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배우 박은경

[[TTIS의 새로운 코너 궁금하다 이 사람입니다. 이 사람일 수도 있고 이 집단일 수도 있고 이 극단일 수도 있습니다. 선정 기준이 뭐냐고요? 없습니다. 그냥 제가 궁금한 사람 혹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저는 남명렬입니다.

 

궁금하다 이 사람 다섯 번째 손님은 배우 박은경입니다. 박은경 배우는 화제작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에서 은빈역을 천연덕스럽고 매력적으로 연기해서 저의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박은경 배우의 매력의 원천이 무엇인지 파헤쳐 보겠습니다]]

 

글_남명렬(배우)

 

수행하는 마음으로 잘 놀고 싶다

배우 박은경

 

사진: 정소영

 

관찰은 나의 힘

남명렬(이하 남) 제가 은경 배우를 <로켓 캔디>에서 처음 봤어요? 그걸 보면서 고등학생이 참 연기를 잘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실제 나이는 훨씬 많은데 정말 고등학생처럼 보였거든요. 그 후에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에서 너무나 인상 깊은 연기를 했어요. 은경 배우만의 개인적 매력이 그 공연에서 막 터져 나오더라고요. 짐짓 아닌 척하다가도 상황 속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는 그런 연기, 이거 쉽지 않거든요. 은경 배우는 작품에 들어갈 때 인물에 대한 접근을 어떤 식으로 해요?

 

박은경(이하 박) 저는 관찰을 많이 하는 편인 것 같아요. 저는 정식 학교를 나오지 못한 입시 실패자거든요. 입시 실패하고 학점은행제로 학위를 취득했는데 경기대 스타니슬랍스키 연기원에 다녔어요. 그곳에는 슈우킨 대학을 나오신 선생님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선생님들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 학교를 안 갔으면 어쩔 뻔했나 생각이 들 정도로 수업 퀄리티가 정말 좋았어요. 아직까지도 배역을 준비할 때 그 수업을 기본으로 해서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관찰을 가장 많이 하고 관찰을 통해서 배역 창조에 활용을 많이 한다고 할까요?

 

남 어떤 걸 관찰한다는 거예요?

 

박 인물의 외형 관찰, 직업 관찰, 목소리나 말하는 방식을 관찰해요. 인물의 특징적인 제스처나 말투, 몸의 모양 같은 것을 면밀하게 관찰해서 연기에 적용하는 거죠. <로켓 캔디>의 지구 역할은 자폐 스팩트럼을 가진 친구이기 때문에 그런 인물에 대한 관찰을 많이 했어요.

 

남 문제는 일정한 직업군이나 특정한 경우에 놓인 인물들을 관찰해야 하는데 대본 속 배역과 비슷한 인물을 일상에서 잘 만날 수 있어요?

 

박 아니요. 만나기 힘들어요. 하지만 그동안 쌓인 데이터가 있기 때문에 약간의 노하우가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사람들은 이런 곳에 많이 있겠구나 하고 관찰 대상을 잘 찾아내는 노하우라고 할까요? 그리고 다큐를 찾아보기도 하고요.

 

YouTube 도움을 많이 받겠네요? YouTube가 없었으면 배우하기 힘들었겠다. 하하.

 

박 맞아요.

 

남 옛날 같으면 지금 같은 플랫폼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찾아볼 수 있는 경로가 거의 없었단 말이죠. 요즘은 여러 가지 환경이 참 좋아요. 학교 얘기가 먼저 나왔기 때문에 학교 얘기를 먼저 해보죠. 연극은 고등학교 때 처음 접했나요.

 

박 중학교 때 연극부 동아리 시작하면서 연극을 처음 접하게 됐어요. 중학교 들어가서 입학식을 하는데 신입생 환영회에 연극을 하더라고요. 제가 여중 나왔거든요? <홍도야 우지마라>였는데 여자가 남자 역할을 하는데 그게 그렇게 멋있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연극부에 들어갔고 본격적으로 동아리 활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리고 연극부에 좋아하는 언니가 안양예고 들어가는 거 보고 나도 저렇게 해야겠다 하고 생각했죠.

 

남 안양예고 출신이군요? 좀 전에 자신을 입시 실패자라고 했는데 안양 예고 연극과에서 공부를 했다면 대학 입시에 그렇게 어렵진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거예요?

 

사진: 정소영

 

실패해도 기회는 있다

박 취향이 확실했던 것 같아요. 한예종 아니면 용인대만 생각했었거든요. 근데 두 학교 다 실패하고 나니까 엄청난 좌절감이 왔어요. 담당 선생님께 상담을 받았는데 경기대에 있는 스타니슬랍스키 연기원을 권해 주셨어요. “거기에 좋은 선생님들이 많이 계시고 수업이 실기로만 이루어져 있어. 그곳에서 열심히 다니다가 편입을 생각해 볼 수도 있고.” 그래서 시험을 봤어요. 그런데 시험 보는 과정에서 굉장한 위로를 받았어요. 시험이라기보다 상담받는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좋은 느낌으로 입학했기 때문에, 또 좋은 곳이었기 때문에 다른 곳에 편입할 생각을 버리고 졸업까지 하게 됐습니다.

 

남 거기에 선생님들은 어떤 분이 계셨죠?

 

박 극단 ‘동’에 계시는 선생님들이 많았어요. 김정아 선생님, 강세웅 선생님, 최태용 선생님, 김문희 선생님, 김석주 선생님, 유은숙 선생님, 그리고 극단 ‘미추’에 계셨던 최용진 선생님이 계셨어요. 움직임 선생님으로 금배섭 선생님도 계셨고요.

 

남 한예종하고 용인대에서는 왜 박은경 배우를 선택 안 했을까? 두 학교는 큰 인재를 잃었네요. 하하. 스타니슬랍스키 연기원은 인재를 얻었으니 스타니슬랍스키 연기원에게는 참 좋은 일이긴 하지만. 한때 입시 실패자로 좌절도 하고 그랬지만 지금은 빛나는 무대를 보여주는 주목받는 젊은 배우도 우뚝 섰으니 사람 일은 참 몰라요. 고향은 어디예요?

 

박 태어난 건 서울이고요. 갓난아기 때부터 7살까지는 충남 공주에 살았고 그 후에 경기도로 다시 이주했어요.

 

남 엄마, 아빠 직장 때문에?

 

박 네. 두 분 고향이 다 충남 쪽이고요.

 

남 작품 이력을 보면 2018년에 첫 번째 작품을 했네요? <숨통>이라는 작품.

 

박 아니요. 2017년? 2016년? 정확하진 않은데 <숨통> 전에 유은숙 선생님이 연출한 <자연사 박물관>을 공연했어요.

 

남 학교 졸업하고 바로 캐스팅돼서 그 공연을 한 거예요?

 

박 아니요. 졸업하고 한참 후에. 학교에서 마음 맞았던 선배들이랑 극단을 만들어서 <이방인> <죄와 벌>을 공연하기도 했었어요. 그 후에 극단 ‘동’에 들어갔고요.

 

남 작품 이력을 보면 ‘작당모의’에서 <숨통> <구멍을 살펴라> <무릎을긁었는데겨드랑이가따끔하여> <용선> <누룩의 시간> <터키 행진곡>이 있고 ‘공놀이 클럽’과 <로켓 캔디>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이 있고 또 국립극단 작품 몇 작품이 있네요. 국립극단 시즌 단원이었어요?

 

박 아니요. 국립극단 작품은 윤한솔 연출님이 불러주셔서 처음 시작하게 되었어요.

 

남 제가 인상 깊게 본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 얘기를 나눠 볼까요? 거기서 은빈 역을 했죠? 대표 배역 은빈이라고 해야겠다, 작품에 나오는 네 명의 인물을 다 연기하니까. 궁금한 게 애초 대본에 ‘배역들을 모든 배우가 돌아가면서 연기한다’라고 돼 있진 않을 거 같은데요.

 

물론 그렇지 않았어요.

 

남 그럼 그 아이디어는 누구의 아이디어였어요?

 

사진: 정소영

 

수행, 혹은 잘 놀기

그 아이디어는 전적으로 강훈구 연출 아이디어예요. 이 희곡으로 국립극단에서 낭독 공연을 한 적 있는데 그때는 배역에 맞는 그 나이대의 선생님들과 함께 했거든요. 백수련 선생님이 할머니 역할을 하셨었고 박명신 선배님이 엄마 역할을 하셨어요. 낭독 공연을 계기로 훈구 연출은 이 작품은 작전을 잘 짜야 하는 공연임을 느꼈나봐요. 고민을 되게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배우 4명이 모든 배역을 돌아가면서 하자.” 이렇게 훈구 연출이 제안했어요. 그런데 그러한 방식으로 하는 것에 대해 작가님과 이야기 나누어야 하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작가님은 낭독 공연 느낌이 좋았대요. 할머니, 엄마, 아들, 딸이 그 좁아터진 집구석에서 복작복작 사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고요. 그래서 훈구 연출이 작가님과 긴 시간 이야기 나누며 공을 많이 들였다고 들었어요.

 

남 시작할 때 보통은 녹음된 안내 멘트가 나오는데 은빈이가 직접 안내 멘트를 얘기해 주고 그다음에 나오는 인물들을 소개하잖아요. 배역이 입을 옷을 하나하나 갈아입으면서. 처음에 그렇게 관객과의 고리를 걸어주니까 관객이 무리 없이 인물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옷을 갈아입고 다른 배역을 연기하잖아요? 배우입장에서는 어땠어요?

 

박 선생님 말씀대로 옷의 도움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그리고 저희들끼리 동기화 연습을 많이 했어요. 은빈의 시그니처 자세, 규빈의 시그니처 자세, 그리고 엄마와 할머니의 특징적인 자세를 만들어 동기화 하는 거죠. 그 배역을 연기할 때는 그 자세를 기본으로 잡고 만들어냈어요.

 

그러니까 첫 장면에 연기한 배역이 각자의 대표 배역이란 말이죠? 첫 장면의 은빈, 규빈, 엄마, 할머니의 연기를 기본으로 하고 다음에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는 첫 장면의 자세나 목소리, 대사의 딕션등을 최대한 흉내내기를 한다는 거네요. 목소리는 바꾸기 쉽지 않겠지만요.

 

목소리도 비슷하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첫 번째 할머니역을 맡은 세일 배우가 할머니역을 정말 잘해주었어요. 할머니의 특징을 잘 잡아줘서 모두에게 할머니 연기 레슨도 해줬어요. 그리고 각자 자기가 맡은 주요 역할에 대한 연기 계획을 준비해서 프리젠테이션도 했어요. 할머니는 첫음절을 과하게 말해보자, 엄마는 어미를 늘려서 끌어보자, 오빠는 어미를 흐려보자, 은빈이는 계속 화를 내보자, 이런 식으로요.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 사진제공 공놀이클럽

 

참 재밌네요. 그게 연극성인 것 같아요. 다른 곳에서는 할 수 없는 연극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연극에서 보면 엄마가 할머니한테 구박을 많이 받잖아요. 그런데 다른 장면에서는 엄마가 할머니를 연기하고 할머니가 엄마를 연기하며 엄마를 마구 구박한단 말이죠? 그러면 관객은 관계가 전복된 느낌을 받으며 통쾌함 같은 걸 느끼게 돼요. 캐릭터는 할머니, 엄마 동일한데 좀 전에 그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가 누구인가를 기억하고 있으니까 통쾌해지는 거죠. 할머니가 며느리를 그렇게 구박하더니 이렇게 구박받으니 참 꼬시다 하고 말이죠. 하하하.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을 하면서 생각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 같은 거 없어요?

 

박 너무 많아서 어렵네요… 사실 저희가 비슷한 또래이고 하다보니 연습하는 과정이 정말 재밌었어요. 훈구 연출은 즉흥성을 굉장히 요구하는 연출이예요. 이렇게 해보자, 저렇게 해보자 하면서 탁구 치듯이 핑퐁핑퐁. 그렇게 막 하다 보면 너무 재밌고 너무 웃기고 그랬어요. 에피소드가 너무 많아서 에피소드가 생각 안 나는 아이러니라고 할까요? 하하하.

 

공놀이 클럽이라는 이름처럼 정말 놀이하듯이 만드는군요. 현장 한번 구경해 보고 싶다.

 

박 다음에 하게 되면 연습실에 꼭 와주세요. 저희가 공놀이를 진짜 많이 좋아해서 연습 전에 몸풀기로 항상 하거든요.

 

남 공도 종류가 많은데 어떤 공으로 해요.

 

박 고무공이요. 맞아도 안 아픈.

 

남 그렇구나. ‘작당모의’ 김풍년 연출하고도 작업을 많이 했는데 김풍년 연출은 작업 스타일이 어때요?

 

박 “수도승이 고행하듯, 가장 낮은 자리에서 수행하는 자세로 임해보자.” 이런 말씀을 많이 하시거든요. 그래서 김풍년 연출님과의 작업은 정말 힘들어요. 기본 3개월 이상 연습을 해야하고요. 또, ‘작당모의’에서는 삽질을 많이 해야 돼요. 이것저것 가져와서 일단 해보고 그게 아니면 과감히 버리고. 이런 식으로 무한 반복하는 거예요. 그렇게 절차탁마해서 한 방울의 정수를 만들어낼 때까지요. 그래서 엄청 괴롭고 고통스러운 작업인데 그럼에도 계속하는 이유는 이 모든 걸 함께하는 김풍년 연출님, 금배섭 안무가님, 동료들이 있기에 그 힘으로 작업하는 거 같아요.

 

연습 과정의 수많은 실패를 통해서 뭔가 하나의 정수를 끄집어내는 이런 스타일이군요. 강훈구 연출과 김풍년 연출은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네요.

 

박 맞아요.

 

남 그러면 은경 배우는 어느 쪽이 더 잘 맞아요?

 

박 김풍년 연출님의 연습 과정을 거쳐 강훈구 연출처럼 무대에서 노는 것이 저의 이상이예요. 그런데 훈구 연출과 작업하면서도 저는 잘 놀지 못해요. 단계를 짚어가며 수행을 해야한다는 강박에 진짜로 놀지 못하는 느낌이랄까요? 훈구 연출과 첫 작업을 할 때 김풍년 연출님과는 너무나 다른 연습 환경에 놀랐어요. 즉흥을 막 하는데 –제가 즉흥을 정말 못하거든요?- 죽을 거 같더라고요. 훈구 연출과 <로켓 캔디>로 처음 만났는데 공연 첫 주 내내 사시나무 떨듯이 바들바들 떨리는 거예요. 실수하고 망칠까 봐. 헛구역질도 계속 나오고. 그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여기선 좀 놀아 볼까?’ 이런 호기심도 생기고 그러더라고요.

 

아까 학교 얘기할 때 선생님들이 슈우킨 출신 선생님들이 계셨고 거기서 많은 것을 터득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슈우킨이든 쉐프킨이든 스타니슬랍스키의 연극 방식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일 텐데 그 방식하고 김풍년 연출이나 강훈구 연출의 방식과는 차이가 있지 않나요? 학교에서 배운 거하고 실제로 현장에서 작업하는 방식하고.

 

박 스타니슬랍스키와 김풍년 연출님, 강훈구 연출의 방식 차이는 제가 잘 모르겠고요, 하하. 김풍년 연출님과 처음 작업하게 됐을 때, 제일 많이 들은 말이 “일단 해보자!”였어요. 그런데 그 말이 너무 어려운 거예요. ‘일단 해보자? 어떻게 하는 거지? 플랜을 짜야 움직일 수 있는 건데 일단 해보자?’ 엄청 어려웠었어요. 그럼에도 우당탕탕 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계속 시도해 봤던 거 같아요. 저에게 엄청난 훈련이 됐던 거 같아요.

 

 

<로켓 캔디> 사진제공 공놀이클럽

 

고통은 나를 성장 시킨다

남 이력을 보니까 지금까지 25작품을 했던데 괜찮았던 작품이나 좋아하는 작품은 어떤 작품이예요?

 

박 <누룩의 시간>이요. 작업하는 내내 정말 힘들었거든요? 집에 가는 길에 계속 눈물이 나와서 집에도 못 들어가고 옥상에 올라가서 하염없이 울고. 힘든 게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니고. 너무 감사해서… 너무 죄송해서… 오롯이 내 짐인데 김풍년이라는 사람이 함께 짊어준 점이 고개를 못 들 정도로 송구스럽더라고요. 내가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구나, 생각하니 빚을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어떻게든 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히 말해요. 나를 많이 성장시킨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남 그러면 지금까지 했던 작품 중에 잘 해내지 못했다든지 아쉬움이 남는다든지 하는 작품이 있다면 어떤 작품일까요?

 

작품 중에 아픈 손가락이 있는데 그게 <로켓 캔디>예요. 게으르게 임하지 않았고 마음을 안 쓴 것도 아닌데 관객들에게 잘 전달이 안 된 작품이라고 생각이 들어서요. 대본이 정말 좋아요. 정말 좋은 대본인데 그걸 잘 해내지 못한 거 같아 훈구 연출에게도 미안하고 그래요.

 

남 대본 좋고 연출 아이디어도 좋은데 내가 한 연기가 관객들에게 만족스럽게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면 나랑 안 맞는 배역이구나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맞아요. 그럴 수 있어요. 그래서 보고 싶기도 해요. 제가 아닌, 누군가가 연기하는 <로켓 캔디>의 지구를요.

 

<로캣 캔디> 만들 때 관찰이 부족했나 보다. 하하하.

 

박 그런가 봐요. 하하.

 

남 2022년에 동아연극상 신인연기상을 수상했어요, <누룩의 시간>으로. 그리고 백상예술대상 연기상 후보가 됐고요. 그것도 <누룩의 시간>으로 된 건가요?

 

 네.

 

남 저는 아쉽게도 그 작품을 보질 못했어요. <누룩의 시간>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을 해줄래요?

 

<누룩의 시간> 사진제공 작당모의

 

박 누룩에서 태어나 술로 돌아가는, 춘남 할머니의 인생 이야기예요.

 

남 누룩 빚는 할머니?

 

박 네.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에 대한 시리즈로 <초상집 개에 대한 연구> 라는 기획으로 만든 첫번째 작품이었어요. 두번째 작품으로는 <터키 행진곡>이었고요. <누룩의 시간>은 춘남의 누룩이 물에서 불이 되어가는 시간, 기꺼이 죽음으로 향해가는 여정을 담은 작품이에요.

 

남 할머니네요. 그 작품을 연기할 때 나이가 몇 살?

 

박 32살요.

 

남 그 나이에 할머니를 연기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대단하네요. 그 작품으로 연기상까지 받았고요. 2011년에 데뷔해서 14년간 25편을 했는데 은경 배우처럼 잘나가는 배우에게는 비교적 적은 작품 수인데 이유가 뭘까요. 맘에 맞는 연출가하고만 작업을 해서 그런가?

 

박 잘나가지 않아요. 바빠진 건 요 근래예요. 올해에는 욕심을 내서 들어오는 작품은 다 해보자 해서 5작품을 했거든요? 근데 해보니까 저하고는 안 맞는 방식인 거 같아요. 그래서 정신 차렸어요. 원래 하던 대로 해야겠다 하고요. 하하하.

 

배우가 예술가이기도 하지만 생활인이잖아요.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수입을 얻기에 일 년에 두 편으로는 생활이 어렵지 않나요. 게런티가 많은 것도 아닐 테고.

 

맞아요. 어려워요.

 

생활은 어떻게 유지해요?

 

박 2년 전까지만 해도 고정적인 알바를 병행했었는데요. 전 노동하는 게 좋아요. 그 중에서도 몸으로 하는 노동이 좋아요. 그게 저한테 맞기도 하고요. 물론, 연극 작업만으로 돈을 벌면 원이 없겠지요. 하지만 알바를 하는 것도 괜찮아요. 지금은 김정아 선생님이 좋은 기회를 주셔서 초등학교 수업을 나가고 있는데 아이들을 만나고 그 아이들에게서 활력을 얻어 연습실 가는 길이, 공연장 가는 길이 마냥 좋고 그래요.

 

인터뷰 섭외했을 때 은경 배우가 지금 작품 연습을 하고 있는데 두가지를 못하는 사람이라 공연이 다 끝나고 하겠다 해서 오늘로 인터뷰 날짜를 잡았잖아요. 작업과 인터뷰는 같이 못하는데 작업과 알바는 같이 하네요? 하하.

 

일일이 연연해하지 않아도 돼서 가능한 거 같아요.

 

남 생각 없이 해도 되는 것하고, 생각해야 하는 것하고는 같이 할 수 있는 거구나. 둘 다 생각해야 되는 것은 안 되고.

 

박 맞아요.

 

은경 배우는 어떤 배우가 되고 싶어요?

 

사진: 정소영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박 전 연극이 좋아요, 그래서 오랫동안 연극 무대에 설 수 있도록 건강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요. 전에 작업을 할 때는 제가 늘 막내였거든요? 어느 순간 중간쯤에 위치하더니 최근 작업에서는 제가 맏이더라고요. 위치마다 해야 할 몫이 있잖아요? 막상 최고참인 상황에 놓이니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다 지금의 내 위치에 있었던 선배가 생각났어요. ‘저런 선배가 될 거야’ 했던 사람. 그래서 좋은 사람, 좋은 어른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 좋은 선배 이름은 뭐예요?

 

권정훈 선배요.

 

남 좋은 선배는 어떤 모습일까요.

 

박 규정하기가 좀 어려운데요. 음… 내 것만 하지 않는 사람. 주변을 돌볼 줄 아는 사람이 좋은 선배인 것 같아요.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넬 줄 아는 그런 사람이요.

 

남 같이 작업하는 구성원들을 잘 포용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좋은 선배라고 생각하는군요.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든지 아니면 오해받은 일이 있었는데 ‘그게 아닙니다’ 하고 해명하고 싶다든지 하는 건 없어요?

 

김풍년 연출님에게는 늘 고마움이 있어요. 제 스스로 의심이 들 때마다 연출님을 생각해요. “만약 연출님이라면?” 이 생각으로 비겁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김풍년 연출님에게 빚이 많아서 그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그 감사함을 저의 작업으로 보여드리고 싶어요.

 

올해, 혹은 내년 계획은 무엇이 있을까요?

 

내년 계획으로 확정된 건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 뿐이네요. 내년 10월에 여행자 극장에서 다시 한번 올리게 될 거 같아요. 다른 계획들은 지원사업 결과를 기다려봐야 알 거 같습니다.

 

그렇군요. 앞으로 박은경 배우의 행보를 계속 관심 있게 보고 응원할게요. 오늘 인터뷰 응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저를 좋게 봐주시고 인터뷰에 초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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