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김충일(연극평론가)
바다에 둘러싸인 외딴 섬처럼, 인간은 누구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홀로 존재하는 고립된 하나의 ‘섬’이다. 그곳은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주체적인 공간이기에 인간은 온전히 나로서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며, 그 자유로움은 때로 외로움과 고립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운다. 그리하여 섬은 고독과 자유가 공존하는 인간의 양면성을 포월(匍越)한다.
이 때 섬은 단순한 외딴섬에 대한 동경이 아니라 소통과 관계에 대한 갈망의 ‘그 섬’이 된다. 그래서 그 섬은 언제나 함께 존재하기에 고독과 공감을 겪어내는 오히려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 연대(連帶)의 장소이다. 또한 바쁜 일상 속, 우리는 가끔은 조용한 ‘섬’을 꿈꾸곤 한다. 도시의 소음, 관계의 피로, 정보의 과잉에서 벗어난 내 마음의 섬 하나쯤은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녹치 않으며 가만히 내버려 두지도 않는다.
이런 저런 자잘한 상념에 젖어 지난 4월 17일 무대의 시간 7시 30분에 소극장 드림아트홀로 찾아들었다. 그 곳엔 지하철 옆 옥탑 방에서 ‘다이나마이트 폭탄’에 묶여 터질 운명에 처한 취준생 황장복이 ‘사람들 사이의 섬에 가고 싶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이와 함께 공연에 들어오기 전 도심 모퉁이에 비껴 세워진 빛바랜 ‘인력 모집’ 간판 불빛이 무대의 무거운 조명과 뒤 섞여 어느덧 잠이든 듯 가라앉아 있었다.
삶에서 가질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은 ‘청춘’이건만, 파르께하니 설익은 시간의 흐름 속에 얕은 감정의 작난(作亂)과 병적인 생각이 뒤 섞여 청춘의 생태계가 무너진 현장이 여기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버거운 인생 아~ 청춘이 이렇게 아프고 힘들까….청춘들의 빈곤한 삶과 실업 문제등 어두운 현실을 웃음 속 속울음으로 풀어낸 우리들의 이야기 『서울테러』(극단 실루엣, 정범철 작, 장지영 연출)가 공연되고 있다.
무대는 청년백수가 사는 옥탑 방 내부와 출입문으로 보이는 외부의 모습이 전부. 이곳에는 대한민국의 43만 명의 취준생 중 한 명인 33세의 ‘황장복’이 살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취업 준비, 계속되는 불합격 통보 속에서 애써 괜찮은 척하지만, 그는 좀 전에도 면접에서 떨어졌다. 통보를 받은 그날 7년을 함께한 여자친구 ‘서연’에게 “우리 그만 헤어져” 한마디로 끝났다. 공장에서 일하다 손가락을 잃은 친구 ‘노상태’가 위로해보지만, 세상을 향한 ‘황장복’의 분노와 소외감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그는 자기 탓을 하는 친구 ‘상태’와 티격태격하다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취업하지 못하면 “오늘 나는 청년의 이름으로 세상을 뒤엎기로 결정했다!”며 서울을 날려버리겠다는 내기를 제안하기에 이른다.
마침내 크리스마스 때 장복의 집에 찾아온 상태. 다이너마이트를 발견하고 놀란다. 대기업 로고로 장식돼 있던 벽도 어느새 테러 사진, 작전 지도로 변경돼 있고… 서울테러 얘기를 들은 친구는 처음엔 만류하지만 나중엔 동참한 상태. 세상에 소외되고 고립 되어 미쳐가고 있는 장복의 모습에 상태는 거사에 앞서 배고픈 거나 해결하려고 중국집에서 짜장 , 짬뽕+소주를 시켜 먹는다. 이때 배달원이 오면서 서울테러 계획은 틀어진다. 다이너마이트를 본 배달원이 경찰에 신고를 하면서 일은 커져가고, 테러를 감행하기도 전에 테러범이 되고, 난투극중 배달원의 쥐어진 칼에 장복은 찔려 죽게 되고, 그 모습에 친구가 그 배달원을 죽이고, 혼자남아서 어떻게 할지 모르다가 자수를 하는 것으로 공연이 끝이 난다. 그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 작품은 청춘들의 지금을 응시하며, “세상과 타협을 할 것인가?(현실), 아니면 저항을 할 것인가?(이상)”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청춘이 사수하려는 서울이란 이상(理想) 속의 대상이 테러의 대상이 된다. 어쩌다 테러의 대상이 된 것인가. 이 시대 청춘들의 현실과 자신의 목적을 알리는 방법으로 그가 선택한 테러는 그 극단적인 수법에 마음이 덜컹하다가도, 이내 한없이 안쓰러워진다. 온 몸에 다이너마이트를 두른 청춘과 사회 시스템의 대치 상황. 이 시대의 테러리스트는 정녕 누구인가에 대한 응답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진다.
이를 추적하는 연극 읽기의 단초는 텍스트를 연극적 시각으로 구현하기 위한 연기 속 대사에 담긴 ‘초 목표’와 ‘단위목표’라는 개념을 살펴보는 일이다. 초 목표는 역할의 궁극적인 목적이고, 초 목표를 이루기 위한 단계별 목표가 단위목표인데, 초목표는 단위목표의 서브텍스트(subtext)가 된다. 서브텍스트는 드러난 대사 이면에 숨겨진 인물의 의도를 지시한다. 이를 작품 속에서 만나보면, 황장복은 초 목표인 ‘청춘의 상처와 아픔의 무대화’를 일궈내기 위해서 단위목표인 ‘지연과의 이별’→‘현실 비판’→‘시골 생활 제안’→‘폭파장치의 등장’→‘칼(폭력)의 등장과 실행→ 평범한 삶에 대한 희구를 거친 끝에 청춘들이 직면한 실업문제와 사회적 고립 그리고 닫힘과 억눌림의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를 드러내기 위한 극적 기법으로 주목할 만한 장치는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의 중첩과 회상, 그리고 치환‘의 반복성이다. 노상태와 황장복의 대화를 통해 머리 속 기억과 실제 경험 사이에서 생긴 괴리감(차서연과의 만남), 떠나온 시간과 공간이 현재로 다시 돌아오는 것 같은 감각의 생생함(포항으로의 회귀), 잊지 못하는 과거와 이루어지지 않는 답답함이 만들어낸 불안감과 고립감(폭파계획에 대한 공언)등은 극의 몰입도를 끌어 올리고 있다. 또한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작품의 이야기를 끊고 이어짐을 상징하는 ‘지하철 소음’은 단순한 지하철의 흐름(시간)을 지시하는 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청춘들의 삶이 예측할 수 없는 다양성을 지니고 있으며 극 속에서 방향성을 잃고 헤매고 있는 한 젊은 영혼의 에너지를 상실한 심리적 상태를 반복적으로 드러내면서 극적 효과를 더해 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현대인의 정신적 불안과 고통을 어루만지고, 아픔을 치료하기 위해 연극이 널리 쓰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취준생의 현실적 절망감의 표출이란 정형화된 연기 뒷면에 숨겨진 인간 내면의 상처와 치유, 그리고 소통과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등장인물들이 겪는 고통과 그로 인한 변화 과정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지에 대해 탐구한다. 게다가 개인적인 아픔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해소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니까 객관화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사회라는 창에 되비쳐보며 문제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 관객들도 공감하며 치유를 경험하게 된다. “연극이 우리 삶하고 제일 닮아있고, 또 역할을 나누어서 맡아서 하기 때문에 제일 강렬하다고 할까요.” <서울테러> 속 황장복의 삶은 인생의 희·비극성을 보다 높이며 연극 치료적 효과를 높여주고 있다.
30대 초반의 취준생의 이야기 속에 등장한 캐릭터들의 땀내 나는 열정의 숨소리와 중간 중간에 던져진 웃음의 파편은 관객들에게 충분한 공감의 길을 확장시키고 있다. 다재다능한 잠재적 능력을 한껏 발휘한 김석규 배우(황장복 역), 생존의 아픔을 속울음으로 토해 낸 지민기 배우(노상태 역), 차가움과 따뜻함의 정서적 온도 차이를 이겨낸 서다원 배우(차서연 역), 관객을 압도하는 에너지를 발산한 이상혁 배우(배달원 역)의 열연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다만 극 중 각 인물들이 자기 역에 몰두하다 보니 다른 프레임의 미장센을 잊고 다른 배우와 겹쳐 보이거나 가려보이는 더블 액션을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한편 한 문장 속에서도 어떤 단어에 강세를 두어 발음하면 대사의 입체감이 훨씬 살아나면서, 보다 디테일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를 관객에게 잘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도시 한 복판에서 다층적 의미가 포개져 있는 지상의 고립된 ‘섬(방)’ 찾기에, 아니 마련하기에 고달픈 무대 파수꾼 장지영 연출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연극을 연출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공감’입니다. 황장복이 겪는 현실은 단순한 허구가 아닙니다. 우리의 친구, 가족, 혹은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 작품이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현재 우리 사회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서울테러>. 이 작품은 2025년 봄의 한 가운데 일상 속에선 꽃비가 내리는데, 고립감에 빠진 황장복의 외로운 영혼에는 죽음을 감싸 안은 ‘연대와 공감’의 비가 내리기를 기다리는 어둡고 아픈 연극으로 다가 왔다. 늘 접하지만, 그 때마다 잊는 청춘들의 외침, 이제는 그들의 목소리에 우리들이 몸으로 반응해야 할 시간이다. 닫혀 있음 속 탈주를 꿈꾸며 ‘청춘의 아름다움’을죽음의 속울음으로 침묵한 황장복에게 한 송이 국화꽃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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