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라이브러리컴퍼니 <사운드 인사이드>

글_주하영(공연비평가)

 

연극으로 쓰는 소설은 가능할까? 소설을 연극으로 각색하는 경우나 연극에서 소설을 창작하는 과정 혹은 글쓰기 자체를 다루는 작품들은 많다. 하지만 소설의 내레이션을 연극으로 가져와 처음부터 끝까지 누군가의 소설이 쓰이는 과정을, 현실과 허구가 중첩되며 경계를 흐리고, 무엇이 진실인지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알기 어려운 혼란을 독자(관객)에게 느끼도록 만드는 연극은 가능할까?

 

제74회 토니어워즈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고,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연극 <사운드 인사이드(The Sound Inside)>는 소설가로 시작했으나 연극의 매력에 푹 빠져들어 지속적인 작품 활동을 이어온 작가 ‘아담 랩(Adam Rapp)’의 서술 형식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외로움과 연결, 언어의 힘”1)을 탐구하는 연극 <사운드 인사이드>는 예일대 문예창작과 교수의 ‘독백(monologue)’으로 시작하지만, 소설 작법에 관한 수업을 듣는 학생이 찾아오면서 독자(관객)를 향해 진술되는 3인칭 서술의 ‘방백’과 인물 간의 ‘대화’, 이야기 속 이야기의 내용 전달 등으로 복잡하면서도 흥미로운 층위가 펼쳐진다.

 

사진 제공: 라이브러리컴퍼니

 

라이브러리컴퍼니는 2018년 윌리엄스타운 연극제에서 초연되고, 2019년 가을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해 관객과 평단을 사로잡은 연극 <사운드 인사이드>의 국내 초연을 선보였다. 한국 소극장 뮤지컬의 브로드웨이 진출이라는 성과를 이뤄낸 뮤지컬 <어쩌다 해피엔딩>의 작가인 박천휴의 연출 데뷔작이기도 한 <사운드 인사이드>는 그가 직접 2019년 브로드웨이 공연을 보고 제작사에 추천한 작품이라고 한다. 번역 또한 박천휴 연출이 맡았는데, 프로그램북 인터뷰에서 그는 <사운드 인사이드>의 특별한 점에 관해, “캐릭터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일종의 일기” 혹은 “관객을 독자라고 여기고 쓰는 소설”과 같은 측면이 있고, “배우와 관객이 직접 연결되고 있다는 짜릿한 경험”을 선사한다고 말했다.2)

 

연극 <사운드 인사이드>는 기본적으로 단편 소설 두 권과 장편소설 한 권을 쓴 작가이자 예일대에서 10년간 재직해 온 50대 초반의 여교수 ‘벨라 리 베어드(Bella Lee Baird)’가 독백으로 전달하는 자신의 이야기이자, 자신의 수업을 듣는 1학년 남학생 ‘크리스토퍼(Christopher Dunn)’와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크리스토퍼가 써 내려가는 『눈 덮인 들판에 서서』라는 중편소설이 있고, 벨라가 30대 후반에 쓴 『벽을 뚫고 달리는 빌리 베어드』라는 장편소설이 있다. 또, 아이비리그 교수와 대학생의 대화답게 여러 유명 작가들과 그들의 잘 알려진 소설에 관한 언급, 인용문이 등장하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작가가 초안처럼 여겼던 2018년 윌리엄스타운 버전을 브로드웨이의 1,000석 규모의 스튜디오 54로 옮기면서, 벨라의 입을 통해 전달되던 많은 인용문들이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 연극비평가 제시 그린에 따르면, 그 외에도 인물의 행동 이유를 설명하거나 감정 상태를 암시할 수 있는 대사들이 제거되었으며, “크리스토퍼의 아버지의 정신분열증에 대한 언급”이 삭제되었다.3) 그로 인해 관객은 스토리텔링의 내레이터라고 할 수 있는 ‘벨라’의 내면에 대해서는 매우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지만, 그녀가 3인칭으로 묘사하고 기술하는 크리스토퍼에 대해서는 상상하고 추측해야 할 것들이 훨씬 많은 상태로, ‘궁금증’과 ‘호기심’을 끝까지 이어가며 ‘반전’을 거듭하는 연극에 몰입할 수 있게 된 측면이 있다.

사진 제공: 라이브러리컴퍼니

 

연극 <사운드 인사이드>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막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낸 벨라는 처음부터 “어둠 속에서 가을바람에 소리를 내는 오래된 나무들처럼” 명백하게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관객’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보인다. 자신을 3인칭 대명사인 ‘그녀’로 지칭하는 벨라는 앞으로 들려주게 될 이야기가 관객에게 어떻게 수용될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표하면서, 사적인 배경에 관한 정보들을 늘어놓는다. 소설을 창작할 때 주인공을 자세히 묘사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는 그녀는 스스로를 “문예 창작의 위선자”라고 부르면서 원칙을 어긴다. 자신의 외모와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한 소설가”라는 직업, 이른 눈이 내린 뉴헤이븐 공원의 차가워진 가을 날씨를 문학적 미사여구를 동원해 서술하는 그녀의 주어는 어느새 1인칭으로 변화해 있다.

 

관객을 향해 1인극처럼 진행되던 이야기가 2인극으로 전환되는 지점은, 러시아의 고전 작가 도스토옙스키의 인물 심리묘사가 뛰어난 소설 『죄와 벌』을 읽고 작가가 주인공을 묘사하는 방식을 학습하고 글쓰기를 진행하는 수업의 학생 ‘크리스토퍼’가 등장하는 부분이다. 5개의 장면과 에필로그로 구성된 희곡의 두 번째 장면에 등장하는 크리스토퍼는, 시종일관 관객을 향해 서서 이야기를 전달하던 벨라가 언젠가 자신도 도스토옙스키가 묘사한 것과 같은 살인 장면을 쓸 것이라고 공표하며 교실을 침묵 속에 빠뜨렸던 ‘학생’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연구실에 면담을 하러 온 크리스토퍼를 향해 대화를 나누면서도, 대부분은 관객을 향해 몸을 돌린 채로 앉거나 서서, 소설의 화자처럼 벨라가 서술을 이어가는 방식은 ‘연극으로 소설을 쓰는 느낌’을 낳는 주요 원인이 된다.

 

관객은 활자를 읽어나가면서 머릿속으로 상상하게 되는 장면들을 무대 위에서 바라보듯 느끼고, 벨라의 시선에 국한된 채 전달되는 크리스토퍼라는 인물의 신비스러운 매력에 끌려들어 가기 시작한다. SNS와 이메일과 같은 현재 세상의 소통 방식에 큰 거부감을 보이는 크리스토퍼는 최신 노트북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손글씨나 수동 타자기를 사용하는 독특함을 갖고 있다. 관객이 느끼기에 어딘지 모르게 도스토옙스키 소설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를 닮은 크리스토퍼는 “날씨에 비해 지나치게 얇은 재킷”을 입고 있고, 시니컬함과 지적인 날카로움, 예민함, 폭력성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자신이 소설을 쓰고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 벨라를 찾아왔다는 20대 초반의 크리스토퍼와 17년간 단 한 줄도 글을 쓰지 못한 53세 소설가의 대조적인 상황과 긴장감은, 친구조차 없이 고독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벨라가 점차 크리스토퍼와 가까워지는 과정 속에서, 그를 묘사하는 벨라의 ‘언어’가 달라짐과 함께 ‘친밀감’으로 향하게 된다.

 

크리스토퍼와 관객의 거리는 벨라가 전달하는 정보와 묘사에 국한되기 때문에 쉽게 가까워질 수가 없고, 그렇기 때문에 관객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보다 자극한다. 창작되는 내용이 축약되어 조금씩 전달되는 크리스토퍼의 소설은 벨라의 지적처럼, “작가가 주인공에게 이끌려가는” 만큼 “독자들의 예상을 빗나갈 높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 관객은 제3자의 시선을 통해 접근할 수밖에 없는 크리스토퍼와 달리, 내면의 깊은 생각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주된 ‘목소리’인 벨라의 이야기 또한 예상을 빗나가는 ‘반전’을 품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신경섬유종 환자이면서 위암 진단을 받아 끔찍한 투병생활을 하다 임종을 맞은 엄마에 대한 기억을 품고 있는 벨라가 완치 확률이 20% 미만인 암 2기를 진단받고 치료를 거부한 채로, 크리스토퍼에게 약물을 통해 자살에 이를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부탁하는 플롯은, 크리스토퍼가 창작한 소설과 연계되면서,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닫게 된다. ‘반전’의 글쓰기와 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창작방식’은 자전적 요소가 상당히 많이 결합된 소설을 쓰고 있는 크리스토퍼뿐 아니라 주된 내레이터인 벨라가 관객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사진 제공: 라이브러리컴퍼니

 

 

작가인 아담 랩은 연극 <사운드 인사이드>의 소설적 특징을 내레이터의 전환을 통해 관객에게 지속적으로 인식시킨다. 가령, 크리스토퍼가 벨라의 이야기 속 인물이 아니라 관객을 향해 전면에 나서는 내레이터가 되는 순간들이 존재하는데, 이는 대부분의 비평가들의 외면을 받은 벨라의 장편소설의 줄거리와 그 소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크리스토퍼가 관객에게 들려줄 때다. 또, 그가 마침내 완성한 첫 소설을 읽고 진솔한 평가를 해줄 것을 벨라에게 요청하고, 소설의 내용을 전달할 때에도, 크리스토퍼가 전면에 나선다. “1인칭 현재 시점의 예일대 학생의 목소리”로 전개되는 크리스토퍼의 소설의 전달 과정은 후반부로 갈수록 벨라와 교차하면서, 마지막 순간을 벨라의 목소리가 이어받지만, 기본적으로 크리스토퍼가 내레이터로 자리한다.

 

크리스토퍼의 소설은 『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가 나이 든 전당포 주인과 그녀의 여동생을 도끼로 살해하는 장면을 연상토록 만드는 ‘자유의 여신상’ 문진으로 우연히 만난 빈민 계층의 백인 남자 ‘셰인(Shane)’을 죽이는 장면이 존재한다. 또, 벨라의 교수실에서 크리스토퍼의 시선을 강렬하게 사로잡았던 그림의 삭막하고 광활한 들판 위에 “유령”처럼 서 있던 여인이 촉발한 이미지가 등장하고, 크리스토퍼의 어머니처럼 주인공의 어머니 또한 ‘광장공포증’을 앓고 있다. 크리스토퍼와 같은 이름을 가진 주인공이 “날씨에 비해 너무 얇은 재킷”을 입고 집을 나서면서 말줄임표 “점 세 개”로 끝이 나는 그의 소설은 여운을 길게 남긴다. 그의 소설은 벨라의 자살 계획의 실패와 크리스토퍼의 미스터리한 죽음, 회복 불가능할 것 같던 암의 극적인 회복과 같은 관객이 예상치 못한 또 다른 반전들로 이어지고, 벨라의 이야기 역시 크리스토퍼의 소설과 유사하게 지속되는 의문의 ‘물음표’ 속에 끝이 나도록 만든다.

 

사진 제공: 라이브러리컴퍼니

 

죽음이 예견되었던 벨라는 고독한 삶 속에 머릿속을 맴도는 끝없는 질문들과 함께 다시 홀로 남겨지고, 재능을 불태우며 첫 소설을 완성한 젊은 청년 크리스토퍼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고독한 죽음을 맞이한 채 차가운 땅속에 묻힌다. 마치 가장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을 가진 이야기는 ‘삶’ 그 자체라는 듯, 삶과 죽음이 교차한 두 인물을 바라보고 있는 관객의 머릿속에 채워지는 것은, 연극 <사운드 인사이드>의 마지막 장면에서 벨라가 크리스토퍼를 그리워하며 쏟아내는 질문들이다. 소설의 화자의 목소리와 독자(관객)의 질문이 하나가 되고, 같은 마음으로 크리스토퍼의 삶에 대한 궁금증과 그리움을 느낄 때, 무대는 암전으로 향한다.

 

원작의 경우, 관객을 향해 벨라가 들려주는 전체 이야기 즉, 연극 <사운드 인사이드>가 벨라의 소설일 수 있다는 느낌은 마지막 장면에서 제시되지 않는다. 벨라는 관객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상태에서 암전을 맞는다. 하지만 국내 공연의 경우, 벨라가 갑자기 노트북으로 글을 써 내려가는 장면을 추가함으로써, 17년간 이어져 온 공백을 깨는 작가인 벨라와 그녀가 써 내려가는 이야기가 무엇일지에 대한 궁금증을 추가했다. 벨라가 써 내려간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크리스토퍼의 유작을 출판해 주기 위한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관객에게 들려준 <사운드 인사이드> 이야기 자체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마침내 자신에게 다가온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소설이었을까? 무엇이 되었든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연극 <사운드 인사이드> 자체가 ‘연극으로 써 내려간 소설’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 Greg Stewart, “Edinburgh Interview: Adam Rapp on The Sound Inside at Traverse Theatre”, Theatre Weekly, 21 July 2024, Web.

2) 박천휴, 「연출가 인터뷰」, 『사운드 인사이드 프로그램북』, 라이브러리컴퍼니, 2024, p.8.

3) Jesse Green, “Review: Mary-Louise Parker in the Subliminal, Sublime ‘Sound Inside’”, New York Times, 17 Oct 2019. W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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