이번 공연을 ‘청소년 요일 레파토리 in 강화도’라고 하여, 청소년을 위한 공연을 표방하였다. 그렇지만, 청소년은 물론이고, 다른 연령층의 관객들까지도 모두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공연으로 만들었다. 청소년을 주요 대상으로 설정하면서 더욱 새롭고 다채로운 공연을 만들려고 노력하다 보니 공연의 콘셉트나 배우들의 연기까지 모두 생동감 넘치는 작품이 되어, 이렇게 좋은 반응이 나온 것이다.

 

사진 제공: 극단 수레무대

 

스펙터클한 움직임 공연으로 탄생한 체호프의 <청혼>

안톤 체호프의 소극 <청혼>은 희곡 텍스트에서 인간이 모순적인 존재라는 것을 웃음으로 승화하여 보여준다. 극단 수레무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 온 이 희곡도 전혀 다른 두 가지 스타일로 연출하여 무대 위에 올렸다. 먼저, <청혼>은 사실주의 양식의 공연으로 연출하였고, <챌린지 청혼>은 여러 유형의 새로운 움직임을 활용하여 스펙터클하게 연출하였다. 즉, <첼린지 청혼>에서 선택한 연출의 콘셉트는 요즘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움직임이라 할 수 있는 숏폼 챌린지, 밈, 마임, 슬로우 모션과 같은 것을 과감하게 활용한 것이었다.

가령, 슬로우 모션을 적절하게 사용한 장면을 찾아보면, 나탈리아와 이반의 싸움 대목을 들 수 있다. 둘이 서로 고함을 지르면서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장면에서 상대방을 바라보며, 화가 난 표정과 몸짓으로 극단적인 적개심과 분노를 표현할 때, 마치 사진처럼 멈추었다가 다시 천천히 움직이고, 다시 멈추기를 반복한다. 이때 배경 음악으로 러시아의 가요 ‘백학’을 배치하였다. ‘백학’은 1995년 방영된 드라마 모래시계의 OST로 사용되어 우리나라에서 유명해진 노래다. 중후한 음색이 매우 매력적인데, 가사의 의미나 노래의 취지를 생각하면 더욱 무거워져 비장한 장송곡으로도 들린다. 이런 노래를 이 장면의 배경 음악으로 사용하여 두 남녀의 어처구니없는 극단적인 감정의 대립을 희화화하는 데 성공한다. 매우 탁월하고 영리한 연출이었다고 판단된다.

다음으로 숏폼 챌린지와 밈의 사용에 관해 살펴보면, 청혼하려고 온 청년과 그 대상이 된 여인과 그녀의 아버지가 함께 격렬하게 논쟁하는 장면을 들 수 있다. 서로 심하게 다투던 세 사람이 난데없이 함께 동작까지 맞춰가며 춤을 춘다. 35세 날씬한 남녀와 60대 뚱뚱한 남자로 분장한 배우들이 요즘 유행하는 숏폼 챌린지나 밈에서 볼 수 있는 움직임을 동작까지 맞춰서 단체 무용단처럼 보여준다. 인도 발리우드 영화처럼 그렇게 한 대목을 연출함으로써 상반된 감정적인 갈등을 웃음의 정서로 승화한다. 이 공연에서 추구하는 바가 다툼이나 갈등의 정서가 아니라 함께하는 즐거움과 행복의 정서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나타냈다. 우리 삶이 힘들고 끝없는 오해와 갈등으로 이어질지라도 결국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존이라는 메시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연출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공연은 관객에게 슬프고 무거운 이야기를 꼭 사실주의 비극 스타일로만 연출하라는 법이 있느냐고 반문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더욱 수준 높으면서도 깊이 있는 연극 미학을 고민하고 추구한 공연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체호프가 쓴 <청혼>의 줄거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노총각 이반 바실리이치 로모프가 노처녀 나탈리아 스테파노브나에게 청혼하러 그녀의 집을 찾아왔다. 그는 나탈리아의 아버지 스테파노비치 츄브코프를 만나서 방문한 이유를 말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매우 기쁜 마음으로 청혼을 받아들였고, 딸을 만나도록 해 준다. 그런데 나탈리아는 이반이 청혼하러 왔다는 사실을 모르고, 그와 대화를 나누다가 어느 사이에 심한 말다툼을 하게 된다. 자작나무 숲과 늪 사이에 있는 목초지의 소유권이 서로 자기 집에 있다고 싸웠고, 자기 집 개가 상대방의 개보다 더 훌륭하다고 서로 다퉜다. 마침내 노총각이 화를 내면서 집을 나가버리지만, 노처녀는 그가 청혼하러 왔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다시 불러들여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된다.

 

사진 제공: 극단 수레무대

 

극단 수레무대 배우들은 대도시가 아닌 농촌으로 가서 농부로 생활하면서 연극을 만들고 있다. 일명 ‘농부연극인’이라 할 수 있는데, 도시의 연극인들이 다양한 부업을 하면서 연극을 하는 것과 견주어 매우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지역에서 연극을 한다는 공간의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이면서 연극인으로 생활하는 것은 또 다른 시도이고, 주목할 만한 부분이어서 앞으로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이 극단 배우들은 연기할 때 호흡이나 발성, 발음부터 매우 크고 자신감이 넘치면서도 섬세해서 독특했다. 5년 전 강화에 온 그들은 연극에서 연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연출님의 연극 철학을 바탕으로 연기 훈련을 끊임없이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배우들은 육성으로 핀마이크 없이도 대극장 공연을 잘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극단 수레무대는 연기부터 극단 경영까지 많은 부분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었다. 이 극단 구성원들의 지칠 줄 모르는 끈기와 노력에 큰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대학로의 여러 연극인이 극단 수레무대의 행보를 늘 주시해 왔고, 지금도 지켜보고 있다. 극단 수레무대는 내년쯤 대학로에서도 이번 작품들을 공연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극단의 공연이 더욱 성장한 모습으로 대학로에서 막을 올리는 그날, 많은 관객이 함께할 수 있기를 바라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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