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저작권 단상
글_오세곤(연극평론가)
연극에서 희곡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그래서인지 “좋은 희곡으로 안 좋은 연극을 만드는 수는 있어도 부실한 희곡으로 좋은 연극을 만들 수는 없다”는 말도 있다. 그러니까 희곡은 연극 작품의 질을 결정하는 일종의 전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듯 중요한 희곡은 과연 제대로 인정을 받고 있을까? 그것을 창작하는 작가들은 과연 전문가로서 합당한 대우를 받고 있을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무대를 만드는 나무나 못은 돈을 주고 사도 희곡 사용료는 지불하기를 주저한다. 극장 대관료나 프로그램 인쇄비는 지불 안 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희곡 사용료는 지불 안 하고도 마구 사용하기 일쑤다. 글쎄, 아무리 공연을 많이 해도 희곡 자체가 닳아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일까? 참으로 비전문적인 생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연극이 예술로서 전문화하려면 당연히 그 바탕인 희곡이 전문화해야 하고, 그러려면 작가를 전문가로서 대접하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렇다면 외국 희곡에 대해서는 어떨까? 우리나라 극단들은 대부분 영세하다. 그러다보니 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도 그냥 무단으로 사용하는 수가 많다. 하기야 공연이 아닌 출판계도 그렇다.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뮤지컬 쪽에서는 이미 해외 원작 저작권 관련 커다란 송사들이 벌어졌던 터이다. 그래서 최근 외국 희곡의 저작권 대행을 맡고 있는 국내 에이전시들의 분위기에서는 그러한 법적 조치가 멀지 않았음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런 조치에 근거가 될 자료야 각 극단 스스로 인터넷에 잔뜩 남겨 놓았으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문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청소년들의 게임 불법 다운로드에 대해 변호사들이 무작위로 메일을 보내 법적 조치 운운하며 합의금을 요구하는 것은 이미 흔한 일이 되었으니 희곡 저작권이 그렇게 되지 말란 법도 없다.
최근에 극단 76과 극단 노을이 ‘작은 베케트전’을 열면서 있었던 일이다. 작품은 <엔드게임>과 <오 행복한 날들>이었다. 우리 연극계는 저작권에 대해 거의 인식이 없다. 그래서 국내 작가들의 작품에 대해서는 별도 비용 책정 없이 그저 구두로 허락을 받는 정도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또 외국 작품에 대해서는 대부분 원작자가 아닌 번역자에게만 허락을 구하고 만다. 그러나 둘 다 잘못된 것이다. 국내 작가에게도 당연히 허락과 함께 합당한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하고, 해외 작품의 경우 원작자와 번역자 양쪽에 허락을 구하고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여기 저기 수소문하여 두 작품의 저작권 대행사를 알아보았는데 <엔드게임>은 원작이 불어로 국내 대행사가 있었고, <오 행복한 날들>은 원작이 영어로 국내 대행사 없이 외국 회사와 직접 상대해야 했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희곡에 대한 철저한 존중을 요구해서 <엔드게임>에 대해서는 음악을 절대 사용하지 말라고 하면서 각서까지 제출하라 했고 <오 행복한 날들>에 대해서는 음악과 무대 등 지시사항을 그대로 따라달라는 주문이 붙어 왔다.
그런데 문제는 원작자 쪽에서 요구하는 저작권료가 우리의 현실로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기껏 2주나 3주를, 그것도 50석에서 150석 정도의 소극장에서 공연하는데 1,500불 정도를 지불하라니 대행 수수료에 부가세까지 하면 거의 200만원이 된다. 사실 출판 쪽에서도 거의 이 정도 액수를 선인세로 요구하는데 정말 대형 출판사가 아니면 번역자에게 원작 저작권료를 부담시키기도 한다. 물론 그 경우 원작자 몫 6%와 번역자 몫 4%를 합쳐 번역자에게 10% 정도의 인세를 약속하지만 실제 2,000부 이상이 팔려야 간신히 채울 수 있는 액수이다.
아주 어렵게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몇 가지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우선 희곡 저작권에 대해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희곡 저작권 대행사들은 그냥 사무적으로 일을 중개해 줄 뿐이다. 심지어는 서류를 영문으로 작성하지 않으면 대부분 접수조차 받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 연극 현장이 얼마나 열악한지 따위에는 관심을 가질 턱이 없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외국 원작자들을 설득하여 그 작품이 한국에서 많이 공연되고 제대로 가치를 발휘하려면 저작권료에 대해 훨씬 호의적이고 유연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도록 하는 일은 국가 차원에서 나서지 않고는 해결하기 어렵다. 그와 병행하여 극단들의 능력으로 부담할 수 있는 액수와 해외 저작권료의 차액을 지원해 주는 정책도 세워야 한다. 외국어로 소통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도 물론 지원이 필요할 것이고, 별도로 학교에서 교육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에 적용할 원칙도 세우고 전파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드는 또 하나의 생각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작가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8월호에 공연예술 전문인력의 표준인건비를 설명했는데 그때 작가의 경우 연출과 같이 1년에 3편을 전업 기준으로 보고 작품 1편 당 지급 액수를 계산하였다. 그래서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일반 공연의 경우 1편 당 698만 600원, 최저생계비를 적용하는 비영리 공연의 경우 1편 당 409만 6820원이 되었다.
그러니까 1년에 신작 3편을 발표한다 할 때 그것으로 최저임금 또는 최저생계비에 해당하는 수입을 보장해 주자는 취지의 계산이었는데, 이 경우 신작이 아닌 이미 발표된 희곡에 대한 저작권료와는 다소 개념이 다르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작가에 관해서는 신작에 적용할 표준인건비에 덧붙여서 이미 발표한 작품의 저작권료에 관한 규정이 필요한데 이것은 바로 앞서 외국 작품들에 적용되는 수준을 감안하여 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공연 현장의 여건을 감안한 조정과 필요시 국가의 차액 지원은 필요할 것이다.
물론 연극에 종사하는 직종 중 희곡 작가만 정당한 대우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특히 배우들에 대한 인건비 책정 및 지불은 대단히 시급한 문제이다. 그러나 중요성이 충분히 드러나 있음에도 간과되고 있는 배우 인건비 문제와 존재 자체가 묻혀 버리기 십상인 희곡의 저작권료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선 희곡 부분을 언급한 것이다. 부디 연극의 모든 세부 분야가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받는 환경이 하루 속히 이루어지기를 고대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