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극단」-종로’를 만나다.

이 글의 처음 의도는 꿈의 극단수업 내용을 상세히 소개하고, 아이들이 그 속에서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스케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업을 참관하고 강사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수업을 스케치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그램에 녹아 있는 강사진의 교육철학과 그들의 고민과 노력을 풀어내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애초의 기획을 변경하여 교육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김지옥 예술교육팀장님에게 그간의 일을 담은 원고를 써주십사 부탁했다. 따라서 이 글은 참관자의 글과 운영자의 글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Part 1, 공연보다 멋진 함께 하는경험, 꿈의 극단종로

 

글_이연심(호서대학교, 한국연극교육지원센터)

 

사진 제공: 종로문화재단

 

비가 오락가락하던 날, 종로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꿈의 극단」 수업을 참관하러 나섰다. 수업 장소인 혜화 주민센터로 가기 위해 혜화 로터리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쯤, 지나가는 버스를 향해 큰소리로 대화를 시도하는 동글동글한 얼굴의 어린이가 눈에 들어왔다. 혹시 저 아이도 「꿈의 극단」 단원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민센터처럼 생긴 건물이 보이지 않아 두리번거리고 있을 즈음, 경쾌한 발걸음의 몇몇 아이들이 한옥 건물로 거침없이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들의 익숙한 움직임을 보며 「꿈의 극단」 아이들일 거란 촉이 발동해 무작정 따라 들어가 보기로 했다. 맞았다. 여기가 혜화 주민센터구나! 주민센터가 한옥 건물이라니…, 아이들의 웃음과 즐거운 비명은 건물을 구경할 틈도 주지 않고 오늘의 수업 공간인 다목적실로 안내했다. 규칙 없이 뛰는 아이들과 수업 준비로 분주한 강사들은 이미 라포가 형성되어 있는 듯 보여 지난 한 학기의 역사와 강사들의 수고로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사진 제공: 종로문화재단

 

「꿈의 극단」은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추진하는 「꿈의 예술단」 사업의 일환으로 「꿈의 오케스트라」와 「꿈의 무용단」에 이어 2025년 새롭게 시작한 사업이다. 「꿈의 예술단」은 ‘예술을 위한 교육’이 아닌 ‘예술을 통한 교육’이라는 원칙 아래,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나’를 찾는 방식을 공유하며, 다양한 지역과 장르(음악, 무용, 연극 등)의 예술가와 기관이 긴밀하게 협업하고 지원하는, 한국적 문화예술교육 시스템을 추구한다.

서울 지역에서는 관악문화재단과 종로문화재단이 거점기관으로 선정되었고, 종로문화재단은 상주 단체인 ‘극단 북새통’(남인우 예술감독)을 협력 예술 단체로 선정하여 실제적인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꿈의 극단」-종로’는 장애와 비장애 아동이 함께하는 연극 기반 통합 예술 교육프로그램을 표방하고 있다. 놀이와 창작이 어우러진 연극 활동을 통해 자존감과 사회성을 기르며, 문화예술을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된 프로그램으로, 발달 특성을 포함한 다양한 배경의 아동들이 함께 참여하는 통합 환경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운영한다. 참여 대상은 초등학교 3학년에서 6학년까지로 장애와 비장애 아동이다. 사실 ‘「꿈의 극단」-종로’의 사업 내용에는 ‘장애・비장애 아동이 함께하는 통합 예술 교육 프로그램’으로 적시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신경다양성’ 관점을 적용하고 있었다.

최근 심리학, 교육, 직장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주제로 떠오르고 있는 신경다양성은 인간의 다양한 신경학적 상태를 자연스러운 형태로 존중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개념으로 뇌신경의 차이로 발생하는 고유한 특성을 장애나 결함이 아닌 ‘다양성’의 관점으로 바라본다.1) 즉, 자폐스펙트럼, ADHD, 난독증, 투레트, 학습 및 발달의 차이 등 신경 발달 상태를 병이나 결함이 아닌 인간의 ‘다양성’으로 보는 시각이다. 사람은 누구나 각기 다른 신경 구조와 기능을 가지고 있을 수 있으며, 이는 ‘다름’일 뿐 ‘비정상’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당연히 ‘장애’도 아니라는 뜻이다. 신경다양성을 수용한다는 의미는 단순히 개인차를 인정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모든 ‘신경다양인’들이, 다시 말해 주류 사회에서 ‘전형적’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신경 발달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꿈의 극단」-종로’의 강사진은 신경다양성의 개념을 수용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신경다양성을 보이는 어린이가 자신만의 학습 속도와 방식으로 학습하고 어울릴 수 있도록 맞춤형 연극적 놀이와 활동을 고민하였으며, 독특한 재능과 강점이 있는지 살펴 최대한 자연스럽게 발휘할 수 있도록 세심히 관찰하고 배려하고 있었다. 이러한 노력은 교육에 참여한 아이들이 신경학적 차이를 질병이나 고쳐야 할 문제로 인식하지 않고 고유한 특성으로 받아들이도록 돕고, 나아가 삶의 현장에서 발견하게 되는 사회적 차별과 불편함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사회인으로 성장하도록 도울 것이다. 물론 사회적으로 신경다양성에 대한 비판도 존재하기는 하나, 신경다양성은 모든 학생이 배우고 행동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다양한 학생이 함께 존재하는 통합 교육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뒷받침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꿈의 극단」-종로’ 교육 프로그램은 장애・비장애, 정상・비정상, 옳음・그름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 ‘개별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신경다양성 예술 교육’이라고 해야 할 것이고, 이러한 시도는 하나의 예술 통합교육 모델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제공: 종로문화재단

 

처음 프로그램 참여 대상자 모집 공고를 냈을 때 아주 많은 어린이가 신청하여 오디션을 통해 현재의 아이들 25명을 선발하였다고 한다. 교육은 5월부터 시작되었고, 필자가 방문한 9월에는 신경다양성 특성이 있든, 없든 간에 아이들은 서로 친해져 스스럼이 없었고, 강사들과의 라포도 잘 형성되어 강사들을 제법 잘 따르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눈에 띄는 행동 양식을 보이는 아이를 빼고는 신경다양성 여부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모두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프로그램 기획 단계부터 통합 예술 교육을 염두에 둔 덕분에 ‘「꿈의 극단」-종로’의 강사진은 타 기관보다 많이 초빙되었다. 교육 인력으로 주 강사 5인, 보조 강사 3인, 창작 인력 2인이 배치되어 있고, 행정 인력으로는 행정 담당자 1인, 코디네이터 1인, 아카이빙 담당자 1인이 지원하고 있다. 특히 주 강사는 예술교육팀장, 배우, 음악감독, 무용감독, 작가/연출가 등 각 분야 예술가로 구성하여 아이들이 예술가와의 만남을 통해 예술적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보조 강사도 3인이 배치되어 신경다양성을 가진 어린이들의 느린 학습, 어려운 학습을 도와주고 있었고, 이는 신경다양성 어린이뿐만 아니라, 수업을 진행하는 강사와 함께 참여하는 어린이 단원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사진 제공: 종로문화재단

 

혜화 주민센터 다목적실은 안타깝게도 참여 어린이와 교육 인력 수에 비하면 상당히 좁았다. 그런데도 신기했다. 좁은 공간을 넓게 쓰는 know-how를 아이들이나 강사들이 이미 터득하고 있는 듯 보였다. 필자가 참관한 날은 9윌 17일 13차시 수업으로 23명의 어린이가 참여하고 있었다. 수업 시작 전 꼬리 잡기 놀이를 하면서 이미 윔업(warm-up)이 된 아이들은 예술가들보다 먼저 수업 준비가 끝난 듯했다. 낯선 사람인 필자에게 뛰어와 장난스럽게 인사를 건네는 것을 보니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웜업도 된 듯했다. 혹여 수업에 방해가 되면 어쩌나 조심스러웠던 새가슴이 아이들의 인사 덕분에 편안해졌다. 사실 제일 먼저 인사를 건넨 어린이는 혜화 로터리에서 만났던 바로 그 동글동글한 어린이였다. 그때야 비로소 「꿈의 극단」으로 가는 길이 이 어린이에게는 그렇게 신나는 일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만으로도 또래 친구들과 함께 있는 이 수업 공간이 얼마나 신나고 좋은 곳인지 가늠이 되었다. 수업은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강사진이 수업 목표에 따라 유기적으로 번갈아 가면서 진행한다고 한다. 사실 일반 교실보다 통합 교실 수업은 몇 배의 에너지가 더 소모되기도 하고 주 강사와 보조 강사들이 수업 내내 아이들의 반응과 현상의 이면을 감각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참관일 당일은 김태희 선생님(배우), 윤푸름 선생님(무용감독), 김지옥 선생님(예술교육팀장)이 담당했다. 당일 수업 목표는 함께 이야기 만들기였다. 김태희 선생님은 이름 부르며 공던지기 게임을 한 후, 오재미 던지기 게임을 하되, 아이들의 수행 능력에 따라 박수치기 미션, 한 바퀴 점프하며 돌기 미션을 제시하여 도전 의식을 자극하며 호흡을 맞췄다. 윤푸름 선생님은 공간 속에 존재하는 선을 찾아 몸으로 표현하는 활동을 하여, 아이들이 자기 삶의 공간을 새롭게 바라 보고 섬세하게 관찰하는 기회를 제공할 뿐 아니라, 공간과 어우러지는 몸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인물뿐 아니라 사물까지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아냈다. 활동 후 아이들은 공간 속에는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선이 참 많고, 보이는 선을 다 표현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잠시 간식 시간이 있었다. 피자와 콜라가 배달되고, 아이들은 이곳저곳에서 “선생님, 사랑해요”를 외쳤다. 역시 아이들이다. 먹을 때 가장 말을 잘 듣는다.

 

사진 제공: 종로문화재단

 

이어서 김지옥 선생님의 즉흥 표현 활동이 시작되었다. 선생님이 제시한 임의의 공간에서 볼 수 있는 인물이나 사물을 몸으로 표현하는 활동이었다. 표현의 순서는 모둠 내에서 미리 협의할 수 없다. 다만 자기 고유 번호만 정할 수 있다. 선생님이 무작위로 번호를 호명하면 모둠 내 해당 번호의 어린이가 나와서 표현해야 한다. 정지 동작이 끝나면 인물이나 사물이 되어 한마디 대사를 할 수 있다. 아이들의 집중력과 창의력, 순발력이 빛을 발하는 시간이었고, ‘지금, 여기’에 배우로 존재하는 시간이었다.

김지옥 선생님의 이끔으로 수업 공간은 화장실, 엘리베이터 안, 병원, 영화 촬영장, 놀이동산, 헬스장, 공항, 크리스마스 길거리, 운동회 등으로 변하고, 아이들은 순간 이동하며 자유로이 여행했다. 장애・비장애, 정상・비정상, 옳음・그름의 경계를 넘어 모든 아이가 집중하여 표현하는 모습이 공연 관람과는 또 다른 몰입을 끌어냈다. 물론, 한 단원이 신난 나머지 가끔 활동의 흐름을 방해하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단원들은 그런 모습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그 단원 나름의 행동 방식이라는 것을 이미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히려 그렇게 참여하고 있는 그 친구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아이도 있었다.

수업을 마무리하는 시간에 아이들은 ‘동작으로 상황을 만들고 표현하는 것이 너무 좋다’, ‘(선생님이) 공간만 얘기했는데 서로 덧붙이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지니까 너무 신기했다’, ‘연기를 즉흥으로 하니까 재미있다’, ‘다음엔 뭘 하게 될지 기다려진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아이들의 반응을 확인한 순간, 강사들의 수고로움은 보람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사진 제공: 종로문화재단

 

모름지기 모든 교육은 목적 지향적 행동이며, 그 목적은 분명 참여자의 변화, 즉 ‘성장’과 ‘발달’이다. 아이들이 변하고 있는 것을 예술가들은 이미 보았다. 어른들과 말을 잘하지 않는다고 보호자가 걱정하던 한 단원은 수업 시간 내내 자기 생각과 느낌을 정확하게 말했고, 보조 강사 또는 주 강사와 별도의 모둠을 형성해서 활동했던 어떤 단원은 아이들과 어울려 모둠 내에서 역할을 해내는 변화를 보였다. 그리고 ‘「꿈의 극단」-종로’에 참여한 모든 아이는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물며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또 매주 실천하고 있었다. 공간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예술을 나누며, 하나의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가는 경험은, 분명 이 극단이 앞으로 발표하게 될 그 어떤 공연보다 먼저 이뤄낸 귀한 가치이자 의미가 될 것이다.

 


 

Part 2,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예술을 안전하게 즐기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글_김지옥 (극단 북새통 예술교육팀장)

 

 

지난 4월, 지역 주민들의 많은 관심 속에서 프로그램 참여자를 선발하는 오디션을 3차시에 걸쳐 진행했다. 뭐든지 잘하고 싶어 하는 끼 많은 아이의 긴장감과, 오디션에 꼭 붙고 싶다는 간절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첫 만남이었다. 오디션은 아이들과 보호자들이 흔히 생각하는, 대사를 외우고 면접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연극적 활동 안에서 아이들이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오디션에 참여한 친구들 중에 수어를 하는 친구는 없었지만, 수어와 구어로 첫인사를 준비했다. 오디션에 참여한 한 친구가 기억에 남는다. 어른들과 말을 잘 하지 않는 어린이라서 보호자가 걱정하셨다. 그 친구는 〇×게임을 하면서 자기 생각을 작은 목소리로 분명하게 말해서 모두를 놀라게 했었다. 그리고 1학기 어느 시점부터 지금은 서로 말하고 싶어 하는 단원들 사이에서도 자기 생각과 느낌을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아이로 변했다.

 

「꿈의 극단」 교육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25명의 어린이 단원을 포함하여 예술가, 스태프까지 총 35명이나 되는 인원이 좁은 주민센터 다목적실에서 무엇을 가지고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만나게 할 것인가에 대해 예술가들은 치열하게 토론했다. 비장애인 아이들도 제각각 특성이 있듯이, ‘장애’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지만 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스펙트럼이 매우 다채로워 교육을 진행하면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직한 방향성을 도출해 내야 했다. 그래서 북새통 공연 <똑, 똑, 똑>2)을 만들고 순회공연을 했던, 남인우(연출), 김지옥(창작자 및 배우, 네트웨킹 매니저), 김진희(CP)가 중심이 되어, 신경다양성이 있는 참여자들과 헌터하트비트 메소드3)를 연구하고 작업하신 이지예 선생님과 함께 논의하며, 장애・비장애 통합 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태도, 언어 등을 예술가 및 스태프들과 공유했다.

 

 

사람은 생긴 것도, 감각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반응하는 것도 저마다 다른 스펙트럼 안에 있다. 예술 또한 이러한 스펙트럼 안에서 정말 다양한 것들이 나온다.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다름이 존재하기 때문에 예술이 존재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다름으로 창출되는 예술의 가치를 놓치지 않으려고 1학기에는 프로그램 시작 전 예술 강사들이 모여서 전체 활동을 미리 시뮬레이션해 보고, 어떻게 하면 신경다양성 친구들의 감각과 속도 및 반응을 관찰해서 예술가들의 사이드 코치로 참여할 수 있게 할까 모색하였다.

어떤 친구는 이 수업을 너무 좋아한다. 이 친구가 몰입하면 좋아서 소리를 지르거나 활동 중에 뛰어다니거나 돌아다녔다. 단원들 중에 한 단원은 그 친구의 소리에 훨씬 예민하게 반응하기도 했다. 또 너무 좋아서 다른 단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그 친구의 의도와 상관없이 다른 단원들이 무섭다고 말하거나, 놀라는 일도 생겼다. 누구보다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알기에 안타까웠다.

예술 강사들은 수업이 끝난 이후 늦은 시간까지 서로 다른 아이들이 모여 즐거운 예술을 함께 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떻게 예술 강사들과 스태프들이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갈등 상황 대처 방법에 대해 다방면으로 리서치했다. 처음 통합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예술가들의 어려움을 포함해서 매시간 수업에서 일어나는 질문들의 답을 어린이 단원들과 함께 찾고 발견하려고 애를 쓰는 과정이 지속되었다. 모둠별로 어려운 점, 불편한 점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단원으로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말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때 그 친구가 모든 단원들의 ‘자신을 위한 다짐’을 듣고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날 수업을 진행하는 예술 강사 옆에 서서 모든 단원에게-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온다. 소리를 지르지 않겠다.” 라고 다짐했던 그 모습은 참 인상적이었다. 다른 단원들이 “설마”라고 웅성거렸지만, 그 친구가 말하던 그 순간,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이 조용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후에 그 친구와 모둠을 함께 한 단원들이 그 친구가 잘하는 점을 또 다른 단원들이 다 알 수 있도록 전체 소감을 나눌 때 이야기하기도 했다.

다른 한 친구는 단원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가득하나 사춘기가 와서, 특히 여자 단원들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 해요.” 혹은 “다음 주에는 할게요.” 하면서 회피하는 친구도 있었다. 2학기에 와서는 예술가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서서히 다른 단원들과 활동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단원들 중에는 학습이나 활동의 속도가 느리고 표현이 서툴거나 작아서 보이지 않는 친구들이 있다. 뭐든지 잘 해내고 싶어 하고 스스로 표현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친구들도 있다. 그 사이사이에 서로의 속도를 맞추는 데 여전히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서서히 우리들의 경험들이 함께 쌓여가면서 서로의 틈을 조금씩 내어주며 함께 하는 중이다.

아직 자신들이 표현하고 싶은 대로 움직이는 단원들도 있다.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데 시간이 충분히 필요한 단원들도 있어서 모둠 활동이나 짝 활동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예술가들이 함께하면서 안내하고 있다. 가끔 상상력이 과해지면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올라오고 눈물을 쏟아내는 단원, 수업 진행과 상관없이 빡빡한 일상을 벗어나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이 좋아서 떠들거나 모둠 활동에서 자기 생각대로 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단원, 과장되게 웃기면서 시선을 받고 싶은 단원, 어린이도 청소년도 아니라며 어른처럼 관망하는 등등 모든 단원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관심을 표현하는 행동들이 다양하다.

단원들의 표현이 가끔 서로에게 너무 직선적으로 말하고 바로 멈추기가 어려운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황을 인지하고 이해하려고 하고 타인을 수용하는 면은 점점 커지는 것 같다. 그래서 수업 중에 감각의 불편함을 말하거나 소극적으로 참여할 때, 활동을 진행하는 주 강사가 단원들에게 정확하게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단원 가까이 있는 예술 강사들이 감정과 상황을 추스를 수 있도록 일관된 언어와 행동으로 안내한다. 그러기 위해서 주 강사와 보조 강사 모두 수업 전후에 회의하고 안내 원칙을 정한다.

솔직히 우리 예술가들과 스태프들은 이 프로그램의 결과물로 근사한 공연을 발표하지 않아도 된다고 공감한다. 오히려 각 단원들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개별적인 자기표현 즉, 다양성이 함께 공존하는 느슨한 구조의 즉흥 공연이 우리 프로그램의 특성에 더 부합하는 게 아닐지 생각하고 있다.

 

 

2학기가 되면서 예술가들과 스태프들이 수업 공간을 세팅하는 동안 일찍 온 단원들은 좁은 공간에서 공놀이하거나, 책을 보거나, 수다를 떨거나, 춤을 추거나, 눈을 감고 술래잡기를 한다. 밖에서 보면 엄청난 무질서가 난무하고 안전하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안전하게 즐길 준비를 하는 모습이 고맙고 아름답다.

 


1) 이원희, 조현경, 조성하, 박선정, 이하영. (2023). 신경다양성 관점을 적용한 통합교육 모델 개발. 정서·행동장애연구, 39(2), 29-60. 참조

2) ‘누구나 안전하고 편안하게 즐기는 공연’ 감각적 불편함 때문에 공연 관람이 어려운 신경다양성을 가진 관객과 보호자, 교사 친구들을 위한 공연이다. 2020년부터 리서치 및 쇼케이스를 거쳐 올해에도 학교 순회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3) 영국의 연극배우 켈리 헌터가 창안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연극학과, 심리학과, 웩스너 메디컬 센터 산하 자폐 연구 기관 나이상거 센터와 영국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가 공동으로 진행한 셰익스피어와 자폐 연구 프로젝트를 통하여 연구 개발된 연극 놀이 프로그램. 2014년 공연 형태로 개발되었고, 2023년부터 이 프로그램을 한국화하는 연구와 작업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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