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금지된 세상에서 간절히 연극이 하고 싶었던 이들의 이야기

글_ 정윤희

 

극단 종로예술극장, <리더스>

작: 성천모

연출: 성천모

공연일시: 2019. 3. 15. (금) ~ 2019. 4. 28. (일)

공연장소: 종로예술극장

관극일시: 2019. 3. 27. (수)

출연 : 홍수영, 이양호, 한동완, 고현준, 길정석

 

 

 

연극이 도처에 널려있는 세상에서, 100년 전 연극이 금지되었었다는 시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극중 시리아에서 유일하게 남은 네 명의 배우들은 비밀경찰의 감시를 받으며 하얀 막 뒤에서 외설적이거나 우스꽝스러운 내용을 담은 그림자극을 상연하고 있다.

 

그들은 열렬히 토로한다. 지금 당장 저 막을 찢고 나가 관객들의 두 눈을 직접 바라보며 그들의 마음에 불을 지필 수 있는 연극을 자신들이 얼마나 하고 싶은지를 말이다. 연극에 목말라 하던 이들은 마침내 묘안을 생각해내는데, 그림자극 대신 관객들에게 책을 읽어주기로 한 것이다. 객석에 있는 이들로 하여금 자기 성찰과 감흥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책읽기는 연극과 동일한 목표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장의 감시도 피할 수 있는 방편이었다.

 

공연이 없는 시간대에는 카페로 쓰인다는 극장은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따로 없다. 평소 손님을 대접하던 아일랜드 식탁은 공연이 시작되면 무대의 소품으로 바뀌고, 공연이 시작되기 전 관객들의 손을 타던 책장들도 고스란히 무대의 배경이 되며, 관객들이 차를 마시거나 책을 읽으며 앉아있던 의자들은 그대로 객석이 된다. 배우들은 객석 중간 중간에 놓은 의자를 수시로 드나들며 대사를 읊곤 한다. 덕분에 곁에 앉은 배우의 호흡과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순간도 찾아왔다.

 

배우들의 톤과 연기는 100년 전의 시리아인이 아닌 동시대 인물을 표현하고 있었다. 번역 작품이 아닌 국내 창작 작품이기에 당연한 연출이기도 했다. 연극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배우들이 격렬하게 토론하는 장면에서는 극중 인물들의 성격이 극명하게 갈리기도 한다. 그들이 21세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얼마나 간절히 연극을 해나가고 싶어 하는지를 작품과 공간과 모든 설정이 말하고 있었다. 극은 결국 이 모든 것이 용기에 관한 문제라고 말한다. 세상이 자신들을 얼마나 옭아매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초월할 용기가 각자에게 있느냐고 말이다. 열정은 타협을 허용하지 않으며, 그저 그 자체로 온전하게 존재한다. 현실의 무게에 눌려 때로 꿈을 내려놓고 싶을 때 가끔 이 작품을 기억에서 꺼내 보고 싶을 것 같았다.

 

조명은 무대이자 객석이기도 한 공간의 사방에 설치되어 있어서 부지런히 효과를 내고 있었다. 조명은 이 작품에서 많은 인상을 남기게 되는데, 관객이 배우들과 동일한 조명을 받는 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작품의 마지막 장면인 그림자극 덕분이다. 시리아 정부로부터 폐쇄명령을 받은 극장의 배우들은 혼신을 다해 마지막 그림자극을 상연한다. 책이 금지된 세상에서 걸인과 아기를 안은 여자와 노인들에게 책을 읽어준 한 남자의 재판에 관한 이야기였다. 비밀경찰의 분노에 찬 고함과 총소리가 들렸으며, 막은 찢기고 배우들은 무대로 뛰쳐나왔다. 찢긴 막 뒤로 뒤편에 있던 조명이 관객들의 눈을 직접적으로 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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