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춘천시립인형극단 <흰, 모비딕>

글_오판진(연극평론가)

 

2025년 12월 18일부터 20일까지 춘천 봄내극장에서는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을 각색한 인형극 <흰, 모비딕>이 무대에 올랐다. 춘천시립인형극단의 여섯 번째 정기 공연 작품이었는데, 조정일 작가가 각본을 쓰고, 유성균 예술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며, 인형과 오브제 디자인은 문창혁이, 작곡과 현장 연주는 박미경이 맡았다. 인형을 조종한 춘천시립인형극단의 단원은 이다정, 황석용, 이용욱 배우였고, 내레이션과 노래를 맡은 가수는 소프라노 정회정이었다.

 

사진 제공: 춘천시립인형극단

 

독특한 인형이 만들어낸 감전적인 미장센

인형극 무대에서만 가능한 축소와 확대를 바탕으로 넓고 푸른 바다와 포경선, 모비 딕이라는 독창적인 미장센을 창조했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인형 캐릭터가 정형화된 인형의 형상과 비율을 초월하면서 자유롭게 표현된 것이 특징이었다. 스펀지 인형으로 형상화한 사람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젊은 선원 이슈마엘과 에이허브 선장 그리고 피쿼드호에 승선한 많은 선원의 모습을 스펀지 인형으로 아주 개성 있게 형상화하였다.

또한, 다양한 유형의 고래 인형은 색다른 재료와 독특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확연했다. 가령, 스펀지 인형으로 된 고래가 있었고, 철재 골격에 링을 붙여 만든 고래, 천에다 실을 엮어 만든 고래, 마분지로 된 고래 등 모두 독특했다. 첫째, 철재 골격에 링을 붙여 만든 고래는 포경 장면을 무대 위에서 미장센으로 보여줄 때 매우 효과적이었다. 피쿼드호에서 쏜 작살과 그것에 연결된 밧줄이 시각적으로 잘 형상화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천에다 실을 엮어 만든 고래는 배우가 등에 지고 조종하였다. 낚싯대 여러 개를 연결하여 탄성 있는 긴 재료 끝에 매달아 함께 움직였으며, 한 면은 검은색으로, 다른 한 면은 흰색으로 만들었다. 그림자를 포함해, 에이허브의 마지막 모습을 함께 표현할 때 편리하도록 평면으로 만든 것이 특징이었다. 셋째, 마분지로 된 고래는 디자인이 심플했지만, 미장센은 감전적이었다. 마치 항공기에서 내려 보는 것 같은 비율로, 파랗고 투명한 바다에 흰고래가 헤엄치는 장관을 연출하여, 전기에 감전되어 심장을 멈추게 할 만큼 감각적이었다. 흰색 비닐로 꾸민 바다 위에 물개가 사는 몇 개의 섬, 빙산. 화려하게 꾸미지 않은 미니어처로 된 무대였지만, 햇빛이 부서지는 바다의 반짝임인 ‘윤슬’을 상상하게 하였다.

단 세 명의 인형극 배우만으로도 선원들로 북적이는 갑판 위 풍경과 수많은 선원의 심리와 인생을 스펙터클한 미장센으로 형상화했다. 그래서 관객의 상상력을 충분히 자극하였고, 깊은 감상을 가능하게 했다. 어떤 관객은 인형극 <흰, 모비딕>을 보면서 예수님을 떠올리기도 했고, 또 다른 관객은 죽음을 떠올렸다고 했다. 어쩌면 관객의 마음속에 있는 각자의 욕망이 바로 모비 딕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사진 제공: 춘천시립인형극단

 

상상의 나래 펼치게 하는 폴리 사운드

인물과 장면을 상상하게 하는 음향과 음악 등 소리 디자인이 풍성했다. 파도와 바닷가의 풍경, 선원들의 발걸음, 뱃고동, 배 위의 장면과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사운드 디자인이 치밀하고 적절했다. 녹음한 자료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실시간으로 효과음을 만드는 ‘폴리 사운드(Foley sound, 효과음)’를 구현하여 공연의 생동감과 관객의 몰입감을 한층 강화하였다.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가 그런 효과음과 잘 어우러져서 아주 거센 폭풍우를 헤치고 항구에 도착한 배처럼 당당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용욱 배우의 에이허브 선장 목소리와 인형 조종에 감동했다. 역경 속에서도 자신의 목표를 향해 타협 없이 밀고 가는 강인한 성격이 아주 잘 표현되었다. 이다정 배우의 이슈마엘 목소리와 섬세한 인형 조종은 이번 공연의 깊이를 더 확장했다. 새로움을 추구하다가도 고난에 처하게 되면 흔들리는 인간의 내면을 여러 유형의 머뭇거림과 성찰적인 대사로 보여주었다. 두 배우의 연기 위에 황석용 배우가 조종하는 다양한 크기의 ‘모비 딕’ 인형은 부드럽고 여유 있게 관객의 경탄을 유발하며 유영하였다. 흰고래가 다른 등장인물들과 조응하는 연기 합을 흰고래 인형 조종으로 보여주었다. 소프라노 정회정의 목소리와 노래는 청각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장면에서 나타나는 정서와 미감을 정확한 발음과 풍부한 성량 그리고 높은 음역으로 표현하여 선명하고 화려하게 전달하였기 때문이다. 인형극은 보는 것만이 아니라 듣는 것으로도 감동할 수 있는 예술 장르라는 것을 확인하게 해 주었다.

 

사진 제공: 춘천시립인형극단

 

일상과 다른 속도로 욕망을 추구하며 항해하기

인형극 <흰, 모비딕>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흐름은 인생이 그러하듯, 잔잔한 바다가 그러하듯,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과 같은 일상과 다른 빠르기로 전달되었다. 그래서 공연이 시작되면서 바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 공연의 빠르기가 하나의 메시지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고래의 호흡과 맥박이 이런 속도일 것만 같았다. 자연의 순리대로 천천히 흘러가면서 쉽게 흔들리지 않는 도도한 물결을 보는 것 같았다. 공연을 이끌어 가는 화자인 젊은 뱃사람 이슈마엘이 느끼는 삶의 따분함 같기도 했고, 선장 에이허브가 품고 있는 삶의 욕망이 이런 것 같기도 했다. 참선방에서 간간이 들리는 죽비소리처럼 정신이 번쩍 드는 인형극 배우들이 보여주는 미장센이 아니었다면 졸음 속에 빠질 수도 있을 정도였다. 인생이 빠르고 유쾌하며 재미있기만 한 것이 아니듯, 좋은 인형극이란 무겁지 않고 재치 있는 희극 형식이어야 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 인형극 창작진은 모비 딕이 대양을 도도히 헤엄치듯 관객이 자기 인생에서 주인공으로 살기 위해 꾸준하고 묵묵하게 스스로 선택한 빠르기로 자신의 상상계로 진중하게 항해하길 기원하는 것만 같았다.

춘천시립인형극단이 제작한 인형극 <흰, 모비딕>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도전 정신과 열정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가득 보여주었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든 사람이 마음속에 새로운 출항의 깃발을 세우고 모험의 세계로 떠날 수 있게 응원하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꾸준히 품격 있고 놀라운 경지를 보여준 춘천시립인형극단 유성균 예술감독과 이다정, 황석용, 이용욱 단원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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