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단 고릴라×다이얼로거 <인간 탈피>

글_우수진 (연극평론가)

 

 

지난 11월 27일에서 30일까지 소극장 지구인아트홀에서 지강숙 작가의 <인간 탈피>가 남동훈 연출로 공연되었다. 창작집단 고릴라의 남동훈 연출이 창작집단 다이얼로거의 배우들과 만나 협업한 작품이다.

 

안과 밖을 가로지르는, 간유리

극장 안에 들어서면 크지 않은 공간의 규모에 비해 공들여 만들어진 무대가 눈에 띈다. 무대 앞쪽은 책상과 탁자 등이 놓여져 있는 평범한 사무실 공간이다. 그리고 무대 뒤쪽에는 반투명의 간유리 벽이 세워져 있으며, 그곳으로 형체를 알 수 없는 형상들이 흐릿하게 비쳐 보인다. 보이지 않는 뒤쪽 역시 또 다른 연극 공간인 것이다.

 

사진 제공: 극단 고릴라×다이얼로거

 

기하학적 패턴의 반투명한 간유리 벽은 지극히 사실적으로 꾸며진 무대 위의 사무실 공간 안에 연극적인 이질감을 더하면서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공간에 무언가 일상적이지 않은 사건들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을 갖게 만든다. 예감은 바로 현실이 된다. 연극이 시작하자마자 전국적으로 수천 마리의, 서울에만 십만 마리의 슈퍼개구리가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는 현실이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재희와 팀장의 대화를 통해 밝혀지기 때문이다.

간유리 벽은 기능적으로 사무실의 안과 밖을 구분 짓는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무실의 안과 밖은 인간의 공간과 개구리의 공간, 안전한 공간과 위험한 공간으로 이원화한다. 하지만 반투명의 간유리는 위태롭다. 창문에는 지속적으로 개구리의 그림자가 비치고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언제든지 안으로 침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간유리는 사무실의 안과 밖이 완전히 단절되어 있지 않고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사무실 밖의 개구리들은 사실상 탈피한 인간들이며 사무실 안의 인간들도 점점 개구리로 탈피 중이기 때문이다.

 

사진 제공: 극단 고릴라×다이얼로거

 

인간과 비인간, 그 사이(間)의 존재

공간은 그 안에서 인간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규정한다. 예컨대 사무실은 회사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효율과 성과를 우선시하는 원리에 따라 운영된다. 사장은 누구보다도 사무실을 대표하고 경영 원리를 체현하는 인물로, CCTV를 설치하여 사원들을 감시하고 언제나 “나보다 회사가 먼저”를 강조한다. 사원들은 비록 사장의 방침에 동의할 수 없지만, 생존을 위해 적응하려고 노력한다.

문제는 완전히 적응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인턴사원인 재희는 불합리한 낙하산 인사로 인해 매번 재고용에서 탈락하거나 부당한 대우로 징계를 받는 동료들로 인해 마음이 아프며 악몽까지 꾼다. 그리고 유정의 아버지는 기계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동료를 구하려다가 손을 다치는 바람에 퇴사를 하고 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부적응은 인간적인 마음, 즉 동정심과 슬픔 등의 감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냉혹한 현실에 슬픔을 느끼는 재희와 유정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사장 밑에서 일하는 팀장과 ‘토착비리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주민센터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하는 유정의 오빠까지, 이 모두는 개구리로 변화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성을 지님으로써 인간에서 탈피하여 개구리가 되는 것이다.

 

사진 제공: 극단 고릴라×다이얼로거

 

이렇게 사무실의 안과 밖은 각각 비인간적인 공간과 인간적인 공간으로 구분된다. 그런데 자칫 단순해질 수 있는 이분법적인 구도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지닌 인턴사원인 유영의 존재로 인해 흔들린다. 유영은 장애로 인해 기계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며, 언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타인과 소통하는 것이 어려운 인물이다. 따라서 타인과 상황에 대한 공감 능력도 거의 없다. 하지만 유영은 흥미롭게도 그러한 장애를 통해 외부세계에 즉자적으로 반응하고 자기 감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면서 인간/비인간의 이분법을 가로지른다. 그는 자신의 업무능력을 무시하는 사장의 발언을 듣고도 “일을 더 잘하고 싶어졌어요”라고 마음먹고, 개구리에 대한 혐오나 두려움 없이 개구리가 되어가는 아빠와 재희를 멋지다고 생각하며 함께 폴짝폴짝 뛰어다닌다.

 

사진 제공: 극단 고릴라×다이얼로거

 

규모 있는 무대와 연기

<인간 탈피>는 소극장 연극임에 비해 상당히 규모 있는 무대를 보여주었다. 우선 천정이 낮고 작은 무대의 뒤편에는 반투명의 벽을 세워 깊이감을 확장시켰다. 그리고 반투명의 벽 뒤에서 알록달록한 유색의 조명들을 비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개구리들이 가득한 벽 너머의 공간, 나아가 그 무대 공간 밖의 세계까지 상상할 수 있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개구리들은 표현주의적으로 분장한 얼굴에 반짝이는 질감의 의상을 입고 반투명의 벽을 넘어와 유영과 함께 뛰어다니며 사실적인 무대와 이질감이나 단절감 없이 환상적인 장면들을 만들어냈다.

전체적으로 사실주의적인 가운데 표현주의적이고 환상적인 장면들이 삽입하는 다소 난이도 있는 극작과 연출은 12명의 시니어 배우들과 주니어 배우들의 균형 있는 연기의 앙상블에 의해 완성되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유영 역을 맡은 박혜림 배우의 역할이 컸다. 그는 유영의 기계적인 말과 행동 가운데 엉뚱한 발언과 행동이 불러일으키는 유머나 긴장감을, 그리고 환상적인 개구리 장면에서는 역동성을 잘 살려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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