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창극단 <심청가>를 통해 장르의 본질을 살펴보다
글_정윤희(공연평론가)
작/연출 : 손진책
음악감독 : 이태백
공연일시 : 2019년 6월 5일 ~ 16일
공연장소 : 국립극장 달오름
관극일시 : 2019년 6월 14일 (금) 20:00
관객의 상상력에 큰 몫을 할애해 주었던 미니멀한 무대
우리 소리라는 장르에서나, 연극이라는 장르에서나 관객들의 상상력이 공연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는 특성이 공통으로 존재한다. ‘창극 심청가’의 미니멀한 무대 소품과 장치는 불필요한 감각적 장애물을 걷어냄으로써 본래 관객들이 지녀야 할 몫을 일부 회복시켜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탁월한 전략이었다. 장면의 전환은 매우 단순한 형태의 평상 몇 개만이 이동함으로써 이루어졌고, 그 나머지 비어있는 무대의 공간은 관객들의 몫으로 채워졌다. 미니멀한 무대 소품과 연출은 오롯이 창작자의 아이디어로서 완성되는 것으로서 공연 제작 현장에서 구현되기 어려운 기법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본 공연에서는 그러한 기법이 잘 살아있었고, 이는 다른 매체들에서도 이 작품에 대하여 극찬하는 바이다.
하지만 단순한 무대에 비하여 의상은 매우 도드라졌다. 옷감의 지나친 광택과 화려한 색상은 관람자의 내면에서 장면을 재구상할 때 그 감흥을 가라앉히는 요인이 되었다. 의상 역시 좀 더 힘을 빼고 무대장치와 소품들이 구현하고 있는 가치와 함께 해도 좋았을 것이다.
다양한 결을 지니고 있었던 배우들, 그리고 그것이 지닐 수 있는 의미에 대하여
배우들의 결들이 조화로운 작품이었다. ‘심청’은 매우 전형적인 캐릭터이면서, 전통적인 캐릭터이다. 또한 ‘효’라는 가치에 지나치게 희생하는 캐릭터이기에 오늘날에는 그만큼 설득력이 약한 캐릭터가 될 수도 있다. 어린 심청과 황후 심청을 연기한 민은경, 이소연 두 배우는 다소 연기가 딱딱해 보일 수도 있다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캐릭터가 가진 전형성, 불멸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반면 유태평양이 연기한 심 봉사는 상대적으로 매우 유연한 캐릭터였다. 아내와 딸을 끔찍이도 아끼는 다정다감한 성격, 잘 키운 딸 하나가 열 아들 안 부럽다고 말할 정도의 깨어 있는 생각, 죽은 아내와 인당수에 빠진 딸을 몹시도 그리워하다가도 뺑덕의 유혹에 쉽게 넘어 가버리는 허점을 배우는 넉살 좋게 연기해야만 했다. 고전 심청의 낡은 가치를 극복하고 플롯의 흐름에 자연스러움과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은 두 명의 심청보다는 심 봉사를 연기한 배우가 가져갔어야 할 몫이었고, 배우는 이를 잘 표현했다고 생각된다. 다만 원체 나이가 어린 배우가 심 봉사를 연기하고 있다는 점은 참작해야 했다.
남도 언어가 가진 매력을 십분 살려준 대본
우리 소리 본연의 가치를 살리기 위해서 가장 세심하고 방대한 공이 들어갔던 작업은 극본 작업이었을 것이다. 작품은 ‘교양있는 사람들이 쓰는 현대 서울말’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게 오래전 남도에서 쓰이던 말투 역시 우리 언어의 일부라는 것을 버젓이 증명해주었다. 5시간짜리 소리를 짜임새 있는 2시간짜리 대본으로 치환하는 작업에서, 작가는 남도 민요 말투가 가진 고유한 풍미를 전혀 놓치지 않은 듯했다. 최근 우리 연극계의 한 경향이 조선의 언어, 우리의 근대 언어를 재구성하여 대본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잊혀진 우리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오늘날, 창극에서 남도 언어의 제맛을 살려내는 본연의 연구와 작업이 더욱 힘을 받을 수 있다고 사료된다.
창극에서 소리꾼의 합창과 배경 음악이 표현하는 것들
한편 소리꾼들의 합창은 작품에서 긴박감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해내기도 했지만 남도 언어를 매우 또렷하게 전달해주는 역할도 했다. 합창에 참여하는 이들은 개인이 가진 특기 즉, 목소리의 울림, 떨림, 발음에서 낼 수 있는 멋을 최대한 죽여야 했을 테고, 이는 본래 우리 소리라는 장르가 가진 특성과 충돌할 수도 있는 지점이었지만, 소리꾼들의 합창은 남도 언어를 보다 웅장하고 분명하게 전달함으로써, 이 언어가 가진 본래의 몫을 주장하는 듯했다.
그러한 창극의 합창이 주는 강렬한 인상에도 불구하고, 그처럼 많은 인원이 무대에 공존하는 방식에서는 좀 더 고민이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또한 소리에 보조를 맞추었던 연주와 북소리 역시 남도 특유의 언어의 맛을 잘 살려주는데 한몫했다. 음악은 극이 가진 현대적인 감각과 긴장감을 잘 표현해 주었던 한편, 대사 자체가 지닌 운율을 최대한 살려주어야 하는 장면에서 제 역할을 잘 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