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단 불의 전차 <이카이노 바이크>

글_백승무

 

무대의 에너지는 흔히 젊은이의 전유물이고 그들의 격동과 동일시되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 에너지는 힘의 생성과 전달, 연결, 혼합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힘 자체보다 그 힘을 어떻게 응집하고 축적하여 효과적으로 집중시키느냐가 관건이다. 그래서 젊다고 넘치지만은 않고 늙었다고 모자라지만은 않은 것이 무대의 힘이다. 거구의 장사도 들기 힘든 역기를 잘 훈련된 역사가 번쩍 들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원리이다. 온 몸의 힘을 응집하는 능력, 그것을 역기로 전달하는 능력, 들기 동작에 힘을 집중하는 능력은 훈련과 재능의 결과이지 근육의 강도 때문은 아니다. 그 힘의 운용 원리가 리듬이다. 리듬은 힘과 기를 모으고 풀고 전하고 뿜는 핵심원리이다. 좋은 투수나 타자의 동작을 보라. 뛰어난 권투선수의 움직임을 보라. 멋지게 장작을 패는 사람을 보라. 태권도 선수의 강력한 발차기, 축구 선수의 유연한 드리블, 배드민턴 선수의 송곳 같은 스매싱, 펜싱선수의 날렵한 스텝, 어느 하나고 리드미컬하지 않은 것이 없다. 리듬에 토대하지 않는 에너지는 그냥 깡이고 악일 뿐이다.

 

사진 제공: 극단 불의 전차

 

고로 무대의 에너지는 샤우팅이나 격한 움직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극단 불의 전차의 공연을 말할 때 그 시각적, 청각적 강렬함만 논한다면 절반은 놓친 것이다. 대사를 행위로 풀어내는 기발함, 대사와 대사 사이의 여백을 행위로 채워넣는 상상력, 대사에 부족한 ‘상황’(context)을 인위적으로 창조하는 대담함 등 에너지 생성에 동원되는 서사적 불쏘시개를 먼저 언급해야 한다. 매 장면이 흥미진진한 것은 이런 화력 좋은 땔감 덕분이다. 이 땔감들이 인화성 높은 발화제를 만나면 벌겋게 제 몸을 태운다. 이 발화제가 리듬이다. 리듬은 템포와 멜로디를 포함한 청각적 효과를 말한다. 두 배우가 같은 대사를 시차를 두고 외친다. “그때 (그때) 생각이 (생각이) 났다 (났다).” 한 배우는 파(F)로, 한 배우는 시(B)로 외칠 때 리듬이 만들어진다. 배우의 행위(동작+움직임+자세)에서도 리듬이 발생한다. 공연은 소리와 행위와 빛이 만들어내는 리듬박스이다. 수창 일당과 쿠마타 형사팀의 추격 장면은 음악과 소리와 몸이 만들어내는 기막힌 리듬박스이다. 6.25 동란을 표현한 권투 장면도 리듬감 콸콸 솟는 펌프이다. 쌍절곤과 도끼로 싸우는 장면도 비장감과 절망감을 실어 나르는 건 리듬이다. <이카이노 바이크>(연출 변영진)의 모든 소리와 행위들은 악보의 음표들이다. 성부(테너/소프라노, 베이스/알토)가 있고, 조성(장조, 단조)이 있고, 멜로디와 템포가 있고, 그 음표들이 복잡하게 연쇄, 병치, 대조, 충돌, 조화를 이루며 대위법과 화성법을 일궈낸다.

 

사진 제공: 극단 불의 전차

 

리듬은 카타르시스로 이월시켜주는 메인 로프이다. 그 로프에 감정이 실리고 내용이 실리고 메시지가 실린다. 웃음이든 감동이든 리듬에 맞거나 리듬을 깨거나 리듬을 타거나 리듬과 함께 하면서 만들어진다. 리듬을 형성하지 못하는 소리와 행위는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만 전달된다. 감동은 없고 의미만 남는다. 정서는 건드리지 못하고 그저 해석/이해될 뿐이다. 노래를 닮은 말, 춤을 닮은 행위는 흥을 일으키고 들뜨게 하고 짜릿하게 하고 곤두서게 한다. <이카이노 바이크>의 소리와 행위의 음표들이 그러하다.

단, Largo(아주 느림)와 Adagio(느린 여유)에서 에너지를 농축시키는 용기와 기술이 필요하다. Allegro(빠르게)로 시작된 소나타는 2악장에서 정반대로 Adagio(느리게)로 전개된다. 3악장의 Presto(매우 빠르게)를 위한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그 대조의 힘을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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