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공놀이클럽 <무화과>

글_김소연(연극평론가)

 

후줄근한 티셔츠와 운동복 바지, 한동안 손도 안 댄 것 같은 긴머리의 건장한(?) 젊은 남자가 무대 구석에 등장하여 온갖 싫어하는 것들을 쏟아놓는다. 물컹한 음식이 싫고, 노래 못 부르면서 노래방 가자고 하는 애들이 싫다. 젊은 남자는 자신은 청소년이라고, 진짜라고 한다. 이 청년, 아니 이 청소년의 ‘싫어요’을 듣고 있자니 피식피식 웃음이 흘러나온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온갖 싫은 것들은 그저 웃어 넘길 일들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미역국에 들어간 소고기를, 도토리묵을, 가지를 먹는 것은 그저 참고 꿀떡 넘길 문제가 아닌 이들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권유가 아니라 강요일 수 있으며 자신의 존재가 위협받는다고 느끼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너가 아직 어려서 맛을 모른다는’ 어른들이 그저 싫은 것이 아니라 증오와 적개심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을까? 그런 세상을 부셔버리고 싶지는 않을까? 싫지만 꿀떡 넘기고 뒤돌아 세상을 향해 내지르는 것으로 억압을 해소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이것은 과장이 아니다. ‘안착한 청소년극’을 표방한 <무화과>의 첫 장면이다.

 

사진: 공놀이클럽 이지응

 

청소년의 통념에 갇히지 않고 더 많은 이야기를 길어올리다

 

<무화과>는 ‘청소년극’을 표방하지만, 청소년 이야기만은 아니다. 10개의 에피소드 중 몇몇은 학교 친구 관계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이지만 이 사건과 갈등이 성인이 아니기에 겪는 일들이 아니다. 학교의 ‘퀸’인 친구에게 돈을 뜯어내려는 어설픈 소녀들(‘여신님이 구라치고 계셔’), 전학 온 여학생에게 한눈에 반한 남학생(‘두근두근 전학생’), 동성애 성향을 숨기기 위해 이성연애를 가장하는 커플(‘위장연애’) 등은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퀸’은 협박범들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이 꾸며낸 것이라고 고백하고 어설픈 협박범이 학교 친구들인 걸 알게 되자 자신을 계속 퀸이라 믿으라며 그렇지 않으면 협박범으로 신고하겠다며 협박한다. 스스로를 아바타처럼 꾸미고 있는 ‘퀸’이나 친구를 협박해서 얻은 돈으로 친구처럼 되고 싶은 소녀들이나 모두 부와 인플루언서를 선망하지만 그렇지 못한 스스로에게 절망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러한 선망과 절망은 그저 청소년기에 겪는 일일까. 여학생이 자신은 트랜스젠더라 밝히는 것을 자신의 관심을 거절하는 거짓말이라며 직접 성기를 확인하겠다는 남학생은 어떤가. 자신을 거부했다는 것이 예의와 존중을 무시하는 이유가 되어 폭력이라는 인식마저 없이 자행되는 폭력은 그저 아직 미성년이기 때문일까. 이성애자라면 라이브 카메라 앞에서 섹스를 해보라는 무리들 역시 청소년들의 이야기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이 에피소드들에서 학교, 학교 친구는 거리를 둘 수 없는 관계의 배경으로 물러서 있고 사건은 피할 수 없이 대면해야 하는 관계들에서 비롯된다. (학교 예술강사 활동을 하는 아티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학교에서는 너무 구체적인 개인의 이야기로 연극을 만들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신을 드러내기에 학교는 너무 위험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사진: 공놀이클럽 이지응

 

<무화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청소년이라고 주장하거나 청소년으로 미루어 짐작되거나 청소년이다. 하지만 연극의 장면 장면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성인과 경계 지워진 청소년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문을 두드리며 문을 열라는 엄마와 문을 열지 않는 소녀의 이야기(‘내방에 들어오지 마!’)는 청소년 아이와 부모의 익숙한 장면처럼 시작된다. 그러나 이 익숙한 장면이 짧은 대화로 이어지고 벽을 두드리며 문을 열라는 소리가 극장 이곳저곳 사방 벽에서 이어질 때 마치 세상 전체가 문을 열라고 다그치는 것만 같다. 소녀는 청소년기 부모와의 갈등을 넘어 세상 모든 소리에 단단히 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 고립된 존재로 다가온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일상적 대화가 무대 연출을 통해 환상으로 전개되어 간다면 300년 동안 죽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뱀파이어 소년 소녀가 무료함에 멋지게 투신하기 내기를 하고(‘뱀파이어의 투신자살’) 아들이 아버지가 살고 있는 화성에 찾아가는(‘아빠는 화성인’) 환상적 이야기들도 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있건, 마주 보고 이야기하고 있건, 죽지 못해 또는 죽일 이유마저 잃어버린 모두가 고독한 존재들이다.

 

사진: 공놀이클럽 이지응

 

물론 젊은 배우들이 참여하고 있는 만큼 이 이야기가 세대의 이야기로 다가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의 통념적인 청소년에 한정하지 않고 연극은 더 많은 이야기들을 건져올리는데 특히 폭력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이 그렇다. 존속살해가 벌어지고야 마는 가족 내 폭력을 무대 밖으로 밀쳐두지 않으며(‘의좋은 자매’), 폭력을 폭력으로 이해하지도 인식하지도 못한 채 벌어지고 있는 폭력을 외면하지 않는다.(‘두근두근 전학생’ ‘위장연애’)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덮쳐오는 폭력도 있다.(‘나락도 락이다’) 독립된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짧지만 강렬하다. 살인은 무대 밖에서 벌어졌고, 동생의 살인을 덮어주려는 언니와 그럴 수 없다는 동생의 실랑이는 구체적인 폭력을 말하지 않으면서도 살인에 이르게 된 아버지의 폭력을 드러낸다. ‘한눈에 반한’ 설레임이 폭력으로 돌진하고, 무리들 속에서 폭력은 빠르게 증식된다. 락스타들을 두고 벌이는 시답지 않은 소년들의 농담이 마약중독으로 급선회할 때, 바로 그러한 급선회가 부지불식간에 빠져드는 중독을 연극의 전개로 드러낸다. 짧은 에피소드들은 선정적 재현을 비껴서면서도 지금 여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마치 날카로운 칼로 오려낸 듯 명료하게 보여준다. 명료함은 어떤 사건을 다루었는가만이 아니라 어떻게 사건을 다루고 있는가에서 비롯된다.

 

사진: 공놀이클럽 이지응

 

때로는 잘 짜여진 장면의 매끈한 전개가 사건을 모호하게 하고

그런데 바로 그 ‘어떻게’가 때로는 전개되는 사건을 모호하게 하기도 한다. 두 줄이 선명한 임신진단키트를 두고 소년과 소녀가 갈등을 벌이는 것은 원치 않는 임신이기 때문이다.(‘두 줄’)어떻게 할 것인가. 소녀와 소년의 갈등은 임신중단 시술을 위한 병원비에서 시작해서 이 임신진단키트가 조작된 것은 아닌지 의심하다가 아이의 아빠는 누구인가로 전개된다. 소녀는 떠나고 혼자 남은 소년은 속을 뻔했다며 안도한다. 짧은 장면이지만 갈등은 격렬하고 여러 차례 선회하면서 긴장감을 만든다. 그런데 이 장면의 긴장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관객들은 소년의 의심을 따라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이들이 겪고 있는 문제가 병원비를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인가. 우리는 두 사람의 갈등에서 거리를 두고 청소년의 성관계, 아니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이어지는 성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까. 동생을 대신해 살인범이 되려는 언니의 이야기는 어떤가. 언니 역시 동생만큼이나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려왔다는 것이 드러나는 이들의 살랑이에서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면서 살인을 연습하는 장면은 희극적 클리셰에 치우쳐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때문에 참혹한 사건이 희화화되는 것은 아닐까.

 

사진: 공놀이클럽 이지응

 

<무화과>는 잘 만든 연극이다. ‘안착한 청소년극’을 표방하는 이 작품은 ‘착한 청소년극’이 다루지 않는 더 많은 이야기를 깊고 예리하게 다룬다. ‘안착한’ 청소년극은 ‘나쁜’ 청소년극이 아니다. 게다가 공개오디션을 통해 입문하는 배우들과 함께 하는 과정과 생동감 넘치는 배우들의 연기로 완성되는 결과까지 그지없이 ‘착한’ ‘좋은’ 제작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몇몇 에피소드의 경우, 잘 짜여진 연극의 관습을 매끈하게 전개하면서 사건을 모호하게 한다.

다시 연극의 첫장면. ‘싫어요’. 우리는 왜 웃음을 흘릴까. 한편으로는 청소년, 청소년극의 통념을 깨는 데에서 비롯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지름과 머뭇거림이라는 상반된 행동에서 비롯된다. 청년 같은 소년은 무대 후면 벽 앞을 떠나지 못하고, 내내 ‘싫다’가 아니라 ‘싫어요’라고 말한다. 내지르지만 머뭇거림을 품고 있는, 이 상반된 행동이 인물과 상황을 풍부하게 하면서 웃음을 자아낸다. 대본도 연출도 연기도 재미있는 잘 만든 장면이다. 그런데 바로 그 웃음이 웃어넘길 수 없는 고통을 지워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잘 만든 연극의 함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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