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김소연(연극평론가)
1995년 3월 20일 출근 시간 도쿄 지하철 역 곳곳에 사린가스가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터뜨려 사망자와 사상자를 낸 테러사건이 벌어진다. 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의 지시로 교단의 간부들이 실행한 무차별 테러다. 무차별 테러만이 아니라 테러를 실행한 옴진리교 간부들이 일본 사회 엘리트들이었다는 점도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후 교주인 아사하라 쇼코를 비롯해 테러를 실행한 주모자 13명에게 사형이 선고되고 사건 이후 23년이 지난 2018년 한 달 간격을 두고 전원 사형이 집행되었다. <마지막 면회>(김민정 작, 박혜선 연출)는 사린테러 사건의 주모자 하야시 야쓰오(박완규 분)와 사형 집행 직전 그에게 면회를 신청한 나오코(박희정 분)와의 만남으로 전개된다.
나오코는 자신이 왜 하야시 야스오를 만나야 하는지 오천 자나 되는 에세이를 하야시에게 보낸다. 그녀가 어떤 에세이를 썼는지는 알 수 없다. 하야시는 나오코에 대한 호기심과 그에게 쏟아졌던 세상의 질문들 사이에서 답하고 답하지 않고를 오가며 이 만남을 이어간다. 나오코는, 무대를 바라보고 있는 관객이 가지고 있는 질문, 그가 왜 옴진리교라는 신흥종교에 빠져들었는지, 테러 사건이 자행되기 전에도 이미 교단 내 폭력이 횡행했음에도 왜 옴진리교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는지, 왜 무차별 테러를 거부하지 않고 감행했는지를 묻는다. 이러한 연극의 출발에서 나오코는 독백을 대화로 전환하기 위한 콘피단트 같은 기능적 인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데 그녀는 면회를 거부하는 하야시를 설득하기 위해 사린 테러 피해자 유가족이라고 하고, 인터뷰를 계속하면 가족을 만나게 해주겠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그녀는 어떤 권리를 주장하듯이 하야시에게 답을 요구하고, 하야시는 거부하지만 거부하지 못한다. 연극은 하야시의 드라마다.

사형수가 갇혀있는 교도소의 면회실, 투명한 벽을 사이에 두고 이루어지는 인터뷰는 이인극의 전개라 할 터인데, 연극에는 나오코와 하야시 외에 두 인물이 더 등장한다. 젊은 야스오(이주엽 분)와 하야시의 아버지(전형재 분)다. 무대 한가운데서 벌어지는 나오코와 하야시의 대화, 과거를 거슬러 오르는 이들의 대화는 이 두 인물을 통해 면회실이라는 폐쇄적인 시공간에 여러 겹의 시간과 공간을 쌓아가고 현재의 하야시를 흔든다.
나오코는 한판 겨루기라도 하는 것처럼, 일격을 가하듯이, 다른 이야기를 해보라며 자이니치 2세로 일본 사회의 극심한 차별이 결국 옴진리교에 빠져들고 사린테러를 실행했던 것이 아니냐고 몰아부친다. 이 질문 앞에서 하야시는 아픈 기억을 끄집어낸다. 당시 횡행하던 자이니치에 대한 혐오와 차별 속에서 어린 하야시는 친구들과 어울려 조선적 아이를 린치하는데, 그 일로 하야시는 아버지로부터 그 아이에게 침을 뱉는 것은 나에게 침을 뱉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때까지 하야시는 자신이 자이니치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무대 중앙 나오코를 앞에 둔 하야시의 고백은 무대 가장자리 양편에서 재현되는데 각각 하야시에게 린치를 당하는 조선적 아이와 하야시에게 너도 조선인이라는 걸 알려주는 아버지가 있다. 이 장면에서 조선적 아이는 젊은 야스오로 분한 배우가 연기하는데, 조선적에 대한 일본사회의 혐오를 그대로 반복하는 하야시의 폭력이 고스란히 자기 자신과 아버지에게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확장되고 되돌아오는 이러한 드라마의 시공간의 전개는 무대 디자인과 연출에서 다시 강조된다. 사각의 무대 세 모서리에는 프레임으로만 세워져 있는 격자가 놓여있는데 이 격자를 통해 등장하는 젊은 야스오가 현재의 하야시 주변을 맴돌면서 과거와 현재가 물고 물린다. 그날 이후 한 번도 그 역을 빠져나오지 못한, 거슬러 오르면 옴진리교에 빠져들었던, 더 거슬러 오르면 그 아이를 때리지 말라고 그건 나를 때리고 나에게 침 뱉는 것이라던 아버지를 대면했던, 겹겹의 시간을 쌓아가는데, 그 겹겹의 시간이 결국 내내 그 시간에 갇혀 있는 하야시의 폐쇄적 상황을 그린다.
여기까지라면, 사린테러는 일본 사회의 차별에서 비롯된 비극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혐오와 차별이 대중교통에서 치명적 가스를 살포하는 무차별 테러를 설명할 수 있을까. 하야시는 아니라고 답한다. 하야시는 아니라고 답한다. 만약 그렇다면 옴진리교에 더 많은 자이니치가 있었을 것이라고.
하야시의 깊은 기억에 도달하고 이제 여기서 멈추는가 했던 연극은 선회한다. 이제 나오코의 드라마다. 열정적인 혹은 욕심 많은 기자 혹은 작가일 거라 짐작했던 나오코는 하야시의 도주를 도왔던 에이코의 딸이다. 그녀가 당신의 가족을 만나게 해주겠다던 그 가족은 바로 자신이다. 이제 나오코의 질문은 하야시에 대한 것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것이다. 그가 왜 옴진리교에 빠져들었는지, 그가 왜 살인기계가 되었는지는 곧 자신의 문제인 것이다.

이 선회를 통해 연극은, 사린테러라는 충격적 사건이 왜 벌어졌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진실은 무엇인지, 진실을 마주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바닥을 알 수 없는 인간의 심연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으로 옮겨간다. 나오코가 드디어 마주하게 되는 진실은 그녀의 모든 것을 붕괴시킨다.
김민정의 전작 <미궁의 설계자>는 김수근이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했다는 여러 정황들을 추적하면서도 김수근을 등장시키는 대신 그의 건축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 ‘신호’라는 허구의 인물을 통해 예술과 권력에 대한 질문의 공간을 깊고 넓게 전개한다. <마지막 면회>에서도 사린테러의 실행한 하야시 야스오의 드라마를 전개하는 한편 나오코라는 허구의 인물을 통해 사건의 진상에서 인간의 심연에 대한 질문으로 나아간다. 면회실에 마주 앉은 두 인물의 대화라는 단순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의 시공간을 확장하면서 벗어날 수 없는 폐쇄성을 쌓아감으로써 하야시에서 나오코로 선회하는 드라마를 예비하고 나오코의 붕괴를 마주하게 한다.

이러한 희곡의 여러 겹은 작은 소극장 무대 세 모서리의 격자를 세우고 이 격자를 통과하는 젊은 야스오를 통해 가시화된다. 그리고 이 모든 드라마는 네 배우들의 열연으로 단단해진다. 박완규는 이미 더할 수 없이 화려한 연기를 보여주어왔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꽉 찬 공허를 보여준다. 박희정은 그녀만의 맑은 표정이 이번 작품의 전반부에서도 두드러졌는데, 드라마가 선회하면서 그 맑은 표정을 찢고 나오는 격렬한 공포와 분노로 그녀의 연기를 넓힌다. 야스오의 이주협과 아버지의 전형재 역시 단정하면서도 명료한 캐릭터를 그려낸다.
나오코의 절규, 존재가 무너져내리는 것 같은 그녀의 울음에서, 그리고 폭주하는 기차에 갇힌 하야시의 죽음에서 연극은 끝이난다. 붕괴 이후, 삶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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