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근절 캠페인, 연극이 되다
연극 <심판>
글_신단비
작·연출 김완수
제작 설앤수컴퍼니
장소 봄날아트홀
일시 2019년 9월 1일 ~ 오픈런
10대 청소년의 자살 이유 1위는 학교 폭력이다*.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 청소년 범죄 중 가장 큰 문제는 학교 폭력이다. 사춘기가 시작되며 반항기를 품는 시기인 청소년에게 감정은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감정 하나에 좌지우지되며 사회의 축소판인 학교에서 생활하는 청소년에게 폭력은 앞으로 어른이 되기 전에 사람의 인격 하나를 모독하며, 살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연극 ⟪심판⟫은 청소년 학교 폭력을 예방하고 근절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연극은 주인공 우진이 옥상에서 짝사랑하는 학생을 떠올리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우선 비평을 시작하기 전에 줄거리를 간단하게 말하자면 우진이 학교 폭력으로 자살하게 되며, 가해자인 국봉에게 가하는 질문과 비난이 줄줄이 이어지는 내용이다. 특히 국봉이 재판에서 비난받고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알려주는 장면은 관객에게 속 시원한 감정을 들게 하였다. 학교 폭력은 나쁜 것이며, 겨우 사소한 잘못이나 실수쯤으로 여기는 것이 결코 옳은 방안이 아님을 알리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극이 주는 메시지가 좋다고 연극 전체가 좋은 것이라고는 반드시 단언할 수 없다. 이 극은 주제가 또렷하며 전달력은 매우 좋았으나 군데군데 허술한 점이 많이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먼저, 극작가와 연출은 연극은 무언가를 예방하기 위한 캠페인과 다른 분야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학교 폭력을 예방하고 근절하자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내용이라도 그것의 방향성이 캠페인이나 UCC와 같은 미디어 매체와 같아져서는 안 된다. 극은 암시나 상징 등의 기법을 사용하여 관객에게 극에 숨겨진 의미나 주제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너무 적나라하거나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직접적인 대사나 연출만으로는 진행하기 다소 어려울 수 있다. 연극이 가지는, 혹은 주는 장점을 전부 지워버리고 예술성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연극 ⟪심판⟫에서 보이는 우진이 옥상 끄트머리 같은 곳에 앉아 극이 시작되는 장면이나 같은 반 학생 설아에게 학교폭력이 SNS 청원에 올라가 가해자를 사형까지 몰아갈 수 있다는 엑스트라의 대사 등은 암시라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지만, 너무 뻔하고 단순하기 때문에 쉽게 뒤의 장면을 예상할 수 있다. 관객에게 너무 어렵지 않은 암시를 이용하는 것은 좋지만 이 극에서는 너무 적나라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결말을 알아버려 흥미를 떨어트리는 부정적인 효과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외에도 연극 ⟪심판⟫은 관객을 참여하는 참여극의 성질을 띄는 데에 비해 극을 시작하고 중반까지만 해도 관객이 끼어들만한 내용이 거의 없다. 객석 역시 교실이라는 설정이 있으나 배우와 연출만 알아서는 안 된다. 우진이 국봉에게 괴롭힘을 받고 이를 막으려는 설아에게 협박을 하는 장면에서 관객이 방관자 학생인 것처럼 대하는 장면이 있었더라면 관객도 이 극 안에 자신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했듯 연극은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공간에서 사건이 일어나는 구조를 띄고 있기 때문에 공간적 특성을 잘 살리는 것이 좋다. 관객에게 극에 몰입하면서 극에 참여하는 방향을 고집하고 싶다면 무대라는 특성을 살려 현장감 있게 연출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학교 폭력에 대해 직접적으로 알리는 방법은 좋지만 모두가 직접적이면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며 또한, 연극이라는 세상을 모방한 가상 세계에 관객을 끌어들이도록 더 많은 연극적 고민을 한다면 보다 더 좋은 작품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극 안에서는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정보가 여럿 언급된다. 정보를 주어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학교 폭력에 대한 심각성을 알리는 시도 자체는 좋았다. 하지만 정보의 양이 너무 과다한 경향이 있으며, 정보를 포함한 대사가 너무 길어 장면이 늘어지고 지루한 감이 있다. 또한 그 대사를 읊는 배우의 속사포 같은 속도로 인해 무엇을 말하는지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없다. 이는 관객에게 극에 대한 집중을 떨어트리고 극을 한 발짝 멀리 보게 한다. 극 중 대사는 이러했다. 청소년 자살의 1위는 학교 폭력이며, 이로 인해 자살하지 않아도 트라우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일상생활에 돌아오지 못하는 학생의 수는 2~30%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사회생활을 살기에 아주 힘든 수치라는 대사가 요약되지 않고 인물 대사 안에 그대로 들어가 있다. 이런 신뢰성 높은 정보가 학교 폭력 예방을 위한 극 안에 들어가는 것은 효과적일 수 있지만, 필자는 극을 보며 정보를 읊는 대사가 오히려 극의 흐름을 끊고 대사의 리듬을 깨버려 집중을 못 하게 하는 효과를 준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정보인 만큼 관객에게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 효과가 미약하거나 역효과를 준다면 그것은 퇴고 과정에서 다른 것으로 바꾸거나 아예 삭제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앞에서도 말했듯 극은 언제까지나 예술이며, 문학 장르이다. 캠페인이나 UCC처럼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내용을 적나라하게 교육적으로 알려주기보다 관람하는 관객이 스스로 깨닫고 생각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기는 것이 더 좋은 효과를 가져다준다. 그렇다고 긴 대사가 연극을 방해하고 주제와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장면이 늘어지고 지루하다고 느끼게 되면 대사의 내용이 잘 들리지 않는다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수정하는 것이 좋으나, 대사가 중요한 열쇠가 된다면 문제는 대사를 소화하는 배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배우의 연기나 목소리 톤, 발음 등에서 집중을 떨어트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보를 읊는 대부분은 감초 역할을 맡은 배우가 실행했으며 이 배우가 나오며 긴 대사를 읊을 때에 관객들은 감초 역할의 배우라는 인상으로 심각한 대사와 다르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대사에서 전하는 심각성을 느끼기보다 배우의 인상 하나로 대사는 들리지 않고 극의 분위기마저 가벼워지는 느낌을 결코 전개 상황에 적합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사가 심각성을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더더욱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에서 풀어내는 것이 맞다. 아무리 내용이 가볍더라도 그것을 소화하고 연기해내는 배우의 역량에 따라 대사의 무게나 분위기가 달라지곤 한다. 감초 역할을 맡은 배우의 입에서 그것을 전달한다면 감초 역할을 맡은 배우가 아닌 다른 배우가 전달하는 역할을 대신하거나 가벼움을 잠시 내려놓는 것이 집중을 흐리지 않고 끝까지 끌고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극 내에서 관객은 같은 반 학생, 혹은 다른 반 학생, 배심원이 된다. 배우는 관객석에 나가 마치 관객이 학생이거나 배심원인 것처럼 대하는 대사를 말한다. 관객은 이런 배우들의 연기를 몰입하여 극에 함께한 것처럼 느껴야 한다. 결코 극을 하나의 극으로 보기만 하면 그 효과는 미미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만을 알리고 그것에 대한 부당함, 피해자가 겪은 억울함, 가해자에게 심어주는 죄책감 등은 논설문이나 주장하는 글로 충분히 표현해낼 수 있다. 필자는 이 극을 보며 마치 학교 폭력은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논설문을 본 기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논설문은 읽는 사람이 객관화된 시선과 마음으로 읽게 한다. 논리적으로 사람을 설득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연극은 연극 안에 관객이 들어가 함께 분노하고 슬퍼해야 한다. 이런 연극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면, 방관자를 합리화하는 하나의 부정적인 수단이 생기지는 않을지 염려된다. 이런 말이 있다. 중립은 가해자에게만 이로울 뿐, 피해자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침묵은 결국 괴롭히는 사람 편에 서 있는 것이다.** 극에서 피해자의 심정이 어떨지, 가해자에 의해 피해자가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행동하는 게 과연 가해자의 형벌에 아무런 기여도 없는지에 대한 내용을 언급하고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당연히 중립을 지키는 것보다 피해자의 입장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것이 좋다. 극은 피해에 대한 설명을 감정적으로 나열하고 그 이후에 처벌받는 가해자의 인생이나 가족, 이렇게 된 배경을 보여준다. 가해자가 이렇게 된 이유가 어찌 되었건 벌은 받아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까. 관객을 침묵하게 만들어놓고 가해자가 처절하게 후회하고 속을 싹싹 빌며 나 살려주시라고 외치는 것을 보고 관객은 과연 어떤 편에 설지 의문이 들었다.
폭력은 나쁘다. 세상에는 많은 폭력이 존재한다. 학교폭력, 성폭력, 사이버폭력 등등 범위는 넓고 피해자는 너무나 많다. 모든 사람이 폭력이 위법이고 비윤리적임을 알지만, 끊임없이 폭력행위는 주위에 넘쳐난다. 청소년 문제에서도 학교폭력은 가장 두드러지는 문제 중 하나다. 그것을 학생들도 알고 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아직도 학교폭력이 만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폭력에 노출되면 그 기준이 옅어지고 감각이 무뎌지는 것처럼 학교폭력이 몹시 나쁘며 그것을 침묵하는 것또한 나쁘고 직접 폭력을 행사하는 것도 나쁘다는 것을 알려주되, 어떠한 과정이 있든 간에 가해자에 이입하는 것이 아닌 피해자의 시선으로 폭력에 대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것을 전면적으로 다루는 연극 ⟪심판⟫은 관객을 어떻게 잘 끌어들이고 깨닫게 하는지 조금 더 조심히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 연극 <심판> 中 대사 일부를 인용함.
** 엘리 위젤 Elie Wiesel, 노벨 평화상 연설 中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더욱 고심하여 다음시즌때는 연극의 예술성을 잘살려보도록 하겠습니다.