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스펙이다!

 

글_이연심(무학여자고등학교 교사)

 

표를 할 때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고 얼굴은 붉어지고 손에서는 땀이 발표문이 젖을 정도 쏟아진다.”

 

 

고등학교 2학년 김00이는 며칠째 영어 수행평가를 준비하고 있다. 팀 발표라서 자신이 맡은 부분을 잘 발표하지 못하면 팀 점수에 영향을 주어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1학기 사회문화 수행평가 때도 너무 떨려 준비한 것만큼 발표하지 못해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했고 그 결과가 자기 때문인 것 같아 친구들에게 너무 미안했었다. 또 똑같은 전철을 밟을 수 없으니 부담감은 훨씬 더하다. 그런데 문제는 발표를 할 때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고 얼굴은 붉어지고 손에서는 땀이 발표문이 젖을 정도 쏟아진다. 그렇게 떨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친구들이 알아채는 것도 두렵고 그래서 더욱 말을 더듬게 된다.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은 ‘성격이 원래 내성적이라서’, ‘너무 잘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니 부담을 내려놓으라’고 조언하지만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발표 날이 다가올수록 잠을 잘 수 없고 불안감은 점점 더 심해진다.

 

 

김00이가 느끼는 이런 불편감, 불안감은 의학적으로는 대인공포증, 또는 사회공포증(social phobia)이라고도 하고 공포장애의 하나로 분류한다.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예로는 배우들이 느끼는 무대공포증(stage fright)을 들 수 있을 것이며 중요한 발표나 회의를 앞두고 다수의 직장인들이 경험하게 되는 발표불안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질병의 수준이 아니더라도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며 자신을 괴롭히고 나아가 대인관계에 장애요소로 작용한다면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졸업과 동시에 더 이상 발표와 영영 이별하면 좋겠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아니 취업과정에서부터 발표는 역시 중요한 삶의 변수가 된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해야 할 순간을 마주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발표불안에 시달린다. 졸업과 동시에 더 이상 발표와 영영 이별하면 좋겠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아니 취업과정에서부터 발표는 역시 중요한 삶의 변수가 된다.

 

 

올해 1월 인사혁신처가 발표한 “2019년도 국가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 등 계획 공고”에 따르면 5급, 7급, 9급 시험은 모두 최종적으로 면접시험에 의해 합격여부를 결정한다. 예컨대 9급 공무원의 면접시험은 5분 과제 발표와 개별 면접으로 구성되어 있고, 5급 공무원의 면접시험은 집단심화토의와 개별 면접으로 구성되어 있어 토의과정에서는 1인당 모두발언(冒頭發言)을 하고 토의에 참석해야 한다.

또한 2015년 삼성을 비롯한 주요 21개 대기업 공채에도 ‘탈스펙 채용’을 내세우면서 학점이나 어학성적 등의 스펙을 축소하거나 삭제하는 대신 면접, PT, 집단토론 제도를 신설하거나 강화했다.

 

 

좀 지난 자료이지만 2015년 전경련이 대기업, 금융권 등에 취업한 20-30대의 직장인 8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이 ‘업무에 가장 도움이 되는 스펙’으로 ‘스피치 능력’(48.9%)을 꼽았으며 ‘발표할 상황이 많아서’, ‘커뮤니케이션에 도움이 되어서’, ‘전화로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가 많아서’ 등으로 그 이유로 들었다. 그만큼 발표능력이 직장 내에선 중요한 생존 전략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컴퓨터 활용 능력(77.5%)이 가장 필요한 스펙으로 선정되었지만 이는 정보화 사회를 고려한다면 너무도 당연한 것이니 크게 놀랄 일은 아닌듯하다. 그 대신 영어 스펙이 업무수행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대답이 77%를 차지했는데 취업 준비기간 동안 쏟은 노력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이 결과가 더 놀랍다고 해야 할 것이다.)

바야흐로 발표를 빼고는 성공적인 학교생활이나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지경이다. 꼭 학교 수행 평가, 취업 면접시험이 아니더라도 직장이나 학교, 사회생활에서 발표를 해야 할 상황은 점점 늘어나고 어쩌면 발표 하나로 인생이 완전히 바뀔 수도 있다.

흥미있는 통계조사는 또 있다. 한 취업포털에서 직장인 33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공포증’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응답자의 대부분(91.1%)이 ‘혹시라도 말실수를 할까봐’, ‘말을 잘 못해서’ 등의 이유로 ‘전화 공포증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우리는 초, 대학까지 16년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아니 유아기의 가정교육까지 합치면 그 보다 훨씬 많은 시간동안 말하기를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결국 상당수의 사람들이 말하고 발표하는 것이 공포가 되어 버린 상황을 견디며 살고 있다는 얘기다. 평생을 말을 하며 살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과 말을 하는 것이 이리도 공포스러운 일이었나? 새삼 놀랍기까지 하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초・중・고, 대학까지 16년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아니 유아기의 가정교육까지 합치면 그 보다 훨씬 많은 시간동안 ‘말하기’를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어른들에게 나의 생각을 확고하게 이야기하면 말대꾸하지 말라며 야단맞기 일쑤였다. 내 생각을 말로 조리있게 표현할 기회라는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또 말하기 교육을 받았다하더라고 교육의 내용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얼마나 논리적으로 또는 적절하게 구성하는지에 치우쳐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말할까’에 집중하게 되었고 점차 ‘어떻게 말할까’는 뒷전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말하기’는 우리와 점점 멀어져 간다.

 

 

효과적으로 잘 말하고자 한다면 지식과 같은 콘텐츠만 채울 것이 아니라 자신의 표정이나 제스츄어, 억양 등의 표현을 살피고 연습하는 것이 필요하다.

 

뻔한 얘기겠지만 말이나 발표의 목적은 자신이 의도하는 메시지를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앞의 몇 가지 자료에 따르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잘’ 전달하면 현대사회에서는 경쟁력이 된다는 얘기인데, 그럼 어떻게 하면 그 능력을 가질 수 있을까?

캘리포니아 대학의 심리학자 메라비언(Albert Mehrabian)의 의사소통이론을 토대로 생각해 보자. 그 이론에 따르면 사람간의 대화에서 말의 내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겨우 7%에 지나지 않으며 대신 얼굴 표정이나 몸짓, 목소리의 억양이나 속도, 발음 등이 93%를 차지한다. 물론 이 이론은 직장이나 학교 등 정보의 전달이 중요한 특수 상황을 가정했다기보다는 일상적인 사람간의 대화상황을 가정한 것이므로 이 수치가 의미하는 바는 다소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족이나 연인, 친구와 대화를 할 때든, 학교나 직장에서 아주 중요한 발표, 강의, 프리젠테이션 등을 할 때든 상대방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보다 비(非)언어적 또는 반(半)언어적 표현을 비중있게 받아들이며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정보의 단순한 전달이외에 표정, 몸짓, 억양, 목소리의 톤 등을 가미하여 조금이라도 더 호의적인 인상을 남길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효과적으로 잘 말하고자 한다면 지식과 같은 콘텐츠만 채울 것이 아니라 자신의 표정이나 제스츄어, 억양 등의 표현을 살피고 연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되도록 피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뒤집어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 앞에서 말을 잘하는 용기와 능력은 ‘진짜 스펙’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발표도 친구끼리 수다를 떠는 것처럼 쉬우면 얼마나 좋겠는가? 딱히 ‘말하기’를 배워보지 못한 학생이나 직장인들은 새삼스럽게 말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수많은 책을 뒤지고 학원까지 찾는다. 사실 포털에 ‘발표 잘하는 법’이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 등을 검색하면 엄청난 양의 자료와 동영상을 찾을 수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또 절실하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자신의 잘못된 발음이나 말하는 태도, 시선과 표정, 제스츄어까지 점검하고 학습하며 교정한다. 그때서야 자신이 어떻게 말하고 있으며 어떤 표정을 짓고. 말할 때의 습관은 어떤지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평생 별 어려움이 없이 말을 하며 살아 왔는데 말을 다시 배워야 한다니! 대중 앞에서 말을 하는 것도 일상 언어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어법이 사용된다. 그러니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발표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그래서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말하는 방법은 배우나 아나운서처럼 소위 말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멀리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은 마치 배우가 대본에 따라 연기를 하듯 미리 준비한 내용을 의도된 설정에 따라 전달해야 한다. 물론 즉석 연설이나 발표를 기가 막히게 잘 하는 ‘선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선수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잘 했을까? 반복된 실전과 훈련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생각과 동시에 발화되는 일상의 대화와는 달리, 발표는 생각하고 있는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어법과 몸짓 등을 선택하고 시뮬레이션(연습)을 거쳐 드디어 발화된다. 발화의 과정이 다른 것이다. 즉 발표는 배우가 대사를 할 때처럼 훈련 농도와 전문성의 차이는 있겠지만 발화과정은 본질적으로 같다.

 

 

바야흐로 말을 잘 하기 위해서 억양, 강약, 휴지, 표정, 몸짓 등이 얼마나 중요한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학문을 접하듯 공부를 한다. 예컨대 말을 하다가 적절한 시점에서 잠깐 말을 중지하면 자신이 전하고자 메시지를 강조할 수 있다. 너무 빠른 속도로 말하면 무의식적으로 불안하거나 약해 보일 수도 있고 너무 천천히 말하면 게으르거나 무관심해 보일 수도 있다, 너무 큰 목소리는 상대에게 불쾌감을 줄 수도 있으며 너무 작은 소리는 지나치게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이것뿐이 아니다. 말을 할 때는 상대의 눈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약간씩 끄덕이면 상대에게 긍정적인 대답을 얻어 낼 수 있다. 발표를 할 때 표정이나 몸짓을 자연스럽게 하되 특별히 강조할 것이 있으면 말과 몸짓의 순서를 고려한다. 즉, 말보다 몸짓을 먼저 하게 되면 말이 강조되고, 몸짓보다 말을 먼저 하게 되면 몸짓이 강조가 된다. 이 이외에도 말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나 많겠는가?

 

연극을 하면 진짜 스펙을 갖게 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연극’을 배우면 간단하게 학습할 수 있는 방법들이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어법이나 표정, 제스츄어, 자세 등은 연기의 기본이고 관중의 반응을 읽고 적절히 대응하는 것은 배우의 기본이다. 즉 연극은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발표불안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즉 요즈음 직장생활에서 절실히 필요한 ‘진짜 스펙’이 된다는 것이다. 두려워 피하는 사람이 많고 또 잘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가운데 말을 잘하게 된다는 것은 경쟁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종류의 연극 책이 있다. 그 교재 중에는 고등학생들이 사용하는 연극관련 교과서도 있는데 그 교과서에 보면 연극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교육적 효능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연극을 하면 ‘삶에 대한 통찰력’이 깊어지고 ‘감수성’, ‘사회성’, ‘분석력’. ‘상상력’, ‘창의력’, ‘표현력’ 등이 좋아진다는 것인데, 이제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연극을 하면 ‘진짜 스펙’을 갖게 된다!” 가 아닐까?

 

 

*<통계자료 출처>
-전국경제인연합회 http://www.fki.or.kr/Main.aspx
-인사혁신처 사이버국가고시센터 https://www.gosi.kr/
-취업 포털 커리어 보도자료 (http://www.career.co.kr/help/media_data_view.asp?rid=2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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